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운영 千雲寧

1971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바늘』이 있음. hangomm@hanmail.net

 

 

 

명랑

 

 

문이 움직인다. 느리고 은밀하게, 딱 한뼘만큼만 열린다. 벽과 똑같은 색의 미닫이문은 낯선 세계로 통하는 비밀통로 같다. 열린 문으로 어둠이 밀려나온다. 어둠속에는 늙은이의 살냄새에 곰팡이 핀 과일, 눅눅한 솜이불, 좀약냄새가 뒤섞여 있다.

어둠을 헤치고 나오는 한 점, 희고 뾰족한 버선코다. 점이었던 것은 부드러운 선이 되었다가 단단한 볼이 된다. 살짝 치켜올라간 수눅선을 따라 뒤꿈치와 회목이 느릿느릿 문지방을 넘는다. 그 움직임이 너무 느려서 처음부터 내내 거기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열린 문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희디흰 버선발뿐이다. 흰 버선발은 어둠과 냄새의 여운을 말끔하게 몰아낸다. 오히려 발등에 수놓아진 붉은 꽃송이에서 향긋한 꽃내음이라도 풍겨나오는 듯하다. 내 눈은 향기를 맡은 꿀벌처럼 버선발을 향해 부산한 날갯짓을 한다.

나는 여태 그녀의 발을 기다렸다. 담배와 음식냄새에 누렇게 뜬 방에서 어머니가 이불을 밟으며 건너다니는데도 모른척하고 누워 있었던 것은 그녀의 발이 나오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달팽이처럼 미끈하고 조그만 발이 그녀 몸의 다른 부분을 끌고 나오기를, 그리하여 이 방을 온통 그녀의 냄새로 가득 채우기를 바라고 있었다.

식당에 딸린 한칸의 방에서 그녀와 내가 속옷바람인 채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엄마는 그녀를 위해 곁방을 들였다. 하루종일 볕 하나 들지 않는 곁방에서 그녀는 손님들이 돌아갈 때까지 두 개 채널밖에 나오지 않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굳은 떡을 먹으며 지낸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손님이 없어도 고치처럼 그 방에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점심 준비가 끝나기 전, 볕바라기를 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식당을 나서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외출이다.

그녀의 발은 촉수를 세운 더듬이다. 공기의 미세한 움직임을 탐색하고 위험을 감지한다. 탐색은 집요하리만치 계속된다. 낡은 항라치마를 바스락거리며 다리가 나온 것은 두 발을 내밀고서도 한참이 지나서다. 이윽고 검버섯 핀 손이 문지방을 짚는다. 그녀의 손은 말라비틀어진 빵 같다. 뼈와 핏줄이 드러난 얇은 살갗 위에는 저승꽃이 곰팡이처럼 무리지어 피어 있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검은 꽃잎이 벌어져 팔뚝으로 번진다. 저승꽃은 주글주글한 가슴패기와 늘어진 목덜미를 지나 광대뼈와 이마까지 줄기를 뻗어올린다. 숱 적은 머리 사이로 드러난 작고 동그란 머리통만 유난히 희고 매끄럽다. 나는 그녀의 쪽찐 머리를 기억한다. 뒷목 움푹 패인 부분에 은비녀로 꽂은 조그마한 머릿다발은 단아하고 정갈해 보였다. 김치에서 흰 머리카락만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아직 쪽찐 머리를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가 그녀를 앞에 앉히고 잘라낸, 그녀가 평생 빗고 따고 틀어올린 머리카락은 한줌밖에 되지 않았다.

그녀는 속옷 위에 치마만 두른 차림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는 외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저고리를 잘 입지 않는다. 저고리를 손에 꿸 때마다 가슴께가 아파온다고 고통을 호소하곤 한다. 우두커니 앉아 있던 그녀가 치마춤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녀의 손에 공단으로 만들어진 작은 주머니가 달려나온다. 그녀는 처진 눈꺼풀을 치켜올리며 조심스럽게 약봉지를 펼친다. 오각형으로 접힌 약종이를 한겹 한겹 펼칠 때마다 하얀 가루가 하늘하늘 피어오른다. 방안에는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그녀의 가릉거리는 숨소리만 나직하다.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녀를 훔쳐본다. 그녀의 눈은 개구리나 고양이의 것처럼 움직임에 반응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 한 그녀에게 나는 그저 풍경의 일부일 뿐이다. 그녀는 다 펼친 종이를 대각선으로 접어 가루를 한데 모아 입에 털어넣는다. 약종이를 손톱 끝으로 탁탁, 치는 소리를 들으면 내 눈은 저절로 찡그려지고 입안에는 쓴 침이 고인다.

그녀가 먹은 가루는 명랑이다. 명랑은 진통제다. 명랑 백포들이 상자 겉면에는 두통을 비롯한 관절통, 인후통 등 열여섯 가지 통증과 오한, 발열시 효능이 있다고 적혀 있다. 하루 2회, 복용간격은 여섯 시간 이상으로 한도를 두고 있지만 그녀는 명랑이 설탕가루라도 되는 것처럼 시도때도 없이 털어넣는다. 그녀가 먹은 것은 약이 아니라 방부제인지도 모른다. 그녀 몸은 이미 부패가 시작되었고 부패의 냄새를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방부제를 투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서 나는 늙은이 냄새 또한 죽음을 위장하는 방부제 냄새가 분명하다. 그녀 몸 구석구석에는 채 녹지 않은 명랑가루가 그대로 쌓여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죽어도 썩지 않으리라. 나무뿌리가 관뚜껑의 틈을 벌리고 그 틈새로 떨어진 흙이 그녀 몸을 덮치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리칼은 잔뿌리처럼 쑥쑥 자라날 것이다.

약에 취한 그녀가 벽에 기대앉는다. 바람벽에 난 창으로 들어온 볕이 그녀 몸에 닿아 있다. 빛의 무게에 시름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빈속에 들어간 가루약 때문인지, 그녀의 몸은 자꾸만 밑으로 처진다. 무릎을 그러안고 앉은 그녀의 모습은 꼭 양수 속에 웅크리고 있는 태아 같다. 그녀는 세월을 거스르고 싶은 것이다. 죽음을 맞으러 강물을 거스르는 연어처럼, 탄생 이전의 따뜻한 양수 속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빈 약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담배를 꺼낸다. 유황냄새가 나고 담배냄새가 이어진다. 늙은 여자가 내뿜는 담배냄새는 내가 뿜어내는 냄새보다 좀더 강하고 어둡다. 방치된 지하창고 같다. 거기서는 생기가 잊혀지고 죽은 쥐가 썩고 노래기가 모이고 먼지가 굳는다. 담배 한개비를 다 피운 그녀의 숨소리는 아까보다 거칠어져 있다. 엄마가 있었더라면 곧바로 담배허리가 부러지고 담배를 둘러싼 승강이가 벌어졌을 것이다. 할머니는 자주 담배를 놓쳤고 방바닥에는 시커먼 담뱃불 자국을 남겼다. 언젠가 부주의하게 버린 꽁초로 화장실 쓰레기통을 홀랑 태운 후로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담배를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나는 이불을 젖히고 일어나 앉는다. 그녀는 약이 든 주머니를 치마춤으로 황급히 집어넣는다.

“가슴이 아퍼 야. 송곳으로 콱콱, 쑤셔대는 것 같어. 아무래도 내가 폐암인갑서.”

그녀는 변명이나 고자질을 하는 아이처럼 서둘러 말한다. 나는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이불을 개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할머니가 의사야? 폐암 걱정되면 담배나 끊어. 가슴 아프다고 약을 달고 살면서. 그 약이 뭐 좋은 줄 알아? 그게 다 몸에 쌓인다구. 나중에 죽은 다음 썩지도 않으면 좋겠어? 죽어서 잘 썩는 것도 복이라며!”

그녀는 입을 다문다. 젖은 눈도 함께 침묵한다. 그녀의 말없는 눈동자에는 죽음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더딘 발걸음이 보인다. 과거의 회한과 곧 닥쳐올 죽음에 대한 공포가 함께 침묵하고 있는 늙은이의 눈동자. 나는 늙은이의 눈을 갖고 싶다. 바라보면서도 어딘가 다른 곳을 향해 있는, 마른 듯하면서도 젖어 있는, 간절하면서도 무심한 늙은이의 눈동자. 무엇에도 잡히지 않는 시선의 자유로움이 노인의 눈동자에는 들어 있다. 어쩌면 나는 늙은 여자가 되고 싶은지도 모른다. 세월의 고난을 거치지 않고서 곧바로 늙은 여자가 되어 세상을 비껴보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말없이 버선발만 바라보고 있다. 약이나 담배를 못하게 하면 그녀는 단번에 입을 다문다. 나는 그녀의 침묵하는 눈동자를 보기 위해 일부러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게 된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버선 위 국화꽃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녀가 조금 안쓰럽게 느껴진다.

“근데 명랑 먹으면 좀 낫긴 해?”

“명랑 먹으니 살 것 같다. 머리가 꼭 깨질 것 같더니.”

“그게 뭐 만병통치약이라도 된대? 아까는 가슴이 아프다며. 또 어디가 아픈데?”

“머리도 아프고, 가슴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그녀는 아픈 곳을 말할 때마다 눈을 찡그리며 그 부위를 손으로 꾹꾹 누른다. 나는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그녀의 발을 움켜쥔다. 버선발이 한손에 안기듯 잡힌다.

그녀의 발은 전족(纏足)을 한 것처럼 작고 위태롭다. 14문 버선을 벗기면 아기처럼 보드랍고 작은 발이 숨겨져 있다. 굳은살 없는 뒤꿈치는 땅 한번 디뎌보지 않은 살처럼 동그랗고 야들야들하다. 흰 버선조차 그녀의 발에 비하면 옥수수 껍질처럼 뻣뻣하고 거칠게 느껴진다. 곧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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