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미국 민주당 경선 현장

뉴딜 2.0 질서의 개막?

 

 

안병진 安秉鎭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전 미래문명원 원장. 저서 『트럼프, 붕괴를 완성하다』 『예정된 위기』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등이 있음.

nsfsr@khu.ac.kr

 

 

운명의 분기점이 될 2020년 미국 대선

 

미국 대선이 전세계인에게 중요하지 않은 적은 거의 없다. 미국 유권자들은 마치 다보스포럼에 초대받은 유력 인사들처럼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결정에 초대받은 슈퍼 대의원이나 다름없다. 나는 가끔 미국 대선에 지구시민들도(더 나아가 지구행성의 미래를 보호하는 대리인들도!) 선거인단으로 참여하는 유토피아적 개혁안을 꿈꾸곤 한다. 그런데 내년 대선을 앞두고 더 자주, 더 절박하게 꿈을 꾸게 된다. 이번 선거는 지구인의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이기 때문이다.

한때 미국 정치학계에 ‘중대선거이론’이 유행한 적이 있다. 시대의 결을 결정하는 분기점이 되는 선거와 그 이후 정치질서의 성격을 분석한 이론이다. 예를 들어 프랭클린 로즈벨트(Franklin Roosevelt)의 진보적 뉴딜 시대를 개막한 1932년 선거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중대선거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로는 더이상 중대선거가 없는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시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나는 이제 중대선거론이 이론적으로 복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2016년부터 2032년까지 12년간 열리는 4번의 대선은 모두 잠재적으로 중대선거이다. 왜냐하면 기존 중대선거론의 변수였던 정치적 균열의 어젠다, 유권자 지형 변화 등을 훨씬 압도하는 거대한 두가지 지진판이 요동치기 때문이다. 바로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의 이행’이다.

구떼흐스(A. Guterres) 유엔사무총장은 이미 작년 초에 인류는 2020년까지 급격히 기존 발전주의 경로를 바꿔야 한다는 적색경보를 발령한 바 있다. 이어 올해 5월 호주에서 발간된 기후위기에 대한 시나리오 플래닝 보고서는 2020년에서 2030년 사이에 전시(戰時) 수준의 동원 노력이 없다면 전세계 대부분의 주요 도시가 빠르게는 2050년경부터 재앙적 수준으로 변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1 그리고 최근 자본주의와 ‘국가자본주의’(중국과 러시아)가 과연 민주주의 붕괴와 기후파국을 막을 수 있는 제도인지에 대한 회의가 광범위하게 증가하고 있다. 공유사회(commons), 생명체제(biocracy), 탈성장사회, 생태사회주의 등 다양한 백가쟁명식 대안 담론은 이제 주류 사회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향후 10년은 이 기후위기와 자본주의의 재정렬로 인해 지구적 질서가 어디로 이행할지를 결정하는 시스템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작고한 월러스틴(I. Wallerstein)은 이 분기점을 대략 2050년경으로 예상한 바 있는데, 기후 위기가 과학자들의 예상보다 더 가속화되면 그보다 앞당겨져야 할지도 모른다.

2020년 미국 대선과 민주당의 진로는 바로 이 대전환의 시대라는 흐름 속에서 작동한다. 미국 민주당 경선의 현재 양상과 대선 전망에 대한 글을 요청받으면서 필자의 머릿속에는 다음의 네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첫째, 오늘날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등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들은 심지어 ‘페이스북’의 기업 분할까지 대담하게 주장하며 기업계 일각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이제 미국 민주당은 한국 진보의 꿈이었던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바뀌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민주당에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가? 둘째, 민주당의 새 비전과 어젠다들은 어떤 강점과 약점을 지니는가? 그리고 이 어젠다로 집권이 가능한가? 셋째, 현재 민주당 후보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만약 민주당 시대가 열린다면 과거 로즈벨트 때의 중대선거처럼 새로운 뉴딜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오늘날 미국 민주당이 한국의 미래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이 짧은 글에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상세히 담기란 어렵다. 다만 나의 간단한 스케치는 다음과 같다. 현재 미국 민주당은 지난 수십년간의 클린턴주의 정당에서 뉴딜 2.0 정당 질서로 전환 중이다. 만약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중간에 혼란이 있더라도 단계적인 뉴딜 2.0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

 

 

뉴딜 2.0으로 이동하다

 

최근 미국 민주당의 변화는 정말 격세지감이다. 과거 1992년 빌 클린턴 후보의 핵심 ‘386’ 측근인 조지 스테퍼노펄러스(George Stephanopoulos)는 당선 후 자신이 잘 안다고 자부했던 클린턴의 메시지가 조금씩 이상하게 변해가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 당혹해한 바 있다. 나중에서야 그는 그린스펀(A. Greenspan)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루빈(R. Rubin) 전 씨티그룹 회장, 써머스(L. Summers) 전 하버드 총장 등의 신자유주의자 군단들이 클린턴의 귀를 장악한 것을 알게 되고 절망감에 빠졌다. 비슷한 일이 오바마의 ‘386’들에게도 발생했다. 오바마는 놀랍게도 재무장관으로 써머스 진영의 가이트너(T. Geithner)를 임명하여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조롱하는 한국 같은 천민자본주의에서나 볼 수 있는 구제금융의 대마불사 신화를 완성했다. 그런데 그런 써머스가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포스트 케인즈주의자들의 유효수요 창출, 임금주도성장과 유사한 어젠다를 이야기하면서 비주류 경제학자들을 당혹시키고 있다. 클린턴, 오바마 시대에서 오늘날 워런 스타일 민주당 시대로의 이행은 세가지 이론(‘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진보적 네트워크 국제질서’ ‘진보적 포퓰리즘과 운동 정치’)으로 전환하는 것이라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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