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연수

김연수 金衍洙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소설집 『스무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등이 있음. larvatus@netian.com

 

 

 

장편연재 4 (마지막회)

바다 쪽으로 세 걸음

 

 

19

 

“술에 취한 일본 무사들에게 그 칼을 자랑할 생각인가요?”

“사무라이들 앞에서 칼을 자랑할 정도로 난 멍청하지 않아. 잘 알잖아.”

“당신이 멍청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어요. 하지만 당신의 천성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그건 멍청함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멍청함과는 완전히 다른, 천성의 문제. 초희는 이솝우화에 나오는 한 이야기를 말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은 글을 읽을 줄 아는 조선인 키리시딴이었을 테고, 그가 읽은 건 나가사끼의 쎄미나리오 시절에 우리가 인쇄한 판본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얼굴을 알지 못하는 그 조선인에게 맹렬한 질투심을 느꼈다. 일본에서 예수를 믿게 된 다른 조선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초희 역시 그 교리강독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했겠지.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내게 단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그건 오직 여자들에 대한 욕정의 발로였으리라. 어쨌든 그 이야기에서 허망한 약속만 믿고 전갈을 태워 강을 건너가던 개구리는 침에 찔려 죽는다. 자신은 죄없이 선량하다고 믿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니, 거기까지는 우화랄 것도 없다. 우화는 자기 역시 죽을 줄 알면서도 전갈이 독침으로 개구리를 찌를 때 비로소 완성된다. 강을 건너가고 싶다면 그 누구도 믿지 말고 혼자서 건너가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오래된 우화.

“걱정하지 마. 내 천성은 온유해. 늘 죽은 자들에게는 친절했거든. 술을 마시다가 부음을 전해들은 것뿐이야. 일본에 사시던 형님이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네.”

“당신에게 형님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일본에. 어떻게 돌아가신 건가요? 형님이라면 아직 돌아가실 나이는 아닌데.”

“사흘 동안 불에 탔다네. 그래서 완전히 숯이 된 줄 알았는데 다시 그 불에서 나와 세 걸음을 걸어갔다고 하네. 바다 쪽으로. 이따가 뭐, 제사라도 지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뭐 기도 같은 것이라도?”

“뭐라도 좋아요. 아무래도 괜찮아요. 오늘은 좀 쉬는 게 좋겠어요.”

“밥… 밥… 밥… 밥을 지어야만 할 것 같은데. 일단은 저 일본 손님들을 재우고 나서.”

밥이라고 말하는 순간, 어떤 쾨쾨한 냄새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런 종류의 냄새는 도대체 내 속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볕이 잘 들지 않던 어두운 그 방의 냄새. 다음날 아침이 됐을 때, 내 몸에서는 열이 완전히 사라졌지만, 형의 몸은 여전히 뜨거웠다. 형은 눈을 뜬 채로 천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그의 눈에서 눈물이 귀뺨으로 흘러내렸다. 그건 성모님이 한 말 때문에 나온 눈물이었다. 내가 전갈이라면 형은 개구리 같은 사람이랄까. 형의 유일한 장점(과유불급이니 한 인간의 장점은 언제나 단점과 통해 있었다)은 허망한 말들을 쉽게 신뢰한다는 점이었다. 빗물처럼 귓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꿈결의 말이든, 화강암을 파낸 듯 한자 한자 무겁게 적어간 경전의 준엄한 구절이든 형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성모님의 말은 형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고나 할까. 그때까지도 형은 역모의 누명을 씌워 아버지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고 마르내의 그 집으로 돌아가 집안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헛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병으로 죽지 않으리라는 것은 희소식이었으나, 그리하여 바다를 건너가게 되리라는 건 그 모든 희망을 저녁구름처럼 흩어지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가 어떻게 바다를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늦든 빠르든 언제나 형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지나칠 정도로 그 운명에 맞서고 난 뒤에야 겨우.

형에 비하면 나는 사람의 말 같은 건 쉽게 믿지 않는다. 나는 내 몸 바깥의 어떤 거대한 실체, 예를 들어 교리나 역사 같은 걸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건 혀로 맛볼 수 있는 맛과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는 물체와 코로 느낄 수 있는 냄새였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감각의 원천들. 그러므로 그 죽음의 방에서 기어나가 밥을 짓고 그 설익은 밥을 손으로 누르고 또 뭉쳐서, 마다하는 형의 입에 부득불 넣어준 사람은 나였다. 겨울,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은 고드름을 만질 때보다 더 차가웠고, 설익은 밥은 모래보다 더 까칠하게 씹혔다. 하지만 형은 애써 그 밥을 맛보려고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압도적인 슬픔을 맛보고 있었다. 어디서 비롯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이제는 원래 형의 내부에 존재했던 것인지 어딘가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온 것인지 알 수도 없는 막대한 슬픔. 사람은 아프면 죽고, 슬프면 죽고, 괴로우면 죽고, 늙으면 죽는다고 생각했으므로 나는 형이 곧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외롭고 무서워졌다. 나는 처마 밑에서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마다 곽의원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슬픔을 앗아갔으니 원망해야 할지 아리송했다. 슬픔을 느끼지 못하니 적어도 나는 슬퍼서 죽지는 않겠구나 생각했다. 나날이 형의 몸은 가을나무처럼 앙상하게 말라갔다.

며칠이 지나자, 형은 차가운 물을 한사발 들이켜더니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은 핼쑥했으나 형의 몸은 적당히 식어 있었다. 나는 뒤돌아볼 것도 없이 돌림병으로 귀신들이나 사는 곳이 된 그 마을을 떠나고 싶었는데, 뜻밖에도 형은 구덩이를 파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에 쓰려고 구덩이를 파는지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그때부터 형은 죽은 자가 사용했을지도 모르는 악취 나는 이불을 친친 감고 마을 주변을 돌아다녔다. 형은 신중하게 구덩이를 팔 장소를 골랐다. 얼마나 신중했느냐면 마땅한 자리를 고르는 데만 이틀이 필요할 지경이었다. 마치 나라를 세울 땅을 고르던 고구려의 주몽처럼 말이다. 집집마다 광을 뒤져 마른장작과 괭이를 찾아 짊어지고 형이 마침내 선택한 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형은 활을 무척 잘 쏘았다던 옛 아이 고주몽에 대한 얘기를 내게 들려줬다. 형에게는 일부러 살을 빼면서 남몰래 기른 명마도 없었고 엄수(淹水)를 함께 건너갈 세 동무도 없었다. 대신에 형에게는 매끼 뜨거운 밥을 해주는 동생이 있었고, 또 괭잇날이 무뎌질 때까지 얼어붙은 땅을 파고 또 팔 수 있는, 거의 미치광이의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끈기가 있었다. 알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죽이려던 적들을 피해 졸본까지 도망간 주몽이 고구려를 세울 때의 나이가 열두살이라고 했던가? 그때 구덩이를 파던 형의 나이는 겨우 열살이었다. 놀랍지 않은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놀랍다. 여기 말라카, 검은 살갗의 아이들처럼 뙤약볕도 마다하지 않고 종일 장난치고 놀면서 친구들과 울고 웃는 일 말고 열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차근차근 기억을 더듬어보면 열살이었을 때, 우리는 어른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일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으리라.

그 새들에게 물어본다면 그때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지 가르쳐줄 것이다. 부리가 검고 온몸이 까만 새들. 열병에 걸려 누워 있는 동안 여러차례 눈이 내렸는지, 또 그 눈송이들이 녹아내리는 일 없이 모두 착하게 쌓여가기만 했는지 오래전에 내린 눈 위에 다시 새로운 눈이 차곡차곡 떨어져 들판이 온통 하沍다. 그 새하얀 들판 위에 주근깨처럼 까마귀들이 앉아서 우리를 쳐다봤다. 열살 정도의 어린이들이라면 무시해도 된다고 여겼는지 우리가 걸어가는데도 그저 몇걸음 위치만 옮길 뿐, 날아갈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짊어지고 온 장작을 탑처럼 쌓은 뒤, 놋그릇에 담아온 불씨를 가운데 넣고 불을 피우는 광경을 까마귀들은 물끄러미 지켜봤다. 꺼질 듯 말 듯, 붙을 듯 말 듯, 우리가 번갈아 후후 입김을 불어대자 불씨가 간신히 나무에 옮겨 붙었다. 형이 불붙은 장작을 들고 흔들어대자 몇마리가 까악까악 소리를 내면서 날아갔다. 이윽고 다른 까마귀들도 두서없이 날아올랐다. 하지만 날아가지 않고 계속 우리를 지켜보는 녀석도 있었다.

“말 그대로 오합지졸이구나. 같은 까마귀지만 주몽의 새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

형이 말했다. 나는 형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웃기 시작했다.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나중에는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웃었다. 내 평생 그처럼 우스운 말은 그때 처음 들었다는 듯이. 그 말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형이 다시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주몽의 새는 어떤데?”

“태양에 사는, 다리가 셋인 새지. 몇백년에 한번씩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은 뒤에 다시 젊은 새로 태어나.”

그 말을 하는 형의 표정에 나는 정말 희망을 품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말했다.

“그럼, 형, 구덩이는 파지 말자. 차라리 여기다 나라를 세우자. 난 포기할 테니, 형이 임금님 해. 주몽처럼. 찾아보면, 이 근처에 다리 세개인 까마귀도 어디 있을 거야. 내가 잡아올게.”

내 의견에 대한 형의 대답은 돌멩이였다. 형은 날아가지 않고 들판에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던 마지막 까마귀를 향해 돌을 던졌다. 그 까마귀는 날개를 펄럭이더니, 나는 새를 어떻게 돌로 맞히겠느냐는 듯이 심드렁하게 바라보다가 조금 뒤로 물러섰다. 형이 거듭 채근하는 바람에 나 역시 까마귀에게 돌을 던졌다. 아무렇게나 던졌는데, 내가 던진 돌은 까마귀를 맞혔다. 다리가 꺾이는가 싶더니 날개를 펄럭이며 그 새는 날카롭게 울어댔다. 화가 난 까마귀가 갑자기 우리를 공격할까봐 겁이 났지만, 그 새는 날아가지도, 우리를 향해 달려들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형은 그쪽을 향해 침을 뱉었다. 나도 따라서 침을 뱉었다. 우스운 이야기, 그러니까 오합지졸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그때 나는 그게 진짜 우스운 이야기였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진짜 우스운 이야기는 그다음부터였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 있었나? 보지 못한 눈들이 잔뜩 쌓였네.”

형이 몇번 땅을 찍었더니 괭이 끝에서 얼음 같은 게 하얗게 튀었다.

“달이 다시 차올랐으니까 한 보름 정도.”

“그새 눈이 몇번이나 내린 모양이네. 층층이, 내린 날짜가 다른 눈들이야.”

“응. 요 며칠 처마에서 눈 내리는 거 몇번 지켜봤어. 난 형이 그냥 죽는 줄 알았어.”

쪼그리고 앉아 손으로 눈을 파보던 형이 내 쪽을 돌아봤다.

“난 안 죽어. 우리 안 죽는다고 그때 그 부인이 말했잖아.”

“그럼 구덩이는 나중에 파자.”

“파고 싶어서 파는 게 아니야.”

“파고 싶어서 파는 게 아니면? 누가 파라고 해?”

“응. 아버지가. 밤마다 아버지를 봤어.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극락에 계셔. 극락에서도 어머니와 할머니는 사이가 안 좋다니 걱정이야. 내게 구덩이를 파라고 말한 건 아버지야.”

나는 형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매일 밤 형의 곁에서 잠들었지만, 나는 한번도 아버지를 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꿈에 나온 아버지가 ‘남전여씨향약(藍田呂氏鄕約)에 왈(曰), 범동알자(凡同挖者)는 덕업상권(德業相勸)이라’고, 즉 ‘남전 여씨의 향약에 가로되, 모두 같이 구덩이를 파는 사람은 덕행과 학업을 서로 권면한다’라고 읊조리기까지 했다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구름 한점 없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건 명절에 식구들과 함께 친척집에 놀러가는 것과 마찬가지야. 다들 가는데 나 혼자 마르내 그 큰 집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시선을 돌려 형을 바라봤다. 더러운 이불을 친친 감고 선 형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좋아, 형. 그럼 파자.”

그날부터 당장 우리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형이 괭이로 뒤집은 흙을 내가 삽으로 떠냈다. 그러는 동안, 내 입에서는 ‘남전여씨향약에 왈, 범동알자는 덕업상권이라’는 노랫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노래하는 걸 들은 형은 나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나로서는 알아차리기 힘들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었으랴. 사나흘 뒤에 우리가 어떻게 되든 그 순간 형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게 나로서는 너무나 기뻤다. 우리가 일하는 걸 더 바라보기가 지루했던지 계속 앉아 있던 까마귀가 마침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올랐다. 그 발이 혹시 세개가 아닐까 싶어서 나는 날아가는 까마귀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삼족오(三足烏)일 리는 없었다. 대신에 그냥 까만색인 줄 알았던 까마귀의 몸통은 깊숙한 곳에 보랏빛을 품은 검은색이었다. 얼마간 구덩이를 파고 있으려니까 그 까마귀가 날아갔던 다른 까마귀들을 데리고 와 다시 우리 주위에 새카맣게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형도 까마귀떼를 쫓지 않았다. 우리는 까마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구덩이를 파내려갔다.

그렇게 이틀 동안 꼬박 땅을 파고 나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나기 시작했다. 이틀 만에 구덩이는 우리 두 형제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고도 깊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