소설

 

 

김유나 金裕娜

1992년 출생. 2020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활동 시작.

kgn0212@naver.com

 

 

 

랫풀다운

 

 

열. 석용은 양쪽 견갑을 모으며 바를 끌어당겼다. 두번째 세트의 열번째 움직임이었다. 앉은 자세에서 바를 쇄골 쪽으로 끌어당기는 랫풀다운 머신은 광배근을 강화하기에 가장 좋은 운동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몸의 후면 근육을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잡아주는 운동이 중요해요. 석용은 회원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왔고, 가르친 대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묵직한 광배근을 느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잡생각이 끼어들어 손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석용은 세번째 세트의 첫번째 동작을 멈추고 호흡을 골랐다. 하지만 오래 쉬면 더 힘들어지니까,라고 생각하며 다시 하나.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식단을 공유하고 운동기록을 올리는 게 목적이었던 회원들과의 카톡방은 ‘제이 피트니스 먹튀 대책회의’방이 되었다. 둘. 헬스장 대표는 회원 120명의 선납 이용료를 들고 잠적했다. 석용을 포함한 강사들의 월급은 삼개월째 밀린 상황이었다. 셋. 헬스장이 문을 닫는 넷째주 일요일에 모든 헬스장 기구들을 팔아넘긴 걸로 보아 우발적인 잠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예상됐다. 삼면에 유리만 남은 웨이트 존의 살풍경. 직장을 잃은 다섯명의 오전 출근자들은 말을 잃은 채 서 있다가 이면지를 찾아 양해문구를, 그것도 몇번이나 고쳐 쓰고, 경찰서에 전화를 걸고, 퍼스널 트레이닝을 맡고 있던 회원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넷. 그저께, 관리인 하나 없는 아파트 지하의 헬스장에서 오전운동을 마친 석용은 조홍화 회원과 통화를 나눴고, 그날 이후 회원들의 연락을 피하고 있다. 헬스장 바로 옆 건물 일층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홍화 회원은 말했다.

“선생님 차원에서 해주실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선생님 믿고 운동 시작한 건데.”

삼개월 치를 미리 끊었는데. 돈이 백오십인데. 석용은 ‘저도 피해자입니다’라는 말을 하려다가 관뒀다. 그 대신 정말 죄송하다고, 저희 사촌조카가 곧 돌인데 언제 한번 꼭 가서 돌떡이라도 맞추겠다고 말했다.

“돌떡이요?”

조홍화 회원은 허탈하게 웃고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을 견디던 석용은 핸드폰을 붙잡고 고개를 숙여가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건만 부끄러워져 석용은 왼손으로 겨드랑이 털을 만지작거렸다. 전화를 끊고 샤워를 하면서, 석용은 대표인 승우형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역도 실업팀 시절 승우형은 석용의 바벨 메이트였다. 석용아, 복근에 힘주고 집중해 집중. 석용아, 중량 좀만 올려보자. 석용아, 그냥 놔버리지 그랬어. 그냥 놓고 무릎을 살렸어야지. 형은 석용에게 물리치료사, 수영지도사 자격증 공부를 권한 사람이었다. 물에는 물로, 불에는 불로, 부상에는 운동으로. 상황이 이 지경이 되기 몇개월 전, 강사들 사이에서 승우형이 회원과 바람이 났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도, 센터를 마련해줬다는 그의 장모가 찾아와 집어 던질 만한 것을 찾다가 주변엔 전부 무거운 것뿐이라 대여용 운동복을 헬스장 이곳저곳에 집어 던졌을 때도, 석용은 그를 믿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궁금한 일에 말을 아끼고 묵묵히 곁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자신이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관리실장 겸 코어밸런스 GX트레이닝을 맡고 있던 허인승 선생이 카톡방에 공유한 문자메시지 캡처본을 본 뒤, 석용은 자기 자신에게 기이한 수치심을 느껴야만 했다. “인승아, 너한텐 진짜 미안하다.” 석용은 그날 어머니의 말마따나 자신이 ‘작정한 놈 눈에 띈 물렁한 놈’이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사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잃고 석용이 할 수 있는 일은 근육을 유지하고 하루 네끼 단백질 식단을 챙겨 먹는 것밖엔 없었다. 하지만 그건 이전에도 해왔던 일이었다. 트레이너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대책모임에도 이젠 나가고 싶지 않았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내용증명을 보낸 뒤로는 모여서 할 일도 없었다. 이주 만에 세 사람이 근처 헬스장에 스페어 강사로 재취업했다. 세 사람 모두 아이가 있었다. 더이상 기다릴 희망도 돈도 없다는 나은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그게 맞는 수순인 것 같았다. 두 눈을 가리는 삽살개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형욱씨만이 ‘돈을 못 받으면 집에 찾아가서 두드려 패기라도 해야 한다’는 식의 의지를 가졌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석용은 그런 형욱씨를 달래는 것에도 지쳤다. 실업자 다섯명이 동네에서 안주가 제일 싼 술집 단체석에 모여 앉아 웃거나 화내가며 대책 없는 대책회의를 지속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일도. 아무런 쓸모가, 없어. 아무런. 쓸모가. 스물. 기어이 다섯번째 세트의 스무번째 동작까지 마친 석용은 거울을 보았다. 들썩이는 흉근. 성인 남자 머리통만 한 허벅지와 다물어지지 않는 이두박근. 오랜 시간 공들여온 98킬로그램의 몸뚱이.

“그때 준 생선 너무 짜던데.”

석용은 아까부터 줄곧 음식 이야기를 하던 그들을 거울을 통해 쳐다보았다.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니었다. 석용과 마주칠 때마다 그들은 음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닷고기가 짜지 싱거워? 물에 담가서 짠 기를 빼고 찌든가 굽든가 해야지.”

저 불량배 같은 인간들. 석용은 기구 사용을 방해하고 운동공간에서 취식을 하는 그들이 탐탁지 않았다. 그 아주머니들은 매번 근육을 풀어주는 ‘덜덜이’를 잠깐 하다가 벤치프레스를 벤치 삼아 앉아서는 가운데에 간식 비닐봉지를 펼쳐놓고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 그들은 이 아파트 헬스장을 오래전부터 그런 식으로 이용해온 모양인지 운동을 하는 석용을 신기한 듯 바라보곤 했다. 지난주에는 고구마를 들고선 어머나, 이게 뭐랑 똑 닮았다 말하며 배를 잡고 웃다가 백 익스텐션을 하는 석용을 보고는 아예 주저앉아 웃었고, 그 이후 석용은 더욱이 그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야. 소금도 그거보단 싱거워. 자연산 옥돔 맞어?”

“참나, 안 먹으려면 도로 줘.”

석용은 헬스장이 그리웠다. 옥돔 실랑이나 비닐봉지 소리가 끼어들 수 없는 온전한 집중과 단련의 공간이. 근육을 위한 독서실이. 석용은 제이 피트니스를 자신의 공간이라 여겼다. 지난겨울 승우형이 석용을 따로 불러 말한 뒤로는 더 그랬다. 형은 스피닝룸을 정리하고 프라이빗 PT룸을 만들 예정인데, 거기서 나오는 수익의 60퍼센트를 이자 대신 떼어주겠다고 했다. 단 시설 철거와 초기 비용에 드는 육천만원을 투자 개념으로 빌려줘야 한다고. 너 인마, 놀고 있을 때도 돈 들어올 곳을 만들어놔야 노년이 편해진다. 석용은 태연한 승우형의 목소리가 떠올라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었다. 예선과 헤어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승우형 때문이었다. 네가 진짜 트레이너라면 피트니스 대회에 나가서 꾸준히 자신을 갱신하는 걸로 회원들에게 본을 보여야 돼. 석용은 그 조언을 깊이 새겨 4월부터 8월까지 풀타임으로 일하는 중에도 쪽잠을 자며 운동을 해 대회에 나갔다. 그러느라 예선에겐 뭐든 미루자고 말했다. 식은 미루자. 상견례는 미루자. 그게 뭐든 잠깐만 미루자. 석용은 승우형의 멱살을 잡아다 무릎을 꿇리고 싶었다. 책임지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에 가서,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어 애꿎은 무릎만 잡았다.

“자연산이라니까! 그리고 옥돔은 제주도에서만 나, 이 양반아!”

석용은 ‘제주도’라는 단어에서 퍼뜩 무언가가 떠올라 고개를 돌려 아주머니들 쪽을 쳐다보았다. 흠칫 놀란 그들이 되레 석용을 노려보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석용은 땀에 젖은 두건을 풀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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