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편혜영 片惠英

1972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 『밤이 지나간다』 『소년이로』 『어쩌면 스무 번』, 장편 『재와 빨강』 『서쪽 숲에 갔다』 『선의 법칙』 『홀』 『죽은 자로 하여금』 등이 있음.

 

 

 

목욕

 

 

그 일을 결정한 건 아버지였다.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에 따르면 아버지는 직접 병원으로 가서 서약서를 작성했다. 목사는 김한수가 처음 듣는 얘기임을 아는지 그 일의 의미를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런 다음 순전히 아버지의 결정임을 강조하려는 듯 ‘자발적으로’라는 말을 연거푸 사용했다. 김한수는 목사의 말을 들으며 어쩐지 아버지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족 모르게 일을 벌인다는 뜻에서였다. 가족이라고는 김한수뿐이었지만.

아버지 칭찬을 늘어놓는 목사를 피해 시선을 돌리다 상조회사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김한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의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딱히 할 일이 없어서인 듯했다. 감염병 상황에서도 상조회사는 직원을 여섯명이나 파견했다. 그들은 드문드문 앉아 있는 조문객에게 번갈아 시선을 두며 시간을 보내다가 누군가 오면 반듯하게 서서 예를 갖췄다. 상조는 아버지가 가입해둔 것이었다. 아버지는 보험과 다른 저축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와중에도 매월 노령연금 일부를 헐어 상조에 가입했다. 의사에게 의지한 적은 없지만 장의사만큼은 있어야 했던 것이다.

목사가 상가를 떠난 후 그와 일행이던 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자신을 장기기증 유족 모임의 총무라고 소개했는데 직함이 박힌 명함을 건네주거나 하지는 않았다. 남자는 목사님의 설명이 상세하지 않은 듯하여 조금 보충하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김한수는 거절하려 했다. 조문객이 거의 없고 전날 잠도 잘 잤지만 누군가와 아버지를 화제로 얘기를 나누는 일이 어색했다. 게다가 모임에 대해 굳이 설명하려는 걸 보니 그 모임도 다른 모임과 마찬가지로 회원 간의 친목과 호의로 겨우 운영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김한수의 짧은 침묵을 그러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총무가 목사의 설명 중 누락된 부분이 있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고인이 자의로 서약서를 작성했더라도 가족이 반대하면 기증 자체가 무효가 된다는 사실을 먼저 일러주었다. 목사가 시신 및 장기 기증과 관련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 협약 병원에 서약서를 쓴 교인이 제법 되지만 유족이 결정을 번복한 사례가 적지 않다고도 했다.

말을 마친 그는 번복할 시간을 주겠다는 듯 김한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김한수는 생각해보겠다고 형식적으로 대답했으나 목사의 말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결정을 재고할 마음은 없었다. 총무는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남기고 상가를 떠났다.

그 일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장례를 치른 지 육개월 만에 아버지의 시신을 인수해 간 병원에서 이송 통보를 받기 전까지는. 김한수는 그 일에 대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다. 실은 잊고 있었다. 아버지는 죽었고 장례를 마쳤다. 상조회사 직원이 도운, 예와 절차를 다한 장례였다. 납골당의 빈 유골함 앞에서 가까운 친척들과 고개 숙여 간단히 제를 지내기도 했다. 고지식한 고모가 이러는 법은 없다면서 나무랐지만 그게 다였다.

하지만 종종 장례식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아니라 모르는 누군가의 상가에 다녀온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장례 과정에서 아버지의 사체를 보았는데도 그랬다. 조금 차가워 보였으나 여전히 살집 있는 몸이었다. 이상하리만치 담담했지만 그럴 수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닮았으나 아버지라는 실감을 주지 않았던 것이다.

병원 담당자는 연락을 받고 온 김한수에게 실습이 끝난 시신을 어떻게 운구해 갈 것인지 물었다. 김한수는 당연히 병원 측에서 편의를 제공하리라 여긴 터라 황당해하며 쳐다보았다. 담당자는 자신이 더는 돕지 않음을 분명히 하려는 듯 결정되면 알려달라 이르고는 자리를 피했다. 김한수는 기회를 놓쳤지만 담당자는 이런 일을 여러번 겪은 것 같았다. 실습이 끝난 시신의 운구를 떠맡은 유족에게 항의의 말을 듣는 일 말이다.

김한수는 도움받을 사람을 떠올리려 애썼다. 당연한 연상으로 상가에 방문한 목사를 먼저 생각해냈다. 그만큼 기증 후 절차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교회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어 장황하게 사정을 설명한 끝에 목사의 전화번호를 알아냈지만 예배 중인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운구를 도와줄 친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이 일을 농담이라 여길 것이다. 육개월 전에 장례를 치른 아버지의 시신을 이제 와 함께 운구해달라는 김한수의 전화를 근무 중에 받는다면 누가 선뜻 나설 수 있겠는가. 도울 사람을 찾지 못하면 김한수는 혼자서 아버지를 둘러업어야 했다. 살아 있을 때보다야 무겁지 않겠지만, 그게 이 일의 핵심이었다.

그러다 유족 모임의 총무라는 사람을 떠올렸다.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하라던 말 때문이었다. 그 도움이 시신의 운구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당연히 그의 전화번호도 알지 못했지만 김한수는 자신이 가입하지도 않은 유족 모임에서 정기적으로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내온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그리로 전화를 걸어 간단히 사정을 설명하고 총무를 찾았으나 전화를 받은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총무인데 김한수는 물론 그의 아버지를 전혀 모른다는 답변을 들었다. 김한수는 끈질기게 장례식 상황을 상기시켰고 그런 후에 빈소를 방문했으리라 짐작되는 전임 총무의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하지만 전임 총무 역시 김한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고 아버지 이름을 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무엇보다 더는 모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김한수는 납득했다. 그에게는 자신을 도울 의무가 전혀 없었다.

“화장장 예약은 했어요?”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가 김한수에게 물었다.

“화장장이요?”

그는 운이 좋으면 구급차를 이용할 수 있으리라 일러줬다. 김한수는 이번에도 그의 말을 따라 구급차요? 하고 무기력하게 되물었다. 총무는 가벼이 한숨을 내쉬고는 병원이 어디냐고 물었다.

총무를 기다리는 동안 김한수는 몇곳의 민간 구급차 업체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는데 법률을 근거로 시신 이송이 불가하다는 말을 들었다. 총무가 ‘운이 좋으면’이라고 말한 게 그 때문인 듯했다. 병원 담당자에게 시신 인수를 재촉하려는 듯한 전화가 몇차례 걸려왔지만 응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바디백에 싸인 채 철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총무는 목례로 김한수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침대 앞부분을 잡아끌었다. 김한수는 얼른 뒤쪽으로 가 침대를 밀었다. 병원 입구에서 담당자가 뚜렷한 근거 없이 더이상 이동이 불가하다고 제지하자 총무는 으레 겪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침대를 끌고 주차장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이없어하는 담당자를 뒤로하고 김한수도 덩달아 뛰었다.

김한수가 자동차 뒷좌석 문을 열자 총무는 무게와 길이를 가늠해보듯 아버지 시신을 훑었다. 바디백 사이즈 그대로 뒷좌석에 들어갈 수 없으니 좌석 크기에 맞게 아버지를 적당히 구겨 넣어야 할 것이었다. 그는 김한수에게 잘 잡으라고 이르더니 바디백 윗부분을 받쳐 들었다. 그는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한 듯 행동했다. 세상 어디에나 죽은 사람이 있다는 듯 굴었다. 김한수는 엉겁결에 그를 따라 아랫부분을 받쳤다. 바디백에 감싸여 있지만 손에 닿은 신체 부위가 고스란히 느껴져 인상을 찌푸리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속이 빈 아버지는 가벼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무거웠다. 생전과 다름없이 무거웠다. 그게 김한수를 조금 울적하게 했다. 죽어서도 달라지는 게 없다는 사실이.

아버지는 엉덩이가 쑥 빠진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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