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문화사회와 탈노동사회
담론과 현실
안정옥 安釘沃
서울대 사회학과 강사. 논문으로 「현대미국에서 시간을 둘러싼 투쟁과 소비적 현대성: 노동, 시간과 일상생활」 등이 있음. oahn@freechal.com
일한다는 것, 정체성과 문화적 코드
어느 방송사에서 이채로운 한 인생을 소개했다. 스콧 버거슨은 대학을 나온 자칭 아나키스트인데 삼십여 나라를 떠돌아다니다 한국에 둥지를 틀었다. 액세서리 행상도 하지만 직업적 정체성은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 때문에 자유롭게 떠돌며 살고 그 경험을 담은 1인 잡지 『BUG』를 만들기도 한다. 잡동사니 같은 삶이 그의 라이프스타일이고, 그것이 문화건달로 자처하는 그의 유동하는 정체성의 발원지인 듯싶다. 건달이야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의 전형이지만 자신은 무언가 쓸모있게 시간을 보낸다고–즉 문화건달이라고–자부하는 것 같다. 그처럼 사는 사람을 한국 사람 가운데서도 찾아보려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그와 같은 디오니소스적 인간형은 눈흘김을 받게 되며, 잘해야 별종으로 분류되는 정도이다.
자유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평일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선 경험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필자도 그럴 때마다 괜히 동네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서울의 동네야 익명성이 지배하는 공간이 되어버린 지 벌써 오래여서 이발소 아저씨가 아니면 그다지 남의 눈에 밟힐 일도 없다. 하지만 젊은 사람이 정장을 하지도 않고 대낮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무언가 기대하는 범위에서는 벗어나 보인다. 정장은 직업인의 제복 아닌가. 실직자가 의관을 잘 갖춰입고 평소처럼 집을 나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시간에 직장 없는 사람이 만날 사람도, 그를 만나줄 사람도 별반 없을 것이다. 그에게는 집에 때이르게 돌아가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오늘날 노동은 이처럼 사회적 리듬, 관계와 정체성을 엮어주고 구성하는 핵심적인 자리에 있다. 출퇴근 시간에 무리 속에 묻혀 오가는 것이 정상적인 삶의 패턴이자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회의 리듬에서 벗어나 생활하며 일하지 않거나 일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좋지 않은 사회적 평판을 얻는다. 여기서 일이란 노동시장에 진입하여 기업이나 공공조직 등 공식조직에서 근무하는 것을 뜻한다. 그 밖의 일–예컨대, 가사노동–은 폄훼되거나 일로 여겨지지 않기도 한다. 일과 일의 장소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문화코드가 있고, 거기에 달라붙는 정체성이 있으며, 그것들은 또 변화한다.
탈산업주의적 가치, 새로운 소통양식과 문화를 중심으로 한 탈물질주의 연구는 한국에서도 다소 등락이 있지만 2, 30대의 젊은 세대일수록 일보다 여가를 선호하는 비중이 높다는 보고가 있다. 일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일을 통해 접하는 경험, 일을 통해 만나고 엮이는 사회적 관계, 일이 규정하는 나의 일상리듬과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2, 30대의 노동력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주5일 근무제가 널리 시행되면 10년쯤 후의 일과 여가문화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을 것이다.
주5일 근무제는 그 자체가 일단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여가에 대한 권리와 관련된 것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며 사회적 합의를 완전히 보지 못한 채 제도화 단계에 들어선 주5일 근무제는 노동과 일상생활의 사회적·문화적 모습을 어떻게 바꾸어놓을 것인가? 탈물질주의 가치관이 더 폭넓게 확산되며 노동중심 사회에서 문화중심 사회로 옮겨가는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탈노동사회로서 문화사회 담론은 탈노동(post-work)을 문화적 대안을 위한 조건으로 부각시키며 이러한 관심을 넓히고 있다.
탈노동사회로서 문화사회 담론의 지형
한국사회에서 소위 정상근무시간인 9시에서 6시 사이에 일하는 사람의 비중은 계속 줄고 있다. 거꾸로 오전 9시 이전 또는 오후 6시 이후에 일하는 사람의 비중은 늘고 있다.1 일을 더 일찍 끝내거나 교대근무체계에 따라 더 늦게 시작하는 경우도 있을 터이지만 이들이 대안적인 생활양식을 추구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노동시간과 생활기회가 분절화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한국에서 일본의 프리터(free arbeiter)나 볼류바이터(voluntary arbeiter), 독일의 시간개척자(time pioneer)처럼 대안적인 노동형태를 추구하며 새로운 생활양식을 가꾸는 집합적 현상이나 범주가 출현하지는 않았다. 비주류 하위문화의 소수자를 가리키는 ‘문화건달’이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쓰임새가 폭넓지는 않다. 그보다는 가전(家電)제품 대신 개전품(個電品)을 사용하는 수십만에 이르는 젊은 남녀로 이루어진 씽글족이나 코쿤(cocoon, 누에고치)족의 라이프스타일이 주목받는데 미혼시절의 과도기적 변화로 끝날지 그 이상 나아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들의 노동과 생활양식에 관한 정확한 실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아직 소수지만 독일의 시간개척자는 노동사회의 생활양식과 다른 대안적 생활양식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2 1980년대 임시직의 다중직업인으로서 노동과 분리된 소득보장운동을 벌인 욥버(Jobber)가 유연화라는 시장기제의 공세 속에 실패하였다면,3 시간개척자는 유연화가 제공하는 신축적 노동과 시간제 노동을 적극 추구하는 집단이다. 이들은 일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숙련된 노동을 추구하지만 노동에서 자유로운 시간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더 많은 가처분 소득을 위한 더 많은 노동과 더 많은 돈을 쓰는 여가소비보다는 시간의 경제에서 자유로운 시간 자체가 라이프스타일의 핵심적 구성요소가 된다. 더 많은 ‘가처분 시간’은 더 많은 자기성찰의 시간이고, 이는 다시 생활세계의 사회화 형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원이 된다.
일본의 프리터는 1982년 50만명 정도에서 1996년에는 151만명 정도로 늘었다. 프리터의 60%는 여성이고 20대 초반이 중심이나 30대 중반까지 분포한다. 정규고용노동 중심의 생활방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간개척자와 유사하기도 하지만 그 구성과 성격은 조금 복잡하다. 가장 많은 유형은 남녀 공히 학교를 떠난 모라토리엄형이다. 남자의 경우에는 입학 전에 비정규노동을 추구하는 기간한정형과 취직 전에 정규고용을 지향하며 파견근무를 하는 유형이 그 다음으로 많다. 여성의 경우는 예능 지향형과 프리랜써 지향형이 그 다음으로 많은 편이다. 가족 병가나 파산 때문에 프리터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능 지향형과 프리랜써 지향형이 시간개척자와 비교적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4
이렇듯 일본의 프리터는 사실 어느 정도가
- 이은진 「직업별 노동시간의 변화: 생활시간 조사 결과(1985〜1999) 자료를 이용하여」, 『사회연구』 제14집(경남대학교 사회학과 2001). ↩
- Karl H. Hörning (et. al.), Time Pioneers: Flexible Working Time and New Lifestyles (Cambridge, UK: Polity Press 1995). 시간개척자는 고유명사는 아니다. ↩
- 최우성 「역자 해제」, 『문화과학』 2001년 여름호 129면. ↩
- 日本勞/硏究機構硏究所 엮음 『フリ-タ-の意識と實態: 97人へのヒアリンブ結果より』(日本勞/硏究機構 2000). 일본 프리터 조사자료를 알려준 김순영님께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