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 제26회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작

 

마음의 리얼리즘

김금희론

 

 

임정균 林貞均

1985년 대구 출생.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wolverine10@naver.com

 

* 이 글은 김금희의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창비 2014), 『너무 한낮의 연애』(문학동네 2016), 단편 「체스의 모든 것」(『현대문학』 2016년 7월호),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릿터』 2016년 12월/2017년 1월호), 「오직 한 사람의 차지」(『문학과사회』 2017년 봄호), 장편 『경애의 마음』(창비 2018)을 다룬다. 이후 인용 시 작품명과 면수만 명기한다.

 

 

1. 물신화된 마음

 

한국사회는 1997년 IMF 구제금융을 기점으로 감정노동 사회로 급속히 변화했다. 고용의 유연화라는 미명하에 양산된 비정규직과 생산의 자동화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었고, 고용은 더욱 불안해졌다. 그 와중에 새롭게 창출된 일자리는 대개가 서비스업이었다. 현재 감정노동이라는 조어가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은 변화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감정자본주의하에서 감정은 계량화할 수 있고 물질적 가치로 환원할 수 있는 대상으로, 다시 말해 상품(사물)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변화는 양극화로 인한 계급갈등을 부추기기보다는 계급 내 갈등을 더욱 조장했다. 계급 내 갈등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타인에 대한 연민을 불가능케 하고 나아가 연대를 와해시킨다.

이를테면 “고양이에 대해서만 이야기해”(「고양이는 어떻게 단련되는가」, 『너무 한낮의 연애』 242면)라고 말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오랫동안 일해온 가구회사에서 권고사직에 해당하는 인사이동을 당한다. 동료들이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단체행동에 돌입하는 동안 그는 회사의 요구에 순응한다. “회사나 노조위원장이나 동료를 믿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로 치자면 네발을 모두 몸체 밑에 말아넣고 그냥 있음으로써 견뎌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236면) 잘 알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 야기한 이기적 생존주의의 전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남자의 이야기가 남다른 흥미를 끄는 이유는 그가 가진 색다른 부업 때문이다. 회사 밖에서 그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명 고양이 탐정으로 업계의 유명인사다. 그가 고양이 탐정이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과거 그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그의 자살을 막은 것은 사회적 시스템이나 타인의 관심이 아니라 고양이였다. 마침 길고양이가 마당에 낳아놓고 간 새끼를 보살피느라 그의 삶은 연장되었다. 그로써 고양이는 특별한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찾아주고 하루 십이만원의 부수익을 얻음에도 그는 불행하다. 그가 원하는 건 삶의 활력을 주는 육체노동과 그로 인한 안락한 삶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를 찾으려면 잃어버린 주인들의 하소연을 들어야 하는데, 하소연은 대개 고양이가 아니라 그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남자에게 그건 일종의 감정노동이다. 그래서 그는 고양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이야기는 순태라는 학생의 고양이를 찾아주는 과정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함께 고양이를 찾는 과정에서 그는 순태 역시 세상에 “부적응”(249면)하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그 순간 그는 고양이 이외의 타자와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 대목이 씁쓸하게 읽히는 것은 이제 인간은 고양이와 같은 매개 없이는 타인과 감정을 교류할 수 없게 되었다는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화폐의 물신(fetish)이 시장경제에서 상품교환을 가능케 하듯 감정이 노동상품으로서 가치를 갖게 된 사회에서는 감정 또한 물신화된 매개를 필요로 한다.

감정물신의 모티프는 김금희의 소설에 빈번히 등장한다. 「개를 기다리는 일」(『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잃어버린 개는 가족을 유지하던 유대의 끈이자, 그 유대가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에서는 종업원인 ‘나’와 냉혈한 고용주로 묘사되는 까페 사장이 공통의 관심사라고 할 수 있는 경수라는 인물을 매개로 친분을 쌓아간다. 하지만 그 매개의 실체(진실)를 깨닫는 순간 둘 사이의 관계는 여지없이 깨어진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의 화자는 숯불닭갈비를 팔아 큰돈을 번 장인어른에게 빚을 지고 독립출판사를 차렸다가 실패한 인물이다. 아내는 사사건건 “10평방미터 방을 가득 채워야 할 만큼의 닭갈비를 팔아야 하는 돈”(101면)이라며 ‘나’를 쏘아붙인다. ‘나’는 책이란 닭갈비처럼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내가 보기에는 6천5백마리의 닭과 등가의 것에 불과하다. 이러한 아내의 계산법에 기가 질린 ‘나’는 자신이 출판한 책을 환불받기 위해 찾아온 낸내라는 아이에게 “열패감이 뒤섞인 이상한 동질감”(110면)을 느낀다. 그러나 SNS를 통해 알게 된 낸내의 면모는 둘의 관계가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SNS의 해시태그는 사람들이 분절된 감정의 기표를 통해 접합하고, 감정을 교환하는 일례에 불과하다. 이제 일상적인 방식으로 타자와 만나 감정을 교환하는 일은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직접적이고 일상적으로 부딪치는 타자의 감정은 상품이 된 감정들이거나, 취향과 같이 기표화된 물신을 매개로 교환될 뿐이다.

 

 

2. 감정교육 2.0 혹은 반감정교육

 

감정이 사물이 된 세계에서 타인을 향한 예민한 감수성은 자본주의적 경쟁에 그리 유리한 덕목은 아닐 것이다. 플로베르(G. Flaubert)의 『감정교육』(1869)이 산업자본주의가 박차를 가하던 시기의 감정교육을 다루었다면, 김금희의 첫번째 소설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하 「센티멘털」)은 감정자본주의 시대 감정교육의 새로운 판본이다. ‘나’는 재수를 하면서 만나게 된 표의 아이를 임신한다. 표는 수능을 망치고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그런데 ‘나’는 표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고, “쿨하게 놔주마”라고 생각한다. ‘나’가 재수생들 가운데 가장 볼품없던 표와 연애를 한 이유는 “일종의 연민”(62면) 때문이다.

이 연민에는 다음과 같은 기원이 있다. ‘나’가 열두세살 무렵, 지하방에는 한 여자가 세 들어 살았는데,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 방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글씨들이 종이에 적혀 있었다. 그것들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새아빠인 김은 그 감정이 연민이라고 가르쳐준다. 흥미롭게도 ‘나’는 새롭게 배운 그 감정을 곧바로 연민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사랑과 비슷했지만 온도는 좀더 낮았고, 덜 비밀스럽고 오래된 듯 느껴”(64면)지는 것이라고 다시 정의 내린다.

사춘기 소녀가 자신의 내부로부터 발생하는 감정적 파장의 정체를 어른으로부터 배운다는 점에서 이 대목은 일종의 교양소설(Bildungsroman)로 읽힌다. 루카치(G. Lukács)에 의하면 주인공의 성장을 서사의 주된 목적으로 하는 교양소설은 인물들의 행동을 하나의 특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의식적으로 통제하여 ‘교육수단의 역할’을 하도록 하며, 이를 통해 주인공은 사회적 삶의 여러 형식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회에 적응시켜나간다.1 그런데 오래전 연민이라는 감정을 가르쳐주었던 김은 성인이 된 ‘나’에게 이제 “제 나이 때마다 할 일이 있는데 감상적으로 굴지 마라.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이지”(80면)라며 연민을 버리라고 교육한다. 김은 연민을 버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몸소 보여주듯 지하방에 세 들어 사는 아누차라는 태국인을 냉정하게 쫓아내기까지 한다. 신샛별이 지적하듯 이 소설이 던지는 물음은 “연민이라는 감정과 이대로 이별할 수 있는가”2 이것이 이 시대의 성장소설 혹은 교양소설의 마스터플롯이라면, ‘나’는 김의 교육방침에 따라 연민과 이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시간은 남아 있고, 지금은 그걸로 충분했다”(85면)라며 연민의 폐기를 유보한다.

아닌 게 아니라 김금희의 첫 소설집에 실린 일련의 소설들은 반교양소설 혹은 반성장소설이라 부를 만하다. 초기작 「너의 도큐먼트」와 「아이들」 「장글숲을 헤쳐서 가면」(이상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등은 “IMF 세대의 성장담”3을 주로 다룬다고 평가된다. 성장담이 세대론에 근거를 둔다는 점에서 김금희가 여러 좌담을 통해 세대론적 자의식을 보여왔다는 사실은 그러한 평가의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4 하지만 김금희가 세대적 경계를 소설로 쓰는 과정에서 “결국에는 그런 것들을 무화시키는 방식으로 얘기가 막 흘러”5갔다고 토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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