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생 작가 손홍규(孫弘奎)의 첫 창작집 『사람의 신화』는 80년대 민족민중문학이라는 아버지와 90년대 후일담문학과 환상문학이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새롭게 태어난 자식이다. 양쪽에서 피를 이어받은 손홍규는 『사람의 신화』에서 전통적 리얼리즘 수법 대신 역사와 현실을 후경(後景)에, 비현실적 환상이나 신화를 전경(前景)에 배치한다. 이러한 다소 파격적인 모험은 주변으로 내몰린 역사와 현실을 중심에 복귀시키려는 새로운 전략의 반영이다. 이때 ‘현실/비현실’이라는 이항대립체계는 서로의 육체를 비추어주는 일종의 거울로 작용한다. 현실은 비현실을, 비현실은 현실을 추동하면서 상호의 경계선을 해체한다. 『사람의 신화』는 낯설게하기를 통해 2000년대 리얼리즘 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