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상섭

이상섭 李相燮

1961년 경남 거제 출생. 1998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2002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 소설집 『슬픔의 두께』 『그곳에는 눈물들이 모인다』가 있음. lsangsup@hanmail.net

 

 

바닷가 그 집에서, 이틀

 

 

야, 이상만! 너 운전 초보지? 혜주가 계속 신경 거슬리게 잽을 날리는 중이다. 졸지에 즐거워야 할 길이 삐걱대고 있다. 그대도 인생 초보시잖아요? 혜주의 입에서 핏, 소리가 터진다. 꼴에 뿔난 성질 더 건드렸다간 돌아가자고 난리를 피울 것 같다. 이쯤 해서 분위기 뒤집어야겠다. 내가 슬쩍 눙친다. 그러게 급한 성질머리 좀 죽이시든가 하지 않고는. 니가 웅덩이에 빠진 게 내 잘못이야? 발밑부터 확인했어야지, 장마철인데. 그렇다고 웅덩이에 차를 대는 기사새끼가 어딨어? 아, 씨발. 차 밑에 있는 웅덩이를 내가 어떻게 다 아냐? 그러니까 확실히 살펴보고 차를 세워도 세워야지! 이렇게 팽팽하게 나가다간 내가 먼저 열 뻗쳐 돌아버릴지 모른다. 안 그래도 날씨마저 한 짜증, 하는 중인데. 할 수 없다, 내가 저 성깔이 더러워서라도 참아줘야지.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동만이 잡아 멋진 휴가 보낼 생각이나 하자. 그래도 혜주는 지지 않고 깐죽거린다. 그럼, 그게 휴가야? 사냥이지. 괜히 긁어 부스럼이다. 거참, 되게 까칠하게 구네. 그럼, 처음부터 따라나서지 말든가. 누가 먼저 가자고 했는데? 니가 먼저 고민이 눈처럼 폭폭 쌓여 미치겠다고 했잖아! 그런 기분을 누가 먼저 잡쳤냐고! 아, 알았다, 알았어. 미안하게 됐다. 그래도 잘못했단 소리는 끝까지 안하네, 미친놈이? 그게 그거지. 아냐, 미안하다는 말과 잘못했다는 말은 달라. 어째서?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미안하다고 해선 안되는 거지. 나 참, 여자애가 성깔 하나는 타고났다. 그게 뭐 다르다고 저리 똥고집일까. 저런 애를 뭐가 좋다고 달고 나설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그때부터 내 머리가 이상했는지 모르겠다. 혜주는 더이상 입방아 찧기 싫다는 듯 창밖만 내다보고 있다. 빵빵, 하는 소리가 울린다. 뒤에 왜건 한대가 바짝 붙어 있다. 여차하면 추월할 기세다. 안 그래도 열선 뻗쳐 죽겠는데 저것까지 개지랄이다. 저런 새끼는 내가 아무리 초보라도 용납을 못하신다. 액셀을 힘껏 밟는다. 주행거리 18만킬로미터를 넘어선 낡은 엑센트 자동차가 부르르 떤다. 서서히 알피엠이 오른다. 와우, 스릴 짱이다. 달리다 보니 눈앞에 속도감시 카메라가 나타난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딱지가 날아와도 내 몫은 아니니까. 더 힘껏 밟는다. 한참 달린 후에야 뒤를 살피니 왜건이 보이지 않는다. 샛길로 빠졌거나 추격을 포기한 모양이다. 그제야 속력을 늦춘다. 한소끔 소낙비가 내렸지만 햇살이 장난 아니다. 덥다 못해 뜨거울 정도다. 에어컨은 켜나 마나다. 등허리로 수십마리 벌레가 단체로 이동하는 것 같다. 혜주는 여전히 벌레 씹은 표정이다. 괜히 마음이 켕긴다. 청바지에 자꾸 눈길이 간다. 바지에는 황토색 물무늬가 오롯이 돋아 있다. 근데 그 무늬가 이전부터 웅덩이에 빠져 지낸 것처럼 혜주에게 딱 어울린다. 부러 만들려 해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달릴수록 자동차는 더 헉헉거리는 기분이다. 엔진 소리 때문에 큰 소리가 아니면 대화조차 불가능할 지경이다. 전화 오잖아! 갑자기 혜주가 소리친다. 씨디 보관함에 놓아둔 휴대폰이 깜빡이고 있다. 누군지 좀 봐줘. 내가 왜? 아, 씨발. 지금 초보께서 좆나 운전중이시잖아. 혜주가 마지못해 인상을 구기며 휴대폰을 낚아챈다. 그러더니 화면의 발신자 번호를 확인하며 내게 디민다. 받아, 준수 선배! 그래? 그럼, 그냥 둬. 보랄 땐 언제고 이젠 또 왜 놔두래? 아, 니기미. 뻔히 알면서 그러냐? 그제야 상황 파악이 끝난 듯 혜주가 쏘아본다. 초보에 이젠 도둑운전까지 하셔, 이 미친 잡놈께서? 할 말이 없다. 인정한다. 하지만 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그랬다는 말은 하기 싫다. 쪽팔리게 남자가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휴가비 털린 것도 존심 파팍 구겨가면서 겨우 말했는데. 준수 형이야 똥줄이 타든 말든 우리의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눈앞에 수용포 마을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드디어 사냥터다. 마을은 길 아래로 휘어진 해안을 따라 들어서 있다. 집들은 이제 막 파도에 떠밀려온 듯 질서가 없지만 그런대로 한번은 봐줄 만하다. 초입으로 들어선다.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고 길도 좁다. 씨발, 길이 왜 이리 좆같냐? 내가 이렇게 만들라고 했어? 왜 나한테 시비야? 말을 말아야겠다. 대화가 계속될수록 분노 게이지만 치솟는다. 차는 바다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만 같다. 신경이 쭈뼛쭈뼛 선다. 허락 없이 몰고 나와 차까지 박살내놓았다가는 준수 형에게 난타 공연을 당할 거다. 제기랄, 손바닥에 끈적끈적하게 땀이 밴다. 혜주에게 긴장하고 있는 모습까지 들킬까 봐 그것마저 신경 쓰인다. 드디어 선창이다. 선창 주변에는 작은 배들이 묶여 있다. 동만이 없으면 어쩔 건데? 혜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따지고 든다. 집에 간다고 했으니깐 있겠지. 없으면? 없으면 찾아서라도 인간 개조 확실히 시켜놔야지, 씨발. 꼴값을 떠셔요, 미친놈께서. 눈앞에 마을회관이 보이고 그 곁에 물건을 파는 구판장도 보인다. 회관 앞 공터는 제법 널찍하다. 저기 가서 녀석의 집이나 확인하자. 이 몸께서는 꼼짝 못한다는 거 알지? 혜주는 진지모드 작동중이다. 차를 세운 뒤 혼자 터벌터벌 가게로 향한다. 가게 안에 졸라 괴상하게 생긴 영감탱이가 앉아 있다. 꼭 외계생명체 같다. 그는 손님이고 뭐고 밀려오는 더위가 더 성가시다는 듯 부채질에만 열중이다. 생수 두병을 쥐고 영감 앞에 주소를 내민다. 영감이 턱을 올려 세운다. 장동마이 갸는 와 찾노? 예, 볼일이 있어서요. 무슨 볼일? 까다롭게 구는 영감탱이다. 생긴 것도 외계인 같은 주제에. 할 수 없이 내가 몇마디 보태자 영감이 입을 연다. 그라만 여서 저짜 모티로 가. 갯가 마지막 철제 대문! 그게 끝이다. 영감은 선풍기 머리채 낚아채기 바쁘다. 니미럴, 무슨 저런 싸가지 쌈 싸먹은 주인이 다 있다냐그래. 생수병을 쥔 채 밖으로 나오니 혜주가 서 있다. 날씨가 이래서 금세 새까만 흑인 되겠다고 까탈을 부리더니 왜 납셨냐? 미친놈, 너 마중 나온 줄 알아? 혜주의 눈길이 머문 바다 위에 나비가 날고 있다. 혜주는 노랑나비만 바라본다. 마치 날개 달린 꽃이라도 본 꼴이다. 헌데 가만 보고 있자니 꽁하던 표정의 그녀가 아니다. 저게 바다 냄새에 살짝 맛이 가셨나. 분위기 파악도 할 겸 부러 흰소리를 쳐본다. 혹시 너 온다고 환영 나온 거 아냐? 혜주가 마빡을 구기며 되쏜다. 꿀값도 없어 여기까지 온 주제에 계속 꼴값이셔요. 괜히 무안해진다. 어째 저리 분위기를 모를까. 하긴 그러니 그 졸라 흔한 대학생 될 생각도 않겠지. 준수 형네 호프집에서 알바 뛸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얼마 가지 않아 길이 툭 끊기며 해안이 펼쳐진다. 끝집이라, 그러면 저 집 같은데? 그제야 혜주도 길게 목을 뽑는다.

 

몇번이고 인기척을 냈지만 개소리뿐이다. 이 집구석엔 개새끼들만 사는 모양이네? 내가 빈정거려도 개는 짖어댄다. 그런데 소리가 이상하다. 컹컹이나 멍멍도 아닌 먹먹,이다. 그 바람에 이 몸까지 먹먹해지는 기분이다. 아버지한테 잔소리를 먹을 때 먹먹해지던 것처럼. 혹시 이 자식 눈치 채고 튄 거 아냐? 내 말에 혜주가 이죽거린다. 그깟 돈 몇푼에 줄행랑을 쳐? 영영 안 볼 짜식도 아닌데. 일단 작전상 철수하고 요앞 선창가에서 망이나 때리자. 혜주가 버럭 언성을 높인다. 이 꼴로 선창엘 가자고? 그럼 어떡해, 아무도 없는걸. 생각하는 게 바늘구멍이 따로 없다니까. 혜주가 문을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다가간다. 잠시 뒤 대문에서 삐이익, 소리가 난다. 어어?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혜주가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야, 근데 대문이 잠기지 않은 건 어떻게 알았냐? 내가 뒤따라가며 묻자 혜주가 턱짓을 한다. 마당 구석에 개집이 보인다. 그 앞에 온몸이 허연 개가 노려보고 있다. 엉덩이를 깔고 앞다리를 세운 꼴이 세상의 단맛 쓴맛 다 본 영락없는 노인이다. 가축이 집에 있는 한 절대 문을 잠그지 않아. 그건 또 왜 그러냐? 이 구제불능의 초딩 같으니라구. 그럼 먹이는 어떻게 처먹냐? 저렇게 묶여 있는데도? 넌 이웃집엔 왜 사람이 산다고 생각해? 개는 낯선 사람이 다투는 게 재미있는지 짖지도 않는다. 확실히 영악한 놈이다. 혜주가 안의 동정을 살피기 시작한다. 그 꼴이 제법 노련해 보인다. 대문이 열려 있다면 안에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지금 한창 낮잠에 빠져 있을 수도.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계십니까? 장동만! 실례합니다. 주무십니까? 안에 아무도 없어요? 다양한 장단으로 합창을 해도 쥐새끼 소리 하나 없다. 할 수 없이 현관문을 당겨본다. 대문과 달리 굳게 닫혀 있다. 확실히 비었네. 니미럴, 이제 어쩐다냐? 혜주가 다시 한번 주위를 살핀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개집으로 향한다. 그녀가 다가가자 개가 머리를 곧추세우고 혜주를 쳐다본다. 그사이에 나는 집 주변을 살핀다. 생각보다 집이 아담하다. 동백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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