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은미 崔銀美

1978년 강원 인제 출생.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눈으로 만든 사람』, 장편소설 『아홉번째 파도』, 중편소설 『어제는 봄』 등이 있음.

alfmrlal@naver.com

 

 

 

장편연재 4

마주

 

 

나는 툭하면 운다.

걸핏하면 울고, 아주 작은 걸 계기로 걷잡을 수 없이 울기도 한다. 지칠 때까지 운다. 울다 지쳐서 잠이 들고, 진이 빠진 채 일어난다.

술에 취하면 피아노를 친다. 밤 열한시에도 치고 새벽 두시에도 친다. 그런 날은 윗집 아랫집 옆집한테서 욕을 먹는다. 나는 내가 욕을 먹어도 싸다고 생각한다.

초가 보이면 불을 붙이고 싶어지고 케이크를 보면 자르고 싶어진다.

최근에 좋아한 건 레몬파운드케이크.

마음 편하고 피곤한 날의 섹스를 좋아한다. 일 다 끝난 날 하는 거. 한 뒤에 안 씻고 아침까지 잠드는 거.

아이를 낳고 기초체온이 37.3도가 되었다. 코로나 이후에 동네 내과에서 출입을 거부당했다.

한밤에 분식 포장마차 앞에서 혼자 어묵을 먹고 있는 여자를 보면 가서 말을 붙여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몸속 염증을 다스리는 데 좋은 식품은 사과/견과류/감귤/당근/토마토/계란노른자/닭고기.

수미와의 카톡 창은 한여름에 멈춰 있었다.

수미가 아직 음압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수미가 70일에 가까운 시간을 보낸 그곳은 인근 시에 있는 한 시립 의료원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기 입원이었다.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면회는 당연히 안 됐고 수미 가족들이 수미한테 필요한 것들을 종종 병원에 전해주고 오는 듯했다. 퇴원 시 폐기할 수 있는 이불, 퇴원 시 폐기할 수 있는 슬리퍼, 퇴원 시 폐기할 수 있는 티셔츠와 속옷. 완치 뒤 밖으로 나올 땐 그곳에서 쓰던 것을 모두 두고 나와야 했기 때문에 버려도 상관없는 것들만 반입할 수 있다고 했다.

7월 초쯤, 수미한테 다녀온다는 서하 편에 더치커피를 보낸 적이 있었다. 그날 저녁 수미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커피 잘 마시겠다는 말 끝에 병실 사진 하나와 병실 창밖을 찍은 사진 하나가 와 있었다.

혈압기와 소독키트 등이 놓인 선반 옆으로 벽 한면을 채우고 선 커다란 음압기가 보였다. 의료원 로고가 찍힌 침대 커버와 소형 냉장고, 라디에이터 위에 빨아 널어놓은 타월 몇개.

내부 공기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음압병실이었기 때문에 에어컨을 켤 수도 창문을 열 수도 없는 곳이었다. 창틀에는 못이 박혀 있었다. 그 창틀 너머로 작은 공터가 보였다. 벤치 몇개와 나무 몇그루, 병원 어디에나 하나씩 조성되어 있을 법한 크지 않은 뜰이었다. 병실에서 보이는 그 창문 밖 뜰이, 두달이 훌쩍 넘는 기간 동안 수미가 본 유일한 바깥 풍경일 것이었다. 그 뜰 벤치 중 하나였다. 어떤 여자아이가 앉아서 책인지 휴대폰인지 모를 손안의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핏 서하인 것도 같았지만 화면을 확대해봐도 모습이 뚜렷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냥 창밖을 찍었는데 마침 거기에 누군가 앉아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수미가 그 병실에 들어간 건 봄이었는데 창밖엔 한여름이 와 있었다.

과호흡으로 응급실에 다녀온 뒤 나는 그 사진 이후로 멈춰 있는 수미와의 메시지 창을 자주 열어보았다. 몸은 좀 어떠냐고 메시지를 보내볼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선뜻 말을 걸 수 없었다. 수미와 큭큭거리며 나누었던 수년간의 대화들이 지난봄 이후 툭툭 끊어져 있었고 그걸 열어볼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올라왔다. 응급실에 다녀온 뒤부터 나는 내 심리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퇴원을 하고도 내게 메시지 한줄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한 서운함인지, 몸도 마음도 편치 못할 수미에 대한 걱정인지 모를 것들이 뒤섞이면서 수많은 감정의 파편들을 만들었고 그게 여기저기서 튀어 오를수록 나는 자신이 없어졌다.

수미한테 들키지 않을 자신. 이 상태에서 먼저 메시지 한줄이라도 보낸다면 나는 수미한테 내 서운함을 들키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왜 들키고 싶지 않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이전과 다르게 수미와의 메시지 창에 이상한 긴장감이 생겨버렸다는 것이었다. 연락을 안 하고 있는 채로 나는 계속 수미와의 연락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급기야는 그런 긴장감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에 수미를 빨리 만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건 다 수미를 안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전처럼 수미와 가까이 앉아서 시답잖은 소리를 하면서 웃고 나면 수미가 격리되고부터 아슬아슬하게 쌓여갔던 이 긴장감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편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단 미용실에 가기로 했다.

코로나 대유행 이후에 제대로 미용실에 간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 올라온 머리가 지저분해 보였다. 뿌리염색을 하기 위해 가운을 입을 때까지는 괜찮았다. 일회용 케이프를 어깨에 두르고 양쪽 귀에 비닐커버를 씌울 때도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목에 넥페이퍼를 두르자 신호가 왔다. 이대로 있으면 곧 곤란함이 밀려올 것이라는 느낌이, 그것이 오는 느낌이, 손끝과 발끝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숨을 쉴 수 없던 그때의 공포감이 다시 살아났다. 가장 두려운 건 아무리 호흡이 곤란해져도 미용실 안에선 마스크를 벗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헉헉거리면서 마스크를 벗었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존재 자체로 이들에게 아주 곤란한 손님이 될 수 있었다. 응급실 의사가 말해준 대로 가방에 파리바게뜨 종이봉투를 넣어 다니고 있었지만 가방은 저 멀리 입구 사물함에 있었다.

길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손끝과 발끝이 저려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단골 선생님의 새로 온 어시스턴트가 정성스럽게 둘러준 가운과 케이프와 커버와 페이퍼를 뜯어내고 미용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죽을 것 같은 상황을 다시 겪지 않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몇달 만에 찾은 미용실에서 뿌리염색을 하는 데 실패했다.

거울도 보고 싶지 않았고 기분도 엉망이어서 어느날은 드라이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종수나 오은채와 다른 공간에 있고 싶을 때 차 안은 내가 편히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그동안은 터널을 특별히 의식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달랐다. 터널로 들어선 순간 예고도 없이 손끝 발끝에서 느낌이 오기 시작했고 도로 위에서 숨을 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미용실에서보다 몇배는 더 큰 당혹감이 찾아왔다.

송미림 의사가 연결해준 신경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건 그렇게 미용실에 이어 터널까지 겪고 난 뒤였다. 그제야 이게 단순히 호흡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자각이 왔다. 미용실도 갈 수 없고 운전도 할 수 없는 삶은 또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나는 호흡 곤란의 공포를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게 인생의 목표가 되어 만사를 조심하면서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내가 마음 놓고 갈 수 있는 곳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사전 문진표 링크와 함께 오는 기정병원의 예약 알림톡을 다시 받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런 마음으로 가을이 오는 걸 보고 있었다. 8월 말에 다시 시작된 코로나19 대유행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던 9월 초였다.

 

*

 

“요새는 비타민D가 각광을 받고 있어요.”

기정병원 로비에서 수미를 만났던 날, 나는 비타민D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여름 끝 무렵의 대유행으로 거리두기 단계가 다시 올라가면서 모든 까페에서 취식이 금지될 때였다. 저녁 아홉시 이후론 온 가게가 문을 닫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여름내 닫았던 공방 클래스를 다시 열려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객담 배양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던 것이다.

내가 하기도 심부에서 힘들게 끌어올린 가래에선 어떤 균도 검출되지 않았다…… 이제 나는 본관의 호흡기내과가 아니라 구름다리를 지나 별관의 신경정신과로 간다. 다른 질병코드 번호를 받는다. 비타민D에 대해 생각한다.

신경정신과 의사는 송미림 의사보다 서너살 정도 많아 보이는 여성 의사였는데, 진료실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모니터 옆에 놓인 핸드크림이었다. 카밀 오리지널 100ml. 의사는 나와 똑같은 핸드크림을 쓰고 있었다!

“우리 질환은 오전 햇빛이 좋아요. 저녁엔 쉬어야 좋고요. 잠들기 한두시간 전엔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우리 질환’이란 아무래도 공황장애를 말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의사가 덧붙였다.

“요새는 비타민D가 각광을 받고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용실과 터널에서 숨이 막혀올 때의 공포감과 당혹감에 대해 좀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의사에겐 비타민D 또한 중요할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요새 비타민D와 공황장애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을지도 몰랐다. 의사가 비타민D 얘기를 하는 동안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계속 카톡 알림이 깜빡거렸다. 나는 그게, 그러니까 신경정신과 의사한테 지금 카톡을 보내는 사람이 송미림 의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이 친할까? 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은 시간이 맞으면 종종 점심을 같이 먹는 사이일지도 몰랐다. 모처럼 병원 밖으로 나가 밥을 먹은 날에 둘은 병원 앞 사거리에 있는 올리브영에 들른다. 카밀 핸드크림을 하나씩 산다. 진료실로 들어가기 전에 병원 뒤뜰에 앉아 잠시 커피를 마신다. 그리고 그때, 그들은 잠시 이나리 환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이나리라는 사십대 여성 환자의 가슴 통증과 호흡 곤란에 대해. 그러다 알게 되는 것이다. 호흡기내과적 질환과 신경정신과적 질환이 별개가 아님을. 이나리라는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진단이 필요함을.

그들이 딱 삼분이라도 나에 대해 그렇게 의논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구름다리를 지났고 본관 로비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에스컬레이터가 점차 1층을 향해 가는 것과 같은 속도로 로비 중앙 벽의 대형 스크린이 눈에 들어왔다. 스크린에서는 기정병원 유튜브 영상이 나오고 있었는데, 영상에서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내가 방금 만나고 온 그 신경정신과 의사였다. 책상 위로 내가 본 것과 똑같은 핸드크림이 보였다. 의사는 진료실에서보다 훨씬 멋져 보였고 진료실에서는 들을 수 없던 내용(공황장애의 모든 것)에 대해 너무도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스크린 앞으로 걸어갔다. 영상 안의 의사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떤 둑이 있다고 해보죠.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은 여기까지 차오르고 차올라 있습니다. 그러다 마지막 한방울이 딱 떨어지면서 그 둑이 넘치는 것입니다. 항진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서 있다 나는 ‘정상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수미가 본관 출입구의 열화상 카메라를 막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