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선임 鄭善任

1978년 인천 출생.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svet.novel@gmail.com

 

 

 

몰려오는 것들

 

 

수경은 다리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섬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도개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도개교는 본래 대형 선박이 지나갈 때를 대비한 것이지만 이 도개교의 목적은 달랐다. 언젠가 다가올 그때 아무나 함부로 섬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아침 일곱시에 내려온 다리는 밤 열시가 되면 다시 올라갔다. 다리가 내려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약 십분. 다리가 완전히 내려오려면 아직 오분 정도 남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차 안이 더웠다. 수경이 창을 내리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앞 차량 운전자가 차창으로 얼굴을 내밀더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수경은 창을 닫고 에어컨을 틀었다. 이제 삼월 초인데 벚꽃은 이미 졌다. 사람들은 반소매를 입고 다녔다. 하지만 이제 누구도 날씨가 미쳤다고 말하지 않았다.

미세먼지 없이 맑은 날이었다. 가시거리가 길어서 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섬은 중절모처럼 생겼다. 실제 중절모를 닮았다기보다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삽화와 흡사했다. 그래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 모양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섬이 한창 언론보도에 오르내릴 때도 섬의 지형을 모자나 코끼리, 뱀에 비유하는 기자들이 각각 나뉘었다. 수경은 그때그때 기분이 내키는 대로 말하는 쪽이었다. 뱀은 어딘가 불길하지 않니. 아버지 노석은 가끔 못마땅한 듯 얘기했다. 중절모 챙의 양 끝 혹은 코끼리의 코와 꼬리, 그도 아니면 뱀의 꼬리와 머리 끝에서 넘실거리는 물에 시선이 닿자 수경은 고개를 돌렸다.

앞 차량 운전자가 꽁초를 던지고 출발했다. 뒤따라가는 수경의 뒤로 차량이 줄지어 따라갔다. 주말이어서 섬에 사는 부모를 찾는 이들이 더 많은 듯했다. 노석이 섬으로 이주한 것은 삼년 전이었다. 수경은 일년에 두세번 정도 섬을 방문했다. 다리는 섬의 중턱과 이어져 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검문소에서 신분증과 방문할 주소를 확인했다.

“1단지, 1001호요.”

수경이 대답하자 차단기가 올라갔다. 수경은 스타벅스에서 드라이브스루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검문소 바로 옆에는 5층 규모의 복합쇼핑몰이 있었다. 1층에는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GS25 편의점, 이마트가 들어서 있고, 층별로 중국집을 비롯한 갖가지 음식점은 물론 미용실, 약국, 헬스장, 수영장까지 있었다. 검문소와 복합쇼핑몰을 지나 나뉘는 두 갈래의 길 중 거의 모든 차량이 우측의 오르막길을 택했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받아 든 수경도 오른쪽 도로로 진입했다.

도로를 따라 왼쪽은 상아색 담장으로 막혀 있었다. 마치 휴전선처럼 담장을 경계로 섬은 상층부와 하층부로 나뉘었다. 담장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부조되어 있었다. 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포세이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어느 가족을 수경은 빠른 속도로 스치듯 지나갔다. 유명한 조각가를 고용하려 했지만 여의찮아 구청장의 친척이 맡게 됐다더라고 노석은 설명했다. 그 사람도 꽤 실력이 뛰어난 작가야. 수경은 노석이 자신의 표정을 살피며 덧붙인 말을 떠올렸다.

나선형의 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던 수경은 휴대전화 긴급재난 알림음에 흠칫 놀랐다. 해수면이 또 1센티미터 상승했다는 문자였다. 지역별 해수면 상승 수치와 수몰지역 피해 상황,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수경은 무심한 표정으로 확인했다. 십여년 전 코로나 감염병 확진자 수를 알려주는 긴급 알림이 일상이 됐듯 사람들은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날씨 정보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이 섬은 본래 산이었다. 아직도 완전한 섬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섬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코로나 감염병이 잠잠해질 무렵, 3·19수몰사태가 일어났다. 며칠 후면 십주년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많은 양의 빙하가 녹으면서 세계 곳곳의 섬 수십만개와 대륙 일부가 사라졌다. 한반도도 국토의 3분의 1이 잠겼다.

노석의 집은 주택단지 입구에 있었다. 코끼리의 머리와 등, 즉 두개의 봉우리가 시작되는 지점, 그러니까 섬의 상층부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다. 높은 담과 유럽풍의 웅장한 저택들, 그 성채와 같은 집들 사이에서 노석의 집은 가장 규모가 작았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밖에서도 훤히 들여다보였다. 노석은 집에 없었다. 수경은 작은방에 짐만 두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앞 차량에서 내린 운전자가 옆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왜 아이들은 두고 혼자 왔냐고 의아해하면서도 반갑게 맞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바빠서요. 운전자의 무심한 대꾸가 이어졌다.

수경은 여느 때처럼 산책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담장을 따라 한바퀴 돌 생각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두시간 정도 걸렸다. 노석은 담장 너머를 ‘저쪽’이라고 불렀다. 담장이 높아 저쪽은 보이지 않았다.

수몰사태처럼 급작스레 빙하가 녹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수면은 계속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모두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셈이었지만 남은 시간은 각자 달랐다. 부호들은 산악지대의 땅을 사들였다. 바닷가 전망이 좋은 지역의 땅값은 떨어졌고 고도가 높은 지역은 올라갔다. 전문가들은 지역마다 향후 몇년까지 안전한지를 추정했고 그 정보를 공개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다 한 신문사가 단독으로 결과를 유출했다. 대부분 지역이 백년 이상을 보장할 수 없었다. 향후 오백년은 안전한 몇몇 지역들이 공개되자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고,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았다. 이 섬도 그중 하나였다. 원래 살던 주민 대부분은 땅을 팔고 이사했다. 백여가구 정도 남았을 때, 새 땅 주인은 남은 주민들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를 진행해 정원이 딸린 고급주택 오백가구를 지어 분양했다. 그사이 하나둘 보상을 받고 이사를 더 나가면서 열가구 정도만 남게 되자 도로를 따라 담장을 세웠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부조된 조각들 위에는 비둘기 떼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들개와 길고양이가 한동안 골칫거리였는데 대대적인 정비사업 이후 근방에서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비둘기는 쫓아내지 못했다. 쫓아낼수록 그 수는 이상하게도 자꾸 불어나기만 했다. 수경의 원룸이 있는 지역에도 비둘기 떼가 새벽부터 거리를 배회했다. 비둘기는 가끔 사람들을 향해 무작정 돌진하기도 했다. 아마도 배고픔을 참지 못한 탓일 거다. 이곳의 비둘기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해 보였지만 수경은 비둘기가 날개를 푸드덕거릴 때마다 어깨를 움츠리며 걸었다.

한시간쯤 걸려 도착한 곳은 까마귀에게 간을 파 먹히는 프로메테우스의 모습이 부조된 담장 앞이었다. 구청장의 친척이라는 조각가는 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어른 주먹이 들어갔다 나올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구멍은 수경이 허리를 숙였을 때 눈높이 정도에 있었다. 수경은 섬에 올 때마다 이곳을 찾았다. 그 구멍 안을 들여다보면 마치 휴전선 너머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반대했고 구멍을 메워달라고 했지만 조각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놈의 작가정신은 무슨. 노석은 중얼거리다 슬쩍 수경의 눈치를 봤다. 수경은 소설을 썼다. 수몰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소설집을 한권 냈다. 이후에는 방송 원고, 에세이, 영화나 책 리뷰, 인터뷰 등 닥치는 대로 여러가지 글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하지만 노석이 소개해준 자서전 대필만은 응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이 산을 사들였던 부호였다. 이것저것 가리면 못 쓴다. 젊을 때는 닥치는 대로 해야지. 뭐든 주어진 대로 감사하며 살면 되는 거다. 노석의 말에도 수경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노석은 한숨 끝에 덧붙였다. 제 엄마 닮아서 고집은.

수경은 한숨을 쉬며 허리를 굽히고 구멍 안을 들여다봤다. 구멍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손질하지 않아 우거진 수풀과 건물 일부였다. 어떤 용도인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수경은 섬을 방문할 때마다 빠짐없이 이곳에 들러 저쪽을 쳐다보고는 했다.

수경은 잠시 허리를 펴고 자세를 고쳤다. 그때 아이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수경은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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