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홍희담

1945년 서울 출생. 1988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작품으로 「깃발」 「이제금 저 달이」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 「김치를 담그며」 등이 있음.

 

 

 

문밖에서

 

 

그 서류봉투는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모서리에는 스카치테이프가 붙어 있고 군데군데 누런 자국이 배어 있었다. 단단히 봉해놓은 위쪽은 손때가 묻어 윤이 났다. 서류봉투 뒤쪽으로 여자의 영정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눈이 크고 깊다. 작은 날개 같은 도톰한 입술은 금방이라도 웃음소리를 터뜨릴 것 같다. 검은 띠를 두르지 않았다면 단순하고도 엄숙한 죽음의 비밀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다. 햇빛이 긴 무늬를 이루며 오른쪽 벽을 지나 출입문을 비춘다. 문에는 사천왕 사진 네 장이 압핀으로 꽂혀 있었다.

문이 열린다. 수환이 들어선다. 스무살을 갓 넘긴 훤칠한 청년이다. 희고 반듯한 이마 아래 두 눈은 영정 속 여자의 눈매와 닮았다. 수환은 영정을 응시한다. 어머니. 수환의 목에서 울대뼈가 들먹거린다. 그는 책상 밑에 놓여 있는 상자를 들고 문을 나선다. 상자를 신발장 위에 올려놓고 주방으로 간다. 무심코 커피포트를 꺼낸다. 비어 있다. 영신은 항시 커피포트에 커피를 가득히 끓여놓았었다. 문득 주위에 있는 것들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눈에 보이는 것이 텅 빈 것같이 느껴진다. 베란다 창 너머로 태양이 빛나고 있다. 수환은 망연히 바라본다.

영신이 죽기 이틀 전이었던가. 위암이었는데 막판엔 시도때도없이 진통제를 맞았다. 그날도 진통제를 맞아 아직 수면으로 빠져들기 전이었다. 앙상한 뼈만 남은 상체를 일으키더니 창밖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나무의 우듬지 사이로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영신이 슬프게 말했다.

“햇빛이 좋구나.”

그녀의 눈길이 주위의 모든 것 위로 스쳐갔다. 황량한 병실이 보기 싫어서 수환이 걸어놓은 그림이며 꽃들, 그리고 영신이 아끼던 주전자와 찻잔에도 시선이 머물렀다. 눈길이 다시 창밖으로 향했다.

“내 방 책상서랍에 오래된 서류봉투가 있을 거야. 그걸 연희 아줌마에게 주어라. 책상 밑 큰 상자에는 사천왕 자료가 들었는데 법화스님께 전해드려라.”

 

법화스님이 거주하는 관음사는 정릉 골짜기에 있었다. 수환은 택시에서 내려 일주문을 지난다. 제법 무거운 상자를 사천왕문 앞에 내려놓고 잠시 숨을 고른다.

천왕은 고대신화 속에 등장하는 귀신들의 왕으로서 수미산의 동서남북을 관장한다. 불법수호 역할을 자원했기 때문에 사찰 입구에 세워졌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온몸에 푸른색을 띠고 왼손은 칼을 오른손은 주먹을 쥐고 있다.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입을 크게 벌린 것이 특색이다. 온몸이 흰색이며 손에는 창과 탑을 쥐고 있다.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붉은색이며 오른손에 용, 왼손에 여의주를 들고 있다.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온몸이 검은색이다. 비파를 들고 있다. 사천왕은 온갖 악을 경계하며 사찰이 청정도량임을 나타낸다.

“어머니는 왜 사천왕에 깊이 빠졌어요?”

수환이 영신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글쎄……”

“무섭잖아요.”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아.”

“………”

“생활이 나태해질 때 사천왕을 보면 긴장감이 들어. 어찌 보면 친근하게 어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다시 찾아보고 싶지.”

 

수환은 상자를 어깨에 메고 요사채 쪽으로 걸어간다. 대웅전은 대지에 비해 들썩 크고, 탑이며 석등 연화대는 방금 돌에서 깎아낸 듯 멀끔하다. 칠성각만이 옛 모습 그대로였다. 공양보살인 듯한 아낙이 현대식 부엌에서 얼굴을 내민다.

“어떻게 오셨수?”

“법화스님 뵈려고 왔는데…… 어제 전화를 드렸어요.”

“지금 예불중이시니까 잠시만 기다려요.”

수환은 상자를 툇마루에 내려놓는다. 어디에선가 바람이 불어왔고 뒤이어 풍경소리가 아련히 울려퍼진다.

영신이 전국의 절을 휘돌면서 사천왕을 보러 다닌다거나 사진이나 자료를 일일이 철해놓는 열성을 품고 있었음에도 정작 불자는 아니었다. 영신의 행보는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문 앞에서 끝이 난다. 대웅전은 고사하고 국보급인 사리탑이며 진귀한 탱화가 절 안에 있다 하더라도 절대 거들떠보지 않았다. 수환이 영신을 따라 해인사를 찾았을 때도 그랬다. 천왕문 앞에서 사진이나 찍겠다면서 그 부근을 떠나지 않았다. 수환은 혼자서 대웅전이며 팔만대장경을 둘러보았고, 연화대에서 목을 축이고 다시 천왕문으로 왔다. 영신은 지국천왕을 보고 있었다. 문득 영신이 고개를 돌렸다. 환각이었을까, 영신의 눈빛은 마치 지국천왕이 쥐고 있는 주먹과 같았다. 그만큼 영신의 눈초리는 사나웠다. 사천왕에 대한 집착이 병리적인 현상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그날 이후 수환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깊은 신심으로 부처에게 귀의하는 것이 한결 건강한지도 모른다.

“놔둬라.”

연희가 말했었다. 광주에 살고 있는 연희는 영신과 여학교 시절의 단짝이었다. 영신네가 십여년 전에 서울로 솔가했지만 광주에 살 때 두 여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오삭가삭했다. 연희는 서울에 오면 영신네에 묵어가곤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수환이 이 문제를 내비쳤다.

“아예 머리 깎은 사람도 서너 명 있단다.”

“왜요?”

“때가 되면 너도 이해하겠지.”

연희는 무엇인가를 아는 눈치였으나 굳이 입밖에 내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혼잣말처럼 이렇게 부언했을 뿐이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헛것이다.”

영신은 감히 청정도량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하고 사천왕문 밖에서 서성댔을 뿐이다. 무엇이었을까. 무슨 죄과였을까. 평범한 주부의 일생을 사천왕의 부라린 눈빛 속에 가둬버린 그 죄과는 과연 무엇일까.

‘저세상에도 사천왕문이 있다면 어머니, 다시는 문밖에 나오지 마세요.’

 

법화는 왜소한 체구에 초로의 스님이었다. 십여년 동안 토굴에서 수행을 했다고 영신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수환은 법화를 따라 상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법화는 우려낸 녹차를 잔에 따른다.

“고운 보살이었는데……”

법화는 상자를 연다. 사천왕에 관한 온갖 자료들을 일일이 매만진다.

“사천왕에 관심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전문적으로 연구한 줄은 몰랐네요.”

“연구하신 건 아니구요. 그녕 모으신 것 같아요.”

“모든 일에는 우연이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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