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묵시록과 계급

백민석의 ‘폭민’과 최진영의 여자들

 

 

강경석 姜敬錫

문학평론가. 최근 평론으로 「리얼리티 재장전: 다른 민중, 새로운 현실 그리고 ‘한국문학’」 「단지 조금 다르게: 김현의 근작들과 시대전환」 등이 있음. netka@hanmail.net

 

 

1. 불가능한 변화?

 

의문의 바이러스나 재난이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뒤 문명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살아남으려는 자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을 그린 이야기들은 도처에 차고 넘친다. 까뮈(A. Camus)의 『페스트』(1947)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소설과 영화로 세계적 이목을 끌었던 주제 싸라마구(Jose Saramago)의 『눈먼 자들의 도시』(1995)나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로드』(2006)를 위시해 국내에서도 편혜영의 『재와 빨강』(2010)이나 정유정의 『28(2013) 같은 장편소설들, 여러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만들어져 화제가 된 바 있다. 최근까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는 묵시록 서사들의 온상이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자본주의의 세계재패를 뜻하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globalization)에 있다는 사실은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묵시록 서사는 거의 언제나 ‘세계감각’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경쟁체제의 심화나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인적·물적 자원의 이동 확대에 따라 주기적으로 발생해온 글로벌 전염병의 존재도 이러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한몫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묵시록 서사들은 그것들이 종말의 직간접적인 원인으로 지목하곤 하는 관료제 국가기구나 자본주의체제를 극복이 불가능한 막다른 골목처럼 상상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소영현(蘇榮炫)의 정리가 간명하다. “다분히 대중문화와 하위문화적 상상력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들의 종말에 대한 상상은, 변화에 대한 어떤 상상도 불가능한 폐색의 ‘현실-미래’와 거기에 갇혀 고립된 개인들에 관한 알레고리다.” 그러나 이어서 그는 “이 소설들이 보여주는 상상력은 (…) 현실이 극단적으로 비인간화되는 현상을 포착해왔던 기존의 문명비판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상상력과 그리 다르지 않다”1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과연 현대 관료사회와 실존의 위기에 착목한 카프카(F. Kafka) 이래 그런 문명비판적 상상력은 얼마만큼 익숙해져버린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재난서사가 종래의 그것들과 차별화된다면 그것은 “‘일상’과 ‘정치’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공공적 공간이 어디로부터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가”2라는 물음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종말에서조차 배제되는 이중/삼중의 배제”나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시스템의 배제 논리를 강화해야 하는 비극적 운명을 살게 된다는 구조적 역설을 고발”하면서3 “인류와 인간의 범주뿐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사회의 유용성에 대해 재점검할 시간이 도래했음”4을 환기하는 작품들이 그 물음을 얼마나 충실히 던지고 또 감당하고 있는지는 좀더 따져볼 일인 듯하다. ‘환기’와 ‘고발’ 자체가 전제하고 있는 수세적 현실인식의 한계도 한계려니와 이런 논리 아래에서는 ‘배제’의 메커니즘이나 ‘구조적 역설’의 배후일 ‘국가’와 ‘자본’이 여전히 도전받지 않는 관념으로 자연화되곤 하기 때문이다. 해당 작품들이 관찰 가능한 현실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상상력에 접속한 듯 보이지만 거기서의 자유가 실은 허가받은 울타리 안에서의 자유에 불과한 게 아닌지 자꾸만 의심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문제는 “변화에 대한 어떤 상상도 불가능”한 ‘체제’가 아니라 어쩌면 그러한 불가능성 자체의 신앙화인지 모른다.

촛불혁명과 대선기간 앞뒤로 잇달아 출간된 백민석(白閔石)의 『공포의 세기』(문학과지성사 2016)와 최진영(崔眞英)의 『해가 지는 곳으로』(민음사 2017)는 그런 의미에서 묵시록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인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다. 이제 막 출간된 『해가 지는 곳으로』는 그렇다 쳐도 『공포의 세기』에 대한 주목이 충분치 않았던 것은 아쉬운 일인데, 그것이 조금 뒤늦게 도착한 묵시록인 탓도 있지만 ‘가독성’에 저항하곤 하는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에 원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재난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린 현실이나 재난 이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일종의 전사(前史)다.

 

 

2. 폭민정동 네트워크: 백민석의 『공포의 세기』

 

『공포의 세기』는 요약이 쉽지 않은 작품이다. 서사를 해체하고 있다거나 서사라고 부를 만한 것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실은 그 반대다분절된 이야기 단위들이 전체 서사의 일목요연한 파악을 어그러뜨리는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연작소설 여러편을 분해해 하나로 재조립해놓은 듯한 인상을 줄 정도인데, 부()의 구분 없이 이어지는 14개의 장은 매번 다른 초점인물을 번갈아 내세울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하나의 장 안에서 이같은 구성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따라서 『공포의 세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묘사하려면 번거롭더라도 중심인물인 모비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경, 심, 령, 효, 수 등)의 생애를 몫몫이 추출해 요약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작중현실에서 서로 한번도 마주치거나 관계를 맺지 않는다. 다만 모두가 ‘불의 혀’라 불리는 일종의 ‘성령’(聖靈)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뒤 분신(

  1. 소영현 「데모스를 구하라: 민주화의 역설과 한국소설의 종말론적 상상력 재고」, 『하위의 시간』, 문학동네 2016, 25면.
  2. 같은 책 30면.
  3. 소영현은 전자의 예로 배지영의 단편 「그들과 함께 걷다」와 김성중의 단편 「허공의 아이들」을, 후자의 예로 편혜영 장편 『재와 빨강』을 들고 자세한 분석을 시도한다. 같은 글 참조.
  4. 같은 책 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