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은미 崔銀美

1978년 강원 인제 출생.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중편소설 『어제는 봄』 등이 있음.

alfmrlal@naver.com

 

 

 

장편연재 2

마주

 

 

나는 가능하면 송미림 의사가 원하는 걸 주고 싶었다. 그들이 말한 대로 ‘하기도 심부’에서 무언가를 끌어올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을 최대한 부풀리며 후두부에 힘을 줘봐도 나오는 것은 침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이 이렇게 말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 정말로 가래가 없으시군요. 어쩔 수 없네요. 일단 집으로 돌아가세요.’

하지만 그들은 나를 집으로 보내는 대신 객담유도실이라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탁자 하나와 세면대 하나, 이름을 알 수 없는 물품이 놓인 선반이 전부인 곳이었다. 탁자 위엔 깔때기 같은 흡입마스크가 달린 네블라이저가 있었고 그 옆으로 ‘객담 검사용 고주의 약물’이라고 쓰인 커다란 주사기가 있었다.

방 풍경을 보자 내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짐작이 갔다. 그곳은 나 같은 사람들, 혼자서 가래를 못 뱉는 사람들의 기관지로 무언가를 주입하는 곳이었다. 주입해서 가래를 강제로 끌어내려는 것이었다.

집에서 차로 십분 거리에 있는 기정병원, 그곳을 십년이 넘도록 여러 이유로 드나들었지만 이런 곳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내겐 잠깐의 호흡 불편이 있었을 뿐이다. 호흡 곤란도 아닌 호흡 불편. 그것도 딱 한번이었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이대로 살겠다고 외치고 싶었다. 당장 그곳을 뛰쳐나와 오종수와 오은채가 있는 내 집으로 가고 싶었다. 향기로운 초들이 있는 내 공방으로 가고 싶었다. 객담유도실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45밀리리터 용량의 객담통 세개와 함께 그 방에 혼자 남겨졌다. 나를 두고 나가기 전 간호사가 말했다. 배를 치라고. 배를 세게 치면서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약물이 분사되는 흡입마스크를 입에 대고 앉아서 기체를 한참 들이마시고, 배를 쳤다. 배를 치면서 있는 힘을 다해 기침을 했다. 다시 기체를 흡입하고, 배를 치고, 기침을 했다. 각 통에 최소 5밀리리터의 객담을 담기 전까지 나는 그 방을 나갈 수 없었다.

주사기 몸통처럼 투명하고 길쭉한 객담통을 보면서 나는 송미림 의사의 진료실을 떠올렸다. 피 뽑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라도 된다는 듯 ‘가래 뱉고 가세요’라고 말하던 그 얄미운 목소리를 떠올렸다. 객담유도실 벽면에 붙어 있는 ‘낙상주의’라는 글자를 멍하니 쳐다봤고, ‘뉴욕 맨해튼 52번가 하수구 밑에 사는 작은 벌레’, 빨간 라바와 노란 라바를 생각했다. 나는 벌레가 싫었다. 벌레 중에서도 라바들 같은 애벌레를 특히 싫어했다.

애니메이션 「라바」가 처음 방영된 게 2011년이었으니 생각해보면 라바를 싫어한 지도 근 십년이었다. 사람에 따라 노란 라바는 좋아하고 빨간 라바만 싫어한다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빨간 라바와 노란 라바 둘 다 싫었다. 생긴 것부터 하는 짓까지 다 싫었다. 콧구멍도 싫었다.

언젠가 공방 손님한테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라바」의 모든 등장인물을 한명의 성우가 연기한다고. 주인공 애벌레인 옐로우와 레드는 물론이고 쇠똥구리 브라운, 장수풍뎅이 블랙, 똥파리 블루, 달팽이 레인보우…… 이 모두를 단 한명의 성우가 맡아서 한다는 것이었다. 「라바」에는 대사가 없었다. 이들이 구르고 먹고 웃고 놀라고 곤경에 빠지는 효과음 같은 소리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얼굴이나 이름을 전혀 알고 싶지 않은 한 성우를 떠올렸다. 더빙실에 혼자 앉아 크억, 헤엑, 읏, 냐앗, 허으, 끄헤헤헤, 이런 소리만을 내고 있는 사람을. 그러자 갑자기 슬퍼졌고 이 성우의 안티 팬까페가 있는지 당장 검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목 끝으로 뭔가 덩어리 같은 것이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느껴지지조차 않던 가래가 기도를 타고 정말로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만조 아줌마도 이런 방에 갇힌 적이 있었을까? 평소에 가래가 많았다면 기관지를 자극하는 약물 같은 건 흡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조 아줌마는 「라바」를 본 적이 있을까? 손주가 있다면 봤을 수도 있다. 나는 만조 아줌마 인생에 손주라는 존재가 있는지 어떤지 알지 못했지만 「라바」를 봤다면 만조 아줌마가 이런 말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었다.

“쟤들이 털도 없이 귀여운 척을 하네.”

언젠가 만조 아줌마가 뭔가를 보고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물었다.

“아줌마, 털이 있어야 귀여울 수 있는 건가요?”

이렇게 물었을 수도 있다. 털이 없다면 안 귀여워도 되나요?

만조 아줌마는 말했다.

“그렇고말고. 자고로 털이 부얼부얼해야 어디 가서 귀엽다는 명함이라도 내미는 거지.”

나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만조 아줌마의 그 말을 몇번쯤은 떠올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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