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이라는 서사

 

문명 전환 시대, ‘한국’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저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변혁적 중도론』(공저) 『백년의 변혁』(공저), 편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lee87@skhu.ac.kr

 

 

1. ‘한국’이라는 문제

 

대한민국 혹은 그 약칭으로서의 한국은 국호로 정당성을 얻기까지 곡절이 많았다. 1948년에야 비로소 새로 건설된 국가의 국호로 헌법에 명시되었지만 분단국가라는 선천적 결함이 있었다. 게다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 정치현실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억압 주체로서의 국가라는 이미지가 국호에 덧씌워지기도 했다. 1980년대 사회운동 단체명에 한국 대신 ‘전국’이나 ‘민족’이라는 명칭이 많이 사용된 것도 이러한 사정과 관련이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주요 사회운동 단체 명칭에 한국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된 남북관계의 현실도 이러한 결정들에 영향을 주었다. 1992년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가 결성되었고, 1993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계승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발족했다. 2007년에는 민족문학작가회의도 한국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꾸었다. 2002 월드컵 등 스포츠 행사에서 대한민국이 응원 구호로 등장했고, 2016년 촛불항쟁 시기에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외침이 널리 퍼져나갔다. 다양한 주체가 자신들을 한국 정치공동체의 주체로 선언함으로써 한국이라는 호칭과의 거리감을 해소했다. 최근에는 한국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공한 모델이라는 대외적인 평가를 받게 된 것이 한국에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더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역할과 위치를 새로 정립하고자 하는 논의도 활발해졌으며, 긍정의 대상으로서의 한국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를 둘러싼 토론 혹은 쟁투도 시작되었다. 이 쟁투의 결과는 한국이라는 정치공동체 구성원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유가 국가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사유와 국가주의가 등치관계는 아니며, 그 사이에 국가를 해방적 방향으로 전유해갈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뒤에서 살피겠지만 한국의 의미를 퇴행적으로 전유하려는 시도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 공간에 개입하는 것은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이는 한국을 특정 속성에 고정시키는 작업이 아니라 한국이 가진 가능성을 발굴하고 그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길에 대한 모색이 되어야 한다.

 

 

2. ‘한국’에 대한 퇴행적 전유: 글로벌 담론으로 포장된 분단체제 재공고화

 

한국의 국가 비전이나 정체성과 관련해 선진국 담론의 확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한 중견국가론이나 선도국가론의 제기 등을 주목할 만한 변화로 꼽을 수 있다.1 윤석열정부의 글로벌 중추국가론도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담론들이 한국의 성취를 제대로 파악하거나 그 성취를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길을 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우선 선진국 담론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 변화를 반영하고 있고 정서적으로도 수용하기 쉬워 어느덧 우리 사회에서 적지 않게 확산되었다. 그렇지만 팽창주의 혹은 우월주의와 결합될 경우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 쉽다.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보였던 중견국가, 선도국가 등의 담론은 글로벌 사회에서 위치 변화에 따른 한국의 새로운 역할을 규정하는 데 일정한 도움을 준다. 그러나 기존 질서를 전제로 국가의 역할을 논의하기 때문에 전환의 감각을 결여하고 있다. 기능주의적 접근으로 한국에 대한 사유를 평면적으로 만드는 문제도 있다.

윤석열정부가 제시한 ‘글로벌 중추국가’는 한국이 글로벌 행위자가 된 상황을 배경으로 이 행위자가 지향할 가치와 글로벌 질서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견국가론 등의 접근과 차이가 있다. 글로벌 질서의 변화에 대한 감각을 내포하고는 있지만, 내용적으로 선진국 담론의 퇴행적 전유라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이는 대국주의적 상상과 관련이 깊다.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소위 ‘G8 국가’를 향한 의욕이 이를 입증한다. 그뿐만 아니라 G8 국가라는 발상은 G7으로 대표되는 서구 연합을 중심으로 글로벌 질서를 구축하는 흐름에 참여해야 한다는 글로벌 감각에 입각해 있다. 또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와 중국·러시아 사이의 대립이라는 신냉전적 인식이 그 후경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연장선에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향한 구애도 이루어지는 중이다. 이는 동아시아 차원에서는 반중국·반러 연합,2 한반도 차원에서는 대북 압박 전략과 결합되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로 시작한 것 같지만, 냉전과 분단체제의 결합이라는 매우 낯익은 그림을 보여준다. 즉 글로벌 중추국가는 분단체제 재공고화라는 퇴행적 기획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재공고화의 움직임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며 오히려 분단체제 메커니즘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탈냉전과 한국사회의 민주화는 분단체제의 토대를 계속 약화시켰다. 분단체제하에서 형성된 기득권은 이로부터 큰 위협을 받았고 이 변화에 저항해왔다. 그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진 한국정치의 동학(動學)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대의정치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즉 서로 다른 이념과 정책 지향이 합의된 규칙을 따르며 경쟁하는 것을 가로막으려는 힘이 정치와 공론장에 개입한다. 이 힘은 어떤 목소리라도 이념의 낙인을 찍어 공론장에서 추방할 수 있는, 심지어는 그 생명도 박탈할 수 있는 무한대의 권한을 자임해왔다.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 공안기관 등의 법적·제도적 장치의 도움을 받는다. 소위 보수와 진보라는 관습화된 구분에 포함될 수 없는 힘이다. 이러한 힘을 간과하고 한국정치의 대립항을 보수와 진보로 단순화하는 것은 지금도 정치상황에 대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분단체제 기득권의 저항은 2016년 촛불항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한반도평화프로세스로 분단체제의 해체의 가능성이 도래하자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절박감도 갖게 되었다. 이에 대한 결사적 반격의 결과가 윤석열정부의 출범이다. 그렇지만 분단체제의 약화와 새롭게 만들어진 사회적 역동성은 이 기득권 세력에 지속적인 위협을 제기하고 있다. 윤석열정부 출범 직후부터 직면한 정치적 위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2022년 8월 첫째주 24%까지 하락했다. 2023년 들어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으나 40%를 넘은 적은 없으며, 7월 둘째주에 32%를 기록했다. 분기별 기준으로는 1년차 1분기(50%)를 제외하면 29%(1년차 2분기)에서 34%(1년차 4분기)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전임 문재인 대통령은 5년차 1분기의 35%가 가장 낮은 수치였다. 분단체제 및 그 기득권의 안정성을 위해서는 약화되어가는 분단체제 메커니즘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수 없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의 경험에서 확인되었다. 탈냉전의 관성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던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런데 미중 전략경쟁이 이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계기로 포착되었다. 미중 전략경쟁을 활용해, 즉 중국의 위협에 대한 대응을 매개로 글로벌 차원에서 서구 연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동아시아 차원에서 한미일 안보협력을 제도화·구조화시키고, 한반도에서는 이 구조의 하위에서 작동하는 분단체제 메커니즘을 재강화하는 기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냉전체제와 분단체제가 조응했던 것처럼 미중 전략경쟁과 분단체제가 조응하는 새로운 질서가 최종 해결책으로 등장한 셈이다.

이 점에서 윤석열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정치적 기획으로서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내적으로 등장한 “자유”와 “국가주의”의 어울리지 않지만 낯익은 결합도 우연이 아니다. 6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국자유총연맹 창립기념행사에 참석해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 세력들은 (…) (북한의)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유엔사를 해체하는 종전선언을 노래 부르고 다녔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하거나 자유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으려는 세력들이 나라 도처에 조직과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등의 발언을 하며 분단체제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초과해 작동하는 힘을 다시 전면에 내세우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윤석열정부가 출범부터 이러한 기조를 명확하게 드러냈던 것은 아니다. 윤석열정부의 집권은 문재인정부와 촛불혁명에 부정적인 다양한 흐름을 결집시켰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분단체제 재공고화라는 기조가 강화되었는데, 여기에는 다음의 요인들이 작용했다. 첫째, 분단체제 메커니즘에서 벗어난 비전을 가질 수 없는 보수의 한계이다. 이에 따라 보수 내에서 안보보수, 수구세력의 영향력이 다른 경향을 압도하게 된다.3 둘째, 집권 초기에 출현한 정치적 위기이다. 이는 한두가지 사례로 특정할 수 있는 원인이 아니라 집권능력 전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이명박정부 초기의 낮은 지지율과도 성격이 다르다. 개별 정책을 조정하더라도 해결이 난망해 보이는 상황에서 정치지형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획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셋째,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요구, 특히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압박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분단체제 메커니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분단체제 재공고화는 2022년 11월 캄보디아에서 진행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안보협력을 포함하는 한미일 협력의 강화를 선언하는 ‘인도태평양 한미일 3국 파트너십에 대한 프놈펜 성명’이 발표된 이후 더 힘을 받는 기획이 되었다. 이 성명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천명하고 북한 미사일에 대한 정보 공유와 “3국 정상은 불법적인 해양 권익 주장과 매립지역의 군사화, 강압적 활동을 통한 것을 포함하여 인도-태평양 수역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와 같이 중국을 겨냥한 협력을 그 방향으로 제시했다. 3·1절 기념사, 4월 19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 등에서 일본 문제와 양안관계에 대한 대통령의 문제적 발언이 그 뒤를 이었고, 분단체제 재공고화 의지도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었다.

 

 

3. 탈아입구의 망상과 위기의 한국

 

한국을 신냉전 및 분단구조 안으로 회수하려는 접근이 글로벌이라는 수사하에 진행되는 것이 현재 국면의 새롭다면 새로운 측면이다. G8 국가나 NATO 국가에 대한 망상에 기초한 시대착오적인 탈아입구(脫亞入歐) 기획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한국을 외교, 경제, 군사 모든 면에서 심각한 위기로 내몰게 될 것이다.

첫째, 현재 글로벌 질서가 냉전시기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어 중국과의 대립구도를 활용해 한국의 정치사회 구조를 재편하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특히 분단체제 재공고화 기획이 크게 의존하는 미중 전략경쟁도 양국관계에서 상호의존과 협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상당 기간 미국과 중국이 치열한 경쟁을 전개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과 치열한(vigorously) 경쟁을 전개하는 한편 이를 책임있게(responsibly) 관리해야 하고,4 이 경쟁이 신냉전이나 충돌(conflicts)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5 미국은 최근 자신이 적극적으로 요구해 진행된 고위급 관료의 방중(블링컨 국무장관 6.18~19, 옐렌 재무장관 7.6~9, 케리 기후특사 7.16~19)을 통해 대중정책을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니라 제한된 영역에서의 디리스킹(de-riking)과 공급망 안정을 위한 다변화(diversifying)로 설명했다.6 미국의 2022년 국가안보전략 보고서는 기후변화, 팬데믹 위협, 비확산, 불법 마약류 대응, 글로벌 식량위기와 거시경제 등을 협력이 필요한 영역으로 열거하기도 했다.7 중국은 아직은 미국의 대중국 압박정책은 협력과 양립하기 어렵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미국의 대화 요청에는 응하며 미중관계의 안정화를 꾀하고 있다.

현재 타이완이나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직접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서 현재 미중관계는 냉전시기 미소관계보다 더 위험한 면도 있기에 양국의 관계는 단기적으로는 유동적 국면에 처해 있다고 볼 수 있다.8 다만 군사적 충돌을 원치 않는 미국과 중국이 민감한 문제를 관리해간다면 미중경쟁은 점차 경제 혹은 기술 경쟁이 중심이 되는 장기·복합·저강도 경쟁으로 전개될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협력의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즉 중장기적으로 보면 미중 전략경쟁이 냉전식 진영대립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와 함께 주목해야 할 것은 글로벌 질서의 다극화이다. 최근 미국은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 혹은 권위주의’와 같은 가치와 제도 대결 프레임을 활용해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이러한 시도는 서구권 및 일부 국가에서 제한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비서구권에서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증가시켰다. 그에 따라 지리적으로는 남반구에 위치한 국가를 지칭하지만 내용적으로는 개발도상국을 가리키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내에서 미국의 자장에서 벗어나거나 적어도 미중 사이의 양자택일을 피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협력기구)의 경우 회원국 확대를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며, 인도네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20여개 국가가 가입 의사를 표명했다. 국제사회에서 글로벌 사우스에 속한 국가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기에 비록 느슨한 협력일지라도 글로벌 질서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 비동맹운동의 경우보다 훨씬 클 것이다.

글로벌 경제에서 G7 국가의 GDP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9년 67%에서 2021년 44%로 하락했다.9 반면 2010년대 중국, 인도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베트남도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2000년 GDP 순위에서 6위를 기록한 중국을 제외하면 8위까지를 모두 G7 국가들이 차지했는데, 골드만삭스는 2050년이 되면 중국 이외에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이 8위 이내로 진입하고(한국은 15위권 내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2075년에는 미국 이외에 다른 G7 국가는 모두 8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것으로 전망했다.10

앞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글로벌 질서는 냉전시기와는 다른 동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냉전식 양자택일적 프레임에 기초한 한미동맹 일변도의 대외정책으로 글로벌 사회에서 지위를 높이고 이에 기초해 국내의 정치사회 구조를 재편하려는 윤석열정부의 기획은 성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발전공간을 축소시키게 될 것이다.

둘째, 반공전초기지 역할을 하며 미국의 원조와 공산품 대미수출로 경제성장의 동력을 만들었던 냉전시기의 경제적 메커니즘이 지금은 작동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11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자국 내 산업 지원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무역·투자 정책은 과거와는 상반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혜정은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의 본질적 특징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간 체제경쟁의 새로운 대전략이 아니라 ‘중산층을 위한 외교’라는 이름으로 트럼프의 경제적 민족주의를 민중주의적으로 한층 강화한 경제적 민중·민족주의라고까지 주장했다.12 이에 따라 무역·투자 정책에서 보호주의적 성격이 더 강화되고 있으며 이는 동맹국들의 경제상황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미동맹에만 몰두하는 것은 성장동력이 계속 약화되고 있는 한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글로벌 전략을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거의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13

셋째, 분단체제 재공고화는 한반도가 상시적인 군사적 긴장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들고 군사충돌의 가능성도 높인다. 단기적으로 가장 큰 리스크이다. 과거 분단체제와 냉전체제가 조응하며 한반도에서 힘의 균형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과 다른 상황이다. 탈냉전기 북한이 체제안전에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점차 핵·미사일 능력 강화를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삼게 되었다. 이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군사적 대응도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안보 딜레마를 더 심화시킬 뿐이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앞둔 시점임에도 미국 전략자산 전개 및 한미연합 군사훈련과 북한의 ICBM 발사실험 사이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7월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된 북한 국방성 대변인 담화는 미국의 전략핵잠수함 전개를 “군사적 긴장을 위태한 상황에로 더한층 격상시키고 핵충돌 위기라는 최악의 국면까지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매우 위험한 사태의 실상이다”라고 비판했다.

 

 

4. 문명 전환과 한국의 가능성

 

위기의 징후는 이미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군사적 긴장고조는 물론이고,14 경제상황 역시 잠재성장률에 크게 밑도는 추세이다. IMF는 분기별로 발표하는 경제전망에서 한국의 2023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2022년 7월 2.1%에서 2023년 7월 1.4%까지 연속 다섯차례 하향시켜왔다. 그러나 위기가 심화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분단체제 재공고화 기획의 수정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단기적으로는 분단체제 재공고화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 이 문제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른 한국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한 사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의 가능성은 당위적 요구가 아니라 그동안 쌓은 성취에서 도출될 수 있다. 한국이 거둔 성취는 경제적인 발전 측면에서 결코 작지 않다. 2022년 한국의 무역규모는 세계 6위를 기록했고 명목 GDP는 13위를 기록했다. 2021년 블룸버그 혁신지수에서는 한국이 1위를 기록했고, 같은 해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발표하는 글로벌 혁신지수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경제적 성취는 문화 영역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가 외면하지만 한국의 성취와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활력이다.15

중요한 것은 이처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성취가 어떻게 가능했는가, 그 이면에 어떤 한계 혹은 문제가 있고 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사유를 통해 한국이 가진 가능성을 발굴하고 그 가능성을 실현할 방향감각을 정립하는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경제적·사회적 성취를 한미동맹, 재벌, 냉전과 분단체제 산물들의 기여로 귀결시키며 분단체제 재공고화를 정당화하는 시도를 무너뜨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유에는 한국이 글로벌 질서 변화의 수용자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향한 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인식도 필요하다. 기후변화, 불평등, 삶의 불안정성 증가 등 글로벌 사회에 출현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와 연관이 있다. 이 문제들은 정치적 의도를 다분히 담고 있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와 같은 구도로는 대응하기 어려우며 그 해결은 자본주의세계체제의 극복이라는 지평에서 추진되어야 한다.16 더 넓게 보면 지속 가능하고 더 나은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탐색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성취는 어떻게 이러한 문명 전환과 연결될 수 있을까? 이는 기존 모델이나 남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한국의 성취들이 식민지로의 전락, 분단과 전쟁 등의 고통을 겪으며 거둔 성과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근대시기의 식민주의를 경유해 오늘날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는 점은 글로벌 질서의 현재와 미래를 논할 때, 그리고 글로벌 사회에 대한 책임 문제를 논할 때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이다.17 한국은 이미 새로운 경로로,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내부에 축적해가는 방식으로 지금의 성취를 이루었다.

이러한 결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갑오농민전쟁부터 촛불항쟁까지에 이르는 분투의 결과이다. 이처럼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아래로부터의 분투가 지속된 다른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를 한국사회의 변화가 지지부진한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주변부에서 식민주의, 전쟁 등의 굴곡을 넘어서는 과정을 식민주의에 기대어 일어난 국가들과 단순 비교할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장애 요인에 굴하지 않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분투가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한국이 더 많은 가능성을 갖는 행위자가 된 것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참여는 경제적 성취에 큰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18 지금까지 이룬 성장에 대한 반성적 성찰의 계기도 내포하고 있다. 지금 더 적극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 과정에서 축적된 사상자원이다. 한반도는 자본주의세계체제와 조우했을 때부터 세상을 근본부터 바꾸고 새로 출발할 역사에 대한 사유를 시작했으며 이는 ‘개벽’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19 서학에 추수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고 그렇다고 서학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데 그치지도 않는,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문명에 대한 탐구였다.20 이 사상자원은 인류가 문명 전환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는 시점에서 의미가 더 크다.

2016년 촛불항쟁이 작동시킨 촛불혁명의 의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현재 촛불혁명이 갈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혁명에 담긴 대전환에 대한 기대와 거리가 있는 현실이 이러한 생각을 확산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인은 촛불혁명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계승해가기 위한 연마보다 촛불혁명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던 정부의 한계를 곧 촛불혁명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시키는 인식에 있다. 촛불혁명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한국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조우한 이후 그에 적응하면서도 더 바람직한 삶을 위한 가능성을 탐구하는 지속적 분투들의 연장선 위에 있고 이러한 분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고 여전히 진행 중인 사건이다.21

이 분투들은 근대를 지배한 급진적 혁명 모델을 따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종종 각 시대에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하던 급진적 사유의 틀에 부합하지 않는, “불철저한” 성격이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러나 이 실천들의 표면이나 직접적 결과에만 초점을 맞추어 “불철저성”을 강조하는 평가는 온당하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실천들이 체제 내 개혁에 멈추지 않고 대전환을 위한 역동성을 계속 만들어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갑오농민전쟁 실패로 돌아간 이후 개벽사상과 그에 기초한 사회운동이 그러한 역할을 했고, 한국전쟁 정전 이후 불과 7년도 되지 않은 시점의 4·19혁명은 분단극복을 포함한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운동들을 촉발했으며, 1987년 6월 민주화대항쟁은 노동자대투쟁 및 통일운동 등으로 이어졌다. 정세적 변화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지향과 결합시키려는 시도들이 계속되었는데, 이 과정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변혁에 대한 에너지가 점차 확장되어온 과정이기도 하다. 촛불혁명에서는 평화적 방식으로 정부를 퇴진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선출한 초유의 정치과정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당장의 정치적 목표만이 아니라 기후변화, 불평등과 차별 극복, 평화 등 더 근본적 변화에 대한 지향들도 담았고, 그 에너지는 여전히 여러 수준에서 사회적 역동성을 작동시키고 있다.

물론 한국의 성취 이면의 한계도 직시해야 한다. 탄소배출, 성평등, 군사주의 등의 영역에서는 성취를 무색케 하고 문명 전환의 걸림돌이 될 만한 지표를 기록하고 있다.22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대전환과 새로운 문명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글로벌 중추국가라는 허상은 이 문제에 대한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는 데서도 그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성취, 특히 사상 및 운동 차원의 성취를 잘 계승할 때 더 원만한 극복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요약하면 한국사회의 대전환과 글로벌 문명 전환의 결합이 한국이 가져야 할 방향감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과 후진, 선도와 추수, 중추와 말단과 같은 위계에 의존하는 정체성 규정을 넘어서는 한국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다. 김구 선생의 말을 빌리면 진·선·미의 실현을 지향하는 문화국가라는 발상도 가능하지 싶다.23

 

 

5. 문명론과 정세론의 결합

 

한국이 감당해야 할 이러한 문명적 과제와 작금의 정세 사이의 낙차가 매우 크다. 윤석열정부가 현재의 통치방식을 임기 말까지 유지한다면 문명 전환의 과제를 감당하는 데 필요한 자원마저 소진될 수도 있다. 현실과 무관하게 문명 전환만을 외치는 것은 공담이 되기 쉽지만 정세 악화에 대한 대응에만 급급해서는 정세의 전환도 만들어내기 어렵다.24 정세적 변화를 문명 전환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이 필요한데, 분단체제 극복이 그 중요한 연결 고리이다. 한국사회의 대전환을 막기 위한 시도가 분단체제 재공고화 기획으로 귀결되고 있는 상황도 분단체제가 관건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한국과 한반도가 강대국 경쟁의 종속변수적 위치에서 벗어나 자율적 행위자가 되고, 한국의 사회 대전환과 글로벌 문명 전환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주체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분단체제 극복 여부가 결정적 의미를 갖는다.

현재 한반도에서 남북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 비전도 장밋빛 환상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위기상황은 분단체제의 안정성이 아니라 불안정성의 표현이다. 분단체제 재공고화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국내외에 조성된 조건이나 흐름과 상충하는 기획으로 여러 차원의 위기를 촉발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필요한 것은 이러한 위기의 근원에 대한 인식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지금은 그 기획이 이념적 혹은 정치적 목표의 달성을 위해 삶의 질, 생명안전, 생태적 전환 등의 절박한 문제를 외면하거나 더 악화시키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한 시민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국가전략 변화가 현상적으로는 분단체제 재공고화와 호응하는 면이 있는 것도 분단체제 극복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북한도 신냉전론을 내세우며 남북협력에 대한 기대를 접고 핵·미사일 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발전공간을 만들려 하고 있다. 남측을 국호 호명한 것도 관심을 끌었다. 어떻게 보면 분단체제의 적대적 상호의존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적당히 관리된 남북관계하에서 남과 북이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경쟁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군사적 적대구조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적당한 관리는 달성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의 국가전략도 그들이 기대하는 바와 달리 그럭저럭 생존하는 것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북한이 이를 인식하고 노선을 변경하는 것은 분단체제 극복 과정에서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결국 군사적 적대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상호위협 감소와 신뢰 구축이 없이는 남북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어렵다. 생존과 안전이 지속적으로 위협받는 것이 가장 큰 문제지만, 한국 내부에서 사회의 대전환을 향한 모색과 실천이 분단체제의 효과에 기대는 저항에 의해 좌절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분단체제 극복은 어떤 최종 상태를 설정한 것이 아니다. 종종 등장하는 ‘통일인가, 평화인가’ 또는 ‘하나의 국가인가, 두개의 국가인가’ 등의 문제설정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가 불분명하고 과녁에서 벗어난 논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이러한 이분법을 극복할 수 있는 남북연합과 같은 실천적 방안이 제시되어 있으며 이는 상황에 맞게 다양한 수준으로 변용될 수 있는 탄력성을 갖고 있다. 남북연합을 국가연합의 한 형태로 본다면 북측이 남측을 국호로 호명한 것도 문제라기보다는 이러한 방향으로 남북관계가 나아갈 가능성을 넓힌 것이다. 다만 현재 더 중요한 것은 상호위협의 감축과 신뢰구축 과정을 촉발시키고, 이를 통해 한국의 사회 대전환을 추진할 공간을 넓히는 일이다. 지속 불가능한 분단체제의 강화라는 그 퇴행의 본질을 인식하고 분단체제 극복을 통한 한국의 가능성을 구현해가는 길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될 때 윤석열정부의 폭주도 조기에 끝낼 수 있다.

 

 

  1. 이와 관련한 여러 담론에 대한 평가는 김갑식 외 『미중 전략경쟁시대 한국의 복합대응전략』, 통일연구원 2022, 111~29면 참조. 이 중 중견국가론과 관련해서는 이수형 「중추적 중견국가론과 참여정부의 균형적 실용외교」, 『한국과 국제정치』 24권 1호, 2008과 강선주 「중견국 이론화의 이슈와 쟁점」, 『국제정치논총』 55권 1호, 2015를, 선도국가론은 이왕휘·김남국 「세계 ‘선도국가’ 개념 정립을 위한 시론」, 『국제·지역연구』 30권 4호, 2021을 각각 참조할 수 있다.
  2. 이용준 「중국을 극복하고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려면」, 조선일보 2023.6.2.
  3. 미국에서도 현재 안보논리가 대외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미중 전략경쟁이 장기화되며 경제계에서는 과도한 디커플링이나 대중제재에 부정적인 목소리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추가적 대중제재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Dylan Butts, “American chip companies need access to China and want to avoid ‘ambiguous’ sanctions, US chip trade group says,” South China Morning Post, 2023.7.18. 한국에서는 안보보수 혹은 수구 기득권 영향력이 더 압도적이어서 이러한 균열이 드러나지 않지만 그 균열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4. The White House, National Security Strategy, 2022.12.10, 25면.
  5. Antony J. Blinken, “The Administration’s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2.5.26.
  6. “Secretary of State Antony J. Blinken’s Press Availability,” 2023.6.19; “Remarks by Secretary of the Treasury Janet L. Yellen at Press Conference in Beijing,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3.7.8.
  7. National Security Strategy, 25면.
  8. 필자가 2021년 초에 발표한 「미중 전략경쟁, 어디로 가는가」(『창작과비평』 2021년 봄호)에서는 미중 전략경쟁의 저강도적 특성을 강조했는데, 그 이후 타이완 문제와 관련한 갈등이 더 고조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중·고강도 갈등의 출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유동성 상황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9. “What Does the G7 Do?”,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23.6.28.
  10. Kevin Daly and Tadas Gedminas, The Path to 2075—Slower Global Growth, But Convergence Remains Intact, Goldman Sachs, 2022.12.6, 5면.
  11. 홍석률은 냉전시기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받은 원조가 매우 예외적이었고 냉전과 한국의 경제개발이 서로 조응한 면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홍석률 「냉전의 예외와 규칙」, 『역사비평』 2015년 봄호, 118~23면 참조. 한국 공산품이 미국 시장에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만 해당되는 조건은 아니었지만 역시 냉전체제와 관련이 있다.
  12. 이혜정 「바이든의 미국 우선주의」, 『한국정치연구』 30권 3호, 247면.
  13. 빅터 차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중견국가(middle power)에서 글로벌 국가(global power)로 나아가는 구상으로 해석하고, 이는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비용을 감수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빅터 차 「(보이는 논평) 글로벌 중추국가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동아시아연구원 2022.10.12.
  14.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본호의 서재정 글 「위기의 한반도, 긴장의 동북아」 참조.
  15. 소위 가치동맹 관련 논의를 할 때 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대내적으로는 이러한 성취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 관련 논의에서는 세계 6대 군사대국이라는 것이 특별히 강조되는데 이는 당연히 대국주의적 경향과 연관이 있다. 이것이 성취에 포함되어야 할지는 한국에 대한 사유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쟁투의 주요 쟁점 중 하나이다.
  16. 이는 장기적 과정일 수밖에 없고, 이때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안체제를 지향하는 노력은 항상 중단기적이고 국지적인 과제와 관련하여 숙고되어야 한다. 유재건 「대전환과 자본주의」, 『창작과비평』 2023년 여름호, 369면. 그리고 이러한 접근법에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대한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적 인식이 요청된다. 이중과제론에 대해서는 백낙청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 송호근 외 『시민사회의 기획과 도전』, 민음사 2016을 참고.
  17. 이 문제는 지금도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2014년 7월 1일부터 4일까지 진행된 제35차 카리브공동체(CARICOM) 정상회의에서는 카리브 노예제 배상 요구안을 채택한 이후 노예 배상 문제가 글로벌 정치의 의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박병규 「카리브공동체가 서방국가에게 배상을 요구하다」, 『트랜스라틴』 30호, 2014. 최근에는 아프리카 국가들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18. 세계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달러의 현재가격 기준으로 1987년 1인당 GDP는 한국은 3555달러, 일본은 2만 749달러를 각각 기록해 상당한 격차가 유지되었으나, 2022년 한국 3만 2255달러와 일본 3만 3815달러로 격차가 거의 없어졌다. 권위주의 시기의 경제성장을 부정할 일은 아니지만 과장할 것도 아니며 민주화 이후의 시기가 지금의 경제적 성취에 더 큰 의미가 있다.
  19. 백낙청 「2023년에 할 일들」, 『창작과비평』 2023년 봄호, 29~30면.
  20. 수운 최제우의 대결과 극복이 세계사적 사건이라는 김용옥의 주장에 백낙청도 동의를 표했다. 김용옥·박맹수·백낙청 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 『창작과비평』 2021년 가을호, 94면. 이와 함께 백낙청은 동학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원불교가 만든 자원에도 큰 의미를 부여한다. 특히 소태산이 제창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원불교 개교표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맥락을 모르고 이 개교표어를 보게 되면 정신이 물질을 따라가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의 의미가 강하다. 즉 물질개벽의 시대에 이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면서도 인간이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정신개벽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김용옥은 이 개교표어가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에 입각하고 있다며 비판하는데 백낙청은 여기서 정신이 물질과 대비되는 실체가 아니라 하나의 경지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같은 좌담 116~21면. 개벽을 화두로 한국 근대 사상사의 궤적을 정리하고자 하는 시도로 조성환 『한국 근대의 탄생』(모시는사람들 2018)과 강경석 외 『개벽의 사상사』(창비 2022)를 참고할 수 있다.
  21. 이에 대한 논의는 백낙청 외 『백년의 변혁』, 백영서 엮음, 창비 2019를 참고. 백영서는 이 과정을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성취”(6면)로 표현했다. “누적적”임은 분명하나 “점진적”이라는 표현은 사태를 단순화시키는 면이 있어 보인다. 문명 전환의 시대에 이행과정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더 본격적 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책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1운동에서 촛불혁명까지 과정을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백낙청(「3·1과 한반도식 나라만들기」)과 정혜정(「3·1운동과 국가문명의 ‘교(敎)’」)은 3·1운동과 동학 및 개벽사상과의 연결고리를 제시했다(26~
    27, 153~56면).
  22. 이 문제에 대해서는 졸고 「미중 전략경쟁, 어디로 가는가」 51면에서 지적한 바 있다.
  23. 최원식은 김구 사상의 도가적 소국주의의 고갱이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대국주의를 반성하고 소국주의를 재평가하되, 국제분업의 주변부에 안주하는 소국주의로 전락하지 않는 것”, 즉 “소국주의와 대국주의의 내적 긴장을 견지하는” 것을 제시했다. 최원식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창비 2009, 28면.
  24. 백영서는 자신이 제시하는 동아시아 대안체제론의 두 기둥으로 문명론과 정세론을 제시하고, 변혁을 지향하는 이념이자 실천으로서의 조건을 갖추려면 양자가 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영서 『동아시아담론의 계보와 미래』, 나남출판 2022, 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