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성태 全成太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1994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함. 소설집 『매향』 『국경을 넘는 일』 『늑대』,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이 있음. jstroot@hanmail.net
로동신문
301동 경비원 나씨는 신문더미를 꾸리다 말고 노끈을 늦추었다. 신문 한장이 비어져나와 눈에 거슬렸다. 노끈 끝을 물고 나씨는 폐지를 쑤석거려 불거진 신문을 당겨넣었다.
“아, 대충 햐. 사돈집에 보낼 거여?”
종이박스를 정리하던 정문 경비실 천씨가 코끝에 땀방울을 달고 서서 짜증스럽게 참견했다. 윗도리 단추 풀고 모자도 뒤통수로 넘긴 게 마음은 벌써 선풍기 밑으로라도 내뺀 모양새였다. 나씨는 노상 겪는 말본새라 천씨가 무슨 소래기를 퍼부어도 돌벼랑 미륵불처럼 웃고 말았다. 더군다나 오늘은 화요일이었다. 재활용품 분리수거하는 날 근무조에 걸리면 천씨는 하루내 부루퉁해서 지냈다.
나씨는 묵묵히 폐지 모서리를 쳐서 귀를 맞추고 노끈을 당겼다. 아까 그놈이 도로 불거졌다. 네 귀로 조금씩 남아도는 게 신문이 원래 너붓한 모양이었다. 요새는 신문들도 크기가 들쭉날쭉해서 꾸리기가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칠팔년 만져온 손끝에 이런 신문은 처음이었다. 나씨는 신문을 뽑아들었다. 한장이 반으로 접혔는데 구깃구깃하고 누리끼리했다.
“그 집에서 나왔나?”
107호에서 나오곤 하는 신문인가 싶어 중얼거린 말이었다. 주말부부집인데 남편이 다녀가면 서울 쪽에서만 돈다는 그 누름한 신문이 더러 나오곤 했다. 경비들 사이에서도 그 신문 때깔이 여러번 입에 오른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살다 내려온 천씨가 그 신문을 알아봤다. 나씨는 오른손에서 목장갑을 벗겨냈다. 천씨가 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며 눈을 흘겼다.
“그건 아녀. 살굿빛이라고 하지 않더남. 딱 보니까 홀아비 빤스 같은 게 궂은 날 짜장면 그릇 덮었다가 왔구먼. 뭘 펴보고 그랴?”
“어디 노조 신문인가벼.”
1면을 펴들고 심상하게 말하던 나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신문을 탁 털어서 눈앞으로 당겼다.
“홀딱 벗은 배우라도 나왔남? 택배상자에 붙은 글씨도 가물가물한 눈으로 뭘 들여다봐싸.”
나씨는 대꾸가 없었다. 이참에 아예 쉴 참으로 천씨는 담배를 빼물고는 빈 담뱃갑을 구겨서 쓰레기봉투에 던져넣었다.
“오늘은 빈병이랑 피티병이랑 거진 스무자루씩 나왔지? 야유회 뒤끝 같어. 휴가철인데도 이만치 나왔다면 너무 하잖여. 뭘 그렇게 처먹어들 쌓는지, 원……”
천씨의 푸념처럼 음식물 쓰레기통 옆으로 우유병, 깡통, 플라스틱 따위를 담은 마대자루가 쌀가마니처럼 쌓여 있고, 그 옆으로는 철사 옷걸이를 펴서 꿴 스티로폼과 박스에 정리한 폐지가 또 한 산이었다. 점심 먹고 나서 둘이 작업해낸 것들이었다. 저녁나절에도 또 이만큼 나올 거였다. 천씨는 주위를 둘러보고 목소리를 한껏 낮춰서 말을 이었다.
“하긴 휴가철이래도, 있는 동네 얘기지. 열불나는구먼. 왕년에 목동서 일할 때는 여름이 기중 편했어. 이걸 보고 누가 촌구석 임대아파트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하겠냐고. 오늘은 냉장고하고 에어컨 박스만 해도 대여섯개여. 아 참, 전자대리점 놈들한테 배달하고 박스 좀 걷어가라고 말 안했어? 왜들 그랴? 동초소에서 해야지 정문에서 단속할까. 암튼 탈북자인지 새터민인지 하는 입주자들이 철도 없이 들이닥치니 이러다간 우리가 꼭 수용소 지키는 간수 꼴 나겠어.”
그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말고 신문에 박혀서 기척도 없는 나씨가 눈에 밟히자 버럭 소리쳤다.
“아, 아는 사람 부고라도 났어?”
나씨는 화들짝 놀란 낯으로 신문에서 눈을 뗐다.
“어이, 천씨, 나 좀 보더라고.”
나씨가 노는 손을 까불었다.
“아, 볼일 있는 사람이 댕겨봐. 난 시방 입에서도 땀이 나.”
나씨는 펴든 신문을 들고 천씨에게 다가갔다. 그는 손가락으로 신문 상단을 짚어냈다. 수전증 걸린 사람처럼 손가락 끝이 바르르 활자를 쪼았다.
“이거 저쪽 거시기 아녀?”
나씨는 머리를 산 너머로 넘길 듯 고개를 까닥 젖혀 보였다. 천씨가 머리를 기웃이 디밀고 붓글씨로 흘려 쓴 듯한 신문이름을 평소 버릇대로 소리내어 읽었다.
“로, 동, 신, 문…… 로동신문? 어디 조합 신문인가?”
“그 밑엘 보라니께. 조선로동당이여. 조선로동당 기관지라고 박혀 있잖여. 요 옆탱이도 좀 보더라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주체사상으로다 튼튼히 무장하자! 얼러리. 이쪽으로는, 선군의 위력으로 사회주의강성대국건설에서 새로운 비약을 이룩하자! 오매, 살 떨려.”
두 사람은 등에 총부리 닿은 사람들처럼 뻣뻣하게 허리를 세웠다. 찬바람이라도 쓸고 간 듯했다.
“참말로 살 떨리네. 어느 집에서 나왔을까?”
천씨가 아파트단지를 휘둘러보며 속삭였다. 오후 3시의 자글자글한 땡볕 속으로 매미소리만 듣그럽게 끓었다. 여전히 놀란 목소리로 그러나 반신반의하는 투로 나씨가 말했다.
“설마 진짜 아니겄제. 누가 장난으로 맹근 걸 거여, 잉?”
“장난할 것도 없네. 분명 어디 이삿짐에서 묻어 나왔을 거라.”
“신고해야 쓰겄지?”
“신고? 이 반공영감이 오늘 또 열불나게 하네. 제발 귀찮은 일 만들지 말고 도로 쑤셔넣어.”
“안 봤으면 모를까 어떻게 보고도 거시기하남.”
“육십 평생 살면서 사사건건 알은체하고 참견하고 살았남? 그랬어?”
“이것이 그럴 일이냐고. 이웃에 빤히 거시기가 사는 증거가 아니더라고.”
다시 한번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잠시 말이 끊어졌다가 천씨가 짜증스럽게 침을 뱉었다.
“그걸 헷또라고 돌리고 하는 소리여? 나씨가 간첩이라고 쳐. 제 안방에서 버젓이 그 흉한 걸 읽고 재활용하라고 내놓겠어? 그런 얼빠진 놈이 대명천지에 어디 있냐고. 같잖은 소리를 해야지.”
“간첩들은 잡혀들어도 뭐시냐, 사상교육시키느라고 다른 거시기를 감옥소로 위장해서 남파한다잖여.”
“그래서 사상교육하느라 신문까지 배달시켜 읽는다고? 이리 내놔.”
천씨는 신문을 사납게 빼앗았다. 그 겨를에 신문이 반이나 찢어졌고 그것을 천씨는 나씨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아나, 간첩. 넘겨짚을 데를 넘겨짚어야지.”
천씨는 신문을 구겨서 신문더미 속에다가 도로 쑤셔박았다. 그는 손을 탈탈 털고 돌아섰다.
“날도 찌는데 애먼 데 힘쓰지 말고, 대충 끝내고 난닝구 걷어붙이고 선풍기 바람 좀 쐬자고.”
그래도 나씨는 그 자리에 박혀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안타깝게 말했다.
“천씨 말짝시나 대명천지에 왜 이런 것이 여기에 굴러다니겄어? 바람에 실려왔겄남?”
“왜 누가 평양에서 냉면이라도 시켜먹은 모양이지. 우리 아파트가 오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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