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종광 金鍾光

1971년 충남 보령 출생. 1998년 『문학동네』 문예공모 소설 당선. 2000년 『중앙일보』신춘문예 희곡 당선. 소설집으로 『경찰서여, 안녕』이 있음.

 

 

 

모내기 블루스

 

 

버스는 하루에 세 번 들어왔다. 이내가 깔릴 무렵, 마지막 버스가 안골 동구 팻말만 달랑 삐뚜름한 간이정류장에 사람 두엇을 내려놓고 음현 저수지 쪽으로 내처 달렸다.

순이는 제 눈이 의심스러웠다. 쉰여덟, 돋보기가 없으면 달력의 양력 날짜도 못 읽어낼 만큼 망가진 시력이니, 헛것을 본 것일 수도 있겠다, 하여 바깥마당 둔치 쑥대밭에 까치발을 찍고 깜냥을 다하여 바라보았다.

분명히 맞다. 맞어! 저놈은 서른여섯살 처먹도록 장가도 못 간 불효자 중의 불효자, 이내 몸이 까지른 새끼가 맞다. 못자리 끝내고, “바람 좀 쐬고 오께유” 한 말씀 남겨놓고 휭하니 집 나가더니, 죽었나 살았나, 전화 한통 하는 법 없이 무소식이던 장남이 한달여 만에, 그것도 모내기철에 딱 맞춰 돌아온대서 요란하게 반색하는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어떤 아들인가? 중학교 때 가출 역사의 첫 장을 열더니, 고등학교 졸업장 어거지로 딸 때까지 열 손가락을 다 써 횟수를 가늠하도록 해주었고, 이십대에는, 군대는 그렇다 치고, 감옥생활한 것도 그렇다 치고, 공장이다 목장이다 뭐잡이 어선이다, 영원히 객지인으로 자리잡으리라 싶었다.

그런 위인이 서른에 즈음하여 반 농사꾼 반 노가다로 고향에 붙어 있는 것이 여간 신통방통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논바닥이 영 답답하고 공사판 사정이 여일하지 못해서 그런가, 휙 사라졌다가 짧으면 보름, 길면 한두 달, 낯짝을 보여주지 않다가 불쑥 나타나는 짓거리가 해거리도 계절거리도 없었다.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애간장 타는 내 나도록 그리운 게 자식새끼라고, 무척 오랜만에 먼발치로라도 꼬락서니를 보니 어찌 기쁨이 없겠는가마는, 아들의 그러한 전력을 감안한다면, 귀향 모습에 이다지도 좋아할 판은 아닌 것이다.

순이는 아들을 반기는 것이 아니라, 아들 옆에 붙어 있는 색시에 환심장(換心腸)하고 있는 것이었다.

양규도 난데없이 저녁상 한 귀퉁이에 끼여 있는 서해가 며느릿감이 아니라는 점이 몹시 섭섭했다. 숟갈도 들기 전에 밥맛이 달아나버리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아줌마, 맛있게 먹겠습니다.”

“처자, 누구는 아줌마고 누구는 할아버지랴? 사람 차별하나?”

“예? ……아, 할아버지도 삐쳤구나. 할아버지는 진짜 할아버지 같은데요. 머리도 완전 할아버지 색깔이잖아요?”

“머리 색깔로는 그렇겠지만도 손주도 못 안아본 주제에 할아버지 소리 들으면 기분이 좋겄어?”

“할아버지는 외손주도 없어요?”

“외손주야 있지만은 외손주하고 친손주하고 같가니.”

“그런 게 어딨어요? 남녀가 평등한데.”

“그건 처자 생각이고 내 생각은 틀려. 나는 맛 간 세대거들랑.”

“에이, 할아버지도 참 억지다. 좋아요, 뭐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아저씨라고 불러줄께요.”

서해는 낯가림도 없이, 밥을 꿀떡꿀떡 잘도 먹었다. 총천연색으로 차려진 반찬을 해결하는 젓가락질 솜씨가 가히 손오공 여의봉 수준이었다. 순이로서는 육십여 평생 먹고 또 먹은 푸성귀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충 무치고 데치고 지져서 올린 찬이었으나, 도시 인스턴트 식품에 쩔 대로 쩐 서해 입장에서는 산해진미로 여겨지는가 보았다.

양규는 숟갈질이 한없이 굼떠지며 처자를 짯짯이 탐색하였다. 밑져야 본전, 며느릿감이라 생각하고 요모조모 뜯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뜯어보고 자시고 무조건 합격점을 때릴 수밖에 없는 게 양규의 입장이었다.

아들이 서른 초입 때만 해도 며느리 될 처자가 갖춰야 할 조건을 여러 가지로 짚었다. 아들이 고졸이니까 며느리도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장은 있어야겠고, 자신의 집안이 밥 굶고 살지는 않으니까 며느리네 가세도 어지간은 해야 할 것이고, 아들이 그럭저럭 생긴 얼굴이니 며느리도 박색은 아니어야겠고, 아들이 갑갑증을 못 이겨 발병을 잘해서 그렇지 본래 심덕이 무던하니 며느리도 동네 입방아에 오를 만큼 시부모 봉양에 엉터리일 골치 아픈 심성은 아니어야겠고, 짚어가자면 한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숱한 맞선에 미역국을 먹고, 타지를 뻔질나게 돌아다니면서도 연애질도 못하고, 이러구러 나이는 낙엽 쌓이듯 하고, 며느리가 구비해야 할 조건은 평가절하를 거듭해온 끝에 아들이 서른여섯에 닿은 작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조건 없음’이 되어버렸다. 아들놈하고 살아만 준다면, 그래서 고희가 되기 전에 손주 잠지 만져보게만 해준다면 그 누가 되었든 간에 들쳐업고 천리 만리를 달릴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여튼 속사정이야 짐작하기도 겁나 모른 체하고, 바깥 모양만은 마음에 쏙 들었다. 톡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허리에 얼굴까지 받쳐주는, 영락없이 텔레비전에 나와 방정 떨어대는 것들하고 한 과로 생겼다. 비리비리한 몸뚱이만 놓고 쳐서 애를 잘 날까 그것이 조금 염려가 된다만, 그래도 이런 출중한 미모의 며느리하고 날마다 한상에서 밥 먹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랴. 그런데 며느릿감이 아니고 아르바이트라고?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니 일찌감치 절망할 것까지는 없겠다. 요새 것들 말이 말 같던가. 말이야 늙은 머릿속 어지럽게 해쌓는다만, 보아 하니 맞출 것 맞춰도 한두 번 맞춰본 사이가 아닌 듯하며, 이렇게 다정히 한 묶음으로 밥상머리까지 기어들어왔으니,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농후한 사이렷다. 하루 이틀 열흘 달포 한달 두달 반년 하다 보면, 그게 부부인 거지 뭐. 어쩌면 아들놈도 그런 꿍꿍이인지 모른다.

정녕 아들이, 농촌이 얼마나 지독스러운 구석인지 생판 모르는 처자를, 텔레비전에서 왜자기듯 맑은 공기니, 아름다운 산과 들이니, 붕어새끼 폴짝폴짝 뛰어대는 시냇물이니, 어쩌고저쩌고 사기를 쳐가지고서는, 이 집구석까지 꾀여온 것이라면 낳고서 처음으로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저 일 잘해요. 돈값은 할 거예요. 걱정 놓으세요.”

“시방 밥값이 아니라 돈값이라고 혔어?”

“그럼요. 대춘 오빠가 일당 삼만원씩 쳐준다고 했어요.”

부부는 아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색시가 호미라도 들 근력이 있겠느냐고,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힐난을 하는 것이었다.

“맞잖아유? 요새 여자 일당 삼만원?……이만원인가?”

“내일 아침 먹고 댓골논부터 쳐야 뎌.”

“왜유? 누가 논 떼메고 간대유?”

“지랄, 비는 하늘이 무너져도 안 내릴 것 같고, 수리조합서 쪼까 있는 물 배급주고 있는디, 어제 물 들어온 댓골논 내일 안 치면 금방 말라버릴 테니께 하는 소리지.”

겨울에 참으로 눈이 내리지 않더니, 봄에는 비다운 비 한번 내리지 않았다. 물 없어 허덕이긴 마찬가지인 저수지에 매달리고, 저수지에 딸리지 않은 논들은 관정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수리조합은 들판을 몇 구획으로 나누어놓고 오늘 내일은 동쪽 답, 모레 글피는 서쪽 답 하는 식으로 저수지 물과 관정수를 공급해주고 있었다.

“더이상 말씀 마슈. 아버지 잔소리는 한번 시작하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니께유. 지가 나름대로 요량을 했으니께, 딱 맞춰 나타난 거 아니겄슈?”

순이는 두 딸이 쓰던 건넌방을 쓸고 닦았다. 며느릿감이 아니라니 각방 치레를 해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색시는 건넌방에 옷가방을 툭 들이밀었을 뿐 엉덩이를 붙여보지도 않고 아들방으로 뛰어갔다. 순이가 바라면 바랐지 말릴 리가 없었다.

양규는 아홉시 뉴스 전부터 드렁드렁 코를 골아대었고, 순이는 국민 열 중에 여섯은 본다는 「허준」 시작하고 십여분 되었을까 슬며시 잠이 들었는데 웬 잡소리에 번뜩 깨었다. 그때까지 혼자 이것저것 떠들고 있던 텔레비전을 재우고 나니, 그 잡소리는 텔레비전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삼경, 하늘에 별은 총총하고, 불꺼진 바깥채 아들방에서 색시가 죽겠다고 질러대는 소리가 참으로 장대하며, 아들 질퍽대는 소리 또한 사람 잡겠다 싶었다. 그러니 열 걸음은 족히 떨어진 안방 이내 몸의 잠까지 깨웠지.

순이는 은근한 미소를 지었다. 이녁하고 저 짓거리를 마지막으로 해본 것이 언제적이던가? 저 달처럼 잔물잔물하니 기억이 뿌옇다.

동이 트고, 스스로 그렇게 있는 것들이 미명을 걷어버리며 제 빛깔을 드러냈다. 대춘은 목구멍에 아침 들이밀기 무섭게 경운기에 달라붙었다. 짐칸을 떼어내고 로터리를 부착해야 하는 것이다. 아버지 양규는 어떻게 도와볼까 얼씬거리다

“걸리적거리니께 그냥 좀 계슈. 다쳐유, 다쳐.”

하는 핀잔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