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하성란 河成蘭

1967년 서울 출생.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루빈의 술잔』 『옆집 여자』, 장편 『식사의 즐거움』 『삿뽀로 여인숙』 등이 있음. gaeulhae@yahoo.co.kr

 

 

 

무심결

 

 

한 문예지의 ‘궁금했습니다’라는 난에 평소 남자가 좋아하는 시인 K씨의 수필이 실려 있었다. K씨의 글을 읽는 것은 근 2년 만이었다. 글을 통해 K씨가 올해 초 서울 근교에 단층 목조주택을 짓고 38년 동안의 서울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을 알았다. 짧막한 분량의 글은 대부분 그곳에서의 일상에 관한 것이었다. 베란다에서 자칫 밟아 짓뭉개버릴 뻔한 달팽이가 사나흘쯤 뒤 거실 끝에 놓인 벤자민 화분 위를 기어오르고 있더라는 것이며 마당으로 내려온 독사를 어쩔 수 없이 삽끝으로 내려쳐야 했던 이야기며 어느새 남자는 K씨의 글에 몰입해 있었다. K씨의 산문은 그의 시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었다. 원색 화보란인 까닭에 글 사이사이 볕이 좋은 창가나 수국이 만발한 화단 앞에서 포즈를 취한 K씨의 크고 작은 사진이 함께 실려 있었다. K씨가 꿰고 있는 흰 고무신은 헐거워 보였는데 발등까지 뻘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사진상으로도 K씨의 시력이 급작스럽게 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글에선가 K씨는 자신의 두눈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신기료 장수 이야기에 빗대어 자신의 지나친 욕심이 두눈을 멀게 할 거라고 했다. ‘신기료 장수는 땅속에 묻힌 보물을 볼 수 있다는 앉은뱅이 노인의 유혹에 넘어가 한쪽 눈에 마법의 풀을 바르게 된다. 과연 한쪽 눈이 멀고 나자 모든 땅과 바닷속에 감춰진 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기료 장수는 더 많은 보물들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 다른 한쪽의 눈마저도 멀어버린다면 이 세상의 모든 보물이 모두 제 것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한쪽 눈에도 풀을 발라달라고 앉은뱅이 노인에게 애걸을 한다. 한쪽 눈이 마저 멀었을 때 땅속과 바닷속의 보물은 사라지고 암흑만이 남았다. 노인이 재빨리 신기료 장수의 등에 올라탔다. 걸음이 뒤처질 때면 노인은 깡마른 다리로 신기료 장수의 허리를 졸랐다……’ 하지만 남자가 알고 있는 K씨의 이력은 욕심과는 생판 무관한 것이었다. 남자는 K씨의 입가에 깊게 팬 주름이 그동안 그가 외곬으로 살아온 증거라고 생각해왔다.

집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산 너머로 서해바다가 펼쳐져 있어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영락없이 물미역 냄새가 밀려온다고 했다. 이곳에 와서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머리 숙여지는 날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K씨는 덧붙였다. 화보에 실린 어떤 사진 속에도 K씨가 직접 설계했다는 목조주택의 전경은 나와 있지 않았다. K씨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사진 위로 목조건물의 천장널이 슬쩍 끼여들었는데 침목처럼 시커먼 나뭇장 아래 어른 주먹만한 풍경이 매달려 있었다. 혹시 K씨의 산책 끝에 바다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흰 고무신창으로 뻘흙을 묻혀 나르고 있는 것일까. K씨의 산문은 시와 마찬가지로 남자에게 잡념이 들끓게 했다.

글의 맨 끝부분에 이르렀을 때 남자는 방금 읽은 한 문장 때문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자식을 앞세우고 걸어가는 산책길에서 자꾸만 현기증이 인다. 햇빛마저 서글프다.’

남자가 K씨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8년 전이었다. 혼기를 한참 놓치고 마흔이 다 되어서야 얻은 큰아들은 지금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아래로 다섯살 터울이 나는 딸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 혹시나 잘못 읽은 것은 아닌가 싶어 방금 전의 그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자식을 앞세우고 홀로 걸어가는 산책길에서 자꾸만 현기증이 인다. 햇빛마저 서글프다.’ 이번엔 앞뒤 문장까지 함께 읽어보았다. 하지만 그 문장의 이해를 돕는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K씨가 살고 있는 개포동의 아파트를 방문했을 때 현관문을 열어준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K씨의 딸아이였다. K씨는 물걸레로 마루를 훔치고 있다가 걸레를 들지 않은 손을 뻗어 남자에게 악수를 청했다. 오래된 시영아파트는 비좁았고 해가 잘 들지 않았다. 머리를 양갈래로 총총 땋아내린, 눈이 커다란 계집애는 제 아버지의 무릎에 한손을 올려놓은 채로 낯선 방문객을 멀끔히 바라보았다. 윤이라고 했던가 연이었던가, 외자로 된 이름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K씨의 부인은 집에 없었다. 계집애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더니 오렌지 주스 두 잔과 초코파이 두 개가 놓인 쟁반을 내왔다. 계집애가 신고 있는 흰 면양말의 바닥은 맨땅을 디딘 것처럼 새까맸다.

‘궁금했습니다’는 한동안 근황을 알 수 없었거나 독자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화계 인사를 찾아가는 난이었다. 남자는 K씨의 얼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K씨가 신고 있는 흙 묻은 고무신도 찬찬히 살폈다. 사진 속의 침침해보이는 눈은 노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끊임없이 흘린 눈물 때문에 여린 살갗이 짓물러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이 깊이 패게 다문 입술은 다시 보니 무언가를 견뎌내려고 이를 앙다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남자는 8년 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K씨를 보았다. 간간이 이어지던 전화통화는 5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1년에 한번 정초에 부치던 연하장도 3년 전쯤 수취인 불명이라는 도장이 찍힌 채 반송되면서 끊겼다. K씨는 2년이 넘게 지면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도대체 K씨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얼핏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고 바람 한점 불지 않았다. 꽃사과나무 위로 드문드문 펼쳐진 하늘은 기차 침목을 엮어놓은 것처럼 거무튀튀했다.

 

주방으로 뚫린 작은 창으로 커다란 양은 곰솥들이 보였다. 시퍼런 불꽃에 뚜껑에서 흘러넘친 멀건 국물이 가닿을 때마다 곰솥 밑바닥으로 그을음이 끼었다. 에어컨은 고장이었다. 가슴패기에 금색실의 회사 로고가 새겨진 작업복 차림의 기술공이 가게 바닥에 부품들을 잔뜩 늘어놓은 채 에어컨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벽에 걸린 선풍기들은 회전방향을 바꿀 때마다 꼬리 긴 마찰음을 냈다.

주문한 도가니탕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오전에 읽었던 K씨의 산문에 대해 운을 뗐다. 편집장은 붉은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훔쳐댔다. 셔츠 겨드랑이의 누런 얼룩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물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닦아댈 때마다 소매 속으로 숱이 많은 겨드랑이가 눈에 들어왔다. 편집장도 K씨의 근황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모양인지 아이쿠, 탄성과 함께 들고 있던 물수건을 떨어뜨렸다. 편집부의 정은 밑반찬으로 나온 장아찌를 소리내 씹었다. “개포동요? 요즘 거기 투기가 장난 아녜요. 그런데 올 초라면 한몫 잡긴 힘들었을 거예요…… ‘우리는 철새처럼 만났다’의 그 시인 맞죠?” 뚝배기를 들어 국물을 소리내 마시고 수육을 건져 쏘스에 찍어 먹는 사이사이 K씨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기술공은 허리에 양팔을 얹은 채 속수무책으로 먼지 낀 에어컨 필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갓 스물이 넘었을까, 이제 막 연수를 마치고 새 작업복을 입은 듯했다. 풀기가 가시지 않은 작업복의 솔기에 슬려 목덜미가 울긋불긋했다. 머리 속에서 줄줄 땀이 흘렀다. 왜 그런 흉사가 소문 하나 없이 잠잠하게 가라앉았는지 알 수 없다며 편집장이 물수건으로 얼굴을 훔쳐냈다. 정은 자꾸 K시인과 H시인을 혼동했다. 어린 자식을 앞세웠으니 아마도 가까운 친지들끼리 단출하게 장례식을 치른 모양이라고 편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2년 동안의 공백기간도 아마 그 일과 무관하지는 않을 거라며 정이 잇몸으로 음식을 씹는 노인처럼 수육을 우물거렸다. 살이 겹친 곳마다 땀으로 미끈덩거렸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던 덩치 큰 남자들이 식당의 열기에 기겁을 하고 도로 나갔다. 식당의 유리창으로 사차선 도로가 내다보였다. 미등을 켠 자동차들 위로 두꺼운 구름장이 몰려들고 있었다. 편집장이 구두를 신고 나가면서 이쑤시개를 빼물었다. “L선생은 알지도 몰라. 막역한 사이라고 전해들었거든.”

여자는 남자에게 가랑이를 벌였다, 라는 문장에서 남자는 조금 민망해졌다. 작가의 글씨체는 악필이었지만 분명 그렇게 씌어 있었다. 남자는 그 문장을 그대로 재교지에 옮겨적었다. 맞은편에 앉은 정은 더위 때문인지 입을 반쯤 벌린 채 허공을 보고 있었다. 땀 때문에 숱이 적은 머리가 이마에 달싹 달라붙어 피곤해 보였다. 화장은 이미 지워져 잡티가 드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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