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성동

김성동 金聖東

1947년 충남 보령 출생. 1975년 『주간종교』 소설 공모에 당선되었으며, 1978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꿈』 『만다라』 『집』 『길』 『국수(國手)』, 소설집 『붉은 단추』, 산문집 『생명기행』 등이 있음.

 

 

 

무섭고 슬픈 이야기

 

 

1

 

풀벌레가 우는 소리인가. 아니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몸뚱이 부벼대고 나뭇잎들은 또 볼 부벼대는 소리. 그것도 아니라면 땅 밑을 흘러가는 땅속물 소리.

힘껏 눈을 감았다 뜨며 긴 숨을 내리쉬었다. 그리고 윗몸을 전후좌우로 몇번 흔들고 목을 서너번 돌린 다음 결가부좌 친 두 무릎을 콩콩 두드렸다. 다시 또 들려오는 야릇한 소리였고, 마구니로구나. 두 다리를 쭉 뻗었다. 공부가 익어가는 수좌일수록 마구니 파순이는 더욱더 기를 쓰고 달려든다더니, 그렇다면 내 공부가 익어가고 있다는 말. 쓰게 웃던 이 중생은 다시 좌복 위에 앉았다.

오른발만 왼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오른손을 배꼽 밑에 놓고 왼손은 오른손바닥 위에 놓은 다음 두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맞대었다. 등뼈를 반듯하게 세웠다.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턱을 목 쪽으로 당기었다. 여간하게 뜬 눈으로 코 끝을 바라보았다. 아래위 어금니를 지그시 닿게 하고 혀를 입천장에 가볍게 대었다. 코로 배꼽 밑 세치쯤 되는 곳에 있는 탯자리를 바라보며 콧속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천천히 팔부쯤만 들이쉬어 배꼽뭉치까지 끌어내렸다. 삼사초쯤 머물렀다가 가늘고 길게 팔부쯤만 내쉬었다.

다시 숨을 들이쉬었다. 고르고 깊으면서도 부드럽게 천천히 팔부쯤만 들이쉬자 아랫불밭이 볼록해졌고, 한 십초쯤 멈추었던 숨을 천천히 가늘고 길게 내쉬자 아랫불밭이 홀쭉해졌다. 달걀만하게 볼록 솟아올랐다가 다시 그만한 크기만큼 홀쭉하게 들어가는 아랫불밭 달걀 위에 얹히는 것은, 그리고 화두였다.

“어머니 뱃속을 빠져나오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던가?”

삼백예순 뼈마디와 팔만사천 털구멍마다 풀리지 않는 의심덩어리인 “이뭣고?”를 도래송곳으로 통나무를 뚫듯 쑤셔박아 들어가는데, 아. 끊어진다. 고양이가 쥐 잡듯이 닭이 알 품듯이 늙은 쥐가 쌀 든 궤짝 쪼듯이 어린아이 젖 찾듯이 목마른 사람 물 찾듯이 배고픈 사람 밥 찾듯이 일심전력을 기울여 화두를 들어봐도 삼백예순 뼈마디마디마다 흩어지고 팔만사천 털구멍구멍마다 토막토막 떨어져나가버리는 화두였으니, 아아. 끊임없이 들려오는 는실난실한 소리인 것이었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 궁예미륵님께 합장반배한 다음 방을 나갔다. 털신에 발을 꿰었다. 그리고 물매 심한 자드락길 따라 발몸발몸 내려가다가 왕소나무 가지 휘늘어진 곳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둔중한 철판으로 땅바닥을 짓이기는 것 같은 그 야릇한 소리는 좀더 또렷하게 들려왔고, 우편물 받는 옷통 뚜껑을 열어보았다. 아침나절이므로 체부가 왔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버릇처럼 옷통 뚜껑을 열어보던 이 중생은 “사바하” 하고 탄식처럼 내뱉으며 철대문을 나섰다. 그리고 몇발짝 걸어내려가다가, 아흐. 눈을 감았다.

굴착기였다. 땅을 찢어발기는 것 같던 그 는실난실한 소리는 길을 넓혀나가면서 내는 굴착기 소리였던 것이고, 관세으음보살. 이 중생 입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엄마보살 명자(名字)였다.

휑뎅그레한 것이었다. 한 사오백미터쯤 내려가면 서 있는 무슨 사제(私製)사찰 이름 새기어진 빗돌 곁 낙엽송 수펑이가 죄 버히어졌고, 이 중생이 번뇌망상하는 곳까지 오르는 외자욱 산길 좌우로 덤부렁듬쑥 그윽하던 잡목 수펑이도 죄 버히어졌으며, 거기서부터 우벚고개까지 올라가는 삼백미터쯤 되는 소롯길 좌우로 어우렁더우렁 메숲졌던 푸나무서리 또한 죄 버히어져버린 것이었다. 이 중생이 사는 곳에서 소재지로 가는 저 아래 큰길까지 한 이십리쯤 되는데 자동차 한대 다닐 만한 포장된 농로이다. 그리고 사제사찰 빗돌서부터 우벚고개 너머 다른 면까지 한 십리쯤 되는 좁좁한 외자욱 산길을 이차선 포장도로로 넓힌다는 것이었으니, 별꼴. 무슨 커다란 공장 같은 산업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전문대학 같은 큰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닌 이 그윽한 산길을 왜 이차선으로 넓힌다는 것인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온 나라에 걸쳐 산을 허물어뜨리고 강물과 냇물을 뒤틀고 갯벌을 메우고 언덕을 까내리고 산에 구멍을 뚫어 골프장을 짓고 공장과 아파트를 세우는 토목공화국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닭 울음소리 가히 울음소리 들려오지 않는 곳 찾아 허위단심 바랑 푼 이 중생이 사는 곳까지 이른바 개발광풍이 불어닥치는 것을 보는 심정은 참으로 착잡한 것이었다.

내려온 길에 우벚고개까지 올라간 이 중생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찔레꽃 내음 눈물 나고 칡꽃 향기 숨 막히며 그리고 동자꽃 원추리꽃 산나리꽃 천남성꽃 가슴 아픈 좁좁한 오솔길이 자동차 두대가 쌍노라니 달릴 수 있게끔 파헤쳐진 것도 그렇지만, 또 그만한 너비로 좌우 산자락 숲정이까지 죄 발매된 길 따라 올라간 영마루는, 한터가 되어 있었다. 어지간한 정구장만이나 하게 너른마당으로 파헤쳐졌는데, 아름드리 낙락장송들이 죄 뽑히어 있었다. 밑둥을 오라지운 비닐 싸개로 봐서 어느 장사꾼 농원이나 화원 또는 도회지 부잣집 왜식정원 장식용으로 팔려갈 운명으로 보였고, 잘개 쪼개어진 바윗돌들이 무더기무더기로 쌓인 것은 자갈로 팔려갈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바뀌는 세상이라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여물값도 못되는 외화벌이를 하느라고 한 이레 산행을 하지 못한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굴착기들은 잇달아서 산을 깎아내고 있었고 깎아낸 흙더미 실은 대형 트럭들이 사제사찰 쪽으로 연락부절 오르내리고 있었다.

기왕 나온 김에 산행을 하기로 하였다. 산행이라고 하지만 무슨 연모를 갖추고 제대로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다. 등산화를 신어도 좋고 운동화끈 질끈 조이거나 털신 바람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이다. 포행(布行) 나선 수좌처럼 그냥 노량으로 걸어가는 것인데, 남산에 구름이 일고 북산에 비가 내린다.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온 세상이 죄 썩고 병들었어도 나는 홀로 깨어 있어야겠다는 화두를 들어도 좋고, 첩첩한 앞산도 바라보고 중중한 뒷산도 돌아보며 멧새소리 벗삼아 그냥 무심히 걸어가도 좋다.

포행하는 곳은 국유림이다. 이 중생이 망상번뇌하는 토굴은 세 면이 국유림으로 둘러싸였는데 워낙 외진 곳이라 하늘 밑에 벌레들 발길이 뜸한 편이다. 봄이면 산나물 캐고 여름이면 야생차 달일 꽃과 풀을 뜯고 가을이면 버섯 따고 도토리 상수리에 알밤 줍고 겨울이면 뽀드득- 뽀드득- 꽈리 터지는 소리 나는 숫눈길 걸으며 고라니 까투리 장끼 족제비 청설모 다람쥐 멧토끼와 벗하면 된다.

둔중한 쇠붙이와 바윗돌이 부딪치며 내는 기분 나쁜 쇳소리며 대형 트럭 굴러가는 소리 피하여 서둘러 한 이백미터쯤 내려가다 왼쪽으로 모꺾어 들어가면 덤부렁듬쑥한 잡목 수펑이가 나온다. 서둘러 수펑이로 들어섰지만 끈질기게 귀를 물어뜯는 굴착기 소리 트럭 굴러가는 소리 바윗돌 깨는 소리였고, 이 중생은 화두를 들었다.

“어머니 뱃속을 빠져나오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던가?”

 

 

2

 

커다란 비닐봉다리 담긴 바랑을 등에 졌다. 접이톱을 챙겼다. 굴착기 소리와 대형 트럭 굴러가는 소리는 그쳐 있었다.

우벚고개로 올라갔다. 아름드리 낙락장송들 뽑아간 자리에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