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제22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정은우 鄭殷宇

1989년 경기 의정부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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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비 세우기

 

 

재언은 식탁에 앉자마자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연주는 놀라지 않았다.

“그거 키 크는 꿈이라던데.”

오늘 아침 당번은 연주였다. 새벽에 일어난 그녀는 바닥에서 잠든 재언을 발견했다. 곧 있으면 벚꽃이 피는 시기라지만 해가 없으면 여전히 추웠다. 재언아, 연주는 한껏 목소리를 낮추어 그를 불렀다. 재언은 바싹 웅크린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연주는 어디선가 저런 자세가 안정과 회복을 취하는 태아 자세라고 들은 적이 있다. 사실 그녀의 눈에 재언의 자세는 태아보다는 콩벌레에 가까워 보였다. 콩벌레는 별다른 독이나 침도 없다. 그저 조금 단단한 외피만 믿고 바싹 움츠러든 채 안전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버티기는커녕 끝내 짓눌리고 말았지만.

“정말 끔찍했어.”

재언은 너무 생생한 꿈이었다며 도리질을 쳤다. 아주 높은 곳에서 내동댕이치듯 떨어졌는데,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았어, 연주는 왠지 재언의 말이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애써 말을 돌렸다.

“성장통도 아프잖아. 아직 성장판이 안 닫혔나본데.”

“더 커지면 천장을 머리로 뚫을지도 모르겠네.”

“전등도 깨지겠지.”

연주의 너스레에 재언이 웃었다. 재언은 연주보다 키가 한뼘 정도 컸다. 그는 툭하면 천장에 달린 전등에 이마를 부딪치곤 했다. 붉게 달아오른 이마를 문지르면서 높이를 좀 조절해야겠다고 투덜거렸지만 매번 잊었다. 전등에 부딪혀본 적 없는 연주 역시 까먹기는 마찬가지였다.

둘은 잽싸게 식사를 마친 후 출근 준비를 했다. 연주가 머리에 만 롤을 풀고 의자에 걸쳐놓은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는 사이 재언은 뜨거운 물로 그릇을 꼼꼼하게 헹궜다.

“오늘은 어디로 가?”

“서초에서 송파로.”

재언은 젖은 옷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대답했다. 그의 팔뚝에 실오라기처럼 길고 가느다란 흉터가 남아 있었다. 작년 말 이삿짐을 나르다가 베인 상처였다. 그날 야근을 마치고 퇴근한 연주의 성화를 받고서야 응급실에 가서 상처를 소독하고 꿰맸다. 이삿짐센터 트럭 기사로 일한 지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갔지만 그는 여전히 신출내기 취급을 받았다.

“요즘 서초만 가네.”

“재개발 때문에 그렇지. 안됐어.”

“송파도 좋은 동네잖아.”

“뭐, 서초 가는 김에 너도 태워주고 잘됐지.”

재언은 태평하게 대꾸했다. 연주는 그의 등을 다정하게 다독여주었다. 설거지를 마친 후 재언은 회색 항공점퍼에 노란색 조끼를 걸쳤다. 아무리 안전이 중요하다지만 형광 노란색은 누구에게든 썩 어울리는 색이 아니었다. 그 지나치게 밝은색 때문에 재언의 낯빛은 더 창백해 보였다. 연주는 조수석에 타자마자 룸미러로 뒷좌석에 옷가지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 살폈다. 재언은 일을 마치면 꼭 옷부터 갈아입었다. 그는 먼지와 곰팡이를 묻힌 채 집으로 들어가기 싫다고 했다.

“오늘 많이 바빠?”

“아니, 저번주에 문제집 나왔으니까 당분간은 모니터링만 하면 돼.”

“다음 문제집은 언제 나와?”

“다음주부터 들어가야지. 위층 연구소만 잘해주면 금방 끝날 텐데.”

연주가 다니는 출판사에서는 중고등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문제집을 출간했다. 이미 어느 정도 일정한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대표는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 다른 출판사들이 지난해 문제에서 숫자만 바꾸어 내는 꼼수를 쓴다고 비난했다. 그러고는 사무실 바로 위층에 위치한 연구소의 존재를 운운하면서 우리 출판사야말로 정통에 가깝다며 뽐냈다. 연구소라고 해봤자 대학원생들 몇몇이 아르바이트로 일하면서 문제를 만드는 공장에 불과했다. 연주는 연구소 아래 사무실에서 문제집을 편집하는 일을 맡았다. 그녀는 대표의 터무니없는 자부심과 착각에 진저리가 났지만 매달 밀리지 않고 무사히 월급을 받는다는 점에는 만족했다.

재언은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차가 부드럽게 방향을 틀었다.

“편의점에 새로운 아이스크림 나왔더라. 사다 줄까?”

“벌써?”

연주는 놀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가을 한정으로 밤맛 아이스크림이 출시된 것이 불과 이주 전이었다. 재언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스크림은 그들이 용인한 유일한 사치였다. 작년 여름만 해도 둘은 그 호사를 공유했다.

“무슨 맛인지 궁금한데? 이번에는 내가 다 먹어버릴지도 몰라.”

“다 먹어도 돼.” 재언은 빈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진짜야.”

연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설령 천상의 맛이라고 해도 그녀는 반만 먹고 나머지는 꼭 남길 터였다. 늘 그랬듯이 새 플라스틱 숟가락을 가운데에 꽂은 채로 냉동고에 넣어둘 것이다. 재언은 연주가 일하는 출판사 건물 앞 도로변에 부드럽게 차를 세웠다. 연주는 재언에게 커피라도 한잔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 주간 조례가 몇분 뒤면 시작될 터였다. 그녀는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차문이 닫히는 사이 재언이 무슨 말을 했지만 연주는 바람 소리가 거세 듣지 못했다.

점심시간쯤 연주는 재언이 사다리에서 떨어졌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 도중 사망했다.

 

작년 여름에 재언은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연주는 그 선언이 농담인 줄 알았다. 그들은 속상한 일이 생기면 함께 매운 음식을 먹고 얼얼해진 속을 아이스크림으로 달래곤 했다. 얼마나 비싼 아이스크림이든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걸 골랐다. 뜨거운 입안에 아이스크림 한 숟갈만 들어가도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그러나 재언의 말은 진담이었다. 그는 점원에게 싱글사이즈 컵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쿠폰으로 더블사이즈 컵 하나를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점원은 웃는 얼굴로 거절과 사과를 두차례 반복했다. 얼마나 열심인지 점원의 마우스가드에 희뿌옇게 김이 서릴 정도였다. 재언도 점원처럼 고개를 조아리며 사과했다. 둘의 사과는 연주가 재언의 팔꿈치를 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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