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은미 崔銀美

1978년 강원 인제 출생.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중편소설 『어제는 봄』 등이 있음.

alfmrlal@naver.com

 

 

 

장편연재 3

마주

 

 

스텐 냄비의 바닥을 오래 들여다본 적이 있다.

냄비 바닥에 어른거리는 미네랄 얼룩을 보기 위해서. 내 손님 중 한명은 그걸 무지개 얼룩이라고 불렀다. 물기가 마른 빈 냄비를 기울여보면 그 안에서 정말로 무지개가 형태를 바꾸면서 얼룩지는 게 보인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은 뒤로는 공방에 있을 때도 종종 스텐 비커를 창가로 가져가 빛에 이리저리 기울여보곤 했다.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또다른 어떤 손님은 싱싱한 버섯이 품고 있는 색에 대해 얘기했다. 느타리버섯의 회청색 갓에서 푸른빛이 언뜻 비칠 때에 대해서. 비둘기색을 싫어하거나 버섯을 싫어하는 사람도 비둘기빛이 나는 버섯은 싫어할 수가 없다고, 그건 어떤 꽃보다도 특별한 색을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말한 손님은 어쩌면 별주씨나 별은씨나 별선씨 중에 한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지난봄에 수미와 함께 왔던 나의 취미반 수강생들.

별선씨는 비누에 스누피 도장 찍는 걸 좋아했다. 별주씨는 내가 스타벅스 아이스 음료 컵을 붓 헹굼통으로 쓰는 걸 보고 올 때마다 재활용할 투명 컵들을 들고 왔다. 별은씨가 자몽청을 담아 왔던 보르미올리 유리병에는 캔들을 만들어두었다. 자몽향이 은은히 남아 있던 병에 흰 소이왁스를 채우고 얇은 나무 심지를 심었다.

어떤 모양의 용기에도 캔들을 만들 수 있었다. 머그잔, 와인잔, 고블릿, 종지, 사발, 꽃병. 어느 날 꿈에서 나는 26센티미터 지름의 통5중 스텐 냄비에 왁스를 가득 부어 초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대량의 왁스를 태워 올릴 심지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꿈속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기세라면 만조 아줌마의 항아리에도 초를 만들 수 있겠다고. 항아리 크기의 초를 태울 만큼 큰 심지를 찾아 방산시장을 누비는가 하면 항아리에 가득 찬 왁스가 다 타려면 몇날 며칠이 걸릴지를 계산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름에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멘톨비누를 만들거나 모기 기피 오일을 넣은 석고방향제를 만들었다. 한낮에 블라인드를 반쯤 내리고 공방에 앉아 있으면 건물 밖에서 배달 오토바이들이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출입구 쪽 상가 복도는 어두웠고 창가 쪽 번화가엔 늘 크고 작은 소음들이 깔려 있었다. 창가에 말려둔 몰드를 걷어 오다 기정로를 내려다보면 맞은편 상가건물 1층의 휴대폰 대리점 앞에서 행사 입간판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였다.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려 풍경을 차단하고 실내로 몸을 돌리면 기정로의 소리들은 잦아들고 오래 고여 있던 공방의 소리들이 살아났다.

가장 먼저 들리는 건 손소독제를 짜 넣고서 몇몇이 동시에 손바닥을 비비던 소리였다. 누군가 테이블에서 일어나려고 의자를 빼는 소리. 유리막대가 종이컵 바닥을 긁는 소리. 비누 커팅기가 움직이는 소리. 심지에 불을 붙이려고 캔들라이터를 켜는 딱, 소리. 화분 모양의 세라믹 용기에 선인장 캔들을 만들 때 나는 수강생들한테 이 말을 꼭 했다. 선인장 캔들은 용기 빼고 다 태울 수 있어요. 작게 올라가 있는 선인장은 물론이고요, 화분 위에 깔려 있는 이 모래알갱이도 다 왁스예요. 전부 태울 수 있어요.

수강생들이 캔들을 다 완성하면 포토존으로 가기 전 나는 마스킹테이프가 들어 있는 트레이를 테이블 위로 꺼내놓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동네의 문구점을 방문할 때마다 골라 모은 것들이라 트레이를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탄성이 나올 때가 있었다. 태우지 않고 방향제나 인테리어 소품으로 놓아둘 사람들한테는 캔들 심지 끝에 마스킹테이프를 깃발처럼 붙여주는 게 마지막 순서였다. 나는 수강생들한테 묻곤 했다.

“마스킹테이프 붙여드릴까요?”

취미반 수업 중에 내가 그녀들한테도 깃발을 만들어줄지 물었나는 모르겠다. 기억에 이런 장면이 남아 있으니 어쩌면 물었을 것이다. 별주씨와 별선씨와 별은씨가 트레이 위로 상체를 숙이고 마스킹테이프를 고르는.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이런 것이다. 수미가 나리샘, 하면서 나한테로 걸어온다.

“나리샘.”

수미가 말한다.

“왜 나한테는 마스킹테이프 안 물어보는데?”

그러면서 수미가 나를 막 쫓아오는 것이다.

“응? 왜 내 거엔 안 붙여주는데?”

나는 테이블을 한바퀴 돌아 도망을 가는데 참지를 못한다. 참지 못하고 무언가를 쏟거나 웃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어쩌면 창문을 열었는지도 모른다. 길 너머 맞은편 건물의 3층엔 우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눈꽃빙수를 먹던 빙수 까페가 있었다. 공방 창문을 열면 같은 눈높이로 까페의 창가 테이블이 건너다보였다. 아마도 은채가 3학년, 서하가 4학년 즈음이었을 때,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던 코스가 다이소와 빙수 까페였다. 수미와 나는 아이들을 다이소에 풀어놓고 각자 볼일을 보다가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을 근처의 빙수 까페로 데리고 갔다. 넷이 같이 빙수를 먹고, 한낮의 열기가 좀 수그러들면 분수대가 있는 중앙공원을 지나 집으로 걸어오는 게 아이와 둘이 있게 되는 주말에 수미와 내가 오후의 몇시간을 보내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은채와 서하는 성향이 안 맞는 편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같은 학년이 아닌 것이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수미와 나에게도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해준 점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외동인 은채가 서하를 언니 언니 하고 부르는 것이, 서하가 은채와 키득거리고 웃는 것이, 그러다가도 빙수떡을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쟁탈전을 하는 것이 좋았다.

홈공방을 하고 있던 내 집에 수미가 서하를 처음 보낸 건 아이들이 그보다 서너살 더 어렸을 때였다. 은채가 아직 유치원생이고 서하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초등학교 저학년은 유치원보다 하교 시간이 훨씬 빨랐고 부모가 둘 다 일을 하는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돌봄교실로 가거나 학원과 학습지 교습센터를 돌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학원과 학원 사이에 시간이 빌 때, 아이가 학원에서 또다른 학원으로 바로 가는 것이 안타까울 때 엄마들은 내 공방으로 아이들을 보냈다. 그렇게 초등 저학년에서 중학년 사이의 아이들이 이 학원과 저 학원 사이에 내 집에 들러 캔들을 만들거나 석고에 색칠을 하다 갔다. 서하도 처음엔 그렇게 온 아이들 중 하나였다.

수미와 말을 좀더 많이 섞게 된 건 수미가 그때 은채가 다니던 미술학원의 차량 기사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수미도 나도 일 속에서 서로의 아이를 일정 시간 돌보고 있었던 것이다. 서하가 공방에 오래 남아 있게 되는 날은 은채와 함께 놀이터로 내보내곤 했는데 수업이 비는 짬에 놀이터로 나가보면 둘은 늘 그네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늦은 오후 놀이터의 그네는 특히 경쟁률이 높았다. 초등 고학년생 아이 둘이 그네에 앉아 줄을 비비 꼬면서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꼬마애들이 다음 차례를 잡기 위해 주위를 빙빙 돌았다. 고학년생들은 엄마와 함께 나와 있는 애들한테는 적당선에서 양보를 했지만 아이들끼리만 나와 있으면 그네를 좀처럼 양보하지 않았다.

나는 은채한테 말하곤 했다.

“은채야, 언니들이 그네를 타고 있으면 일단 미끄럼틀이나 시소를 타면서 놀아. 그러다 자리가 나면 후다닥 달려가서 잡으면 되지.”

하지만 은채는 그러지 않았다. 고학년생 애들이 그네에서 물러날 때까지 옆에서 턱을 괴고 기다렸다. 언니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바로 양보하지 않으면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할 만한 그런 눈망울로 말이다. 은채는 흔히 말하는 외탁이었다. 오종수보다는 나를 빼다 박았다고 할 수 있었다. 얼굴부터 체형까지, 모르는 사람이 봐도 오은채가 이나리 딸이라는 걸 그냥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은채의 눈망울을 슬쩍슬쩍 쳐다보면서도 자리를 고수하던 고학년 애들은 서하가 은채 옆으로 걸어와 같이 쳐다보기 시작하면 조금씩 흔들렸다. 그중 마음이 약한 애가 “야, 가자”라고 하는 단계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서하는 얼핏 보면 수미와도 수미의 남편과도 크게 닮지 않았는데, 여덟살인 그때도 입을 꼭 다물고 눈을 정면으로 뜨면 굉장히 다부져 보이는 데가 있었다.

은채는 턱을 괴고, 서하는 팔짱을 끼고 그네에 앉아 있는 고학년 언니들을 쳐다본다. 하지만 고학년 애들이 실제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저만치에서 내가 은채야! 서하야!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릴 때였다. 그네가 드디어 자기들 차지가 됐을 때의 아이들 표정을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이제 은채와 서하는 놀이터에서 놀지 않는다. 다이소보다는 아마도 올리브영을 더 좋아하는 것 같고. 하지만 나는 은채와 서하가 각각 열세살, 열네살이 된 뒤에도 그 아이들의 일곱살, 여덟살 모습이 남아 있는 길들을 매일 지나다녔다. 같은 동네에서 오래 산다는 건 그런 것이었다. 되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남아 있는 장소들을 일상적으로 마주치며 지나다녀야 하는 것이었다.

은채를 유모차에 태우고 내가 매일 산책하던 길을 지나 이제 은채는 학원에 간다. 은채가 처음 자전거 보조바퀴를 떼던 축구장을 지나 나는 공방에 가고. 이젠 은채가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어느 벤치에서, 다섯살의 은채가 나를 오래 기다린 적이 있다. 나는 여전히 그 벤치 앞을 일상적으로 지나다니지만 순간적으로 촉발된 작은 감정 하나로 그 앞에서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 은채의 구름빵 헬륨 풍선이 날아가 걸려버렸던 맞은편 동 옥상을 보다가 누구도 납득하지 못하는 순간에 눈물을 쏟아버릴 수도 있다. 한밤중에 맨발로 뛰쳐나가 옥상 문을 두드릴 수도 있다.

한 동네에서 오래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몇년 후 맞은편 건물의 3층으로 매일 드나들게 될 줄 모르는 채로 앉아 눈꽃빙수를 먹는 것이었다. 안쪽에 무엇을 넣어놓게 될지 모르는 채로 공간을 가르는 커튼을 치는 것이었다. 그 동네로 다시 돌아올 누군가를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채로 하루를 건너는 것이기도 했다.

별주씨와 별은씨와 별선씨가 마스킹테이프를 고르던 때는 봄이었지만 이제는 여름이다. 맞은편 빙수 까페의 폴딩 창문이 군데군데 접힌 채로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에어컨을 켠 실내에서 집단감염이 생긴 뒤로 냉방 중이어도 창문을 열어놓는 곳이 많았다.

나는 공방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몇년 전과 키가 다르지 않은 가로수를 쳐다보았다. 빙수 까페의 창가 테이블에 앉아 빙수 하나를 같이 먹고 있는 아이와 여자를 건너다보았고, 그러다 중얼거렸다.

“매미가 들어갔어.”

다시 한번 중얼거렸다.

“방금 매미가 들어갔는데.”

내 말이 들리기라도 한 듯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창턱을 가리키는 게 보였다. 아마도 이렇게 말했겠지. 엄마, 매미가 들어왔어! 매미! 여자가 두리번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이어 직원이 총채를 들고 창가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총채로 창턱을 살살 쓸어가던 직원이 폴딩 창문의 손잡이를 확 잡아당겼다. 창문이 더 열렸다. 아이는 시합을 응원하는 것처럼 자리에서 방방 뛰고 거리에선 입간판 사이에 서 있던 휴대폰 대리점 직원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숨을 내쉬며 다시 중얼거렸다.

“매미가 나갔어.”

테이블에 다시 앉아 빙수를 먹는 아이와 여자를 보다가 나는 창에서 몸을 돌렸다. 햇빛에 익었던 눈 때문인지 실내의 사물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수미의 초 심지에 끝까지 마스킹테이프를 붙여주지 않았다.

 

*

 

공방을 상가로 이전하면서 새로 생긴 것 중 하나가 나리공방의 로고였다. 동글동글한 서체의 ‘나리공방’이라는 상호 위로 간단한 그림이 스케치돼 있었는데 꽁지머리의 여자가 초 하나를 들고 탁자에 앉아 있는 그림이었다. 노란 니트에 회청색 앞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는 이마에 마치 고양이 수염처럼 앞머리 네가닥이 내려와 있었는데, 그건 누가 봐도 이나리를 그린 것이었다. 나리공방의 그 나리. 물론 내 앞머리는 네가닥보다는 좀 많지만 약간 좁은 이마에 처진 반달눈, 이름만 불러도 강아지처럼 달려올 것 같은 표정은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었다. 간단한 선 몇개로 누가 봐도 이나리인 인상을 담아내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상가 이전 준비가 한창이던 그해 2월이었다. 은채 생일파티가 끝나고 며칠 뒤였을 것이다.

‘이모, 대박 나세요.’

그 말과 함께 서하가 카톡으로 이미지를 하나 보내왔다. 보자마자 나는 그걸 나리공방의 로고로 삼고 싶다고 서하한테 연락을 했고 지금 서하의 그림은 나리공방의 SNS와 판매 페이지뿐 아니라 공방의 포장박스와 안내엽서에도 빠짐없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림에 깨알같이 담긴 디테일들을 보면서 나리공방을 오갔던 서하의 초등학생 시절과 그때 서하에게 남았을 인상들을 짐작해보곤 했다. 그림 속에서 나리는 올리브색 크레용 캔들을 두 손으로 모아 쥐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엔 미니 전자저울과 쓰러진 종이컵, 엎질러진 오일이 그려져 있었고(아이들 수업 땐 툭하면 뭔가가 엎질러지곤 했다) 상체 주위론 꽃 이파리 몇개가 둥글게 흩뿌려져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것은 사탕이었다(아이들이 오는 오후 시간에 나는 늘 사탕 바구니를 꺼내놓았다). 아이들이 선생님, 귀걸이 너무 예뻐요, 하면 나는 며칠 동안 그 귀걸이만 했고 선생님, 옷 너무 예뻐요, 하면 또 그 옷만 내리 입었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중단발을 늘 하나로 묶고서 수업을 했고 말을 하다 숨이 차면 후, 하고 앞머리로 입김을 뿜어 올리는 약간은 연극적인 버릇이 있었다.

무심히 그렸을 수도 있는 그림의 디테일들이 그래서인지 내겐 하나하나 특별하게 다가왔다. 서하는 아마도 노란 니트를 입고 있는 나를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 올리브색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것이고. 하지만 내가 서하에게 사과 얘기를 한 적이 있었을까?

그림에서 가장 내 눈을 끈 것은 ‘나리공방’이라는 글자 옆에 그려진 사과 한알이었다. 그것은 새싹이나 하트처럼 흔히 쓰이는 이미지일 수도 있었지만 나는 서하가 거기에 새싹도 하트도 아닌, 하다못해 촛불 이미지도 아닌 사과를 그려넣은 것에 대해서, 올리브색 캔들이나 회청색 앞치마나 네가닥의 앞머리 못지않게 왠지 그게 나리가 나리임을 알아보게 하는 표지 같다는 생각을, 여름내 공방에 혼자 나와 앉아서 하고는 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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