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리영희의 씀과 쓰임

민주와 자주는 함께 갈 수 없는 것일까?

 

 

구갑우 具甲祐

북한대학원대 교수. 저서 『비판적 평화연구와 한반도』 『국제관계학 비판: 국제관계의 민주화와 평화』 『리영희를 함께 읽다』(공저) 『세계의 분쟁』(공저)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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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과 가족

 

우리 시대의 혁명가 리영희(李泳禧, 1929~2010)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재현하는 평전 『진실에 복무하다』(권태선 지음, 창비 2020, 이하 『진실』. 면수만 표기한 경우 이 책을 가리킴)를 읽었다. 책장을 펼쳤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온 장면은 선생의 딸이 공부의 길을 접고 학생운동을 하고자 했을 때 이야기였다. 선생은 장기적 안목에서 공부를 더 해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며 만류했다. 냉전세력에는 “의식화의 원흉”(4면)인 선생이 정작 자신의 딸은 공장으로 감옥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고 하는 주위의 비판에 대해 딸 본인은 아버지가 “운동을 하려면 본격적인 직업혁명가가 되라”고 했다고 회고한다(258~59면).

어떤 아버지가 자식에게 직업혁명가가 되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혁명에의 의지가 우리 사회의 한구석을 차지했던 1980년대 군사독재시대였기에 가능한 대화였을 게다. 경성공립공업학교와 국립해양대학을 다니면서 “당파적 적대감에 불타는 증오심”과 같은 “젊음의 ‘종교’”를 가지지 못했던 리영희 선생의 “회한”도 한몫했을 것이다.1 그러나 아무리 그 시절이라도 리영희라는 문제적 인물만이 할 수 있는, 반자본주의적·반국가적 삶을 가라는 조언이었다. 다섯번의 투옥을 당했고, “모든 빛이 차단되고 겨우 한 사람 몸을 뉠 수 있는 공간인 벌방에서 22일을 견디는 것은 가혹하기 그지없는 고문”(243면)임을 경험했음에도 딸에게 감옥에 갈 위험성이 높은 직업혁명가의 길을 가리킨 것이다.

그렇게 『진실』의 저자인 권태선 ‘기자(記者)’는 “사상의 은사”(4면) 리영희 선생의 사상을 삶으로 쓰이게 한다. 냉전체제라는 우상에 맞섰던 선생의 사상과 그 삶을 온전히 드러내려는 기자정신의 결실이 『진실』이다. ‘주례사’ 평전이 아니기에, 『진실』은 “뜨거운 얼음”(20면)으로 표현되곤 하는 리영희 선생의 모순에 다가간다. 선생의 아들은 아버지가 글을 쓸 때면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친구 집을 전전했”고, “집 안에서 조금만 소리를 내도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라고 기억한다(169면). 선생이 1977년 『8억인과의 대화』와 『우상과 이성』을 쓴 이유로 감옥에 갇혀 어머니의 장례에도 참석하지 못했을 때, 고등학생이던 선생 아들은 상주를 대신해야 했다.

『진실』은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우선하는 것이 “배신행위”로 여겨졌으며, 젊은 시절의 자신은 “가정보다 사회를 앞세운 ‘전체주의’적 성향”이었다는, “어린 영혼에게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적’으로 다가갔던 존재로서의 나”라는 선생의 처절한 자기반성문을 인용한다(338~40면). 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이 리영희 선생의 “위대함은 성별화된 공/사 영역 분리로 인해 보살핌 노동에서 면제된 남성 특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 했을 때, 선생은 그 글을 다섯번이나 읽고 병으로 “마비된 손”으로 그 지적을 받아들이는 경이로운 “자각”을 알리는 답장을 썼다(403~404면).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요소이면서도 반(反)자본주의 논리가 관철되는 특이한 공간인 가족 내에서의 억압과 가족 구성원의 희생이 선생이 추구했던 사회혁명을 밀고 나가게끔 한 하나의 동력이었다는 역설과 그 불편한 진실을 치열하게 인정하는 선생의 모습을 『진실』에서 마주하게 된다.

 

 

2. 자주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은 동지이자 동료에게 “주체적 학문”을 만든 국제정치 연구자로 기억된다.2 서구가 생산한 지식을 그저 받아쓰는 비자주적, 식민적 지식인이 아니었다는 의미다. 1960~70년대에 기자이자 교수로서 선생이 쓴 비판적 국제정치비평 가운데 베트남전쟁과 중국 문화대혁명에 대한 글들은 냉전의 전초기지였던 한반도 남단에서 극우반공주의를 내장한 박정희정부를 저격하는 비판의 무기이자 무기의 비판이었다. 『진실』과 함께 출간된 리영희 선집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창비 2020, 이하 『선집』)에는 2부 ‘국제관계’에 대표글 두편이 실려 있다. 베트남전쟁은—선생이 추구했던 “정명(正名)”(149면 외)을 생각한다면 ‘베트남-미국 전쟁’—선생에게 베트남 민족의 해방전쟁에 미국이 잘못 개입한 전쟁으로 읽혔다. 미국 국방부 비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분석한 1971년 6월 『뉴욕타임즈』 기사에서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하게 된 계기인 통킹만 사건—베트남식 명칭은 바크보만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선생은 베트남-미국 전쟁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자국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미국이란 나라의 패권적 실체”(78면)를 보았고, 이 전쟁의 베트남식 이름인 ‘항미전쟁’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그 첫 시도가

  1. 리영희 『역정』, 창비 2012(개정판), 155~56면; 『진실』 45면.
  2. 임헌영 「“식민학문 깨뜨린 학자이자 약자 향한 애정 담아낸 언론인”(리영희 10주기 인터뷰)」, 한겨레 202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