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배수아

배수아 裵琇亞

1965년 서울 출생. 1993년 『소설과사상』으로 등단.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 인형』 『그 사람의 첫사랑』, 장편소설 『붉은손 클럽』 『에세이스트의 책상』 『독학자』 『당나귀들』 등이 있음.

 

 

 

무종

 

 

그날 밤 나는 한 모형비행기 수집가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강 위쪽 도로를 달려갔으나, 늘 그렇듯이 강물이 검은 기름의 눈동자를 번득이는 것은 철제 난간과 흉한 화단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 전에는 정원 딸린 빌라들이 늘어선 부자들의 주택가를 통과했고, 불이 꺼진 중앙역사와 문을 닫은 상점들, 역사 주변의 호텔과 여행사들, 유리 몸체들이 어두운 광채를 발하는 높은 건물들의 지역도 지나왔는데, 나는 그사이 발등을 덮는 흰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바닥에서 손바닥 하나 정도 살짝 허공으로 들린 것 같은 걸음걸이로 길을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건물들 뒤에 자리잡은, 울퉁불퉁한 돌이 깔린 좁은 도로를 덜컹거리며 지날 때마다 몸집이 작고 어깨가 다부진 택시 운전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웅얼거리며 불평을 토해냈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고 귀를 기울였지만 여전히 바람이 쉭쉭거리는 듯한 이상한 소리만 들려왔고, 그래서 우리는 고장난 라디오가 그를 대신해서 그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졌는데, 예상했던 대로,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은 외국인이었고, 그는 짧은 콧수염을 기르고 손등에 털이 난 외국인이었으며, 그의 피부는 검었고, 처음에 택시에 탔을 때는 단어 그대로 석탄처럼 검다고 생각했는데, 그 검은 얼굴은 내가 몇년 전 이곳저곳 도시의 동물원에서 하루를 보내며 살 때, 커다란 러시아제 구형 카메라를 들고 나에게 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내밀던 어떤 외로운 아프리카인을 연상시켰고, 나는 서툴게 셔터를 눌렀는데 이상하게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아, 굵은 창살이 쳐진 흰꼬리안경원숭이 우리 앞에 인내심을 갖고 홀로 앉아 있는 덩치 큰 한명의 아프리카인을 향해 여러번이나 카메라를 겨냥해야 했으며,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 눈부신 대낮이었고, 렌즈 속으로 들어온 광경은 당혹스럽게도 시커멓게 그늘진 창살 우리 주변과 한없이 과장된 백색의 섬광뿐으로, 우리 속의 흰꼬리안경원숭이도 아프리카인의 모습도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으므로 매번 당황한 채 다시 눈을 카메라에서 떼면, 그들은 모두 내가 그늘이라고만 생각했던 그 어두운 무늬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음이 밝혀지곤 했다. 그늘인 채로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갑자기 그늘이 아닌 것으로 되어버리던 아프리카인의 기억. 하지만 마주 오는 자동차의 번득이는 불빛이 운전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춘 다음 사선으로 미끄러지는 순간에는, 그의 얼굴은 우유가 많이 들어간 카푸치노 빛깔로 반짝였으며, 모형비행기 수집가가 노골적으로 화를 내기 시작한 어느 시점부터는 점점 생명이 없는 회색으로 변하여, 마침내 운전사가 고개를 뒤쪽으로 돌린 한순간, 나는 납빛 촛농으로 굳어진 러시아인의 얼굴 위로 기어가는 벌레 한마리를 보았거나, 정말로 러시아인이 모는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운전사의 언어는 믿기 어려울 만큼 풍부한 모음의 묶음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묶음은 너무도 거대하여 아무도 들어올릴 수 없는 바람의 다발처럼 무겁게 느껴졌고,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번들거리는 눈빛은 이상한 긴장 속으로 상대편을 몰아넣기에 충분해 보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운전사는 간혹 이유 없이 낄낄거렸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예의 없이 물어댔는데, 그런 그의 질문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그는 우리가 말한‘문학’이란 단어를 이해하지도 못했으므로, 따라서 우리가 이미 그에게 말해둔 주소와 행선지를 그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을 것도 분명했기 때문에, 우리는 매우 불안해졌다. 그러나 운전사는 우리의 불안을 눈치챈 듯이 거울을 통해 우리에게 고개를 열심히 끄덕여 보였는데, 그것은 우리를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느끼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운전사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려는 행동 같았다. 내가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나에게 우리가 이제 앞으로 가게 될 장소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것은 그의 친구이기도 한 어느 작가의 작품 낭독회인데, 낭독회가 있을 장소는 무종의 탑이며, 우연히도 그 작가의 이름도 무종이라고 하고, 그가 새로 쓴 책의 제목은‘광대들’인데, 작가 자신이 알고 있다는 모든 광대들의 초상을 백과사전식으로 모아놓은,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혹시 그중에는 오옴진리교의 교주로서 토오꾜오 지하철에서 독가스테러를 일으킨 장본인인 일본의 광대도 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해하고 있지만, 아직 그 책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므로 거기에 대한 대답은 알지 못한다면서, 이제 얼마 후면 우리는 그 대답을 듣게 되겠지, 하고 말했다. 책에 등장하는 유명인 광대로는 카스파 하우저와 교황, 달라이 라마와 페터 한트케, 그리고 찰스 황태자 등이 있다더군, 오사마 빈 라덴은 물론이고, 하고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덧붙이자면, 그 작가는 기이하게도 새빨간 양말을 즐겨 신고 다니며 다듬지 않은 곱슬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것은 물론이고, 낡아빠진 복장에 흐느적거리는 몸짓과 말투로 이미 유명한데, 손가락으로 뜨거운 국수를 집어먹는다는 소문도 있지, 그런데 참고로 설명하자면 무종은 성공한 기업가였어, 하고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계속 말했다. 오늘 작품 낭독회를 하는 작가 무종 말고, 그 낭독회가 열리는 장소인‘무종’의 원래 주인이었던 사람을 말하는 거라고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덧붙였다. 그는 프랑스의 위그노 박해를 피해 독일로 이주한 집안 후손인데, 18세기말 여러 도시를 방랑하며 수업을 쌓는 젊은 비누 제조장인의 몸으로 처음 이 도시로 온 다음 일자리를 잡았고, 자신의 직장이던 사업체를 인수해서 정착했으며, 그의 사업체는 이후 번창을 거듭하여 마침내는 지금 무종의 탑이 있는 그 자리에 비누와 화장품 제조공장을 차렸다. 무종 회사의 가장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제품은 1차대전 직후에 출시된‘무종강력효과크림’이고, 무종 회사의 화장품공장은 나중에 덜 복잡한 구역으로 이전하게 되었으며 원래 공장 자리에는 30미터 높이의 탑을 포함한 무종 회사 본사건물이 들어섰다. 그 탑은 이 도시 최초의 고층건물이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1972년 회사는 매각되었고, 건물도 무종의 탑만 남기고 모두 헐렸다. 이후로 그곳은 여러 형태의 독립예술 행사를 위한 시설로 재탄생했고, 사람들은 그곳을 최초 건립자의 이름을 따서 무종의 탑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무종의 탑은 예나 지금이나 이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존재이고, 특히 택시 운전사들에게는 마치 백악관이나 자금성과도 같은, 의혹 한점 없는 명백한 명칭이어서, 택시를 타고 운전사에게 단지 무종의 탑, 그 이름을 말하기만 하면 운전사는 예외 없이 고개를 반쯤 돌린 채 손님을 쳐다보면서, 나는 책이라고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잡지 말고는 한권도 읽지 않지만, 연극이나 발레 혹은 낭송회도 결코 구경 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이름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안답니다, 당연하지요, 나는 이 도시의 택시 운전사니까요! 하고 주장하는 몸짓을 해 보인다고,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설명했다. 오늘 우리는 박물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고, 이 택시를 타고 박물관에 도착한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이미 어느정도 불안해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내가 택시에 올라타자마자 대뜸 무종의 탑으로 가는 길을 아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는 한시간 정도 떨어진 인근 다른 도시에서 볼일을 마친 다음 거기서 이 택시를 집어타고 왔는데, 택시 운전사가 지리에 총체적으로 어두울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무종이라는 이름을 전혀 모르고 있으며, 심지어는 무종의 탑이라는 말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그 탑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으니 정확한 주소를 대라고 했는데, 수집가가 불러준 주소는 운전사의 내비게이터에도 입력되지 않으며, 그래서 운전사는 그 주소가 맞는지 의심스러워하고 있지만,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매년 빠지지 않고 무종의 탑에서 벌어지는 문학행사에 참석해온데다가 매번 택시를 탄 것은 물론이고, 그때마다 단 한번도 주소를 틀리게 기억한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당연히 절대로 틀릴 리가 없으며, 유명한 작가의 낭독회와 그보다 더욱 유명한 비누-화장품 제조자의 이름을 가진 예술극장으로 가는 일이니, 만일 운전사가 외국인만 아니었다면 주소를 알려줄 필요도 없이 당장, 벌써 한시간 전에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다주었을 거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이봐요, 당신이 그 거리를 찾지 못한다면, 쎈터에다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쎈터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던가요. 내 말을 알아들을 수는 있습니까? 하고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운전사를 향해 정중하면서도 차갑게, 예의바르지만 냉정한 비난을 숨기지 않으면서 말했다. 운전사가 다시금 입속으로 우물거렸는데, 그것은 내게, 조금 전에 쎈터에 이미 물어봤지만 그 주소는 입구가 아니라고 했어요, 하는 말처럼, 그러나 그 온전한 의미를 전달할 능력은 전혀 없는, 그런 불명확한 어휘의 묶음으로만 들렸다. 하지만 모형비행기 수집가는 운전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꼬리를 잡아채듯이, 나는 무종의 탑이 있는 거리를 잘 아는데, 난 당신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 탑을 잘 알고 있었는데, 하늘이 두쪽 나더라도 여기는 절대 그 거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운전사 양반! 하고 쏘아붙였다. 우리는 어느 어두운 도로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골목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뒷길이었는데, 불 꺼진 집들이 활 모양으로 휘어진 보행자도로를 따라 배부른 거인들처럼 죽 늘어섰으며, 검은 창들은 모두 약간씩 어딘지 모르게 비에 젖은 듯한 눈길을 하고 있고, 사실상 아주 가는 빗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지는 중이기도 했는데, 빗방울은 간혹 지나가는 택시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아 아우성치는 벌레들처럼 우리의 얼굴을 향해 달려들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반쯤 가리다가, 곧 우리가 택시 안에, 그러나 매우 불안한 상황에 앉아 있음을 깨달았다. 골목들이 여기저기로 구부러진 그 거리는 내가 그 도시에서 만나본 거리 중 가장 어둡고 좁았다는 생각이 든다. 밤은 춥고 스산한데다가 포석이 깔린 길은 미끈거렸으며, 나는 이런 상황을 택시 안에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는데, 우리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검고 축축한 높은 벽들이 스스로 모퉁이를 돌아 앞으로 다가오는 듯했기에, 이런 밤이라면 30미터 높이의 탑이 어둠의 겹을 뚫고 당장 눈앞에 나타나더라도 절대 알아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둥그스름하게 휘어진 모퉁이 저 너머에서 파랗게 반짝이는 작은 섬광의 그림자들이 나타나나 싶더니 금방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것은 십자로로 이어진 다른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의 불빛이었으리라. 우리는 벌써 여러번이나 같은 장소를 뱅뱅 돌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자동차의 내비게이터가 더이상의 정보를 줄 수 없다고 알려왔기 때문이다. 그 장소에 대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매우 독특한 어느 기억에 의하면, 정말로 추운 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스럽게 소매가 없는 얇은 코트를 걸친 사람들 한 무리가 웃으면서 지나갔고, 그들 중 여자 한명은 봄의 축제 때 그러는 것처럼 여신의 흰 튜닉 스커트에 노란 꽃다발을 들고 있었으며, 그들은 어느 공동주택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그다음 다시 복도로 향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공동주택의 커다란 현관문은 온통 차가운 유리로 되어 있었으므로 그들이 집안으로 들어서는 짧은 순간 열린 문틈으로 맹렬하게 짖어대는 개의 검은 주둥이를 볼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이 발로 땅바닥을 차듯이 걸었던 것이 기억난다. 마치 새처럼. 그들의 신발 모양을 자세히 보려고 차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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