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와 한미동맹

 

 

서재정 徐載晶

코넬대학 정치학과 교수. 편역서로 『탈냉전과 미국의 신세계 질서』(공편), 공저로 Rethinking Security in East Asia: Identity, Power, and Efficiency(근간) 등이 있음. suhjaejung@hanmail.net

 

 

한미동맹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주한미군 일부를 이라크로 차출하겠다는 계획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한미동맹의 변화에 대한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주한미군의 감축규모와 한미동맹의 위상변화에만 그 촛점이 맞춰져 있지, 한미관계의 질적 변화를 초래하는 구조적 요인에 대한 분석은 미흡한 면이 있다. 한미동맹의 변화는 ① 한국의 민주화 ② 동북아시아 냉전체제의 점진적 와해 ③ 9·11에 편승한 미국의 전략변화라는 세 가지의 구조적 변화가 맞물려 나타난 결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셋 중 미국의 전략변화 분석에 촛점을 맞추고자 한다. 미국의 전략변화는 ① ②의 두 가지 구조적 변화에 대한 미국의 능동적 대응이라는 측면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동북아의 변화가능성을 일정한 방향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내적 민주화의 결과로 많은 변화가 초래되었다. 민주화는 대외관계에서도 한미동맹만이 존재하던 상황을 변화시켜 다양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하는 한편, 미국과 북한에 대해 더욱 자주적인 입장을 지향하는 다양한 세력이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전면에 부상케 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부적 변화는 한미동맹이 이전과 같은 헤게모니적 지위를 더이상 관철시키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음을 의미하고 이에 따른 변화를 강제하는 한 조건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외관계에 서 내적 민주주의의 진전에 상응하는 발전이 이뤄지지 못해 사회의 요구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고, 정부 내외의 기존 외교안보 주도세력이 여전히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대안적 외교안보 세력과 정책의 등장이 지연되는 한계가 존재하기도 한다.1

한미관계의 변화를 추동하는 두번째 구조적 요소는 동북아질서의 변화이다. ‘냉전의 섬’이라 불리던 한반도에서도 남북정상회담 이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경제적 교류와 인적 접촉이 이뤄지며,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남북간 군사회담을 통한 초보적인 신뢰구축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북·미 갈등구조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진전되던 남북관계가 극히 제한적이나마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에 이어 관계정상화가 적극적으로 모색되는 북일관계에서 더욱 진전된 모습으로 확인된다. 한편 한국과 중국 사이는 경제교류 확대와 정치적 접근이 이루어지는 반면, 미국과 중국 사이는 경제교류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긴장관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동북아의 이러한 과도기적인 모습도 한미관계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 미국의 신전략에서 동북아는 전쟁억제를 위해 미군을 전진배치하기로 한 4개 지역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 ‘신속한 승리’를 추구하는 주요전쟁 예상지역 두 곳 중 하나이다. 두 곳의 주요전쟁 예상지역 중 ‘결정적 승리’를 거두겠다는 지역이 한반도가 될지 다른 곳이 될지는 미국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미군이 전진배치되는 4개 지역이 중국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의 장기적인 전략지향점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은 한국 민주화 및 동북아 냉전구조의 와해가 열어놓은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견제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1년 채택되고 2002년 정식화된 이러한 전략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미군은 현재의 군사력을 21세기형 미래군으로 변환시키는 한편 전세계에 걸쳐 군사력 재배치를 추진하고 있다. ‘군사변환’과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lobal Posture Review, GPR)은 미국의 신전략을 이행하기 위한 양대 축인 셈이다. 미군의 구조조정은 주한미군 재조정과 미군기지 재배치를 규정하는 전략적 지침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미국의 구도 속으로 더욱 깊숙이 끌어들이는 힘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북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 한반도 안보상황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중국과 아시아·태평양 일대에 대한 미군의 개입능력을 강화, 미국과 아시아 사이의 군사력 불균형을 가속화하고 군비경쟁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첨단과학기술에 의한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21세기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평화)를 이루려는 구상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미군 재배치는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21세기 한반도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1. 미국 탈냉전 전략의 변화

 

(1) 부시행정부의 탈냉전 전략과 동아시아 미군감축 계획

미 상원은 1989년 7월 ‘넌-워너(Nunn-Warner) 수정안’을 통과시켜 “아시아에서 동맹국을 지역의 안정을 위해 어떻게 참여시킬 것이며, 동아시아 주둔 미군을 어떻게 감축하고 재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국방부에 요청하였다. 이러한 미 의회의 요구에 따라 미 국방부가 작성한 것이 1990년 4월에 제출된 「동아시아전략구상」(East Asia Strategic Initiative, EASI)이다. 이 보고서는 탈냉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 극동러시아와 북한이라는 ‘냉전형 위협’이 잔존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 대응한 ‘지역의 안정유지’를 미국의 국익으로 규정했다. 동아시아에 미군이 지속적으로 주둔하는 것은 ‘역내 미국의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토대라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탈냉전 시기에는 미군을 감축해도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이 보고서의 핵심이다.

이같은 동아시아 전략의 배경에는 미국의 세계전략 변화가 있었다. 부시행정부는 전세계적 차원에서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의 위협을 막는 이전의 봉쇄전략을 폐기하고, 탈냉전 시기에는 이라크 및 북한과 같은 지역적 위협에 대응한다는 ‘지역방위전략’을 채택했다. 당시 콜린 파월 미 합참의장은 이러한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력으로 ‘기본병력’ 구상을 제시했다. 이 구상에 따라 미 국방예산과 병력규모는 25% 삭감하기로 했고, 이는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감축을 강제했다.

「동아시아 전략구상」 보고서는 한국·일본·필리핀에 배치되어 있는 미 지상군과 공군병력을 3단계에 걸쳐 감축할 것을 제시했다.3단계 계획 중 제1단계 감축계획에 따라 1992년까지 한국에서는 7000여명, 일본에서는 4800여명, 필리핀에서는 1만1000명의 미군이 감축되었다. 이에 한국군의 방위역할이 증대되어 한미야전사령부가 해체되고, 한미연합사령부 예하의 지상군구성군사령부가 분리되어 한국군 장성이 사령관에 임명된다. 그러나 2단계 감축은 이미 1991년 말부터 차질이 생겼다.소위 ‘북핵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1991년 11월 한국과 미국 국방장관은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북한의 핵개발 위협과 불확실성이 사라지고 이 지역 내의 안보가 완전히 보장될 때까지 넌―워너 2단계 주한미군 감축을 연기하기로 합의”한다.2 이러한 변화 등을 반영해 1992년 7월 미 국방부는 제2차 ‘동아시아전략구상’에 따라 1993년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2단계 이후의 감군계획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2) 클린턴행정부의 양대전쟁전략과 동아시아 미군감축 중단

보류되던 부시행정부의 아시아 주둔 미군 감축정책은 1993년 클린턴행정부가 통상 ‘윈-윈’(win-win)이라고 알려져 있는 양대전쟁전략을 채택하면서 공식적으로 종식된다. 전임 부시행정부가 채택한 ‘지역방위전략’을 계승하되, 안보적 위협이 존재하는 지역을 중동과 한반도로 구체화하고 이 양대전장에서 동시에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전략이 채택된 데는 1991년 걸프전과 1990년대 초의 1차 북핵위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양대전쟁전략은 이후 미국 세계전략의 중심이 된다.

애스핀 국방장관이 1994회계년도 국방예산편성방침의 형태로 1993년 9월 발표한 「전력편성의 전면검토」(Report on Bottom-Up Review)는 “미군은 두 개의 주요한 지역분쟁에서 거의 동시에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편성”되어야 한다며 양대전쟁전략을 정식화한 첫 공식문서였다. 양대전쟁전략은 ‘지역방위전략’의 효율적 이행방안으로 이전부터 검토되던 ‘윈-홀드―윈’(win-hold-win)이 요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군사력과 국방비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력편성의 전면검토」의 채택은 미군의 감축계획에 큰 영향을 주었다.양대전쟁전략은 이후1997년에 발표된 「4개년국방검토」(Quadrennial Defense Review)에서 재확인된다.

클린턴행정부가 1995년 2월 「동아시아전략검토」(일명 「나이Nye 보고서」)를 발표하고 아시아와 유럽에 각각 미군 10만명을 유지하겠다며 전세계적인 미군 감군계획에 쐐기를 박은 것도 이같은 전략변화에 따른 것이었다. 즉 유럽에 배치한 10만명으로 이라크와 같은 불안정 요소에 대처하고, 아시아에 배치한 10만명으로 북한이라는 위협에 대응한다는 것이었다. 주한미군의 3단계 감축계획 중 2단계와 3단계의 추가감축은 ‘연기’와 ‘유보’를 되풀이하다가 이로써 완전히 취소된 것으로 보인다.3 한편 한·미 양국은 미국이 양대전쟁전략을 정식화한 직후인 1993년 11월 이 전략의 이행을 위한 방안 및 한미연합사의 작전태세 등을 조정하기로 했다.

 

(3) 부시행정부의 ‘1-4-2-1 전략’과 미군의 재편

9·11사태가 터진 지 20여일 만에 부시행

  1.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후마니타스 2002 참조.
  2. 제23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서(서울, 1991년 11월 21일), 강조는 인용자.
  3.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은 1991년 2단계 주한미군 감축을 ‘연기’하기로 한 이후 1992년부터 1994년까지는 2단계 감축을 ‘유보’한다는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1995년부터는 2단계 감축에 대한 언급 자체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