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평
만화여, 책의 품이란 참 따뜻하지 않은가
2002년 한국만화
이명석 李明錫
만화평론가 manamana@korea.com
비극의 시대가 있었다. 주인공들은 한치의 물러섬 없이 운명과 맞섰고, 머리칼 한올까지 하얀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 황미나의 「안녕! 미스터 블랙」 등 한국만화의 80년대는 문자 그대로 ‘완전연소(完全燃燒)’의 시간, 비극의 박물관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만화가들에게는 그때야말로 진정한 황금시대였는지도 모른다. 비로소 만화는 아이들의 품을 벗어났고, 만화가들에게는 모든 것을 그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겨났다. 가슴을 옥죄는 군부의 검열과 어르신들의 꾸중도 독자들의 눈물과 웃음으로 씻어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희극의 시대다. 엽기는 뒤집어지고 개그는 뒤통수를 친다. 매몰찬 패러디가 열혈의 과거를 조롱한다. 발랄한 주인공들이 예정된 승리를 거두고, 삶은 이기는 게 당연한 게임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역시 역설적으로, 그 환희의 웃음 밑에서 한국만화는 깊은 절망을 곱씹고 있다. 우리는 이것이 약속된 승리를 위한 달콤함 패배이기를 기원하지만, 만화의 신은 아직 그 최종화의 콘티를 구상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02년 한해 동안 여러 만화가들이 손가락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