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지연 金志姸

2018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 장편소설 『빨간 모자』 등이 있음.

daltree@gmail.com

 

 

 

먼바다 쪽으로

 

 

1

 

어느날 해변으로 조개들이 마구 밀려왔다. 종희는 투숙객이 빠져나간 2층 객실 베란다에서 이불을 털다가 해변의 사람들이 자주 허리를 굽히는 것을 보고 그 사실을 알아챘다. 7월이 시작되자 더위는 정점을 찍었다. 바닷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졌다. 종희는 1층에서 청소를 하고 있을 현태에게 전화를 걸어 해변에 나가보라고 했다. 현태는 빈 양파망 하나를 들고 맨발로 걸어나가서는 조개로 망을 가득 채워 돌아왔다. 잡아 온 조개는 한나절 동안 잘 해감한 다음에 국을 끓였다. 그래도 어떤 것은 모래가 많이 씹혀서 뱉어내야만 했다.

그날 잠들기 전에 이불 속에서 몇차례 몸을 뒤치던 현태가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끓인 조개 이름이 뭐였지?” 종희는 눈을 깜박이며 조개의 외양을 떠올려보았다. 보름달처럼 둥근데다 껍데기가 매끈한 하얀 조개였다. 곰곰 생각한 끝에도 겨우 “글쎄, 뭐였을까” 하고 말할 뿐이었다. 꾸준히 챙겨 먹는 수면제의 약발 때문인지 현태는 금세 곯아떨어져 코를 골기 시작했다. 종희가 현태의 베개를 살짝 잡아당기자 잠깐 코 고는 소리가 멎었다. 창으로 승용차의 후미등인 듯한 붉은빛이 들어와 천장을 밝혔다가 사라졌다. 종희는 눈을 깜박이며 그 흔적을 좇다가 이내 잠들었다.

다음 날 종희는 조개껍데기만 모아놓은 비닐봉지에서 하나를 꺼내 싱크대에 올려놓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번 삶은 뒤라 그런지 색이 좀 바래 보여 하얗게 보정을 해서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다. 어제 해변에서 잡은 것인데 이름이 궁금합니다……

“어젯밤에 누가 왔었나? 잠결에 차 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샤워를 하고 나온 현태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물었다. 종희는 지난밤 천장이 붉어졌던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

“맞아, 차 불빛이 지나가는 걸 봤어.”

“뭐? 근데 왜 말 안 했어?”

“자는 사람을 뭐 하러 깨워. 잘못 왔나보다 했지.”

“헷갈리기 쉬운 길은 아니잖아.”

“그래도 밤이었으니까 헷갈렸을 수도 있지. 아니면 기분 내려고 달리다가 여기가 막다른 길인지도 모르고 들어왔을 수도 있고.”

현태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두어차례 끄덕였다. 종희는 그것이 충분한 동의의 표현이라고 여겼다.

“우리 펜션 옮길까?”

“왜? 여기 괜찮잖아. 사장도 멀리 살고.”

“손님이 거의 없잖아. 지난달 월급도 보름이나 늦게 들어왔는데 이번 달은 또 어떨지.”

종희는 한가해서 좋다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현태가 두려워하는 것은 늦어지는 월급이 아니라 지난밤의 방문자였다. 종희 생각엔 길을 잘못 든 멍청이일 뿐이었다.

“그래도 여름까지는 있어야지. 당장 옮길 데를 어디서 찾아? 천천히 생각해보자.”

현태는 대답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종희는 현태가 대답이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말이 다 옳았고, 현태의 의심은 불안 때문에 충동적으로 일어난 감정일 뿐이었다. 한동안 잠잠하다 다시 고개를 쳐든 것 같았다. 그걸 자신의 한두마디 말로 잠재울 수는 없었다.

“자기야, 나가서 고기랑 숯 사와. 오늘 예약 있잖아.”

현태는 알았다고 말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덜 말린 채로 방을 나갔다. 잠시 후 자동차가 자갈이 깔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현태가 나간 다음 종희는 청소를 시작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2층짜리 펜션에서 지내고 있었다. 1층 입구에 있는 방이 두 사람의 거처였다. 방은 다른 객실보다 작았지만 바다 쪽으로 딴 건물이 없어 탁 트인 전망이 좋았다. 손님이 없는 날에는 빈 객실에서 자기도 했다.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여름 내 펜션 안팎을 관리하는 것이 두 사람의 일이었다. 서울살이에 시달리다 요양 삼아 내려온 시골에서 무료하게 지내다 소일이라도 하자 싶어 구한 자리였다. 객실은 모두 여섯개였고 잔디마당에 바비큐용으로 만들어놓은 야외테이블이 있었다. 사장은 다른 도시에 살았다. 처음 면접을 볼 때를 빼고는 찾아오지도 않았다. 도시의 끄트머리 해변에 있는 곳이라 가구 수도 적었고 낚시꾼이나 여행객이 아니면 찾는 사람도 없었다. 손님이 괴롭히는 일이 없으면 힘들 일이 없었다. 현태는 그마저도 좋아했다. 사장님, 하고 부르며 귀찮게 구는 것이나 밤새도록 떠들어대는 것도 듣기 좋다고 했다. 와서 고기를 좀 구워달라, 방에 벌레가 들어왔는데 좀 잡아달라, 근처에 편의점도 없는데 콘돔을 빌려달라, 아침에 깨워달라, 요금을 깎아달라, 터미널까지 태워달라…… 끝없는 요구사항에도 흔쾌히 응했다. 그런 것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종희가 말려도 어차피 달리 할 일도 없다는 게 이유였다. 가만 보니 몸을 바삐 움직여 잡생각을 잊으려는 것 같아서 종희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이후로는 종희도 현태를 부리는 일에 익숙해졌다. 장을 보거나 객실 청소를 하는 일, 가끔은 해변에 나가 조개를 주워 오는 일도 시켰다. 그때마다 현태는 군말 없이 따랐다.

종희는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젖은 수건을 집어 들어 세탁 바구니에 넣었다. 현태가 머리를 말리다 그대로 두고 간 것 같았다. 수건 때문에 이불도 조금 축축해져서 이불도 베란다에 널었다. 베란다에 내놓은 의자에 앉아 잠깐 바다를 보았다. 구름 없이 맑아 물비늘이 번쩍이는 날이었다.

정오가 되기 전 손님이 왔다. 베란다에서 잠깐 졸았던 종희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입실 시각은 한시였지만 일찌감치 도착한 예약손님일 수도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고 오는 사람은 여태 한번도 없었다.

“방 있을까요?”

사십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는 검은 등산복 차림이었다. 파란색 등산모자에 썬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펜션 이름은 비쥬였다. 보석 종류로 객실 이름을 붙인 것이며 더블베드에 캐노피로 꾸며놓은 모양새가 누가 봐도 연인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썼다는 이유로 요금도 비싼 편이었다. 이런 방에 굳이 혼자 묵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혼자신가요?”

“네.”

“저희가 다 커플실이라서요. 혼자 오셨다고 해도 제일 저렴한 방이 지금 일박에 십칠만원이거든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만에 휴가를 얻어서 낚시나 하려고 왔는데, 다 방이 없네요. 아직 성수기는 아니니까 안심하고 있었거든요. 비싸도 어쩔 수 없죠.”

종희는 키를 들고 나와 예약된 에메랄드룸을 뺀 나머지 방들을,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토파즈, 오팔을 차례로 보여주었다. 가장 작은 방은 오팔이라고 알려주었는데도 남자는 나머지 방들도 모두 보기를 원했다.

“사흘쯤…… 있을까 하거든요. 이왕이면 마음에 드는 방에서 있고 싶네요.”

종희는 사흘치 숙박비를 사장 모르게 현금으로 챙길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는 내심 비싼 방을 선택했으면 했다. 조금 크다는 것 빼고는 별 특색도 없이 비싸기만 해서 잘 나가지 않는 방이었다.

“오랜만에 휴가신가봐요. 삼일 묵으신다니까 현금으로 하시면 오만원 빼드릴게요.”

“음.”

남자는 모든 방을 다 둘러보고는 웃으면서 아무래도 가격이 부담이 된다며 좀더 둘러보고 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종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번외의 수입이 날아간 것이 아쉬웠지만 사장을 속이는 짓을 할 필요도 없어졌다. 남자는 차를 타고 펜션을 떠나기 전에 배웅하는 종희 앞에 잠깐 멈춰서 차창을 내리고 물었다.

“그런데 여기 혼자 계세요?”

“네? 아뇨, 남편이랑요.”

“아, 역시 그렇군요.”

남자는 창문을 닫고 떠났다. 종희는 검은 왜건의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장을 보러 나간 현태는 점심이 다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전화를 할까 했으나 마트가 있는 시내까지는 가는 데만도 한시간이었으므로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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