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미륵의 눈빛이 떨어진 자리

황석영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김형수 金炯洙

시인, 소설가. 저서 『소태산 평전』 『문익환 평전』, 시집 『가끔 이렇게 허깨비를 본다』, 장편소설 『조드』 등이 있음.

millemi@hanmail.net

 

 

0. 필자 주

 

내가 문청 대열에 입문하던 1970년대 후반의 한국 산문계는 황석영·이문구·조세희의 영토로 분할돼 있었다. 하나의 모국어 안에서 문풍이 다르더라도 압도될 수밖에 없는 전범이 확보된 건 숱한 도전들이 축적된 결과였는지 모른다. 문청들은 그들의 산문 형식에 대해 알은체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되었다. 그런 필독의 작가가 10년 후에는 황석영·이문구로 축소되고, 다시 세월이 흘러서는 숫제 독주체제로 바뀐다. “이 양반은 늙지도 않나?” 이런 푸념이 가능했던 것은 ‘미학적 자기복제’가 아니라 ‘끝없는 자기갱신’의 미덕 덕분이었다.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발전사를 단 한 작가의 생애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개무량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철도원 삼대』(창비 2020) 소식을 SNS에서 접했다. 대학에서 정년퇴임하는 선배가 링크한 “황석영, 혼신의 힘을 다해서 썼다”라는 기사에 울컥 버퍼링이 걸렸다는 답글이 여러개 달려 있었다. 끝없는 소란과 한없는 공허로 가득 찬 디지털 문명의 거리에 이런 뉴스를 뿌릴 수 있다니. 때마침 내게 황석영 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주어져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본래 배려된 지면은 ‘작가 인터뷰’였는데, 나는 여백에 깔린 내용을 말하고 싶어서 방문기 형식을 취했다. 내가 선생님을 만난 날은 2020년 7월 9일이고 장소는 전북 익산이었다.

 

 

1. 집필 장소

 

한국에는 인문기행이 필요한 고대 수도가 넷이나 있다. 경주·공주·부여는 누구나 알지만 네번째 도시는 대부분 모른다. 왕궁, 왕릉, 국가 사찰, 성터를 갖추고 백제의 번영을 꿈꾸었으나 왕실이 입주하기 전에 패망한 곳이 익산이다. 이 때문인지 그곳에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와 구원자를 기다리는 염원으로 가득하다. 미륵산과, 또 그에 연계되는 지명들과, 대표적 문화유산 미륵사지석탑은 그곳이 미륵신앙의 본거지였음을 웅변한다. 노년의 황석영이 이곳에서 『철도원 삼대』를 썼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각별하게 느껴진다. 황석영은 『장길산』(1974~84)에서 미륵사상을 펼치고, 「미륵의 세상, 사람의 세상」(1988) 같은 글을 통해 이를 민중현실과 연결시켰다.

“선생님께 맞춤형 도시 같아요. 오면서 보니 학교 이름도 영등중학교더라고요.”

영등포 이야기를 쓰러 온 곳에 하필 ‘영등’이라는 지명이 있어서 나는 자꾸 민간신앙의 영등할머니가 생각나고는 했다. 소설에서도 주안댁이 영등할머니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동네가 말이야, 저 미륵산에 동학군을 치러 온 일본군 본부가 있었어. 이후 일본 헌병대가 머물다가 나중에 공수특전대가 주둔했는데, 그게 5·18 때 광주를 치러 간 부대야.

 

이 거침없는 외방의 이야기꾼이 머무는 것을 익산은 한없이 반겼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작품은 미륵의 정기를 받아서 쓰신 거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소태산 평전』(졸저, 문학동네 2016) 때문이었다. 구한말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의 마지막 성자 소태산(少太山)은 영광에서 고창, 부안에 이르는 바닷가를 오가며 구도 행에 나섰다가 전라도 변방의 사찰에서 완강한 불교주의에 절망한다. 이때 결심한 바가 있어 길었던 머리를 삭발하고 하산을 단행했으니, ‘속된 사찰에서 거룩한 세속을 향해 출가’한 셈이다. 그리고 터를 잡은 곳이 무산계급의 교통요지요 미륵의 꿈이 살아 있는 익산이었다. 소태산의 불법연구회는 미륵산 정상에서 들판을 굽어볼 때 첫 눈길이 닿는 자리에 눌러앉아 오늘에 이른다. 바로 그 후예들이 마련한 레지던스에 황석영 선생님이 참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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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가 나랑 인연이 있었던 것을 나도 몰랐어.”

미륵 이야기를 꺼낼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내용이 나왔다.

“「객지」 무대가 개화도 간척지 아니냐. 그게 지금 새만금이거든. 여기가 그 연장선이란 말이야.”

“와, 중요한 문학기행 코스네요?”

“여기 오니 몇몇이서 그런 말을 해. 그래서 나도 「객지」하고 「삼포 가는 길」을 얼른 확인해봤지.”

“「삼포 가는 길」 도요?”

“그렇다니까. 「삼포 가는 길」에 ‘우리는 호남선을 탈 테니까 너는 전라선을 타고 가라’ 이러고 헤어지잖아. 호남선과 전라선이 갈라지는 곳이 여기밖에 없어.”

 

에고, 부러운 이야기였다. 내가 문학공부를 시작할 때 「객지」(1971)가 최고작인지 「삼포 가는 길」(1973)이 최고작인지를 놓고 언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나는 「삼포 가는 길」 편이었다. 그 오랜 기억 사이로 한국 서사문학의 권좌를 50년 넘게 장기집권한 백전노장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개화도 간척지가 이어져서 새만금이 됐잖아. 그게 일제 때부터 하던 공사야. 왕년에 미루나무가 적적하게 서 있던 길을 묘사한 게 「삼포 가는 길」이거든. 백화는 포항에서 봤던 술집작부를 끌어다 붙인 거고.

 

작가 황석영에게는 아무리 낯선 타관도 곧장 자신의 대지로 삼는 탁월한 문화역량이 있다. 『수인』(문학동네 2017)을 읽은 이는 그의 서사 지능이 지구촌 제1세계, 제 2세계, 제 3세계의 정치현장을 누비면서 단련된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이번 소설을 “혼신을 다해서 썼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문학적 사건이 하나 터졌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염탐할 기회를 틈타 곧장 메모한 첫 문장이 이것이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가 집필된 장소가 하필 익산이었다. 미륵의 눈빛이 떨어진 자리!’

 

 

2. 만년 문학의 개막

 

답변은 질문의 식민지라 했다. 나는 『철도원 삼대』가 ‘같은 사람’이 ‘다른 작가’로 태어나서 쓴 글이라 보았기 때문에 대화의 그물망을 일단 넓히고 싶었다.

“선생님, 지금이 자그마치 2020년입니다.”

그런데 대번에 질문이 잘린다. 머릿속에 떠오른 말이 성대를 통과하기도 전에 적확히 꼬집어서 답하는 신통력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했다.

 

『수인』을 써놓고 말이야, 간이나 폐나 내장이 쏙 빠진 것처럼 허전하더라고. 아, 자서전 같은 걸 손대가지고 기운을 쏙 빼고 났더니 갑자기 무슨 벽이 생기잖아. 거, 혼났네.

 

나의 취지인즉, 삶의 회한과 마주할 나이에 자기확장을 감행한 사실이 경이롭다는 질문을 하려던 건데, 선생님은 미리 질문지를 읽은 것처럼 관계 사안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세계문학을 보면, 노후작가들이 원로의 매너리즘에 너무 쉽게 빠지더라고. 더 나갈 데도 없고 실험할 것도 없고. 그럼 절필선언을 하거나 자살을 하거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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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마르께스는 치매에 걸리며, 오오에 켄자부로오는 한국 독자들 앞에서 절필선언을 했다는 이야기, 또 로맹 가리가 자신을 감추고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투고를 했다는 등 종횡무진 보따리가 풀어졌다. 나는 동료들이 모두 사라지고 없는 황야에 홀로 선 고독한 사자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만년에 대해 이미 많은 작심을 해두었음이 틀림없었다.

 

베토벤은 심포니를 쓰다가 말년에 현악 4중주라는 실험적 음악을 해. 소리가 완전히 안 들리는데도 뛰어난 자기맺음을 하잖아.

 

『오리엔탈리즘』을 쓴 에드워드 싸이드가 만년(晩年) 문학의 특징을 ‘훨씬 갈등도 치열하고 훨씬 실험적인 작품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는 말을 나는 10년 전에 바로 황석영 선생님한테서 들었다. 그런데 다른 예술과 달리 소설 장르에서는 만년의 정진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날이 짙어지고 있었다. 일정하게 집필노동을 감당할 체력이 있어야 하고, 또 정신적 기개를 잃지 않아야 한다. 황선생님 나이에, 단편이라면 모를까 장편세계를 혁신한 전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놀라운 고투를 감행해야 나올 말들이 마구 쏟아져서, 자신은 『철도원 삼대』를 에드워드 싸이드가 말한 ‘만년 문학’의 개막작으로 삼고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감방에서 나온 뒤에 쓴 『오래된 정원』(창작과비평사 2000)부터가 후반기 문학이고 『철도원 삼대』부터는 또다른 시기의 초행길이 된다. 그런데 78세에 그게 가능하나?

 

해외에 나가서 써볼까 생각했다가, 취재도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해서 여기 와 한 일년은 공부만 했어.

 

사람들은 작가 황석영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하는지 모른다. 나는 어느 술집에서 작가의 게으름이 자랑인 듯 말하다가 혼난 적이 있다.

 

이번에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 한국사 연표 이만여쪽을 체크해봤어. 해마다 매달 전국에서 노동쟁의가 있었더라고. 연표를 보면 깜짝 놀라게 돼. 함경도, 평안도, 서울, 대구, 광주, 부산…… 뭐 전국 공장에서 연인원 만명에서 이만명 정도가 늘 북적거리고 쟁의에 빠져 있었다고. 이걸 보고 작가로서 만시지탄하는 느낌이 있었어. 왜 그걸 여태 다루지 못했는가.

 

한국의 근대문학이 산업노동자를 전면에서 다루지 못했던 사실을 지적하는 동안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 엄습해왔다. 근대의 표상이라 할 도시노동자의 삶과 일상을 우리는 늘 근대의 세목으로 취급해왔다. 나의 민족문학론 안에서도 그것은 총체가 아니라 부분으로서 민중문학이라는 항목에 배치돼 있었다. 아마 『철도원 삼대』가 문단에 가한 제일격이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하나 정도 있는 소설이 강경애가 인천 여공들 다룬 거. 철강노동자나 광부 이런 건 없어. 내가 다 찾아봤어요. 카프 쪽에서 손댔던 것도 짧은 단편이거나 거의 도시빈민에 룸펜 프롤레타리아 이야기뿐이야. 가장 선진적으로 현장과 가까이했던 임화도 공장경험이 없었어.

 

나는 금방 또 하나를 배웠다. 동년배 친구들이 퇴장한 이후에 선생님은 문학사와 대화하면서 사는구나 싶었던 것이다.

 

 

3. 근대의 출구에 서다

 

나는 서술자의 눈빛이 소설 속 이야기를 전하는 영혼이고 독자는 그 온기를 문체에서 느낀다고 생각해왔다. 어떤 눈빛을 가진 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인가 하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 오래전에 『철도원 삼대』를 쓰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 눈빛이 틀림없이 삶의 끄트머리에 선 노익장의 회한을 타고 흘러나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첫 장면이 굴뚝 농성자의 용변 문제로 시작된다. 아파트 16층 높이의 굴뚝에서 부감되는 도시, 그리고 인간의 생존이 야기하는 상하수도 문제를 상기시키면서 웃통 벗고 목물하는 등 나를 압도하는 장면들은 여지없이 근대 풍속사가 되살아나는 대목이었다. 영등포에 큰물이 났을 때 주안댁이 물난리 속에서 수박, 참외, 돼지를 건져 올리는 이야기는 그 진면목을 보여준다. 디지털 문명은 오늘도 삶의 풍경들을 숨 쉴 틈 없이 지우고 있다. 티브이에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를 내놓은 것이 벌써 몇해 전이다. 그나마 시대적 회고 상품으로 유통되는 목록조차 황석영 선생님으로 보면 한참 어린 손자뻘 시대의 것들이다. 이토록 세대교체가 빠른 단말마의 비명들 속에서 『철도원 삼대』는 도도히 흐르는 세태의 장강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야기는 따로 있다. 후기(‘작가의 말’)에 작가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공부를 했는지가 나오는데, “나는 이 작품을 쓰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617면)에서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빈 부분에 채워 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고 한다”(619면)에 이르는 진술은 소설 공부를 하는 이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한다. 소설은 어떤 기록이나 다큐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삶의 속살을 복사한다. 버마로 떠난 선배가 아무리 공부를 하고 다큐를 봐도 그곳 사람들의 일상을 알 수 없더니 소설을 읽고 나자 비로소 알겠더라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선생님의 소설쓰기가 어쩌면 근대의 숙명을 견디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서 「객지」와 『철도원 삼대』를 비교했다. 「객지」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직후 ‘문학으로부터 노동의 소외, 노동으로부터 문학의 소외’가 극심할 때 쓴 작품이다. 현장노동자의 일기, 수기, 편지가 소설을 압도하던 무렵에 문학이 노동의 내장 부위까지 육박하든지, 노동의 내장 부위에서 문학적 수련이 연마되든지 해야만 진입 가능한 장벽을 가장 먼저 넘어선 것이다. 『철도원 삼대』는 영등포 철도공작창을 거점으로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이 활동하던 한국노동운동사의 깊은 골짜기를 탐사한다. 그리하여 특히 기념할 성취는 이재유 같은 근대 서울 혁명가들의 생활화폭을 살려냈다는 점인데, 이 역시 ‘근대 사회운동으로부터 문학의 소외, 문학으로부터 근대 사회운동의 소외’를 극복한 작품으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서 꼭 전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었다.

“지금은 역사적으로 공허한 시대 같습니다. 사회적 공명상자가 깨져서 문학 쪽에서 중요한 텍스트가 나와도 아무 메아리가 없는 게 얼마나 허전한지 몰라요. 예전 같으면 온 나라가 들썩였을 텐데.”

어떻게 말해도 근대는 산업노동력이 끌고 온 시대요, 근대정신의 가치는 그 현장에서 검증될 수밖에 없으니, 근대문학의 진정한 본류 또한 노동소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주목받는 정신들이 분단문제 등 추상적 사유를 필요로 하는 진실들에 다소 어둡다는 것을 늘 아쉬워했는데 『철도원 삼대』는 그조차도 사뿐히 뛰어넘는다.

“선생님, 그래도 어느 지붕 밑에선가는 한국 노동소설의 결정판이 나온 것을 축하하는 소주잔이 기울여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알아요. 광주에 가면 있어요.”

이 말에 선생님이 꽤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얼마 전에 철도노조에서 강연을 하고 왔어. ‘철도의 날’ 행사였는데, 내 옛 친구들이 다 와 있데. 철도노조가 준 감사패를 받았는데 눈물이 확 나더라고. 문학상 받은 것보다 훨씬 좋았어. 아, 우리 편이라는 소리로구나, 작가로서 영광이지.

 

소설 속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는 현실이라는 얘기였다. 선생님은, “이진오의 현실이 일제 때 고통받던 노동자들에 비해 나아진 게 없단 말이야. 포스트모던이니 어쩌니 하지만 사실, 자본 가진 놈 외에는 전국민이 노동자 아니냐” 말하지만 나는 현실에 대한 진단보다 소설에 대한 고민을 더 먼저 채록하고 싶었다.

염상섭의 『삼대』(1931~32)가 한반도적 근대의 입구를 구성한다면 『철도원 삼대』는 출구를 조명한다. 근대의 입구에 선다는 말과 출구에 선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 입구는 학습할 모델들이 있지만 출구는 아직 미지의 영토이다. 이는 소설에도 내용뿐 아니라 형식까지 변할 것을 강제한다. 그와 관련해 황석영 문학은 꽤 오래전부터 의미심장한 행보를 잇고 있었다. 나는 황선생님이 언젠가, 유럽이 이룩한 과학과 기술을 ‘보편’으로 규정하는 유럽중심주의를 ‘강자의 울타리’라고 말할 때 논지가 명쾌해서 받아 적기까지 했다. 제국주의 유럽은 주변부를 자기 시장 속으로 흡수하면서 상대방에게 ‘세계적 보편성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약자가 그것을 거부하면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를 상실하고, 받아들이면 ‘정체성’을 상실하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세계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계질서에서 낮은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그 보편성이라는 울타리에 참여함으로써 소외를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보편주의란 사실상 자본주의적 세계질서 속에서 기득권과 불평등을 유지하려는 측의 슬로건에 불과할 뿐이다. 대략 이렇게 요약되는 함정을 빠져나오려고 모색한 궤적이 황석영의 후반기 문학이었다. 그 일환으로 우리 양식에 세계의 보편성을 얹고자 베를린장벽 앞에서 『손님』(창작과비평사 2001)을 구상하고, 또 동아시아를 보면서 『바리데기』(창비 2007) 『심청, 연꽃의 길』(문학동네 2003) 같은 실험을 거쳤지만 항상 무언가 아쉬웠다고 한다. 이는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서구문학에 피를 수혈한 남미의 작가들, 미겔 앙헬 아스뚜리아스나 가르시아 마르께스, 뭐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거 말이야. 그들은 수백년 동안 제국주의에 짓밟히고 자기 언어도 잃고 혈통까지 섞이고 말았어. 백인화된 거지. 그래서 근대고 전근대고 간에 자기들의 과거를 불러올 재간이 없어. 또 그래서 현실이 추상화되고 안개가 피어나듯이 신화적인 분위기도 생기는데 우리는 달라. 동학이고 뭐고 다 기억이 있잖아. 그러니 민담이 가능하다고.

 

『철도원 삼대』의 창작방법론을 규명할 핵심은 이것이었다. 우리 나름대로 역사를 간직하는 민간 기억법으로서의 민담을 소설의 그릇으로 삼는다! 이를 민담적 리얼리즘이라 할까, 조선적 리얼리즘이라 할까?

 

 

4. 기차로부터

 

하여튼 『철도원 삼대』는 한반도에 들어온 근대라는 기관차가 이미 3대를 달려왔다, 근대라는 지옥의 바깥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하는 걸 그린 소설이다. 이 서사에서 인상 깊은 것은 씨줄을 꿰는 자가 4대인 굴뚝 농성자라는 점이다. 그런데 눈여겨볼 대목은 작가가 왜 철도를 소재로 했을까이다. 황석영은 근대의 의미심장한 상징물이 철도와 기차라고 강조한다. 나도 근대의 핵심기제가 ‘학교’와 ‘철도’라고 배웠다. 『녹두장군』을 쓴 소설가 송기숙도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다. “불란서에서 기차가 처음 생겨났을 때 경운기 속도밖에는 안 되었어. 그런데 그걸 탄 사람들이 토하고 멀미하고 난리가 났어. 그렇게 기계를 타보는 게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거든.” 동학군이 우금치에서 패한 이유가 조선 농민이 서구문명과 맞닥뜨리면서 겪은 현란한 충격에 있다는 건데, 통렬한 비유가 아닌가 한다.

도보 이동 시대의 인간이 기차에 올라 경험한 것은, 이 가공할 이동기계가 다수의 대지를 연결한다는 점이었다. 멀미에 시달릴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철도는 단순히 여행의 불편이나 위험만 제거한 게 아니라 인간의 지각 자체를 구조적으로 변화시켰다. 깊이와 음영의 소실, 풍경으로부터 공간성의 제거, 산업혁명 이전까지 실재했던 목가적 정취들이 열차의 속도에 지워져버렸다. 그리고 서사가 제거된 한낱 ‘배경으로서의 풍경’이 남는 것이다. 이걸 근대문학은 묘사로 쓰는데, 묘사는 실감을 주는 반면에 객관세계를 대상화시킨다. 이렇게 자아가 세계를 떼어내 하나의 감상물로 전락시킨 ‘차창 밖의 파라다이스’가 인간계를 매혹한다는 것, 이것이 근대가 각광해 마지않았던 놀이기구요 또 소설이다. 일본의 카라따니 코오진이 근대문학의 기원을 ‘풍경의 발견’에 두었던 것은 근대소설이 기차 위에서 태어났다고 말한 것이나 진배없다. 바로 이 점에 대한 작가적 대응이 황석영 소설 문체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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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체험은 미국의 서부개척 철도, 국경을 잇고 바다로 향하는 유럽 철도,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철도, 그리고 인도의 식민지철도, 중국 철도, 조선·만주 간 만선철도에 이르기까지 근대 인류의 보편체험을 형성한다. 이 철도업계 종사자 삼대에 이르는 변천사를 황석영은 역사적 질곡을 겪는 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가족사로서, 집안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함께 전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경부선과 경인선이 만나는 영등포이고, 제1대 이백만은 철도공작창의 선반공이었다. 큰아들 이일철은 기관사, 작은아들 이이철은 철도공작창 견습공인데, 위장취업한 노동운동가에게 의식화되어 사회주의적 독립운동가가 된다. 이이철이 감방에서 옥사한 뒤 경찰에 쫓기다 월북한 이일철의 아들 이지산도 기관사가 되었다가 한국전쟁 때 낙동강 전선에서 포로가 되고, 다시 그 아들 이진오가 노동을 하다 굴뚝농성을 시작하면서 410일 동안 하늘과 땅의 중간에서 죽은 자들과 대화한다. 투쟁하다 자살한 노조원, 어릴 적 친구, 집안 여자들 이야기…… 이런 설정도 다루기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작가의 서사 능력은 그다음 단계에서 더욱 빛을 낸다. 첫째, 묘사가 사용되지 않는다. 독자는 더러 당황했을 것이다.

“선생님, 인간의 감각과 객관의 풍경이 접촉될 때 일어나는 감정적 마찰, 이걸 배제한 이유가 있죠? 묘사의 생략, 소란스럽지 않은 서술적 진행, 이로 인해 인물의 중요도까지 독자가 정하는 특성이 발생하는데 다 의도하신 거잖아요?”

형용사를 엄격하게 줄이고 보이는 것만 냉정하게 그리는 것은 황석영 산문 미학의 오랜 개성 중 하나였다. 매우 서정적인 작품조차 감상적 표현이나 내면 묘사를 최대한 자제해왔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그런 차원을 넘어 묘사를 아예 없앴다는 느낌이 든다. 황석영 후반기 문학에서는 이미 ‘한 남자가 마차에서 내려서 집 안과 거실로 들어가는 데 수십 페이지’가 할애되었던 과거의 형식은 유통기한이 만료되었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묘사를 줄이고 극적 방식을 높이는 ‘시적 서사’의 모색이 어느새 대여섯권 분량의 서사를 단 한권에 담는 치열한 실험으로 돌입해 있었던 것이다.

둘째, 그랬을 때 대지의 유장함이 드러나지 않거나 서사가 과도하게 실리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어떤 전략을 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황석영은 모든 얼개를 연결하는 민담식 ‘환각장치’를 운영해 이를 돌파한다. 예컨대 굴뚝 농성노동자 진오에게는 신금이 할머니가 있었다. 환영·환청과 함께 사는 건 집안 내력이었다. 이게 임시방편이 아니라 서사의 본질이라는 건 철도원 ‘삼대’ 얘기를 오늘을 사는 ‘사대’가 전한다는 점이 증명한다. 이 또한 책을 한참 읽은 뒤에야 깨달을 만큼 서술이 절제돼 있다. 그러다 이재유의 검거장면 같은 역동적인 상황을 만나면 황석영 특유의 박진감과 빼어난 서정적 단문, 그리고 ‘동사’의 작가답게 빠른 전개가 이어지기 때문에 독자는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까 『철도원 삼대』에서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사’를 시각화하는 장치로서 출현한 근대적 묘사가 ‘스펙터클’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는 폐단을 극복할 실마리를 ‘민담적 리얼리즘’에서 찾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방점이 ‘민담’보다 ‘리얼리즘’에 찍힌다는 데 있다.

 

 

5. 작가의 사상에 대하여

 

하지만 나는 『철도원 삼대』의 방법론이 배경을 제출하는 일에 허술한 게 아닌지 노파심이 없지 않았다. 예컨대 선생님이 철도원 이야기를 쓰겠다고 할 때 우리 세대에게 없는 만주벌판을 간접 체험할 기대가 컸으나 그것은 이번 소설에서 볼 수 없었다. 물론 이 아쉬움은 등장인물의 전형성이 돋보여 이내 묻혀버린다. 내 생각에 이 소설을 살리는 발군의 캐스팅으로 첫손에 꼽을 이가 ‘환각적 매개’를 전담하는 신금이다. 그래서 여쭸다.

“신금이는 모든 인물의 서사를 연결하는 관계의 고리이기도 하고, 또 작중에서 가장 생동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혹시 원형이 어머니에게 있는 건 아닙니까?”

“그렇지. 신금이 모델이 내 어머니야.”

아니나 다를까 한여옥은 이모이고 주안댁은 학창시절에 가출하여 하인천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이니 펄펄 뛰는 인물은 모두 현실 복판에서 불러온 사람들이었다. 한편의 작품이 작가의 생애를 통해서 준비된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선생님은 만주 신경에서 태어났다. 나도 예전에 문익환을 취재하러 창춘(옛 신경)에 갔다가 황선생님이 태어난 곳이라 해서 자꾸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난다. 인간에게 고향이란 뭘까? 고향이 없는 사람은 대하소설을 쓸 수 없다는 말은 목숨의 근거지가 없는 사람은 대서사를 구성할 자원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황석영은 그런 공식을 처음부터 깨뜨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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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물레방아 같은 걸 보고 노스탤지어를 얘기하던데 말이야, 나는 도시 변두리를 보면 추억에 잠겨. 나는 근대의 자식이야.

 

선생님은 한국에서 보기 드문 ‘세계인’이지만 나는 범위를 좁혀 다시 물었다.

“영등포가 제2의 고향이라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작품에서는 유독 영등포가 고향인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맞아, 영등포 공장지대에서 자라서 그에 대한 추억이 많아. 아침이 되면 공장 노동자들의 자전거가 지나가는데 도시락을 매달아놨어. 저녁 어둑해지면 빈 도시락에서 수저 딸랑대는 소리가 요란해. 나는 그걸 매일 봤어. 전평이 나설 때 깡패나 청년단이 많이 돌아다녔어. 청년단과 노동자들이 길에서 충돌하는 것도 여러번 봤지. 그들이 막 싸우고 패고 그럴 때 우리는 꼬마들이니까 뭐. 김경일 교수의 『일제하 노동운동사』(창작과비평사 1992)나 사건 기록에 이름만 나오는 숱한 노동자들이 거기에 연루됐을 거 아냐.

 

마치 내가 5·18을 겪으며 대지를 공유했던 전라도 사람들에게서 연민을 느끼듯 선생님도 영등포 노동자들에게 생물학적 애착에 가까운 연정을 품고 있었다.

 

법정조서에 활자로 찍혀 있는 민초들의 이름을 보면서 굉장히 감동받았어. 그 노동자들 다 죽었겠지. 갑자기 출세해서 정치 인사가 된 건 아닐 테니 옥살이하고 나와서 쓸쓸하게 병에 걸리기도 하고 겨우 하청직 하나 얻어서 살아남기도 하면서. 대한민국 근대화 과정이 그렇잖아.

 

순간, 파쇼적 억압을 견딘 숱한 무명의 노동운동가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서울은 잠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숨 막히는 골방 혁명가들을 낳았다.

“저도 이재유가 일본인 주택의 마루 밑에 숨던 장면에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몰라요.”

북쪽 사회를 주도하는 인물들은 동지들과 함께 산악지대를 이동해 다니던 빨치산 출신 또는 그 후예들이다. 둘의 차이는 지금의 남북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시간이 지났으므로 나는 기회를 놓치기 전에 또 한 사람의 등장인물을 들이밀었다.

“최달영을 그려놓고 흡족하지 않으셨어요?”

이 끈질긴 출세주의 인간형을 등장시키지 않았다면 서사적 안정성이 상당히 깨졌을 것이다. 이이철 같은 인물과 대결하려면 ‘악인’이라도 저력을 갖춰야 대결적 긴장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만족했어. 이 사람 얘기는 따로 소설을 써도 되겠더라고.”

최달영이라는 인물의 적절성은 이들이 그동안 한반도 남쪽 체제를 운영한 주체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안다. 그밖에 거칠고 황량한 시대와 싸운 여성 활동가들 이야기도 나누었지만 내가 준비한 마지막 질문은 주제의식이었다. 독자가 서술자의 어조를 통해 얻는 느낌은 대체적으로, 세상이 점점 좋은 쪽으로 나아가나 그것이 열정과 헌신을 바친 사람들이 희망했던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니다, 이걸 텐데, 나는 소설의 전편을 통해서 단 세 문장밖에 할애되지 않은 어떤 구절에서 작가의 사상이라 부름직한 사유의 뼈대가 있음을 느꼈다.

 

집회에서 헤어지면 그들은 모두 혼자가 되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도 그들 각자가 혼자가 되었다.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202면)

 

인용문의 세번째 문장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에 이즈막의 황선생님이 당도해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예컨대 어떤 도저한 ‘영원’ 위에서 우리는 항상 ‘찰나’에 속하는 갈등과 씨름하는 존재임을 소설은 반복해서 보여준다. 때로는 ‘영원’이 우리에게 말을 걸지만 우리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 하려는 작업이 혹시 이같은 ‘사상’과 관련된 것인지 묻자 선생님은 그냥 앞으로 세권쯤의 장편을 더 쓰고 싶다고만 했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드는 한마디를 남겼는데 나는 그 말이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작가는 숨을 놓는 순간까지 글을 써야 하는 존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