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위기의 시대, 문학의 지혜

 

문명전환기의 감각에 대하여

시인의 감수성과 소설가의 상상력

 

 

김용휘 金容暉

대구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방정환배움공동체 ‘구름달’ 대표. 저서 『우리학문으로서의 동학』 『최제우의 철학』 등이 있음.

not-two@hanmail.net

 

 

땅에 내려앉다

 

올봄 드디어 땅에 내려앉게 되었다. 자연농에 대한 오랜 동경이 있었지만 엄두를 내지 못했다. 땅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아는 분이 300평 땅을 빌려주었다. 작년까지 농약과 비료, 제초제로 농사짓던 땅이었다. 검은 비닐이 덮여 있었고, 산짐승을 피하기 위해 울타리도 쳐져 있었다. 제일 먼저 울타리와 비닐을 걷어내고 새로 밭두둑을 만들었다. 달팽이 모양, 반달 모양, 열쇠구멍 모양으로 밭을 만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삽질과 호미질은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갈수록 편안해졌다. 먼 길을 돌아서 근본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말로만 동학을 하는 것이 싫어져서 가담하게 된 것이 환경운동이었다. 이명박정부 때였다. 환경운동은 최전선이었다. 4대강에서부터 제주 강정, 밀양 송전탑, 탈핵, 소성리 사드까지 많은 현장을 누볐다. 곳곳에서 자본의 욕망과 부딪혔다. 환경의 문제는 결국 경제의 문제이며,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중 어떤 싸움도 이기지 못했다. 내 안의 분노를 평화로 바꾸는 것이 승리의 유일한 지표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묘한 기쁨이 있었다. 더운 한여름 땀을 비 오듯 적시면서 걸었던 생명평화 순례길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천막농성장의 한구석에서 쭈그려 지새운 하룻밤이 그 어떤 잠보다 달콤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의 목소리를 따르는 삶을 살게 된 기쁨이었을까? 그 길에서 만난 얼굴들은 투쟁의 한가운데서도 때때로 어린아이 같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제도권 사람들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웃음이었다.

그러다가 2018년 봄, 우연찮은 계기로 세계적인 생태영성공동체, 인도 오로빌(Auroville)에 가게 되었다. 오로빌은 인도의 독립운동가이자 영적 구루였던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 1872~1950)의 정신을 계승하는 공동체다. 오로빈도는 우리 인류가 진화를 통해 지금의 이성적 존재를 넘어 영성적 존재, 신성(神性)의식을 가진 신인류로 한번 더 거듭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국적·인종·종교 등 모든 대립과 분열을 넘어 평화롭게 공존하며 신성한 삶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다며 ‘인류의 일체성’(human unity)을 비전으로 제시했다. 나는 오로빈도의 사상이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64)의 동학과 많은 부분에서 상통한다고 느꼈다. 비슷한 시기 이 둘은 의식의 진화와 인간 완성, 그리고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우주 진화와 역사의 필연으로 예언했다. 이들은 당시 서구문명의 충격 앞에서 단순한 저항이나 무조건적 수용의 길이 아닌 민중의 입장에서 서양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탐구했으며, 오랜 민족의 영성과 지혜를 바탕으로 그것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서를 넘어선 신문명의 비전을 제시했다.

나는 오로빈도를 통해 지금까지 동학을 일국적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던 시선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즉 동학과 같은 민중적 사상운동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라, 제3세계 민중들이 당시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에 대응해서 일어난 보편적 민중운동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반면 오로빌에서의 생활은 대안적 삶과 자본주의를 넘어선 체제전환이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지를 실감하게 했다. 진정한 변화는 인간적 성숙을 전제한 영적 각성이 수반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을 새길 수 있었다.

오로빌에서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만 2년이 채 안 되었을 때 코로나19로 인해 귀국길에 올랐다. 정착한 곳은 경주였다. 다행히 인근 대학에 강의할 자리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 인연이 된 것이 용담정 아래의 밭이었다. 수운 선생의 묘소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다. 기계를 쓰지 않고 모든 일을 호미와 삽으로 했고, 개울에서 직접 길어서 물을 주었다. 그러다보니 두달 동안 비 한방울 안 내리는 봄 가뭄을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으로 느끼며 기후위기가 현실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반면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릴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컸다. “비님, 감사합니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씨앗에서 싹이 트고 봉오리가 맺힐 때의 기쁨도 마찬가지였다. 밭 위로 두루미가 날고, 저녁 어스름 은은한 달빛의 황홀감 역시 표현하기 어렵다. 땅에 내려앉으면서 나는, 비로소 깊은 숨이 쉬어졌다.

 

 

위기의 징후들

 

경주의 시골살이는 나름 평온하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 세상을 보면 금세 마음이 우울해진다. 때로는 분노가 치밀기도 한다. 도대체 희망이 있는가 싶은 생각에 비탄에 빠지기도 한다. 기후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의 지속적 증가, 지나친 개발 광풍, 생물다양성 소멸, 사막화, 쓰레기 문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시장만능주의로 인한 서민 삶의 붕괴, 물신주의 팽배에서 오는 소외, 정신의 위기 또한 심각하다. 최근 들어 미중 간의 갈등과 전략경쟁이 치열해지고, 우끄라이나전쟁 등으로 국제적 긴장도 고조되는 상황이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는 이민자나 난민, 소수자를 외면하는 극우정당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연일 들려오는 국내 정치권의 뉴스는 차라리 코미디 같아 헛웃음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선 4차 산업의 기술문명이 더 가속화되고 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비대면산업, 바이오기술 등이 코로나19로 인해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도 현재 피부로 느껴지는 가장 큰 어려움은 대한민국의 무너진 삶이다. 여기저기서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하늘을 찌르고, 불안과 혐오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가 돈의 지배 아래 놓인 매우 천박한 사회가 되었다.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격차도 날로 심화되고 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Oxfam)에서 2022년 발표한 불평등 보고서 「죽음을 부르는 불평등」(Inequality Kills)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0% 부자들이 전체 부의 58.5%를 차지하고, 하위 50%가 고작 5.6%를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케이크 10조각을 두고서 열명 중 한 사람이 6조각을 독차지해 먹고, 네 사람이 3조각 반을 나눠 먹고, 마지막 다섯 사람은 고작 반조각을 쪼개어 먹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하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손톱만 한 조각밖에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니 곳곳에서 삶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은 당연하다. 가족들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뉴스가 이제는 더이상 충격적으로 들리지도 않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사실 가난 자체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차별이다. 못 가졌다는 이유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온갖 사회적 차별과 갑질, 인간적 무시와 손가락질이 배고픔보다 더 견디기 힘든 모멸감과 열패감을 느끼게 한다.

나는 최근의 공정 논쟁이 아주 슬프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공정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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