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임재희 林在熹

1964년 강원 철원 출생. 2013년 세계문학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당신의 파라다이스』 『비늘』 등이 있음. vhyunlim@hanmail.net

 

 

 

로드(Road)

 

 

케네디 암살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낸 건 명이었다. 최종 목적지가 댈러스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지루한 사막지대가 끝없이 이어지던 차창 밖 풍광에 모두가 지루해하던 때였다. 그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도 흥미롭다고 범도 맞장구를 치며 명의 흥을 돋우었다. 우연들이 겹치고 그 우연들이 마치 미리 계획된 시간 속에서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오싹할 정도라고 했다. 진은 케네디에 관한 영화와 책이 너무 많이 쏟아져나와 식상하다고 한마디 보탰다. 명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사람들은 완전히 낯선 이야기보다 계속 의문을 던지는, 알려진 얘기에 더 흥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정말 꼼꼼하게 계획하고 벌인 일일까?”

범이 물었다.

“암살이? 아니면 그 집이?”

진이 물었고 운전대를 잡고 있던 명이 한쪽 손을 들며, 실은 나도 그게 궁금해, 소리쳤다. 셋 모두 알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 범, 명, 삼남매는 고모가 사는 쌘안토니오에서 출발해 댈러스를 향해 달리는 차 안에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 다른 주(州)에 있는 대학에 가는 바람에 셋이 함께 장시간 운전을 하고 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크리스마스를 한달 정도 남겨두고 있었고, 선글라스 없이 한치 앞을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햇볕이 따가운 날이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반대쪽 도로에는 셀 수 있을 만큼 차들이 드문드문 지나다녔다. 파란색 승합차 한대가 캠핑용품인지 이삿짐인지 모를 것들을 가득 싣고 그들 곁을 스쳐 지나갔다. 운전석 옆에 앉은 아이들이 고개를 길게 빼고 진, 범, 명이 탄 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진은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모래색을 닮은 바위들과 그런 바위들이 만든 언덕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식물들이 바싹 말라비틀어진 채 뒤엉켜 있었다. 거대한 나무처럼 웃자란 선인장들은 두 손을 높이 쳐들고 포효하다 굳어버린 들짐승 같았다. 기대했던 부드러운 모래둔덕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사막이라고 다 같은 사막이 아닌 것만 같았다. 지루했고, 지루해서 쓸데없이 방금 스쳐간 파란색 승합차에 타고 있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볼 지경이었다. 운전석에 있던 사람보다 체구가 몹시 작아 보였으니 아이라고 여겼는데 아닌 것도 같았다. 역광 때문이었을까. 진은 그들의 머리가 기이할 정도로 커 보였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티셔츠 색깔이 밝은 파란색이었다는 것도 그제야 기억났다.

그 어떤 생각을 해도 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엄마가 전화로 주소를 불러주었을 때부터 엄마의 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얼마 전에 서울 변두리에 있는 작은 빌라로 옮겼다는 사실을 떠올렸을 때 뭔가 앞뒤가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가격이 싸도 그렇지, 연고도 없는 댈러스 외곽에 집이라니. 그녀로서는 여전히 의아한 일이었다. 서울의 작은 아파트 전세 보증금의 반도 안 되는 가격이라고 해도 엄마에겐 큰돈이었다.

진은 라디오의 볼륨이 귀에 거슬린다는 생각이 들었고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를 줄였다. 휴가라도 가는 사람들 같네. 속으로 된소리를 삼켰다. 래퍼의 목소리가 거친 기계음처럼 흘러나왔던 차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옆에서 운전을 하던 명이 진을 슬쩍 쳐다보았다.

“릴 웨인의 노래를 함부로 끄다니!”

뒤에 앉아 있던 범이 과장되게 두 손을 벌리며 말했다. 랩이라도 있어야 사막의 지루함과 삭막함을 견디지. 분명 그런 눈빛이었다. 범의 저런 모습은 정말 싫다고 진은 생각했다.

“제발, 너 그 래퍼들에 대한 미친 애정을 멈출 수 없니?”

진은 ‘그게 바로 늘 엄마가 걱정하는 부분이야’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엄마는 범이 가끔 대마초를 피우고 친구들과 히죽대며 노는 것도 다 랩을 좋아해 생긴 버릇이라고 여겼다. 드레드락스며 힙합 복장, 게다가 초점 없는 눈초리까지 래퍼들을 닮아갈까 미리 걱정했다.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방은 지저분해도 옷은 늘 단정하게 입고 다녀 엄마의 걱정은 기우였다는 게 증명되었지만, 진조차도 그게 범의 전부를 본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범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런 진을 쳐다보았다. 언제부턴가 그녀가 점점 엄마의 목소리를 닮아가며 엄마처럼 행동하는 ‘젊은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땡스기빙을 앞두고 쌘안토니오에 사는 고모가 진, 범, 명을 초대했다. 가족 중에 유일한 미국사람이었던 고모부가 3차 항암치료를 이기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때였다. 고모부는 그들에게 한국이라는 문을 열고 나와 미국이라는 대륙을 체험하게 해준 존재였다. 그는 조카들의 서툰 영어발음을 바로잡아주었고, 이름도 생소한 디저트를 함께 만들었다. 침대 시트를 주름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는 법과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의 기원과 가글과 치아교정의 필요성, 게다가 디즈니영화의 개봉소식 모두 그가 알려준 것들이었다.

고모네 간다고?

엄마는 진의 얘기를 듣고 조금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절묘한 순간이라고 외치는 사람 같았다. 주소를 불러주며 적으라고 했다. 누가 사는지 누구의 집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가서 봐. 보기만 해. 엄마는 마치 그 집에 누가 살든 누구의 집이든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은 그게 엄마의 집이라는 말로 들렸다. 엄마는 이제 완벽하게 스스로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개체라고 선언하는 것만 같았다. 의아했던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감정이 조금 북받쳐 올랐다. 찬 눈물 한방울이 뺨에 똑 떨어진 것처럼 서운했다. 흐트러짐 없는 엄마의 목소리가 다행스러우면서도 야속하게 들렸다.

엄마가 텍사스주에 간 건 겨우 한번뿐이었다. 고모가 사는 곳이었지만 첫 가족여행이 될 뻔했다. 아빠는 출발 이틀 전에 회사에 일이 생겨 결국 함께하지 못했다. 진, 범, 명은 한시도 한자리에 가만있지 못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나이였다. 그들은 엄마와 알라모성을 둘러보고 씨월드에 갔다가 저녁 무렵 리버워크에 갔다. 그 도시의 방문객들이 놓치지 않고 가는 코스를 그대로 따랐다.

리버워크는 긴 강을 끼고 이어진 거리였다. 까페와 상점에서 흘러나온 불빛들이 아름답게 물 위에 드리워져 찰랑거렸다. 관광객을 태운 색색의 보트들이 천천히 물살을 가르며 지나갔다. 진, 범, 명은 카우보이 물건을 파는 가게를 기웃거렸다. 궁금하고 신기했는데 안으로 한발짝도 들어가지는 못했다. 갈기를 휘날리며 말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엄마의 치마를 꼭 붙들었다. 어느 곳에서나 음악이 흘러나왔다. 광대옷을 입고 마술쇼를 펼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가로등에 기댄 채 키스하며 서 있는 젊은 연인들의 발밑에 둥글고 뭉툭한 그림자가 네개의 발을 품고 있었다. 모퉁이마다 집시들이 모여 춤을 추는 축제의 도시였다. 엄마는 한 손에 음료와 간식이 든 커다란 기저귀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명의 손을 잡은 채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다 엄마는 명의 손도 놓은 채 가게를 등지고 혼자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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