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문진영 文眞鍈

1987년 강원 춘천 출생. 2009년 창비장편소설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 소설집 『눈 속의 겨울』 등이 있음.

anch012@naver.com

 

 

 

미노리와 테쯔

 

 

내가 그 얘기 했나?

수민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한 손으로는 칼국수 면발을 집으려고 애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폰 액정을 빠르게 터치하고 있었다. 수민은 근래 한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막내 작가로 라디오 방송국에 취직한 이후부터일 것이다. 시사방송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단체 채팅방에서 아이템 회의가 열렸고, 최신 뉴스도 섭렵해야 했고, 인터뷰이가 연락을 해 오기도 했다. 눈 한번 마주치기가 힘들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세월의 힘이랄까, 우리는 까페에서 만나 한마디 말도 없이 두세시간 동안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무슨?

미노리랑 테쯔, 이혼한 거.

에이.

말 안 했나? 진짜임.

언제?

수민은 잠시 생각하더니 작년 초인가, 하고 말했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놀라버렸다. 미노리와 테쯔가 헤어졌다니. 어쩐지 한 시절이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그래서 함께 살게 되는 일은 과연 어떤 걸까 처음으로 생각해본 건 그 둘을 만나고서였다. 연애에는 젬병인 내가. 나는 늘 가망 없는 사람에게 빠지곤 했는데 그것도 뭐 상대를 만지고 싶다거나 애정을 돌려받고 싶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한 것이었다. 오히려 누군가와의 관계가 구체적인 것으로 변하려는 조짐이 보이면 나는 재빨리 도망치곤 했다. 자기애가 과해서 그렇다는 게 수민의 진단이었다. 그럴 리가.

그걸 왜 인제 말해?

까먹었지 뭐, 하고 수민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혼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미노리와 수민의 관계를 생각하면 저런 무심함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지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토오꾜오에서 돌아온 뒤 수민은 미노리와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심지어 본격적으로 일본어를 배우기 위해 토요일마다 회화 학원에 다니기까지 했다. 단지 미노리와 친구가 되기 위해서. 몇년 뒤 수민이 일본드라마를 자막 없이 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잠시 자괴감에 빠졌다. 나는 참으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구나, 하는 깨달음이랄까.

그후로도 수민은 몇차례 일본에 가서 미노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곤 했다. 맥주잔을 들고 혓바닥을 내밀고 있는 미노리와 그런 미노리와 뺨을 맞대고 윙크하고 있는 수민의 사진이 메신저로 날아왔을 때 묘한 질투심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밴드도 하는 모양이더라.

수민이 말했다.

밴드?

어, 밴드에서 베이스 친대. 인스타에서 봤어.

수민은 재빨리 휴대폰 화면을 두드리더니 자, 하고 내 눈앞에 미노리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내밀었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 피드를 천천히 내려보았다. 베이스 기타를 어깨에 메고 밴드 멤버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는 미노리. 콘택트렌즈를 꼈는지 예의 그 뿔테 안경은 쓰고 있지 않았다. 바닷가에 놀러 간 미노리. 형광 분홍색의 서프보드 앞에서 혓바닥을 내밀고 있다. 미노리는 혓바닥 내미는 걸 좋아하는구나. 혀의 한가운데 동그란 은색 피어싱이 박혀 있었다. 멕시코 음식을 먹는 미노리. 입을 커다랗게 벌린 미노리의 입안으로 따꼬가 들어가기 일보 직전. 아크릴화를 그리는 미노리. 홋까이도오에 놀러 간 미노리. 혓바닥을 내민 수많은 미노리들이 화면 안에 있었다.

식당은 이제 안 하는 것 같던데.

테쯔 소식은 모르겠다고 수민은 말했다.

미노리는 무슨 일 해, 그럼?

나도 몰라, 연락이 끊겼거든.

그래?

응. 답장을 안 하더라.

어깨를 으쓱하는 대신 수민은 한쪽 눈썹을 들었다 내렸다. 수민의 버릇이었다.

사진도 안 올라오던데.

그러고 보니 미노리가 올린 마지막 사진의 날짜는 지난여름이었다.

 

그날 밤 자려고 누웠을 때, 수민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테쯔 트위터 찾음.’ ‘작가 되고 쓸데없이 검색력만 상승.’ 울고 있는 토끼 이모티콘, 그리고 다른 의미 없는 이모티콘이 세개 정도 연속으로 왔다. 나는 대꾸하지 않고 링크된 주소로 들어가보았다. 읽을 수 없는 일본어로 된 피드가 죽 펼쳐졌다. 프로필 사진과 소개 문구는 설정되어 있지 않았고, 팔로워는 마흔두명이었다. 마지막 트윗은 지난주에 올라온 것이었다. 나는 온라인 번역기를 돌려보았다.

‘자유롭게 반복하고 차분히 궤도를 읽는.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운동이다. 그 궤적도 의미가 없다. 그 궤적을 바라보는 시간은 의미에 가까운 것이 있다.’

다른 트윗도 하나 읽어보았다.

‘농담이야말로 굉장히 진지하고, 침묵이 필요하다면 고요함과 약간의 음악이 좋고. 그래서 충분히 알고, 서로 이해할 것이고, 만날 수 없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번역기 탓이겠지만 그런 알쏭달쏭한 문장들이 계속 이어졌는데, 피드가 끝이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주로 고양이가 등장하는 움짤들이 있었다. 눈 속을 헤치고 걸어가는 러시아 고양이, 커다란 개에게 주먹을 날리는 아기 고양이 등등. 그런데 수민은 무슨 근거로 이게 테쯔의 계정이라고 하는 걸까? 그러다 사진 한장을 발견했는데, 그건 바로 싹이 돋은 아보카도 씨앗 사진이었다. 63일째,라고 쓰여 있었다. 테쯔가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어졌다. 나는 무엇을 확인하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전부 우스워졌고 곧장 브라우저 페이지를 닫아버렸다. 그 많던 화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그런 것들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불과 며칠 뒤에, 미노리가 내게 DM을 보냈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 고양이 사진과 어느 날 먹은 곱창전골 사진만 덩그러니 올라가 있는 계정이 내 것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 싶었으나, 이름 세 글자의 이니셜과 생년을 붙여 만든 내 아이디를 보니 궁금해할 것도 없었다.

미노리는 간단한 영어로 서울에 왔다, 만나고 싶다, 그렇게 적었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수민에게도 연락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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