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지아 鄭智我

1965년 전남 구례 출생. 1990년 장편 『빨치산의 딸』을 내며 작품활동 시작. jiajeong@hanmail.net

 

 

 

미스터 존

 

 

바닷가 절벽 위에 서 있는, 한쪽 벽면만 남은 헤이스팅즈성(城)의 잔해는 오늘밤도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11세기 중반, 노르만족의 침입 앞에 완강히 저항하던 앵글로쌕슨족이 마침내 무릎을 꿇은 바로 그 성이다. 밤이 깊어 주택가의 불이 꺼지면 시내는 온통 어둠에 잠기고, 비극의 전장(戰場)만 홀로 살아남는다. 성의 위치가 더 높은 탓에 불 켜진 성의 잔해가 마치 내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형상이다. 누운 채 눈을 치켜뜨면 허공 속에 눈부신 성의 잔해가 떠 있다. 나처럼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는 것인지 빈방 하나를 사이에 둔 존의 방에서 삐거덕거리는 침대 스프링 소리가 들려온다. 해가 지면 이 집에는 존과 내 방에서 번갈아 들려오는 침대의 잡음만 살아남는다. 주인을 닮아 거구의 체격을 가진, 그 체격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마가릿이라는 이름의 쎄인트 버나드도 이 집의 단둘뿐인 거주자처럼 하루종일 거의 움직이질 않는다. 녀석에겐 삐거덕거릴 침대도 없으므로 밤에는 녀석의 존재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밤 열시만 되면 이곳은 지하 무덤처럼 고요하다. 아니, 고요라는 말도 이 밤의 침묵을 설명하는 데는 적합치 않다. 단 하나의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완전한 침묵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성의 잔해가 진공청소기처럼 사람살이의 자잘한 소리들을 흡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는 밤마다 무성(無聲)의 공간 속에 홀로 빛나는 성을 바라보며 의심해보곤 한다. 완전한 침묵의 공간에서는 시간을 알 수 없다. 침묵은 시간마저 흡수한다. 침묵의 밤에는 시간이 잠시 그 흐름을 멈추고 우주의 어디쯤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시간이 더이상 흐르지 않고, 겨울 내내 바람 찬 처마밑에서 삐들삐들 말라가는 옥수수처럼 변해버린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이삼일에 일이분쯤 빨라지는 손목시계를 매일 라디오 시보에 맞추며 살았던 적도 있다. 그때는 모든 일이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돌아갔고, 시계 속의 시간 안에서 내 삶이며 역사 따위가 굴러가고 있는 거라 굳게 믿었다. 언제부턴가 시계를 라디오 시보에 맞추지 않아서 방에 놓인 몇개의 시계가 저마다 다른 시각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세상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지 않게 된 어느날부터 나는 바닷가의 모래알이 파도에 조금씩 떠밀려 뭍으로 밀려나듯 시간의 열외로 밀려났다. 아니, 내가 시간을 밀어낸 것인지 모른다. 밀어낸 것이든 밀려난 것이든 하기야 무슨 상관인가. 시간의 열외 지대에는 더이상 중요한 것이 없다.

허물어진 성의 불빛을 피해 돌아누운 내 시선이 벽에 머문다. 장미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진 색바랜 벽지 위에 일렬로 늘어선, 직사각형의 흰 부분들이 유독 도드라져 보인다.

올 4월, 나는 대형 여행가방을 끌며 이 방으로 들어섰다. 비자를 받지 않았으니 법적으로 머물 수 있는 최장기간이 6개월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그저 챙겨넣은 겨울용 외투며 스웨터 들로 인해 여행가방은 만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낯선 방에 짐을 내려놓고 보니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 겨우 가방 하나 분량이라는 게 신산스럽기도 했고, 이국까지 따라와야 할 긴요한 짐이라는 게 고작 몇벌의 옷이거나 신발, 속옷, 화장품 따위임이 어쩐지 서럽기도 했다. 낯선 방에 내질러진 그것들은 죽은 자의 소지품처럼 생기없고 누추할 뿐이어서 도무지 손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방 속의 소지품들을 마구잡이로 늘어놓은 채 나는 2인용 침대에 피곤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얼마 만엔가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낯선 시선이 엑스레이 촬영기처럼 나를 투시하고 있었다. 바라본다는 표현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한, 뜨겁고 강렬한 시선, 아니 시선들이었다. 사방의 벽을 빙 둘러 오래된 인물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무수한 과거 속 사람들의 시선이 사방에서 나를 조여들었다. 숨이 막혔다. 낯선 아침의 한기를 막기 위해 꼭꼭 채워놓은 윗단추를 풀어젖혀도 숨이 트이질 않았다. 서울에서처럼 또다시 양 볼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몇년 전 봄 나는 자진해서 정보기관으로 걸어 들어갔다. 사회주의가 몰락하기 직전에 발생한 국가보안법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얼마 전 나는 속해 있던 조직을 이탈했고, 몇년간 가족과도 연락을 끊은 채 대학가 앞의 자취촌을 옮겨다니며 혼자 지냈다. 그사이 함께 일했던 조직원들 대다수가 검거되어 감옥으로 갔다. 그리고 동구와 소련이 무너졌다. 만나는 사람도 없이 초라한 자취방에 웅크려 삼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피해 도망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른바 자수를 결심한 것은 혼자 동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다소 괴롭기도 했고,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악명 높던 남산의 정보기관은 내가 자수를 한 탓인지, 아니면 동구의 몰락에 뒤이은 운동권의 쇠퇴 탓인지 말이나 글로 알았던 예전의 서슬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미 조직원 대부분이 검거된 후라 사건의 전모가 다 밝혀진 탓도 있었을 것이다. 혼자 지내는 동안 내 기억은 상당히 흐릿해져 앞서 지나간 사람들이 진술해놓은 기록조차 사실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의 진술서를 토대로 대충 진술서를 작성하고 나자, 그들은 반성문을 요구했다. 반성문이라니, 나는 무슨 소린가 싶어 멍한 얼굴로 담당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당연한 절차니까 써요. 망설이는 나에 대한 배려였는지 그들은 한묶음의 반성문을 갖다주었다. 어떤 조직의 책임자가 쓴, 그들 말에 의하면 가장 진실하고 완벽한 반성문이라고 했다. 그 반성문은 어쩌면 철저한 위장용일지도 몰랐다. 그러지 않고서야 한때 적이라고 믿었던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발가벗기는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반성문을 쓰지 않으면 자수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협박 앞에서 나는 만 이틀을 버텼다. 내가 그때까지도 이전의 신념을 갖고 있었다면 대충 끼적거려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젊은 시절의 꿈을 대부분 상실하고 있었다. 한때는 장대한 뜻을 품었으나 그 뜻은 좌절되고 이제는 너무 늙어 다른 그 무엇도 새로이 시작할 수 없는 빈털터리 늙은 남편의 참담한 몰락을 지켜보는, 그러면서도 남편에게 바쳐온 평생의 순정을 쉽사리 거둘 수 없는 늙은 아내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나는 지쳐 있었고, 가슴은 텅 비어 있었다. 진리라는 것이 그 자체만으로는 아름다울 수 있을지 몰라도 진리이기 때문에 곧 현실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서른이 되어가는 나는 차츰 깨닫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전의 내 열정은 냉혹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정의나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핑크빛 전망과, 진실이 승리해야만 한다는, 그래야 세상이라는 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냐는 막연한 관념의 소산이었던 탓에 냉엄한 현실을 깨닫는 순간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패배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정의와 진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아름답고 강한 인간이기를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건 다만 희망사항일 뿐 나라는 인간은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절망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더욱더 반성문을 쓸 수 없었다. 그들 앞에서 반성문을 쓴다는 것은 그러지 않아도 초라해진 나의 젊음을 짓밟은 행위였다. 이틀 뒤, 그들은 내 앞에 자신들이 쓴 반성문을 내밀었다. 거기 싸인이라도 하라는 것이었다. 다섯 시간쯤 망설인 끝에 나는 펜을 들었다. 그리고 싸인을 했다. 3박 4일을 함께 했던 다섯 명의 정보부 직원들이 일제히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싸인을 하고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돌렸을 때 한 남자직원의 눈과 마주쳤다. 반성문을 건네받은 과장은 잘 생각했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지만, 남자직원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실망감이 엿보였고, 이내 멸시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무엇인가가 무너지는 굉음을, 나는 들었다. 온몸의 피가 얼굴로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로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는데 모세혈관의 피까지 다 역류해 얼굴이 폭발해버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다음날부터 나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길을 가다가도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시선이 제각각 다른 방향에서 내 머릿속을 엑스레이처럼 더듬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급기야는 하루종일 벌건 얼굴로 안절부절못한 채 서성거려야 했다. 몇날 며칠 홍조가 계속될 때도 있었다. 빈 공간에서도 나는 무수한 시선을 느꼈다. 전셋돈을 빼 아무 대책 없이 짐을 꾸린 것은 어쩌면 그 시선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무수한 시선들을 피해 도망온 이역의 낯선 방에서 나는 또다시 시선의 포로가 되고 만 것이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옛사람들의 시선을 견뎌내라는 집주인의 횡포에 짜증이 치밀었고, 석달치 방세를 선불한 나에게 그럴 권리가 있을까를 잠시 고민하다가 마침내는 액자를 하나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맨 오른편에 걸린 액자는 삼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의 사진이었다. 서양사람치고는 둥그스름한 얼굴이었는데 원래 그런 의도로 찍은 것인지 빛처리가 잘못된 것인지 얼굴선과 여백의 경계가 흐릿해서 막 공간 속으로 사라지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자기다운 무엇을 하나씩 대기중에 유출하며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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