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민주주의와 문학, 그리고 헌법의 안팎

 

 

남상욱 南相旭

인천대 일문과 교수. 공저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일본, 상실의 시대를 넘어서』 등이 있음. indimina@gmail.com

 

 

1. 광장과 헌법

 

민주주의의 위기가 일상화되고 있는 오늘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시민들의 직접적인 시위는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동시대적으로는 2012년부터 일본의 국회와 총리 관저 주위에서 벌어져온 반원전·반개헌 시위나 2014년 홍콩의 우산혁명이 그러하다. 하지만 규모나 영향력으로 봤을 때 2016년 말에 시작된 한국의 촛불에 비견될 만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오히려 촛불은 약 반세기 전인 1960년 일본에서 일어난 안보투쟁을 연상시킨다.

안보투쟁은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갱신을 반대하는 국민적 요청을 무시하고 1960년 5월 19일 키시 노부스께(岸信介) 내각이 경찰대를 국회 안에 배치한 후 신안보조약 통과를 강행하자, 이에 반발한 노동자, 시민, 학생 들이 국회를 둘러싸고 약 한달에 걸쳐 벌인 시위인데, 6월 4일 시위에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 참가한 사람의 수가 56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1 이러한 국민적 압력 때문에 당시의 총리인 키시 노부스께가 사임하게 되는데, 이렇게 일본 역사상 최대의 국민이 모여,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한 권력자의 사임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은 촛불과 유사하다.

물론 안보투쟁은 애초의 저지 대상이었던 미일안전보장조약이 몇가지 사항만이 변동된 채 갱신되었고,2 일본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여전히 강고하게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일본정치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국제정치에 미친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현대사에 있어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던 만큼 그 사회적 파급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일본문학에도 적지 않은 변동이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그 변동은 일본의 정치적 이슈나 시민운동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젊은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젊은 일본의 모임’(若い日本の會)을 만들어 이에 참여한 반면, 그동안 사회운동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일본공산당 계열 문학인들의 권위가 실추되었으며,3 그때까지는 뚜렷한 정치적 성향을 보이지 않았던 미시마 유끼오(三島由紀夫), 후꾸다 츠네아리(福田恒存), 에또오 준(江藤淳) 같은 작가들이 안보투쟁 이후 보수적 성향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되었다는 식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동의 이면에 ‘헌법’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가치판단이 맞물려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박원순(朴元淳) 서울시장이 말한 것처럼 한국인들에게 촛불이 “문자로만 있던 헌법 제1조, 장식물에 불과하던 헌법 제1조가 그야말로 광장에 살아나온 것”을 목도한 경험이었던 것처럼,4 1960년 안보투쟁 역시 그동안 진지하게 질문되지 않았던 일본국헌법의 가치가 문학장에서 화두가 되는 계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안보투쟁 이전에 헌법에 대한 논의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가 지적한 대로, 쌘프란시스코강화조약 체결 직후부터 일본의 정치권에서는 대미 종속의 해소와 비무장 중립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재군비와 개헌을 통해 미국과 대등한 파트너가 될 것인가 하는 방향성을 둔 논의가 이미 진행되어왔는데, 1955년 집권한 자민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위대는 헌법이 금하는 ‘전력’이 아니다”라는 이른바 ‘자위대합헌론’을 들고 나왔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자위대의 군비강화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많은 일본인들 또한 일본국헌법의 틀에서 자위대의 유지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5 하지만 안보투쟁 이후, 자위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나는 전쟁 방기라는 모럴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그것을 일본인의 일반적인 모럴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일본에 자위대라는 군대가 있고, 그것은 갓난아이의 눈에도 보이고 노인의 눈에도 보인다. 그것은 우리들 일본인 모두의 눈에 나타나 퍼레이드를 한다. 그것을 바라보면, 헌법에 전쟁 방기라는 조항6이 있는 나라의 인간으로서, 누구라도 자신의 모럴이라는 것이 상처받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은 일반적으로 인간적인 퇴폐, 혹은 모럴의 파괴라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7

 

1964년 오오에 켄자부로오(大江健三郎)가 ‘헌법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한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이른바 ‘헌법-내-인간’으로 규정하게 되었을까.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이 글은 안보투쟁을 거치면서 일본 문학자들이 현재 일본의 헌법을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아베 신조오(安倍晋三)의 개헌 시도에 대한 일본 문학자들의 대응을 예측하게 할 뿐만 아니라, 촛불 이후 한국문학의 미래를 생각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조점이 될 것이다.

 

 

2. 헌법의 재발견

 

안보투쟁 당시 일본 도립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중국문학 연구자 타께우찌 요시미(竹內好)는 1960년 5월 21일 학교에 사표를 제출한다. “헌법이 무시당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도쿄도립대학 교수직에 머문다면 취임할 때의 서약을 저버리는 일”이며, “교육자로서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 될 것임을 그 이유로서 들고 있다.8 이어서 6월 12일, 그는 ‘우리의 헌법감각’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한다.

 

오늘날 우리는 저 5월 19일을 거울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절차를 거쳐 독재자가 태어난다는, 역사상 초유의 사건과 마주했습니다. 아무리 성문헌법이 훌륭해도 단순한 관료의 작문일 뿐입니다. (박수) 지금 헌법을 몸으로 익히려면 옷 갈아입듯이 과거 헌법을 버리고 새 헌법을 취해서는 안 됩니다. 전통 위에 서서 혹은 전통을 재해석하며 지금의 헌법이 새롭게 자기 몸에 배어들게 해야 하며, 과거 전통의 연속 위에서 헌법감각을 새롭게 수립하

  1. 小熊英二 『<民主>と<愛国>: 戦後日本のナショナリズムと公共性』, 新曜社 2002, 515면.
  2. 패전 후 미국에 의한 일본 점령기간에 기안되어 발포된 일본국헌법은 제국헌법과는 달리 주권자를 천황이 아니라 국민으로 규정했고, 전쟁 금지를 명문화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쌘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동시에 체결된 미일안전보장조약은 미국이 미군의 세계전략에 따라 일본 전토를 기지로서 제공받을 뿐만 아니라 일본 내 치안 유지를 위한 내란진압을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일본방위의 의무는 빠져 있는 종속적인 조약이었다. 키시는 안보조약 갱신을 추진하면서 미군의 일본방위 의무를 명시하고 내란진압 조항은 삭제했지만, 극동의 평화 및 안전을 위해 일본을 군사기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이른바 ‘극동조약’은 그대로 남겼는데, 바로 이러한 점이 일본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요인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3. 패전 후 일본문학의 헤게모니는 공산당 계열의 『신니혼분가꾸(新日本文學)』가 쥐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시민 주도의 안보투쟁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맹렬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예컨대 “세계사의 동향을 결정한 러시아혁명이나 중국혁명에 비하면 일개 일본의 패전 따위 고려할 가치가 없는 매우 작은 일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안보투쟁의 의미를 축소시킨 하나다 키요떼루(花田清輝)에 대해, 요시모또 타까아끼(吉本隆明)는 “국가권력 밑에서 각 인민의 싸움 동향의 총화야말로 세계사의 동향이라든지 혁명의 인터내셔널리즘보다 중요하다”라고 반발하며, 안보투쟁을 전후 15년의 “의제의 종언”, 즉 인텔리에 의한 계몽주의의 종언으로 총괄했다.
  4. 박원순 「촛불이 바꾼 것과 바꿔야 할 것」, 『창작과비평』 2017년 여름호 307면.
  5. 小熊英二, 앞의 책 496면.
  6. 제9조를 지칭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하게 희구하고, 국권이 발동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의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이를 방기한다. 2.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과 그 외의 무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나라의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7. 大江健三郎 『嚴肅な綱渡り』, 講談社 1991, 194면. 이하 강조 및 주석은 인용자.
  8. 다케우치 요시미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 1: 고뇌하는 일본』, 윤여일 옮김, 휴머니스트 2011, 37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