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민규1

박민규 朴玟奎

1968년 출생. 장편소설 『지구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핑퐁』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소설집 『카스테라』 등이 있음. kazuyajun@hanmail.net

 

 

 

루디

 

 

알래스카의 팍스 하이웨이(parks highway)를 달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차를 모는 일이 때로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사실을. 캔트웰에서 아침을 먹고, 굳이 페어뱅크스까지 차를 몰고간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뭘 봤지 보그먼?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우박만 실컷 맞았다네, 가슴을 치며 답할 것이다. 산과 산… 강… 길… 나무… 하늘… 지긋지긋한 눈앞의 산이 디날리인지 맥킨리인지도 이젠 관심 밖이었다. 두어시간 전부터 그랬다. 그나마 아침을 먹으며 본 컬링1 경기가 떠올라… 더 정확하게는 캐나다팀의 서드를 보던 낸시 코웰을 떠올리며 나는 차를 몰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 스톤을 밀던 그녀의 엉덩이를 못 봤다면, 다시 캔트웰에 이르기도 전에 나는 우울증에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타임 투 잇에서 토스트를 먹는 동안에도 내겐 두가지 생각이 전부였다. 딱 내 타입인 낸시 코웰의 엉덩이, 그리고 빨리 앵커리지로 돌아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그래,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험피스에서 연어요리만 맛보고 일찌감치 뉴욕으로 돌아가는 거야! 곧바로 운전이라는 미친 짓을 재개한 이유는 그래서였다. 다시 이어지던 산과 산… 나무… 길…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전나무 사이의 도로를 마치 스윕2을 하듯 바람이 불고 있었고, 내 차는 낸시가 떠민 스톤만큼이나 느린 속도로 그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그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을

 

멀리서부터 볼 수 있었다. 로라 호수를 끼고 쭉 뻗은 직선 도로가 이어졌으므로, 대략 반 마일 전부터도 사람이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몇번이고 나는 찢어지게 하품을 하던 중이었고, 차라리 차를 세우고 잠시 눈이라도 붙일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느슨한 자세로 선 남자의 손에… 라이플이 들려 있는 것도 보았다. 그저 사냥을 나온 사람이겠거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배경의 산이며 나무… 알래스카의 분위기에 나는 너무 오래 휩싸여 있었던 것이다.

 

탕.

 

사내가 총을 겨눈 것은 한순간이었다. 총성을 들으며 브레이크를 밟은 것도, 총을 맞은 것은 아닌데 총을 맞은 듯 정신이 나간 것도 한순간이었다. 총구는 분명 차를 향해 있었고, 이제 그것은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사냥모자를 눌러 쓴 백발의 남자였다. 놀랍도록 무표정한 얼굴과 까만 조약돌 같은 두 눈을 마주한 순간, 허벅지 왼쪽이 축축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오줌이었다. 총구의 끝이 좌우로 움직였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그것이 내려,라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시동을 끄고… 최대한 시간을 끌며 나는 차에서 내려섰다. 한여름의 도로인데도 마치 눈길인 듯 미끄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애써 다리에 힘을 주며 나는 두 손을 들어올렸다. 제발,이란 말은 할 수 있었는데 살려달라는 말은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주위의 풍경이 놀랍도록 참신하고 거룩하게 느껴졌다. 새삼스레, 그랬다.

 

쌌나?

 

라고 그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고개보다는 턱을 덜덜 끄덕이는 기분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정말이지 떨어진 턱뼈와, 임플란트 시술을 잘 마친 가지런한 어금니들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름이 뭐야? 그가 물었다. 보… 보그먼. 미하…엘 보그먼. 어금니가 없는 인간처럼 나는 중얼거렸다. 독일놈이군, 하고 사내는 침을 뱉었다. 아니 미국인이오, 말을 했지만 새겨듣지도 않는 눈치였다. 스페어 있지? 가래를 끓이며 사내가 물었다. 아, 예라고 답하자 뭉친 가래를 뱉으며 놈이 말했다. 갈아! 그제서야 폭삭 주저앉은 오른쪽 앞바퀴를 볼 수 있었다. 떨어진 턱뼈며 어금니가 보이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쟈키를 받치고 나는 타이어를 갈기 시작했다. 그사이 놈은 유유히 담배를 피우거나 툭, 총구를 내 뒤통수에 갖다대고는 했다. 제발 한대의 차라도 지나가길 빌면서 나는 열심히 나사를 돌렸다. 끝났어? 놈이 물었다. 아, 아직입니다. 가래 끓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놈은 작업을 재촉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두려움도 없는 기색이었다. 에스키모와 탱고를 어쩌고3 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짧은 노래였다. 작업도 곧 끝이 났지만 차는 한대도 오지 않았다. 끝…났습니다,라고 내가 말했다. 삐딱허니 담배를 문 채 놈은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제야 놈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운전석에서 봤을 때보다 키가 컸고, 누구도 몽따주를 그릴 수 없을 만큼 평범한 얼굴이었다. 놈은 내 주위를 한바퀴 돌았고, 바지 뒤춤에서 내 휴대폰을 뽑아 멀리 던져버렸다.

 

똥은 안 마려워? 놈이 물었다.

예? 축축한 바지를 입고 선 채 나는 스스로의 귀를 의심했다.

똥 말이야 똥. 몰라?

아… 괜찮습니다.

여기서 싸고 가. 가다가 징징대지 말고.

정말 괜찮습니다. 어젯밤에도 많이 눴구요(내가 왜 이따위 소리를 해야 한단 말인가).

미리 싸라니까.

안 나옵니다. 진짭니다.

고집불통이구만 진짜(그러면서 놈이 총을 들이밀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한참을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총성과… 갑자기 쏟아지는 피를 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가솔린이라도 끼얹은 듯 갑자기 귀 언저리가 뜨겁게 불타올랐다. 오 마이 갓. 귀가 만져지지 않았다. 40년 넘게 그 자리에 붙어 있던 귀가… 왼쪽 귀가… 스페어도 없는 내 귀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나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우스꽝스런 동물의 울음 같은 것이 흐느적 내 입에서 흘러내렸다. 쉭, 쉭 그런 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했다. 어찌나 길고 끈적한 울음인지, 자랄 대로 자란 촌충(寸蟲) 한마리가 입에서 기어나오는 기분이었다. 오열이 멈출 때까지 놈은 가래나 끓이며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저기서 싸. 총구가 가리킨 곳은 등 뒤의 자그마한 잡목 아래였다. 나는 이미 넋이 나가 있었다. 어기적어기적, 두 발짝 거리의 잡목 앞으로 걸어가 축축한 바지를 내리고 앉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곧바로 똥이 쏟아졌고, 굉장한 양이었다.

 

하여간에, 하고 지저분한 천조각을 던져주며 놈이 말했다. 거짓말이 습관이라니까! 천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풍겼고, 여기저기 누런 기름때가 번져 있었다. 천의 양끝을 잘 접어, 어쨌거나 깨끗해 보이는 쪽으로 나는 천천히 뒤를 닦았다. 그리고 혹시나… 귀를 찾아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침착해라 보그먼,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자상하게 들려왔다. 한쪽 귀가 사라진 이 순간에도… 들려온 것이다. 아아악. 비명을 지르고 난 후에야, 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작은 위스키병을 꺼낸 놈이 귀가 떨어져나간 그 자리에 소변이라도 보듯 위스키를 붓고 있었다. 나도 아버지도 술이라면 질색이었다.

 

왜 일을 어렵게 만들지? 놈이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울면서 내가 물었다.

봐, 뱃속에 전부 똥이었잖아.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늘 그 소리지, 하며 놈이 가래를 뱉었다.

나는… 하늘을 보았다.

 

옷이나 입어, 똥구멍 냄새 지독해. 울며, 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는 바지를 끌어올렸다. 앵커리지에서 구입한 A&F4의 지퍼를 올리는 순간, 멍하니… 지퍼에 새겨진 무스5의 음각을 바라보던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왜, 도대체 왜…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이런 순간을 맞기 위해 예일을 졸업했단 말인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했단 말인가. 동물보호협회에… 또 뉴욕 경제인연합이 주최한 모피 반대 캠페인에 내가 낸 기부금이 얼마였던가… 지혜를 짜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총만 뺏을 수 있다면, 총을… 하는데 목과 어깨 사이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뭐 해, 말뚝 설 거야? 놈의 손아귀였다. 뉴욕의 증권가에선 100년을 근무한다 해도 접하지 못할 악력이었다. 나는 또다시 비명을 질렀고… 놈이 손을 풀었을 땐 이미 쇄골에 금이 간 느낌이었다. 오른팔을 들 수도 없었다. 쉭, 쉭 소리가 또다시 새어나왔다. 귀가 떨어져나갈 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안일한 새끼, 하고 뭉친 가래를 뱉으며 놈이 말했다. 원하는 게 뭘까?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걸까?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저 쿡, 쿡 등을 떠미는 총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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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컬링(curling): 빙상에서 평면으로 된 돌(컬링스톤)을 빗자루 형태의 솔(브룸)로 미끄러지게 해 득점을 겨루는 경기. 한팀은 네명이며 두 조로 나누어 진행한다.
  2. 스윕(sweep): 컬링에서 스톤의 진로를 쓸고 닦는 동작.
  3. 알마 코건(Alma Cogan)의 노래 「에스키모와 탱고를 추지 마세요」(Never Do A Tango With An Eskimo)
  4. 미국의 의류메이커(Abercrombie & Fitch)
  5. 북미산 큰 사슴(mo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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