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숨
1974년 울산 출생.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으로 『투견』 『침대』, 장편소설로 『백치들』이 있음. maricella@hanmail.net
모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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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월 모일, 신탄진 집에서 하루저녁을 보내게 되었다. 부모님은 삼십여년째 신탄진에서 살고 있었다. 틀니와도 같은 창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빌라가 부모님 집이었다. 어머니는 간혹 틀니 밖으로 두터운 솜이불이나 무청 따위를 널어놓았다. 아버지는 틈틈이 틀니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담배를 피웠다. 아버지가 피우는 담배는 한라산이었다. 딱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한라산밖에 피우지 않았다.
십팔년 전, 막 지어진 그 빌라를 사기 위해 아버지는 은행에 이천만원이나 되는 빚을 져야 했다. 아버지가 당신 명의로 집을 가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빚과 그 빚으로 인한 이자를 다 갚은 게 불과 팔년 전이었다. 빚을 다 갚고 나자 어머니의 무릎 관절염이 도졌다. 대학병원에서 양쪽 무릎을 수술하느라 은행에 또 얼마의 빚을 져야 했다. 그 빚을 다 갚고 나자 남동생이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다니던 대학교에 복학을 했다. 남동생의 대학등록금을 대느라 은행에 또 얼마의 빚을 져야 했다. 은행 빚을 다 갚던 날,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왔다. 어머니는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 끝에 빚이라면 넌덜머리가 난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은행에 한푼의 빚도 남아 있지 않아서인지 부모님은 신탄진에서 그럭저럭 소리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부모님은 재개발이 될 때까지 빌라를 떠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빌라를 떠난다고 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재개발이 곧 되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당장 재개발이 된다고 해도 실평수가 기껏해야 열일곱평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은행에 또 빚을 져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부모님은 죽을 때까지 은행에 진 빚을 갚으며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빌라 앞 태극제과에서 롤케이크를 한덩이 샀다. 롤케이크는 아버지가 곰보빵 다음으로 좋아하는 빵이었다. 아버지는 딸기잼을 듬뿍 바른 곰보빵을 세상의 모든 빵들 중에 가장 맛있어했다. 그렇다고 오랜만에 다니러 가며 이천원밖에 하지 않는 곰보빵을 사들고 갈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 집을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육개월도 더 전이었다. 나는 천밀리리터 우유도 한개 샀다.
부모님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상우삼촌이 살고 있었다. 나와 두살 터울인 남동생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일년 전부터 전주에 내려가 살고 있었다.
내가 갔을 때 아버지는 베란다에서 연탄불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연탄에 불을 붙이느라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가지를 썰고 있었다. 어머니 또한 나를 흘끔 바라보기만 할 뿐 가지만 열심히 썰었다. 식탁 위에는 두부, 양파, 대파, 오이, 밀가루 봉지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나는 제과점에서 사온 롤케이크와 우유를 식탁 한쪽에 조용히 놓아두었다.
“전어를 구우려고 한다.”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버지는 전어가 다섯 마리나 된다고 했다. 연탄에 불이 잘 붙지 않는지 매캐한 연기가 났다. 아버지는 기침을 하면서도 연탄에 불을 붙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네가 먹을 복이 있는가 보다.”
“네 아버지는 그깟 전어 가지고 먹을 복은 찾고 그런다니……”
어머니가 가지를 썰며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 베란다는 석양빛으로 충만했다. 베란다가 서쪽으로 앉아 있어서 늦은 오후가 되면 베란다뿐만 아니라 거실과 부엌에까지 석양빛이 비쳐들었다.
“얼마나 맛있게 굽겠다고 저 난리법석인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하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도 안했다.
베란다는 겨우 일인용 침대 넓이였지만 아버지는 그곳에서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베란다에서 아버지는 흑염소를 키운 적도 있었다. 닭을 두마리나 키운 적도 있었다. 연탄불을 피워 전어를 굽는 것은, 흑염소나 닭들을 키우는 것보다는 훨씬 조용하고 수월한 일일 것이다.
연탄에 불이 붙으며 연기가 거실로 들이쳤다. 아버지가 거실 쪽으로 등을 돌리고는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어서 나는 연탄에 불이 붙는 걸 보지 못했다. 현관문은 내가 집에 오기 전부터 활짝 열려 있었다. 전어가 구워지면 그 냄새가 부모님 집뿐만 아니라 빌라 전체에 진동할 것이었다. 어머니는 가지를 다 썰고, 미리 까놓은 양파를 듬성듬성 썰었다. 세숫대야만큼 크고 검은 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식용유를 둘렀다. 썬 양파를 프라이팬에 넣고 볶았다.
베란다 빨래건조대에는 수건들이 널려 있었다. 전어가 구워지기 시작하면 그 냄새와 연기가 수건들에 고스란히 밸 텐데도 어머니는 걷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수건들을 걷으려다가 관두었다. 아버지가 아예 거실 쪽으로 등을 돌리고는 베란다를 떡하니 가로막고 앉아 있던 것이다.
“소주가 있나?”
연탄에 만족스럽게 불이 붙었는지 아버지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버지는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습관을 여태도 버리지 못한 모양이었다. 식용유에 양파가 볶이는 냄새와 뒤섞여 전어 굽는 냄새가 희미하게나마 풍겼다. 아버지가 전어를 굽기는 굽는 모양이었다.
“소주가 있냐고 묻잖아!”
“없을까 봐요. 있겠지요.”
어머니가 건성으로 대꾸했다.
“소주가 얼마나 있나……?”
“반병 남은 게 있을 거예요.”
“있어?”
“반병 남은 게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전어까지 굽는데 그걸로 될까?”
“코가 비뚤어지게 마시기라도 하려고요?”
“소주라도 마셔야 뱀장어를 잡지.”
“오늘 저녁에도 일을 가시게요?”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어디 오늘 저녁뿐이냐. 요즘은 노는 날도 없이 뱀장어를 잡으러 다닌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말했다. 아버지는 뱀장어 잡는 일을 했다. 뱀장어를 잡으러 다니는 일이 아니라, 뱀장어 구이를 파는 식당에서 뱀장어를 잡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꿈틀꿈틀 살아 있는 뱀장어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뿐만 아니라, 대가리를 쳐내고 굽기 좋도록 두 쪽으로 배를 가르는 일까지 한다고 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검은 고무장화를 신고, 파란 방수천으로 만든 앞치마를 두르고, 뱀장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흰 면장갑을 낀 손으로. 뱀장어를 잡다 보면 앞치마와 면장갑이 피로 범벅이 된다고 했다. 처음 뱀장어 잡는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삼일밖에는 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니 매일같이 뱀장어를 잡으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뱀장어 잡는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건 넉달 전이었다. 어머니에게서 전화로 그 소식을 전해듣던 날 밤, 나는 아버지가 뱀장어들로 득실거리는 수족관 속에 들어가 허전하게 웃고 있는 꿈을 꾸었다. 뱀장어들이 아버지의 사지를 친친 감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뱀장어 잡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했으면 했지만, 아버지가 할 만한 딱히 다른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올해로 예순세살이었다.
“저녁 여덟시부터 새벽 두시까지는 꼬박 뱀장어를 잡는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저녁과 밤 시간들을 뱀장어를 잡으며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뱀장어를 잡으러 다니는 식당은 대청댐 근처에 있었다. 뱀장어 구이를 전문으로 파는 식당이었는데, 식당에서 운행하는 승합차가 빌라 앞까지 아버지를 태우러 오고 태워다 준다고 했다.
“하룻밤에 몇마리나 잡으세요?”
“백마리 조금 못되게 잡을 때도 있지만 열심히 잡으면 백마리까지는 잡는다.”
아버지는 여전히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말했다.
“백마리나요?”
아버지가 하룻밤에 뱀장어를 백마리나 잡는다는 사실이 나는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백마리가 아니라 열마리라고 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백마리는 잡아야 일당이 떨어진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아버지가 뱀장어를 백마리까지 잡기는 잡는 모양이었다.
“한마리라도 더 잡으면 좋겠다만……”
“일당이 얼마나 하는데요?”
“한마리 잡으면 사백원이 떨어진다.”
나는 사백원이 뱀장어 한마리를 잡는 데 대한 적당한 댓가인지 아닌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뱀장어 잡는 일은 곰인형의 눈알을 붙이는 일과도, 호떡이나 붕어빵을 굽는 일과도 다를 것이었다. 아버지가 뱀장어 잡는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찌 됐든 하룻밤에 못해도 백마리는 잡는다고 했으니 일당으로 사만원은 떨어지는 셈이었다.
“라면 한봉지 값도 안되는 사백원하고 뱀장어 목숨하고 맞바꾸는 꼴이지 뭐냐.”
어머니는 양파를 볶던 프라이팬에 썰어놓은 가지를 섞어 넣고 숟가락으로 뒤적거리며 볶았다. 미리 만들어놓은 양념장을 붓고 들들 볶아주다가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내가 신탄진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어머니는 가지나 시래기를 볶았다. 저녁 밥상에는 연탄불에 구운 전어뿐만 아니라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