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장편 『유랑가족』 『수수밭으로 오세요』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명랑한 밤길

 

 

비는 거칠게 그리고 지루하게 내렸다. 온 집안에서 습기 냄새가 진동했다. 장마가 시작된 지 일주일째다. 그 일주일 동안 비는 끊임없이 내렸다.

…그래도 못 잊어 나 홀로 불러보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훨훨 날아가자 내 사랑이 숨쉬는 곳으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람아… 훨훨 훨훨 이 밤을 날아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 사람아…

비오는 날이면 첫사랑이 생각나네요. 첫사랑이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괴로워요. 장마가 일찍 끝났으면 좋겠네요. 성심병원 수간호사… 수와진 파초… 불꽃처럼 살아야 돼 오늘도 어제처럼 저 들판에 풀잎처럼 우리 쓰러지지 말아야 해 모르는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여나 돌아서서 우리 미워하지 말아야 해… 이은미의 목소리로 듣죠, 서른 즈음에.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엔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라디오 소리는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들려올 것 같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도 라디오는 조용필과 윤도현과 수와진과 이은미의 노래를 틀어줄 것 같다. 사람은 가도 라디오는 영원할 것 같다. 이제 갓 환갑을 넘긴 엄마의 분별력은 장마철로 접어든 지난 일주일 동안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었다. 사방에 꽉 찬 습기가 엄마의 뼈와 엄마의 살을 아프게 하고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야야, 너네 아버지가 날 버렸다.”

엄마한테 치매기가 생긴 건 작년 아버지 장례를 치른 지 딱 사흘째부터였다. 엄마는 그때부터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며 슬퍼했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한달 동안 엄마 입에서 같은 말이 반복됐을 때야 그게 치매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제 겨우 스물한살인 나는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분명한 건 당분간 엄마를 떠나 먼 곳으로는 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뿐. 나는 내가 태어나 살던 이 고장을 떠나 먼 곳으로, 도시로 나가 살고 싶은 그 열망 하나로 간호보조학원을 다녔다. 간호보조학원을 마치자마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형제들은 제 살 곳으로 떠났으며 엄마와 나만 남았다. 오빠들은 내게 말했다.

“면소재지에 병원이 두 개나 있다.”

언니도 말했다.

“치과도 있고 한의원도 있어.”

두 명의 오빠와 한 명의 언니 중 두 오빠가 신용불량자이고 언니는 이혼하여 모자가정의 가장이다. 두 오빠는 서로 의기투합하여 연대보증으로 빚을 얻어 한 오빠는 화훼하우스를 하다가 태풍으로 하우스가 무너지는 바람에 폭싹 망했고 한 오빠는 망한 오빠의 빚을 갚지 못해 망했다.

나는 우산을 받고 마당으로 나가 아욱잎을 뜯는다.

“야야, 그래서 내가 이렇게 아픈 거야. 여기도, 여기도, 여기도.”

아욱잎은 열 장만 뜯어도 충분하다. 그러나 그 열 장을 뜯기가 어려울 만큼 아욱잎은 잔뜩 쇠어 있다.

“야야, 근데 너네 아버지가 진짜 날 버린 거니?”

아욱을 포기해버릴까? 꽃이 핀 아욱을 보면 왈칵 무섬증이 인다. 야들야들한 아욱잎이 주던 기쁨, 그 보드라운 잎을 뜯어 부드러운 아욱 된장국을 끓여먹었던 행복감에 비례해서 부숭부숭하게 꽃이 돋아나기 시작한 직후부터 뻣뻣해진 아욱잎을 보면 생에 대한 아득한 절망감이 엄습해온다. 내가 이것을 심어놓고 불과 두 번밖에 끓여먹지 못했구나. 두 번밖에 못 끓여먹어서 절망스러운 게 아니라, 야들야들한 아욱이 어느새 부숭부숭 꽃을 피우는 동안 아욱밭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 그 아욱밭을 잊고 있던 동안의 나의 행적이 스스로 무서운 것이다. 아욱이 꽃을 피우고 아욱꽃이 지고 아욱은 늙어가고 이윽고 아욱이 녹아 없어져버린 연후에야 내가 아욱밭에 와서, 아욱밭에 주질러앉아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아욱을 찾느라 슬피 울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진저리를 치는 것이다. 어쨌든 그래도 아직 부드러운 기가 남아 있는 아욱잎을 딴다. 비가 아무리 와도 거름기가 없는 아욱밭은 잇몸이 깎여나간 노인의 이마냥, 단단한 흙의 맨살만이 서슬 푸르게 드러날 뿐이다. 자갈이 많이 섞인 아욱밭에 비해 그래도 고추밭은 비름이랑 강아지풀이 섞여서 제법 찰진 흙냄새를 풍긴다.

“야야, 너네 아버지 온댄다.”

나는 고추를 딱 세 개 땄다. 엄마는 딱 하나만 먹을 거면서 언제나 고추를 더 많이 따기를 원한다. 엄마 거 하나 따는 김에 함께 딴 고추로 나는 오늘 저녁 잔뜩 약오른 고추 두 개를 먹어야 하리라. 그러고 나면 밤에 내 속은 많이 쓰릴 것이다.

“야야, 너네 아버지 언제 온대니?”

아욱국과 된장종지와 고추 세 개가 동그마니 놓인 저녁밥상이다. 수저를 들려다가 문득 토마토밭 쪽에 뭔가 새뜩한 게 어른거린다. 나는 다시 질퍽한 마당으로 급하게 내려섰다. 방울토마토가 딱 두 개 빨갛게 익어 있다. 빨간 방울토마토 두 개가 올라오니 적막한 저녁밥상에 꽃등 두 개가 켜진 것 같다. 빨간 방울토마토 두 개를 가운데 놓고 모녀는 드디어 한없이 느리기만 한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연세가정의원은 토요일이면 오후 세시에 문을 닫는다. 의사는 이미 퇴근하고 나와 수아가 마악 병원문을 잠그려던 순간이었다. 병원문을 잠그고 나서 나는 수아와 함께 면소재지를 휘감아도는 강변 둑방길을 좀 걷다가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먹고 집으로 갈 참이었다. 그 둑방길에서 최근에 수아가 산 엠피쓰리 플레이어로 다운받아놓은 최신 발라드곡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봄이면 둑방길에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그 둑방길을 수아와 내가 걸어가면 젊은 여자가 귀한 이 고장의 젊은 남자들이 눈부시게 우리를 바라볼 것이다. 바람이 불면 수아와 내가 짝맞춰 입고 나온 하늘색 원피스와 녹색 플레어 치마가 우리들 다리에 부드럽게 휘감길 것이다. 그리고 그뿐이다. 우리는 각자 고요한 귀갓길을 서두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수아와 나의 동창이자 선배이자 후배인 이 고장의 젊은 남자들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이즈음에 부쩍 눈에 많이 띄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들이라니.

퇴근길에 농공단지 안 플라스틱공장 사장 만배가 커피 좀 마시고 가라 해서 들어가본 만배의 일터에서 나는 처음으로 실제로 노동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보았다. 언제부턴가 야산과 밭과 논 위에 가구공장, 의료기기 공장, 플라스틱공장 들이 지어지더니 그곳이 공식적인 농공단지로 지정되었다. 농공단지 옆에서 만배는 돼지를 한 이백 두쯤 기르다가 불법 하수처리건으로 경찰서에 불려가네 어쩌네 곤욕을 치른 뒤에 돼지막을 플라스틱 사출공장으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또 언제부턴가 농공단지 주변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장 안은 사출기 돌아가는 소리, 플라스틱 찍어내는 소리에 라디오 소리가 진동했다. 기계 소리와 라디오 소리는 제각각 악을 쓰며 공장 천장 위로 치솟았다가 공장 바닥으로 곤두박질쳐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트로트를 따라부르며 일을 하던 외국인 노동자 남자가 나를 흘끗거리자 만배가 침을 뱉듯이 거칠게 쏘아붙였다.

“얌마, 함부로 입맛 다시지 말고 빨리빨리 일해, 일.”

그랬더니 얼굴이 검고 목이 검고 손이 검고 몸피가 가늘고 눈이 가는 외국인 노동자 남자가 씨익 웃으며 대꾸하는 것이었다.

“얌마, 하부로 이마싸지 말고 빨리빨리.”

나는 커피고 뭐고 만정이 떨어졌다.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사장이고 사원이고 간에 너무 무식하고 너무 거칠고 너무 교양이 없고 하여간 저질이라고 수아는 질색을 했다. 수아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한 모양이었다. 나도 수아의 말에 동의했다. 하여간 만배는 요주의 인물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장을 경영하는 만배나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들은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일 능력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바라보고 있자면 저절로 신물이 다 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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