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송기원 宋基元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소설집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 등이 있음. ssong712@hanmail.net

 

 

 

물총새 성관이

 

 

“선배님, 혹시 명월각 아세요?”

Y시인이 물어올 때만 해도 나는 명월각이 얼핏 기억에 잡히지 않아 무심코 되물었다.

“명월각?”

“예, 명월각 말예요.”

나는 쉽게 고개를 저으며, 농담조로 되물었다.

“이름으로는 무슨 기생집인 모양인데, 왜? 거기 있는 기생이 혹시 나 몰래 아이라도 낳아서 기르고 있대요?”

나의 농담조에 좌중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와와, 하고 떠들썩한 웃음판이 벌어졌다. 소리에 비해 다소 맥이 풀린 듯한 느낌도 없지 않은 웃음과 함께, 좌중에는 잠깐 반짝, 하고 일말의 기대가 감돌았다. 2박3일의 결코 짧지 않은 술자리 끝에, 마침내 파김치가 되어 해장국 대신에 물냉면을 시켜놓고 앉아 있으면서도, 어쩐지 이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저마다 나름대로 다시 술자리를 이어갈 무슨 구실을 찾던 중이었다.

“기생집이 아니고, 중국집인데요.”

Y시인 역시 좌중을 따라 아직도 웃음이 번진 얼굴로 말했고,

“내가 아무리 진 데 마른 데 가리지 않고 헤프게 흘리고 다녔다 해도, 아직 중국집에서까지 흘린 기억은 없는데?”

내가 일말의 어떤 기대감을 대신하여 여전히 농담조로 밀고 나가자 좌중에는 다시 한번 웃음이 넘쳐났다. 기실 나 또한 속으로는 지금의 술자리가 깨지는 데 대한 아쉬움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요즈음처럼 사람살이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너나없이 각박해져서 서로 마음을 열고 즐길 수 있는 하룻밤의 술자리마저 흔치 않은 시절에, 더군다나 몇년 사이에 벤처니 디지털이니 인터넷이니 문화콘텐츠니 멀티미디어니 하는 말들이 시류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나 소설을 쓰는 일이 그 시류의 무슨 값어치로 친다면 그야말로 철지난 아날로그 기술처럼 똥값으로 치부되어 맨 밑바닥에서 허비적거릴 것이 분명한 때에 글쟁이들끼리의 술자리가 모처럼 2박3일 이어졌다면, 그동안 함께 잔을 부딪치고 한방에서 나뒹군 일행들 사이에 엮어진 정감 또한 그 끈끈함이 예사롭지 않을 터였다. 일행들은 다른 것은 고사하고 모처럼 알게모르게 서로의 사이를 엮은 그 정감이 애틋해서라도 술자리를 쉽게 끝낼 수는 없었다.

“그 명월각이 바로 새재에 있어요.”

Y시인의 입에서 새재라는 지명이 나오자, 나는 더이상 농담조로 밀고 나가지 못하고 아연 긴장을 했다.

“새재라고?”

“예.”

새재는 바로 나의 고향이다. 그러고 보니, 30년도 훨씬 넘는 흐린 기억의 저편에서 장터의 버스정류장 옆에 있는 명월각이 선명하게 되살아왔다.

“아니, 어떻게 새재에 있는 명월각을 알아요?”

“거기 명월각이 제 첫직장이었거든요.”

“첫직장이라니, Y형 고향이 거기가 아니잖소?”

“물론 아니지요.”

“고향도 아니면서, 그 촌구석까지 어떻게 간 거요?”

“우연찮게 아는 사람 소개를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이 잘못 꼬였더군요.”

“그건 그렇고, 도대체 그게 언젯적 얘기요?”

“제가 열네살 먹었을 때니까, 가만있자, 칠십년대 초네요.”

“열네살이라구?”

“예, 열네살이요.”

“아니, 열네살짜리가 명월각까지 와서 뭘 했어요?”

나의 계속되는 물음에, Y가 커다란 덩치를 뒤틀며 베시시 웃었다.

“에이, 선배님도 차암, 뻔한 걸 왜 물어요? 짜장면 배달 뽀이! 요즘말로 하자면 짱깨족!”

내가 한동안 망연자실하여 말이 없자, Y가 덧붙였다.

“말이 쉬워 짜장면 배달이지, 발이 페달에 닿지 않아 자전거를 탈 수도 없어서 그 큰 배달통을 들고 일일이 걸어다녀야 했어요. 그때는 제가 키가 작아 짜리몽땅도 그런 짜리몽땅이 없었어요. 키가 그 모양이다보니 자전거는 고사하고 배달통마저도 숫제 땅에 질질 끌리는 거예요. 그렇게 땅에 질질 배달통을 끌며 면사무소랑 지서랑 중학교며 초등학교며 농협이며 그야말로 새재 장바닥을 휩쓸고 다닌 셈이에요.”

Y시인은 한번 입이 열리자 새재에서의 일이 흡사 무슨 즐거운 추억거리라도 되는 양, 어딘지 모르게 들뜬 기색으로 떠들었다.

“그나마 짜장면만 배달하면 좋겠는데, 배달이 끝나면 물지게로 물 져날라야지, 산더미처럼 쌓인 그릇들 닦아야지…… 당시만 해도 새재에는 상수도가 없어서 면사무소 우물에서 물을 져날라야 했는데, 어휴, 엄동설한에 물 져나르고 그릇 씻다보면 손등이 얼어터져 피가 줄줄 나는 거예요. 아침에 눈 비비고 일어나 자정 무렵에 잠들 때까지 그야말로 눈코뜰 새 없는 건 물론이고, 잠깐 어디 숨어서 히잉히잉 울 틈조차 없는 생활이었어요. 제가 이렇게 무뎌 보여도 생긴 것에 비해 감수성은 남달리 예민한데, 생전 처음으로 남 밑에서 일을 하다보니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며 아버지며 동생들까지 식구들 품이 여간 그리워야지요.”

“열네살이라면 국민학교를 갓 졸업하고 중학교나 다닐 무렵인데……?”

“에이, 제 가방끈이 정식으로 따지자면 국졸이 전부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중학교는 무슨 중학교예요? 그런데 그렇게 열네살짜리가 처음으로 취직해 벌어낸 월급이 얼만 줄 아세요?”

“글쎄.”

“보리쌀 두 말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저를 명월각으로 보내면서 아버지가 미리 선불로 당겨 썼더라구요. 아이구우, 겨우 보리쌀 두 말에 열네살짜리가 한겨울 내내 그 고생을 하다니, 훗날 돌이켜 생각해도 어쩐지 분한 것 있지요?”

내가 여전히 망연자실하여 미처 무어라 대꾸를 못하고 있자, Y시인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여튼 그 명월각을 시작으로 제가 지금까지 밑바닥 일은 안해본 게 없을 정도예요. 약간 뻥을 치자면 백가지가 넘을지도 몰라요. 식료품 상회, 빵공장, 갈비집, 설렁탕집, 보석상 시다를 거쳐 공사장 잡부, 구두닦이, 싸롱 웨이타, 나이가 들어서는 우유배달, 목수……”

이때 H작가가 불쑥 Y시인의 말을 막고 나섰다.

“아, 제발 그만 해둬. 그놈의 징글징글한 과거사를 무슨 자랑이라고 또 떠들어대는 겨?”

“알았어. 그만두라면 그만두지 뭐.”

나는 어쩔 수 없이 새삼스러운 눈길로 Y시인을 건너다보았다. 그런 나의 시야에는 환상인 듯 어린 그가 배달통의 무게 때문에 한쪽으로 잔뜩 어깨가 기울어진 채 낑낑거리며 새재의 장터바닥을 이리저리 휩쓸고 다니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70년대 초라면 어쩌면 나 또한 우연찮게 명월각에 들러 어린 그가 손등에 피를 줄줄 흘리며 닦아낸 그릇에 담아낸 짜장면을 먹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빗자루로 의자 밑을 쓸던 그의 손길이 나의 발에 닿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상상 속에서 어린 그를 만나자 순간 흡사 목구멍이라도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딱히 좌중의 누구라고 할 것이 없이 말했다.

“도무지 안되겠어. 혼자서라도 소주 한잔은 마셔야겠는데.”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Y시인이 말을 받고 나섰다.

“명월각 이야기가 나오면, 분명히 선배님이 술을 시킬 줄 알았어. 어이 주당들, 어때? 내 전략 좋았지?”

Y시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일행들이 와와, 함성을 질렀고, 거기에 덩달아 그가 호기롭게 외쳤다.

“자, 오늘도 힘차게 제껴봅시다아!”

마침내 물냉면과 함께 술이 나오고 또다시 대낮부터 때이른 술판이 벌어지면서, 나는 일행들 사이에 예의 끈끈한 정감이 엮어지는 과정을 좀더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자, 마시고 죽자. 그래, 한번 죽지 두번 죽냐. 그런데 왜 이렇게 오늘따라 술이 맛있냐? 야, 어디 술만 맛있냐, 분위기는 또 어떻고? 카아, 분위기 좋고오. 야,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좋은 법이여. 그래그래, 일년 삼백육십오일이 더도 말고 꼭 오늘만 같어라아.

일행들은 벌써 한 순배에 술이 취해서 눈이며 얼굴이 벌겋게 된 채, 저마다 술자리에서 무슨 꽃들처럼 활짝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Y시인은 누구보다 더 활짝 핀 꽃이 되어 한껏 신명이 올라 다시 시작한 술자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랬다, 저 꽃들이야말로 다름아닌 끈끈한 정감이 활짝활짝 피워낸 것이지 않으랴.

따지고 보면 애초에 술자리 일행들을 엮어버린 정감의 시작은 다름아닌 Y시인이었다. 그가 이렇다 할 무슨 학연이나 혈연도 없이 산도 설고 물도 선 서해안 변방의 작은 도시로 흘러들어 우연찮게 H작가를 만나 서로 글쟁이라는 이유만으로 바늘과 실처럼 얽혀들어 10년 남짓을 술친구로 사귀게 된 하고많은 사연들은, 그의 타고난 입심에 힘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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