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로마자 표기법의 식민성과 탈식민성

 

서반석 徐盤石

미국명 Peter Mauro Schroepfer. 연세대 국문과 및 동대학원 석사과정 졸업. 현재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박사과정.

 

 

2000년 7월 7일 정부의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관보에 고시되면서 또다시 바뀌게 되었다. 1948년, 1959년, 1984년에 이어 이번이 네번째이다. 그동안 한글 맞춤법도 여러번 개정되기는 했지만, 이는 대체로 ‘있읍니다’가 ‘있습니다’로 바뀐 것과 같이 몇가지 맥락에서만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로마자 표기법의 경우는 ‘Doglibmun’(독립문)이었던 것이 ‘Tongnimmun’이 되었다가 ‘Dongnimmun’으로 완전히 뒤바뀌는, 가히 어지럽다고 할 만한 변화를 겪어왔다. 국가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가면서 이토록 갈팡질팡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마자 표기법 자체도 어문정책의 여느 영역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정치적인 의미를 지닌 것인만큼, 혼란스러웠던 한국정치사, 그리고 문화식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바뀐 로마자 표기법의 내용에 대해서 일반 대중은 대체로 납득하는 것 같다. 1984년부터 지금까지 도로표지판에 씌어져 있는, 이른바 ‘반달표’(brève)가 붙은 로마자를 매일같이 보면서도 이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랐던 일반 언중(言衆)으로서는 그 부호가 다시 없어진다니 일단 반가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정된 로마자 표기법에 관심을 보인 신문의 사설들도 이 또한 ‘사회적 약속’임을 강조하면서, 새 표기법에 어색한 점이 없지 않으나 일단 지켜봐야 한다는 논조였다. 신문 사설에서 이런 주제를 다룬 것은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에 대해 그저 한국어의 ‘영자 처리’로만 생각해오던 일반인에게 그 중요성을 널리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주한 외국인(주로 서양인) 사회와 해외 한국학계는 비록 그 이유가 다양하긴 하지만 거의 모두가 반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마자 표기법 개정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1997년부터 개정이 이루어진 지금에도 국내 영어신문(결론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영자신문’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과 특히 싸이버공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개정작업에 참여한 몇몇 학자를 제외하면 개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외국인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 글에서는 로마자 표기법에 대하여 이토록 상반된 시각이 나오게 된 배경을 몇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는 크게 두 계통이 있을 수 있다. ‘옷’을 ‘os’으로 하는, 글자를 일대일로 옮겨적는 전자법(轉字法), 소리를 우선시하여 ‘옷’을 ‘ot’으로 쓰는 전사법(轉辭法)이 그것인데, 이 두 가지도 어떤 방향으로 세분화하느냐에 따라 그 표기양상이 상당히 달라진다. 그 대표적인 것들을 ‘종로’의 표기사례를 들어 소개하면, 한국어에 대한 전자식 표기법으로 외국의 언어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예일(Yale)표기법’으로는 ‘Conglo’이고, 1959년부터 1984년까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로마자 표기법이었던 전자법 계통의 일명 ‘59년 문교부 표기법’으로는 ‘Jongro’가 된다. 또 1939년에 처음 소개되어 지금까지 가장 널리 사용되어온 전사식 표기법인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으로는 ‘Chongno’가 되고, 새로 고시된 정부의 전사식 표기법으로는 ‘Jongno’라고 써야 맞다.1

한데 이렇게 다양한 로마자 표기법 중 어느 것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언뜻 보면 간단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선 전자식 표기법은 쓰기가 편하고 전사식 표기법은 읽기가 편하다. 한글맞춤법에 따라 글자 하나하나 그대로 옮겨쓰는 전자법의 경우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에게는 쉬운 표기법인 반면,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원음에 가깝게 발음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게 된다. 전사식 표기법의 경우는 한국어 글자체계와 맞춤법을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어 언중이 소리변화가 심한 문맥에서는 따르기 힘든 대신,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은 자신의 모국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어도 그런 대로 발음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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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로마자 표기에 대한 시도는 아마도 『하멜표류기』에 보이는 ‘stock’(ᄯᅥᆨ) ‘Sior’(서울) ‘oranckay’(오랑캐)와 같은 낯선 것들이 아닐까 싶다. 하멜의 것은 누가 봐도 표기‘법’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그리고 한국어보다는 네덜란드어의 원리를 주로 고려하여 쓴 것이다. 18,19세기 조선에 온 서양인들 역시 국적에 따라 자신들의 모국어에 맞춰 만든 표기법을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개화기 서울에서는 프랑스 선교사, 독일 상인, 그

  1. 이번 고시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제8항에도 “학술연구 논문 등 특수 분야에서 한글 복원을 전제로” 표기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 대비하여 전자식 표기법도 따로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