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연수

김연수金衍洙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스무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등이 있음. larvatus@netian.com

 

 

장편연재 2

바다 쪽으로 세 걸음

 

 

7

 

어머니는 그날 저녁, 지방의 친척이 인편으로 보내온 떡과 말린 전복과 닭다리를 소주와 함께 아버지와 천재시인에게 내놓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같은 상에 앉기는커녕 사랑채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못했을 텐데, 그날만은 웬일로 어머니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들까지 모두 상에 앉히고는 함께 먹자고 아버지가 권했다. 아마도 천재시인과 아버지 두분만 드시면, 혼자 남게 될 초희가 외로움을 탈까봐 그런 배려를 하신 모양이었다. 형과 나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지만, 어머니만은 따로 먹으면 된다며 한사코 사양하시다가 천재시인이 술 한잔만 드시고 가라고 청하자, 그 말에는 고분고분 잔을 받았다. 하얀 사기잔에 투명한 소주가 채워지자,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내 처음 시집 왔을 때, 그 댁 형님께서 문지방이 닳도록 저 양반을 찾아와서는 밤새 술을 마시는 통에 음식이며 청주며 내가 갖다 대느라 솥뚜껑이라도 내다팔아야 할 형편이었답니다. 내가 속으로 그리 미워하는 줄 알았는지 몰랐는지 상을 봐서 들어가면 술 한잔 하라며 잡아끄는데 그 손은 또 얼마나 맵던지. 그래서 내가 그 댁 형님 술잔을 받아본 일이 한번도 없어요. 그런데 어느 해인가 우리 규가 태어나기 한해 전이었으니까 기묘년 9월인가 봐요. 그 댁 형님이 찾아와 또 밤새 저 양반과 술을 마시더니 해가 중천에 뜨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아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오후도 아주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가 다 되어 방에서 나오더니 어느 틈엔가 안채까지 들어와 나더러 잠깐 보여줄 게 있으니 사랑방으로 좀 같이 가자고 하더이다.”

“그런 일이 있었소?”

아버지가 짐짓 처음 듣는다는 듯이 되물었다. 알면서 모르는 척. 그건 우리 아버지의 가공할 만한 처세술이어서 그 시절에 우리도 얼마나 당했는지 모른다. 그 재주는 고스란히 내가 물려받았다. 형은 어머니를 좀 닮았는데, 어머니 역시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왜, 더한 일도 많았지요.”

어머니가 바로 받아쳤다.

“어쨌든 따라오라고 해서 제가 따라갔습니다. 마루에 올라서더니 나더러 문을 한번 열어보라고 해요. 밤새 손님이 묵은 방을 왜 나더러 열어보라는 말인가 싶어서 자못 불쾌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하도 진지한 표정으로 권하기에 피할 방법이 없어 일단 어찌될지 몰라 부엌에 있던 찬모까지 오라고 해서 지켜보게 한 다음에 문을 열어봤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

어머니는 방 한쪽에 걸린 족자를 가리켰다. 족자 안의 그림에는 기암괴석에 백화만발한,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봉우리 아래로 금방이라도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 계곡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펼쳐져 있었다. 어려서 나는 늘 그 그림 속의 산이 삼각산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가져가서 쌀이나 팔아오라고 그린 그림이었다는데, 보는 순간에 어찌나 마음이 탁 트이던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더니 그 그림을 보니 마음속에 품었던 미움이 눈 녹듯 사라지더군요. 하룻밤 새 방안에 삼각산을 들일 만큼 재주가 뛰어난 분이었는데, 결국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고 변방에서 쓸쓸하게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마음이 쓰렸습니다. 그 소식 듣고 옛날 생각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술 한잔 마셔보라던 그 말, 매정하게 뿌리친 게 생각나더군요. 해서 이 잔은 제가 받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어머니는 술을 들이켰다. 어머니가 술을 드시는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형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가 삼년 유배를 떠난 시절에도 일절 술 같은 건 입에 대지 않은 분이었고, 집에서 두분이 겸상으로 술을 드신 적도 없으니 아마도 처음 혼례를 올릴 때를 제외하면 그렇게 마주 앉아 술을 드신 것 역시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잔을 비운 어머니는 그만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가 문을 여니 초이틀 칠흑처럼 캄캄한 밤이 내다보였다. 문이 닫히자마자, 아버지가 말했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장차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 여기 그림 옆에 적힌 시를 보게나. 이렇게 멋지게 삼각산을 그려놓고는 자네 형님이 떠오르는 대로 쓴 시라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등잔을 들고, 그 족자로 다가가 한자 한자 읽어나갔다. 일리춘우에 행화잔하고, 처처인경백수간이라…… 손가락으로 족자를 더듬는 아버지의 얼굴이 불빛을 받아 환했고, 그 그림자는 온 방안을 가득 메우고 너울거렸다.

“누구의 시인지 알겠는가?”

“주계군(朱溪君 李深源)의‘즉사(卽事)’로군요.”

식은 죽을 먹는 게 더 힘들 것이라는 듯 천재시인이 말했다.

“그렇지.”

아버지는 형에게 그 시를 큰 소리로 읊어보라고 말했다. 자기 아들도 나름 천재라는 걸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형이 고개를 들었다.

 

한줄기 봄비에 살구꽃 지고 나니

여기저기 농부들은 무논을 가느라 분주한데

바다처럼 아득하고 푸른 강에 나 홀로 서니

슬프고 원망스런 마음에 삼각산을 못 보겠네

(一犁春雨杏花殘 處處人耕白水間 獨立蒼茫江海上 不勝搤望三山)

 

족자를 바라보며 시를 읽고 그 뜻을 푸는 형의 모습은 내가 봐도 멋있었다. 그러니 초희는 오죽했겠는가! 약이 올랐지만 그 상황에서 “처언하아초온거언처언”이라거나 “오오지이아안수우하안”이라고 말하다가는 더 큰 망신을 당할 수밖에 없으니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아버지는 만면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올해 이제 겨우 아홉살이라네.”

아니나다를까, 아버지가 형을 칭찬했다. 초희는 그런 형을 바라봤다. 하도 뚫어져라 쳐다보기에 반해도 단단히 반했구나는 생각에 낙담하고 있던 차에 초희가 말했다.

“그럼 저보다 오라버니시네요. 저라면 세번째 구를 다르게 풀 거예요.”

아버지가 초희를 바라봤다.

“얘는 올해 일곱살입니다.”

천재시인이 말했다.

“어떻게?”

천재시인의 말을 무시하며 아버지가 초희에게 물었다. 눈썹이 짙은 초희는 눈을 크게 뜨고 족자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지금 시인은 배에 올라타서 고개를 숙이고 강변에서 논을 가는 사람들만 바라보고 있잖아요. 고개를 들면 삼각산이 보일 텐데, 그게 보기 싫어서요. 슬프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대궐 쪽은 바라보지도 못하는 거죠. 왜냐하면 임금의 미움을 받아 지금 가기 싫은데도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고 있으니까. 저라면‘바다처럼 아득하고 푸른 강에 나 홀로 서니’라고 풀기보다는‘바다처럼 아득하고 푸른 강 나 홀로 건너가니’라고 풀겠어요. 그래야 서울을 떠난다는 숨은 뜻이 살겠지요.”

그러자 아버지가 말했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그처럼 움직이지 않는 글자 속에서 숨은 움직임까지도 다 꿰뚫어보니 너야말로 참으로 글을 읽을 줄 아는 아이로구나. 총명하기 이를 데 없다. 너라면 네 큰오빠가 그때 무슨 마음으로 이런 시를 여기다 적고 갔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지나고 나니 사소한 이런 일들까지도 남은 사람들에게는 모두 중요해지는구나. 그러니 살아가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너희에게는 앞으로의 인생이 바다를 건너는 것처럼 길게 느껴지겠지만, 그 모든 일들의 의미를 알기에 사람의 한평생은 얼마나 짧은 것인지.”

그건 늘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기만 하던 아버지의 말들 중에서 유일한 칭찬처럼 들려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았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렇다면 그날 밤의 일들도 내게는 그렇게 그냥 지나간 일이겠다. 그 밤에 우리는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가며 차마 삼각산을 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봄 논을 가는 농부들을 바라보는 한 시인을 봤고, 또 그 시인이 꿈에서도 그리워하던 삼각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봤다. 그리고 술을 입안에 머금고 옛 일을 생각하던 어머니를, 등불을 들고 족자 속 글자들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읽던 아버지를, 먼저 죽은 형이 남긴 운(韻)에 맞춰 새롭게 시를 지으며 문득 눈물을 흘리던 천재시인을, 하지만 그런 오빠의 옆에서 또랑또랑 눈을 뜨고 어둠속의 어딘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보던 초희를 봤다.

술에 취한 천재시인이 누군가를, 그게 형을 변방으로 유배 보낸 임금이든 그 일을 부추긴 형의 정적(政敵)이든 그 누군가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혹은 사람이 사는 세상의 덧없는 일들에 대한 부처의 말들을 얘기할 때마다 아버지는 그의 차고 넘치는 말들이 문지방을 넘어갈까봐 겁을 내는 사람처럼 다그치고 윽박질러 그 입을 막긴 했지만, 결국 그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줬다. 아마도 이 세상에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 그는 큰 위로를 받았으리라. 속 깊이 아픈 자들에게 위로란 아무런 내용도 없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그런 텅 빈 말들이 실제로 그들을 달랜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바다 위에 웅장하게 솟아 무지갯빛을 발하던 광상산(廣桑山)의 눈부신 절경과 날아오르는 학이며 떠다니는 공작의 호위를 받으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그 누이의 모습을 형용한 내 헛된 말들에 실제로 누이를 잃은 그가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그날은 구월의 초이튿날이었고, 젊은 그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분노와 절망과 원한과 복수심을 얘기하는 동안, 형과 초희와 나는 사랑방에서 나와 하얗게 반짝이는,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과 그 주위의 뭇별들을 바라보며 안채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형은 손을 들어 별을 가리키며 초희에게 자미성(紫微星)을 아느냐고 물었고, 초희는 안다고, 그 별의 주인이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안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그게 어떤 세상인지 알지 못했지만, 초희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의 운명을 관장하는 거대한 손 같은 걸 떠올렸다. 그 손의 주인은 모든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는지, 또 어떤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아들과 딸은 몇이나 낳을 것이며, 행복한 삶을 사는지 불행한 삶을 사는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우리가 사는 이런 세상에서. 밤은 부쩍 길어졌고 바람은 서늘해졌다. 그때 누군가 종종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누구랄 것도 없이 다들 뛰기 시작했다. 어둠속을. 제일 먼저 형이. 그 다음으로 초희가. 그리고 내가. 곳간에서는 나귀가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기나긴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 겨울이 지나면 나도 솔잎노인에게 글을 배우게 해달라고 아버지를 졸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8

 

짐작했겠지만, 솔잎노인에게서 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자니, 예수회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오랑캐처럼 머리를 짧게 깎은 이상한 모습의 형이 외던 문장들이 떠오른다.

 

In Primmis Dominum Deum diligere ex toto corde, tota anima, tota virtute.

제일 먼저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

Deinde proximum tamquam seipsum.

그 다음으로 이웃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라.

 

나라면 그런 허망한 말들을 믿느니 차라리 은화를 믿겠다마는 내가 침대 밑에 묻어둔 단지에 여러 나라의 은화를 모아두듯이, 여러 경전의 말들을 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