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평 │ 시

 

말·놀이·진실

 

 

엄경희 嚴景熙

문학평론가. 저서로 『빙벽의 언어』 『未堂과 木月의 시적 상상력』 『질주와 산책』 『현대시의 발견과 성찰』 『저녁과 아침 사이 詩가 있었다』 등이 있음. namwoo@hanmail.net

 

 

1. 놀이적 상상력의 주변성

 

모든 예술적 산물이 자발성과 무상성(無償性)이라는 놀이의 본성을 기반으로 생성된다는 원론적 사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상의 실용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또다른 가치를 창안해내는 것이 예술이라는 점에서 모든 예술적 행위는 현실원칙의 억압과 존재론적 구속에 대항하는 놀이정신의 소산이다. 이같은 예술의 놀이적 본성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시문학에서 ‘놀이’라는 말은 여전히 ‘진지하지 못함’과 연관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놀이’라는 말이 사용될 때 엉뚱한 짓, 우스꽝스러운 것, 일시적 기분전환, 가벼운 재미 등의 고정관념이 동반되는 이유는 우리의 민족적 기질이 놀이에 대해 배타적이라기보다 근대적 삶의 구조가 척박했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일상의 구조가 치명적으로 사람들을 위협할 때 놀이에 대한 인식은 가치절하된다. 놀이는 일상의 강제성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심리적 여분을 지닐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안과 위기감으로 점철되었던 근대사의 파장 속에서 ‘놀이하는 인간’의 가치가 부상하기 어려웠던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시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시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던 것은, 막연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진정성’의 유무였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삶을 진정성있게 담아냈는가 하는 문제가 시의 내용과 형식을 밝히는 마지막 귀결점이되었던 것이다. 진정성 유무를 밝히는 것이 시의 가치평가에 매우 중요한 사항이라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문제는 시적 진정성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진지하게 고뇌하는 심각한 예술가의 형상만을 발견하고자 한다는 데 있다. 시의 의미나 주제를 찾는 데 치중하는 독서방식이 유독 일반화된 까닭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독서 현상학에 입각해서 말한다면 우리 시의 독자는 시의 놀이적 본성에 둔감한 편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유쾌하게 놀이하는 정신적 활동에 대한 가치폄하나 망각을 의미한다. 80년대 중반 이후 발생한 해체시가 가볍다는 질타를 받게 된 것도 이와 관련한다.

근대사의 파장이라는 거시적 관점을 벗어나 2000년대 시를 돌아보면 우리 시의 놀이정신은 여전히 결핍되거나 억압된 양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특히 환상풍의 실험시에서 압도적으로 드러나는 ‘강박증세’와 관련된다. 강박은 자유정신이 소거된 상태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도발적이고 기괴한 소재나 이미지를 발굴해야 한다는 강박이 젊은 시인들의 자유정신을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대동소이한 시각적 이미지가 시 텍스트에 만연하는 현상이나 난폭하고 비속한 언어가 무분별하게 반복되는 현상은 독자성의 상실과 연관되며 이는 곧 자유정신의 부재를 뜻한다. 자유정신을 잃어버린 실험시는 이미 언어적 모험을 감행할 동력을 상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새로운 시적 형식의 탐구와 실험은, 비록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겁고 심각한 것일지라도, 놀이하는 인간의 활달한 의식 속에서 발생한다. 우리의 시사(詩史)에서 이러한 의식을 ‘말놀이’를 통해 부각시킨 예를 들어본다면, 이상의 「烏瞰圖」 연작에 나타나는 말의 현기증 놀이, 서정주의 「분지러버린 불칼」에 등장하는 흥타령 같은 신명나는 욕설, 「북녘 곰, 남녘 곰」 「내가 돌이 되면」에서 보이는 변신은유의 연쇄, 김수영의 「絶望」 「눈」 같은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재담(equivoque)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이상(李箱)의 「烏瞰圖」 연작 중 하나를 보자.

 

싸움하는사람은즉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고또싸움하는사람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었기도하니까싸움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고싶거든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싸움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는구경을하든지싸움하지아니하던사람이나싸움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움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였으면그만이다.

—이상 「詩第三號」(『이상문학전집』, 문학사상사 1991) 전문

 

이 시는 말의 놀이적 상상력에 집중하면서 읽을 때 시인의 의도를 선명하게 간파할 수 있다. 이 시를 처음 경험했을 때 나는 쌔뮤얼 베케트(Samuel Beckett)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을 떠올렸다.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말이 안되는 말을 지껄이는 그 인물과 이 시의 화자는 닮아 있다. 말이 안되는 말들이 마치 재봉틀을 박듯이 드르륵 지나갈 때 오는 충격은 압도적이다. 싸움하는 사람과 싸움하던 사람, 싸움하지 아니하는 사람과 싸움하지 아니하던 사람의 뒤엉킴은 의미 도출을 포기하게 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오로지 ‘ㅆ’의 강한 된소리로 이루어진 효과음만이 뇌리에 꽂히게 된다. 이것이 이 시의 의미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가 싸움을 하든 그렇지 않든 모두가 ‘ㅆ’의 된소리 속에 있다. 완전히 불화로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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