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인석 崔仁碩

1953년 전북 남원 출생. 1980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희곡 당선. 1986년 『소설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구경꾼』 당선. 소설집으로 『혼돈을 향하여 한걸음』 『나를 사랑한 폐인』 『아름다운 나의 귀신』 등이 있음.

 

 

 

모든 나무는 얘기를 한다

 

 

1

 

내가 처음 만났을 때 장수호는 유능한 카피라이터였다. 내가 회사에 입사하여 인사를 하러 가서 만난 그의 몰골은 참으로 기괴했다. 머리를 감은 지 얼마나 된 것인지 기름때가 낀 산발에, 기르는 것은 분명 아닌데 면도를 몇주일이나 하지 않은 건지 코밑이고 턱이고 비죽비죽 함부로 비어져나온 수염에다가, 눈에는 눈곱이 끼고 길게 자라난 손톱 밑에는 때가 끼여 있었다. 더러운 운동화를 한쪽은 신고 한쪽은 벗은 채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원고를 읽던 그는 내가 들어서자 말했다. 김중호씨 자신을 소개해봐요. 내가 무슨 학교를 다녔고, 전공이 뭐고, 취미가 뭐고…… 하고 늘어놓자 그는 구경하는 것 같은 시선으로 멀거니 나를 쳐다보고 앉아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말고. 광고회사에 들어왔으면 광고처럼 소개를 해야지. 20초 안에. 얼마짜리 시간인지 알아? 삼천만원짜리야.”

내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그는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쟀고, 20초가 지나자 회전의자를 빙글 돌려 나를 외면하고 책상을 향해 돌아앉았다.

“됐어. 잘 들었어.”

장수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 하여 그가 건방진 사람이라거나 남을 쉽게 무시해버리는 사람이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카피팀의 장(長)이었던 그는 오히려 나를 포함한 신입사원들에게 가장 친절한 고참이었다. 아니, 어쩌면 무심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가 나에게 세심하게 일을 가르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쩌면 팀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였을 뿐일 수도 있다. 업무 외의 일에 대해, 특히 사적인 일에 대해 그와 깊은 얘기를 나눠본 기억은 별로 없다.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그에게서 돈을 빌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언제나 텁수룩한 머리칼에 들쭉날쭉한 수염에다가 별로 깨끗해 보이지 않는 청바지에 낡은 코르덴양복 윗도리를 아무렇게나 걸치고 다니는 그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자, 자신감에 찬 자유주의자로 보였다. 그래서 그가 대학 다니던 시절 학생운동 과격파였으며, 그로 인해 감옥살이까지 한 적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위장취업을 했던 공장에서 만난 여공과 결혼하여 아직까지도 금실좋게 같이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그에게 은근히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한때 맑스주의자였다면서요?”

그는 간단히 대답했다.

“지금도 그래.”

광고회사에서 카피팀을 이끄는 연봉 일억의 맑스주의자라, 하고 내가 혼자 그의 대답을 음미하고 있을 때 그가 덧붙였다.

“타락한.”

나는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음을 터뜨렸으나, 그는 웃지 않았다. 술잔을 비워내고 내게 내밀며 말했다. 내 카피를 잘 들여다봐. 선전선동이라구. 빨리 소비하고 많이 소비하고, 빨리 망해버리고 많이 망해버리자, 그런 내용의. 그러나 그것은 일억원의 사적 이익이 생기는 선전선동이었다. 나는 그가 농담을 하는 건지 진담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멍한 얼굴의 나에게 그는 말했다. 웃어. 그러면 돼. 비로소 그의 입술에 미소가 언뜻 떠올랐고, 나는 다시 웃었다. 그는 웃는 나에게 역시 웃는 얼굴로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냉정한 어조로 말했다. 맑스가 살아 있을 때 자신은 이미 맑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봤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난 맑스주의자 아닌 맑스주의자야. 타락한 맑스주의자. 맑스주의자들은 날 맑스주의자로 쳐주지 않을 거야, 아마. 그러니까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맑스의 마자도 모르는 놈이라고 망신이나 당할 거야.

그는 야근을 하거나 밤을 새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고, 집들이나 엠티를 갔을 때는 직원들과 술이나 도박으로 밤을 새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브레인스토밍을 위하여 엠티를 갔을 때는 탁자에 마주앉아 30분간의 명상, 또는 잡념, 또는 침묵으로 회의를 시작하여, 한 시간 회의에 20분 휴식이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아무리 바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가끔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는데도, 회사에서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으레 오후 늦게 그가 전화를 했다.

“여기 홍콩이다. 골머리 아파 놀러 왔다. 그렇게 알고 있어.”

홍콩일 때도 있고 홋까이도오일 때도 있었다. 월출산이기도 했고 울릉도이기도 했다. 가끔 그런 곳에서 팩스로 카피가 날아들어온 적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그의 일에 별로 간섭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간섭하지 않는 것이 그를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길임을 알기 때문인 것 같았다.

 

 

2

 

엠티를 나선 길이었다. 회의를 겸한 엠티가 아니라 날밤을 새우고 일에 매달려 좋은 성과를 얻어낸 카피팀 전원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겸한 사실상의 단체 휴가여행이었다. 장수호의 말대로 많이 소비하고 많이 망해버리자는 짓인 듯, 속초에서 배터지게 회를 먹고 술을 마시고, 설악산에는 삭도(索道)를 타고 권금성까지만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전원이 벌거숭이로 온천에 들어가 땀을 빼며 고스톱을 치며 간밤의 취기와 피로를 풀고 나와서, 다시 회와 술을 배터지게 먹고 마시고, 그 다음날은 차를 몰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풍광 좋은 도로 가운데 하나라는 7번 국도를 타고 한쪽으로는 바다를, 반대쪽으로는 산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치달려 강릉까지 내려간 다음 경포대 바닷가에서 다시 회와 술을 배터지게 먹고 마시고, 그 다음날 온종일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이 울진의 불영사 앞이었다. 술과 포식의 강행군에 지친 일행은 민박집에 숙소를 정하자마자 절에 올라가는 것도 다음날로 미루고 저녁도 뜨는 둥 마는 둥 여기저기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튿날 새벽에 나는 잠에서 깨어나 뒤척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다가 절에나 올라가보자, 하는 생각으로 숙소를 나섰다. 길고 긴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나는 장수호를 발견했다. 그는 도로 한쪽에 콘크리트로 만들어놓은 벤치에 앉아 고개를 꺾어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인사를 하자 그는 반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응, 하고 대답할 뿐, 여전히 허공에 던진 시선을 옮기지 않았다. 그렇다 하여 넋을 놓고 앉아 있거나 생각에 잠겨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눈은 허공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무슨 충격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올라가는 길이세요, 내려가는 길이세요? 내가 묻자 그는 여전히 허공에 던진 시선을 옮기지 않은 채 반문했다. 응, 왜? 내가 대답했다. 올라가는 길이면 같이 가자구요. 그는 내려가는 길이라고 말했고, 나는 다시 혼자서 절을 향해 발을 옮겼다.

새벽의 절간은 엷은 안개와 정적에 잠겨 신비스러웠다. 호수에 비치는 불상의 영상이 아니라 해도, 절 자체가 오래되어 잊혀진 꿈의 자취 같았다. 희미하게 기억은 나지만 그 실감은 온전히 포착되지 않는,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조차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그런 꿈, 또는 기억. 절 안을 혼자 느린 걸음으로 한바퀴 돌아보는 동안 나는 시원한 물 속을 벌거벗은 몸으로 힘들이지 않고 헤어다니는 기분이었다. 물, 물 속처럼 절은 고요했고, 가끔 풍경이 울리면 그 소리의 물결이 정말 보이는 듯했다.

절에서 내려오다가 나는 다시 장수호와 마주쳤다. 그는 아까 내가 본 바로 그 자리, 그 벤치에 앉아 있었고, 그의 시선은 여전히 맞은편 허공에 던져져 있었다. 아직 안 내려가셨어요? 뭐 하세요? 그의 얼굴이 공포에라도 질린 사람처럼 먹먹했다. 그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려갈 수가 없어.”

그의 음성이 떨렸으므로, 나는 놀라 한걸음 그를 향해 다가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나는 왜냐고 물었다. 그는 대답할 듯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것이 몇차례나 반복되었다. 마치 갑자기 말을 잃은 사람 같은 꼴이었다. 입을 벌려 허공을 한입 베어물었다가 다물고, 다시 벌려 또 한입 허공을 베어물고. 내가 대답을 듣기를 포기할 즈음에야 그의 목구멍에서 겨우 말소리가 새어나왔다.

“저놈이 나한테 말을 한다.”

그는 여전히 시선을 허공에 던져놓은 채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가요?”

“저놈이, 저 나무가.”

나무가? 말을? 나는 다시 한번 놀라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가 보고 있는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키가 높다란, 소나무들 너머 서너 자 더 높은 키로 하늘을 향해 머리를 높이 세운 자작나무였다. 엷은 안개 너머에서 자작나무의 나뭇잎들이, 모든 나뭇잎들이 손짓하듯 흔들리며 희미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아침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과연 말을 한다는 느낌이 들 법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무슨 말인지.”

그의 어조는 너무나 침통했다. 정말 그는 그 나무가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할말을 잃고 그의 얼굴과 나무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말인데 못 알아듣다니. 내가 어떻게 된 것일까? 저놈은 지금 인간의 언어와 너무나 가까운 언어로 말하고 있는데.”

그의 자책 또는 낙심은 옆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그는 술이 덜 깬 것일까. 아니면…… 미쳐가는 것일까. 잠깐 내 뇌리에 스쳐간 생각이었다. 나는 얼른 그 불길한 생각을 뿌리쳤다. 그는 말하고 있었다. 저놈을 봐. 다른 놈들은 전혀 나뭇잎을 흔들어대지 않고 있어. 바람이 부는 건 아니라는 뜻이야. 저놈만이 나뭇잎을 흔들어대고 있어. 손짓하는 것처럼.

“그걸 어떻게 아세요?”

“뭘?”

“저 나무가 인간의 언어와 가까운 언어로 말한다는 걸요.”

“그렇지 않다면 내가 저놈이 말을 하는 걸 어떻게 들었겠냐? 저놈이 말을 하는 걸 어떻게 알았겠어?”

어떻게 보면 논리적인 대답이었다. 그러나 나무가 말을, 인간의 언어와 가까운 언어를 구사하다니? 결코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판을 깨뜨리기로 마음먹었다. 장난 그만 하고 어서 내려가요. 내려가서 해장술이나 하시든지, 식사를 하시든지…… 술을 덜 먹어서 그런 게 들리는 모양이네요. 그는 실망한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안 들리냐, 너한테는? 나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들리긴 뭐가 들린다고 그래요? 참 형님도.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렇지 않아……

장수호는 새벽에 누군가 부르는 것 같은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를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소리는 아마도 꿈에서 들은 것이었을까. 아직 하늘에는 어둠이 가시지 않아 반투명의 검푸른 허공에서 어둠과 빛이 교차하고 있었고, 새벽별이 하나둘 하품을 하며 빛의 장막 너머로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그는 숙소에서 나와 천천히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안개가 차츰 엷어지면서 나무들이, 길과 하늘과 산과 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절에 올라갈 생각은 아니었으나, 길을 나선 김에 절까지 올라가보기로 했다.

쉬다 갈 생각으로 콘크리트로 만든 벤치에 엉덩이를 붙였다. 담배를 피워 물고 고개를 든 순간, 그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엷은 안개 속에, 키가 큰 선비처럼 그 나무는 단아하고 의젓했다. 그 나무가 그에게 나뭇잎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바람은 없었다. 다른 나무는, 나뭇잎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직 그 나무가 말을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 나무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며 쉬다가 계속해서 산길을 올라가 절로 들어섰다.

안개는 연못에서, 대웅전의 지붕에서, 대웅전 문에서도 피어나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자신의 몸에서도 피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엷은 안개 속을 휘적휘적 걸어다니는 맛은 각별했다. 부처의 미소는 아무 걱정할 것 없다, 걱정하는 너도 없고, 니가 걱정하는 걱정도 없다, 하고 말하는 듯했고, 그래서 그는 나는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었으며, 그 다음 순간에야 정말 자신에게 아무 걱정도 없는지를 돌이켜보았고, 걱정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생각이 없는 것과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자칫 그런 생각 때문에 머리가 아파올 것 같았으므로 그는 부처를 흉내내어 생각도 없고 통하는 것도 없고, 없다는 것도 없다, 하고 중얼거렸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그는 무심코 한 나무의 둥치를 짚었고, 그 순간 그 나무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가 그 나무, 절로 올라갈 때 본 바로 그 나무가 그를 굽어보며, 나뭇잎을 흔들며 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보고는 소스라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말, 말이었다. 그 나무는 말을 하고 있었고, 그는 분명히 그 말을, 적어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 다만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뿐이었다.

“내가 미련해져서 말이야.”

그는 벤치에서 일어나 그 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꺾어 나무를 올려다보던 그는 손을 들어 나무둥치를 쓰다듬으며 사람에게 하듯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못 알아듣겠어. 나중에 다시 올게.”

그날 우리 일행은 근처의 성류굴과 원자력발전소를 둘러보고 무영계곡에 들어가 또다시 술로 회로 배를 채웠다. 그러나 장수호는 숙소를 떠나지 않았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다음에야 나는 그가 말하는 나무 앞에 가서 깔개까지 하나 깔아놓고 거기 앉았다 누웠다 하며 술을 마시다 책을 읽다 낮잠을 자다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하루종일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물었다. 그래서, 그놈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어요? 뜻밖에도 그는 빙그레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3

 

어머니가 암으로 쓰러지자 수술비와 입원비 등 치료비를 마련할 길이 없었다. 백방으로 알아보았으나 돈을 구할 수가 없었다. 사람이란 묘한 존재다. 돈을 빌리자고 한다면 장수호에게 상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것을 나는 짐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난한 자의 직감이었다. 그런 생활을 오래 해본 사람은 안다. 누구에게 돈을 쉽게 빌릴 수 있는지, 누구에게선 결코 돈을 빌릴 수 없는지를. 겉으로, 평상시에는 돈에 대해 지극히 초연한 듯 대범한 듯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막상 곤란한 형편이 되어 그런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들에게는 언제나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준비되어 있고, 그 이유를 너무나 초연하게, 너무나 대범하게 늘어놓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인색해 보이거나 앞뒤 꽉 막힌 듯 보이는 사람들, 남의 일에 무심한 듯 보이는 사람들이 뜻밖에도 까다롭지 않게 도움을 베푸는 경우가 많다. 가난한 자들은 본능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이 그런 감각을 훈련시킨다고 해야 할까.

또한 묘한 것은 가난한 자의 심리다. 나는 어째선지 장수호에게는 돈 빌리자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나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곳에서 생활해온 사람이라는 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그에게는 나의 구차스러운 꼴을 결코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정이 다급해지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말을 꺼냈다.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나가자, 하고 일어섰고, 그 길로 나를 데리고 은행에 가서 천만원을 인출하여 내 손에 건네주었다. 어디에 쓸 거냐거나 언제 갚을 수 있느냐거나 따위의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으레 하게 마련인 질문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섭섭할 지경이었고, 그 때문에 반감이 생길 정도였다. 회사에 다시 들어서면서 그가 한 말은 이자 줄 생각 말라는 것이 다였다.

그 빚을 갚는 데는 2년이 걸렸다. 그동안 그는 그 돈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한번 눈치 준 적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미리 은행에 들러 그의 통장에 돈을 입금시킨 후, 그에게 형수님까지 같이 모시고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으니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퇴근 뒤에 나는 장수호 부부와 함께 아내가 미리 예약을 해둔 음식점으로 갔다. 은행에서 받은 무통장입금증을 내밀자 그는 고맙다, 하고 말했다. 그뿐이었다.

식사를 마치기까지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나와 아내는 몇번 거듭하여 고맙다는 말을, 돈을 빌려준 것도 고맙고, 말 한마디 없이 2년 동안이나 기다려준 것도 고맙다는 말을 했으나, 그는 그때마다 괜찮아, 괜찮아, 했다. 그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나는 높은 이율이 아니라 은행이율을 적용해 계산한 이자를 봉투에 넣어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 이러지 않기로 했지, 하고는 나에게 돌려주었다. 나는 다시 그에게 봉투를 내밀었고, 그는 다시 뿌리쳤다. 이번에는 아내가 말했다. 그러시면 저희가 너무 죄송해져요. 마침내 그가 나를 쳐다보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맛있는 저녁 얻어먹는 것으로 됐어. 밥맛 술맛 다 떨어지니까 그거 어서 주머니에 넣어둬.”

나는 그것이 그의 본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더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돈을 빌리는 원인이 되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그도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그 역시 문상을 왔었으니까.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쎅시하고 조용했다. 공장 노동자 출신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작고 가는 몸집에 둥근 어깨, 허리는 수호의 팔뚝 굵기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손가락에 보석 하나 박히지 않은 소박한 실반지 하나가 이채로웠으며…… 얼굴과 몸 전체에서 어딘지 노곤한 피로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식사가 끝나기까지 그들 부부와 우리 부부 사이에는 영화 얘기가 띄엄띄엄 오갔고, 회사 돌아가는 형편 얘기도 드문드문 오갔으며, 정치 얘기도 한두 마디 오갔던 것 같다. 그의 아내와 내 아내는 고들빼기 김치 담그는 법에 대해서도 얘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직장 선후배 부부가 만나 저녁을 같이 먹는 자리에서 오갈 법한 대화의 선을 넘지 않는 평범한 얘기들이었다.

그래서 밥과 함께 몇잔 술을 마시고 식당에서 나와 헤어지려는데 그가 문득 내 어깨를 잡으며

“씨이발, 세상 좆같아. 그렇지?”

하고 말했을 때는 나도 내 아내도 깜짝 놀랐다. 그가 돌연 어떤 선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나는 짐작했다. 언뜻 눈물이 솟았으나 나는 애써 참았다. 그는 담배꽁초를 길바닥에 내던지며 투덜거렸다. 좆도 아닌 돈 몇푼이 사람을 왜 이다지 주눅들게 만드는지. 그것은 꼭 내가 해야 할 말 같았다. 이리 와, 임마. 여자들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우리끼리 술이나 더 퍼먹자. 아내가 얼른 말했다. 그러세요. 그럼 저희 먼저 갈게요. 그의 아내도 까딱 고개를 숙였다. 그들 두 여자가 멀어져가는 것도 돌아보지 않고 그는 내 어깨를 잡아끌었다. 씨발놈, 눈물은. 2년 동안 니가 그 꼴이 뭐냐, 임마. 이게 뭔데 이런 거 때문에 그동안 내내 내 눈도 똑바로 못 봐? 이리 와, 씨발놈아. 그는 허름한 소주집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그날 밤 그와 나는 술에 만취하여 여관방에 들어가 잤다. 아마 나는 우리 집 사는 꼴을, 너무나 가난하여 방 한칸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전국의 친척집에 뿔뿔이 흩어져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우리 집 형제자매들 얘기를 포함하여 내가 그때까지 살아온 꼴을, 어머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눈물콧물을 섞어가며 늘어놓았던 것 같다.

그때 그는 뜬금없이 이런 얘기를 했다. 얼마 전에 돌연 안기부 수사관들이 그의 집에 들이닥쳐 온 집안을 발칵 뒤집어놓았다고 했다. 오래지 않아 그의 집만이 아니라 아내 쪽의 친가와 외가 양쪽 집안 모두, 그리고 그 방계 집안 모두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같은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사관들이 그들에게 한 질문도 똑같았다. 그의 아내 유영선의 막내숙부가 근래에 찾아온 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막내 숙부라니? 장수호는 그제서야 유영선의 집안 어른을 통하여 영선의 아비의 동생 가운데 6·25동란중에 월북한 사람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선에게는 막내숙부가 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안기부 수사관들 말에 의하면, 그 막내숙부가 북한당국으로부터 모종의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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