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미국, 중국과의 대결에 나서다
찰머스 존슨 Chalmers Johnson
일본정책연구소(Japan Policy Research Institute) 소장. 캘리포니아대학의 버클리 및 쌘디에이고 캠퍼스에서 30년간(1962~1992) 강의를 하고, 버클리에서는 중국학연구소 소장과 정치학과 학과장을 역임했다. 1953년 미국 해군장교로 일본을 처음 방문한 이래 오랫동안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일본 및 동아시아와 관련해서 ‘수정주의’적 관점의 연구를 수행했다. 1976년에는 미국 예술과학원 회원에 선출되었다. 수많은 논문과 16권에 이르는 저서가 있으며, 최근의 대표적 저서로는 『블로우백』(Blowback, 2000)과 『제국의 슬픔』(The Sorrows of Empire, 2004)이 있다. chaljohnson@mindspring.com
*이 글은 National Institute의 웹진 Tomdispatch.com(2005년 3월 15일)에 수록된 “No Longer the ‘Lone’ Superpower: Coming to Terms with China”를 완역한 것이다. 일본정책연구소의 웹싸이트(www.jpri.org/publications/workingpapers/wp105.html)에서 원문과 함께 인용문 출처와 기타 참조사항을 볼 수 있다―편집자. ⓒ Chalmers Johnson 2005 / 한국어판 ⓒ (주)창비 2005
40년 전 내가 중국과 일본의 국제관계 분야의 신임교수로 재직할 당시, 라이샤워(Edwin O. Reischauer)가 “1945년 우리의 승리에서 얻은 최고의 소득은 일본을 영구적으로 무장해제시킨 것이었다”라고 논평한 일이 기억난다. 일본에서 태어나 하바드에서 일본역사를 전공한 라이샤워는 케네디와 존슨 행정부에서 주일 미대사로 봉직한 바 있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1991년 냉전 종식 이래, 특히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집권 이래 미국은 사력을 다해 일본의 재무장을 고무하고 심지어 가속화해왔다.
상황이 이렇게 진전됨에 따라 동아시아의 두 초강대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적대감이 조장되고, 중국과 한반도의 내전에서 남겨진 타이완과 북한이라는 두 문제 지역에서 실현가능한 평화적 해결책이 거부당하고 있으며, 십중팔구 미국이 패배할 향후 중·미간 충돌의 기초가 놓이고 있다. 워싱턴의 이데올로그와 전쟁광 들은 자신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이해하고나 있는지 불분명하다. 그 결과란 세계에서 가장 급속히 성장하는 공업경제국 중국과, 비록 쇠퇴하고 있긴 하지만 세계에서 두번째로 생산력이 높은 경제대국 일본의 대결인데, 미국은 이 양자간의 대결을 부추기려 하지만 그로 인해 미국 스스로가 소진될 공산도 아주 크다.
우리가 동아시아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부시와 체니(Dick Cheney)가 옹호하는 소규모의 정권교체(regime-change) 전쟁 따위가 아님을 분명히 해둬야겠다. 따지고 보면, 지난 세기 국제관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영국과 미국 같은 부유한 기성 열강이 독일·일본·러시아의 새로운 세력중심이 부상하는 상황에 평화롭게 적응하지 못한 점이었다. 그 결과는 피비린내나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러시아와 ‘서구’의 45년간의 냉전, 그리고 유럽과 미국, 일본의 제국주의 및 식민주의의 오만과 인종주의에 대항하는 (25년간의 베트남전쟁 같은) 무수한 민족해방전쟁이었다.
21세기의 주된 문제는 전지구적 세력구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런 치명적인 무능함을 극복할 수 있는가 여부이다. 지금까지의 징후는 부정적이다. 오늘날의 상황에서 부유한 기성 열강이라 할 미국과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속성을 유지한 문명인 중국의―이제는 현대적인 초강대국으로서―재등장에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면 중국의 승세가 또 하나의 세계대전으로 매듭지어지면서, 미국과 일본의 돌출로 구현된 서구문명의 위세가 마침내 끝장날 것인가? 이것이 당면한 문제이다.
터무니없는 정책과 최대의 재정위기
중국, 일본,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생산력이 높은 경제권들이지만, 중국이 (20년 이상 연평균 9.5%의 속도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미국과 일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성장률 침체까지 겪고 있다. 중국은 오늘날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큰 경제국이며(미국과 일본이 각각 첫번째와 두번째이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이어 세번째로 큰 미국의 무역상대국이다. 미국 CIA의 『2003년 팩트북(Factbook)』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구매력평가(PPP)로, 다시 말해 물가와 환율보다 실제로 생산한 것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경제대국이라는 것이다. CIA는 2003년 미국의 GDP(국내총생산)를 10조4천억 달러로, 중국의 GDP를 5조7천억 달러로 계산한다. 이를 중국의 13억 인구로 나누면 일인당 GDP가 4385달러이다.
1992년에서 2003년까지는 일본이 중국의 가장 큰 무역상대국이었지만, 2004년에는 유럽연합(EU)과 미국에 뒤져 3위로 떨어졌다. 중국의 2004년 무역량은 1조2천억 달러로서, 미국과 독일 다음으로 세계 3위이며, 일본의 1조7백억 달러를 훨씬 앞선다. 중국의 대미 무역은 2004년 34%나 증가하면서 로스앤젤레스, 롱비치, 오클랜드를 미국에서 가장 번창한 세 항구로 변모시켰다.
2004년 진정으로 의미심장한 무역양상의 변화는 EU가 중국의 최대 경제파트너로 부상한 점인데, 이는 중국과 유럽의 협동블록이 그보다 활력이 떨어지는 일본과 미국의 협동블록과 대결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가 논평한 대로, “〔2001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한 지 3년 만에, 중국이 국제적 통상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더이상 그냥 중요한 정도가 아니다. 그 영향력은 결정적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팔리는 델(Dell) 컴퓨터 대부분이 중국에서 만들어지며, 일본 후나이(船井)전기의 DVD 플레이어 역시 마찬가지다. 후나이는 연간 1천만 대에 달하는 DVD 플레이어와 텔레비전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데, 미국에서는 주로 월마트에서 판매된다. 2004년 중국의 대유럽 무역은 1772억 달러에 상당하며, 대미 무역은 1696억 달러, 대일 무역은 1678억 달러에 달한다.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은 널리 알려지고 갈채를 받고 있지만, 옳건 그르건 미국과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의 성장속도와 그것이 장래의 전지구적 세력균형에 미치는 파장이다. CIA의 국가정보회의(National Intelligence Council)는 중국의 GDP가 2005년에는 영국, 2009년에는 독일, 2017년에는 일본, 2042년에는 미국과 같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세계은행의 전임 중국담당국 부국장이자 파키스탄의 전임 재정부장관인 샤히드 부르키(Shahid Javed Burki)는 2025년에 이르면 중국은 구매력평가로 환산할 경우 십중팔구 GDP 25조 달러에 도달하게 되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며, 20조 달러의 미국과 약 13조 달러의 인도가 그 뒤를 따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군다나 부르키의 분석은 향후 20년간 중국이 6%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것이라는 보수적인 예측에 기초한 것이다. 그는 일본의 몰락은 불가피하다고 예견하는데, 이는 일본 인구가 2010년경부터 급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본 내무성은 일본 남성의 수가 2004년에 이미 0.01% 감소했다고 발표하면서, 일부 인구학자들이 21세기말에 이르면 일본 인구가 오늘날의 1억2770만에서 거의 3분의 2나 감소한 4500만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는 주를 달았는데, 이는 일본의 1910년 인구와 같은 수준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의 인구는 대략 14억선에서 안정될 것으로 보이고 남성의 비율이 매우 높다.(『뉴욕타임즈』의 하워드 프렌치Howard French에 따르면, 중국 남부의 한 대도시에서는 정부가 ‘1가구 1자녀’ 정책을 실시하고 초음파검사가 가능해짐에 따라 여아 100명당 태어나는 남아는 129명꼴로 나타나며, 둘째나 셋째 아이를 바라는 부부 사이에는 여아 100명당 남아는 147명꼴로 나타난다. 2000년 중국 전역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 따르면 태어날 당시 보고된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약 117명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인구의 그간 억제되었던 수요와 상대적으로 낮은 개인부채 수준, 그리고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은 역동적인 지하경제를 고려할 때 중국의 국내경제는 앞으로도 수십년 동안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대외부채가 상대적으로 적고 외환보유고로 쉽게 충당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미국과 일본은 각각 약 7조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는데, 인구와 경제적 영향력에서 미국의 절반도 되지 않는 일본으로서는 더욱 좋지 않은 상황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의 부채 중 일부는 미국이 전지구적인 제국적 입지를 지탱하는 데 협조하면서 생긴 결과이다. 예컨대, 냉전 종식 이후 일본은 주일 미군기지에 약 700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보조금을 지원해왔다. 미국은 방탕한 소비행태와 군사비를 자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려 하지 않고 일본, 중국, 타이완, 남한, 홍콩, 인도에 빚을 짐으로써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점점 불안정해졌는데, 미국이 자국 정부의 지출을 대기 위해서는 하루에 적어도 20억 달러의 자금을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나라들의 중앙은행이 달러가치 하락의 피해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 상당부분을 달러에서 유로나 다른 통화로 바꾸기로 결정한다면 최대의 재정위기가 도래할 것이다.
일본은 2005년 1월말 기준으로 약 8410억 달러에 이르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역시 (2004년말 기준) 6099억 달러라는 돈방석 위에 앉아 있는데, 그 돈은 대미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것이다. 한편 미국정부와 조지 W. 부시를 추종하는 일본인들은 가능한 모든 방식을 동원해, 특히 중국에서 떨어져나간 타이완섬 문제를 가지고, 중국을 모욕하고 있다. 뛰어난 경제분석가 윌리엄 그레이더(William Greider)는 최근에 “자신의 물주를 모욕하는 방탕한 채무자는 좋게 말해도 지각없는 사람이다. (…) 미국 지도부는 (…) 점점 망상에 빠져들었으며―문자 그대로 그렇다는 뜻이다―세력균형이 점점 자신에게 불리해지고 있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부시행정부는 일본에 재무장을 종용하고, 타이완에는 만약 중국이 타이완의 독립선언을 막으려고 무력을 사용할 시에는 타이완 편에서 전쟁에 개입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어리석게도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보다 더 근시안적이고 무책임한 정책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부시행정부가 벌인 터무니없는 이라크전쟁과 그로 인해 전세계에서 생겨난 심각한 반미주의, 그리고 미국 정보기관의 정치화에 비춰보면 미국과 일본이 실제로 타이완 문제로 중국과의 전쟁을 재촉하는 일이 일어날 법하다.
일본의 재무장
2차대전 종식 이래, 특히 1952년 독립을 획득한 이래 일본은 평화주의 대외정책에 찬동해왔다. 공격을 목적으로 한 군대를 유지하거나 미국의 전지구적 군사체제의 일부가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온 것이다. 가령 일본은 1991년 대이라크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았고, 동맹국의 군사적 기여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 집단안보협정에 동참하지도 않았다. 1952년 미일안보조약의 조인 이래, 이 나라를 소위 외부적 위협에서 보호해준 것은 공식적으로 일본 본토와 오끼나와(沖繩)섬의 91개 기지에 주둔한 미군이었다. 미 제7함대는 심지어 모항(母港)을 요꼬스까(橫須賀)의 옛 일본 해군기지에 두고 있다. 일본은 이들 기지에 보조금을 댈 뿐 아니라 미군이 오로지 일본의 방위를 위해 주둔한다는 공공연한 허구에 동의하고 있다. 사실 일본은 자국 영토에 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 육·해·공군의 운용방식과 배치에 대해 전혀 통제권이 없으며, 양국 정부는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이 쟁점에 대해 일절 논하지 않음으로써 교묘하게 문제를 넘어갔다.
1991년 냉전 종식 이래, 미국은 일본에 (자기방어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력사용을 포기하고 있는) 헌법 제9조를 수정하여―미국 관리들의 어법에 따르면―‘정상국가’(normal nation)가 되도록 거듭 압력을 가해왔다. 예컨대, 2004년 8월 13일 콜린 파월(Colin Powell) 국무장관은 토오꾜오에서 일본이 만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 되기를 희망한다면 먼저 자국의 평화헌법을 폐지해야 할 것이라고 과감하게 말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에 대한 일본의 권리 주장은 전세계 GDP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