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권지예

권지예

1960년 경주 출생. 1997년 『라쁠륨』으로 등단.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무덤』 등이 있음. kjiye@paran.com

 

 

바람의 말

 

 

바람은 살아 있는 화석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살아남아서 떠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 속에서 운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바람의 세계 속에서 울다 간다

 

바람이 불자

새들이

자신의

꿈속으로 날아간다

 

-김경주의 시 「바람의 연대기는 누가 다 기록하나」 중에서

 

 

룽다야, 우지 마라

 

바람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썬글라스 낀 눈 속으로 모래가 들어갔는지 눈이 따가워서 눈물이 찔끔 난다. 고개를 들어 잠시 드넓은 칼리간다키 강바닥이 만들어내는 지평선을 바라보는데, 몸이 휘청거려 걸음이 흐트러졌다. 스틱으로 몸을 지탱하지 않는 한 날아갈 것만 같다. 풍광은 점점 고원지대로 변해간다. 바람 부는 황무지.‘검은 강’이란 뜻의 칼리간다키, 물도 없는 메마른 강. 이곳은 세상에서 제일 깊은 계곡이라 했다. 드러난 뼈처럼 자갈들만 가득한 황량한 강바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엄마는 아직까지 화가 풀리지 않았나 보다. 등산모를 깊이 눌러쓰고 고글형의 커다란 썬글라스에 자외선 차단 마스크로 온 얼굴을 가리고 있어 표정을 엿보긴 쉽지 않다. 이따금 뒤를 돌아보면 삐친 어린애처럼 스틱을 질질 끌며 뒤처져 걸어오고 있다. 엄마의 뒤를 가이드인 마일라가 묵묵히 뒤따르고 있다. 내가 너무한 걸까? 하지만 엄마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었어. 일행들을 따라 산을 내려갈 수 있었어. 오늘 아침, 좀솜에서 일행들은 산을 내려갔지만, 나는 그들을 보내고 귀국일정을 무작정 미루면서까지 끝까지 더 가고 싶었다. 하지만 왜였을까.

안나푸르나 서쪽 트래킹 코스의 종점은 묵티나트였다. 일행 중 두 사람이 트래킹 중에 심한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늦어진 일정 때문에 차질이 생겨서 일행은 묵티나트를 포기하고 귀국해야만 했다. 기대 이상으로 잘 걸었지만 예상대로 엄마는 많이 지쳐 있었다. 삼사십대의 산악회 회원 여섯이 일행이 되어 떠난 이번 트래킹에서 십년은 젊어 보이는 엄마라도 환갑의 나이를 속일 수는 없었다. 내가 사흘을 더 연장하여 해발 3760미터의 묵티나트까지 혼자서 포터와 가이드를 데리고 다녀오겠다고 고집을 피우자 엄마는 나를 산길에 푸지게 쌓인 당나귀똥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쟤 좀 말려봐요. 쟨 정말 이상한 족속이야. 여자 혼자 거길 왜 가겠다는 거야? 거기는 고소증도 온다는데. 난 인제 죽어도 못 가!”

“누가 엄마보고 가재요? 엄마는 이제 내려가요. 난 혼자 갈 거야.”

“얘, 너 원래 이렇게 고집이 셌니? 니 아부지도 안 그런 사람인데.”

“엄마 닮았나 보죠, 뭐.”

엄마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담배 한대를 꺼내 피워물었다. 그러고 나서 의외로 선선하게 말했다.

“자식이 웬수다. 그래, 그까이 꺼!”

엄마는 나를 위해서 마지못해 동행해준다고 했지만 나는 어쨌거나 혼자서라도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난 왜 거길 가려고 하는 거지? 그곳은 불교의 성지라고 한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곳이라고 가이드북에는 적혀 있었다.

나는 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강바닥 위를 걸어오는 두 사람 뒤에는 비현실적인 무대장치처럼 설산이 갓 꺼낸 드라이아이스 같은 구름을 거느리고 햇빛에 빛나고 있었다. 아아, 거짓말 같아. 그러나 이건 환상이 아니야. 여긴 히말라야야. 마차푸차르, 다울라기리, 툭체, 닐기리. 히말라야 설산의 연봉들이 번갈아 무대에 오르는 조연처럼 하나씩 나타날 때마다 나는 자주 헷갈렸다. 일주일 이상을 안나푸르나 서쪽 트래킹 코스를 돌고 있는 우리 눈앞에 매번 산들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날마다 나는 설산들의 또다른 쪽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 봉우리는 닐기리봉일 것이다. 부연 흙먼지 속에서도 설산은 티없는 거대한 다이아몬드처럼 광채를 내뿜었다.

우리 모녀의 짐을 진 포터 레크 아저씨는 성실한 거북이 같은 걸음으로 저만치 부연 흙바람 속의 지평선으로 까마득히 멀어져간다. 나는 엄마를 기다릴 겸 걸음을 멈추고 강바닥의 돌을 이리저리 골라본다. 도중에 티베트 난민의 돌움막집에 들러 블랙티를 마셨을 때, 주인 남자는 탁자에다 암모나이트 화석을 몇개 얹어놓고 팔았다. 내가 가격을 물어보자 그는 터무니없는 값을 불렀다. 그때 마일라가 말했다. “그런 거 이 강바닥에 수두룩해요.”

이곳의 돌은 갸름하면서 동글동글하다. 내가 돌을 고르고 있자 마일라와 엄마가 다가왔다. 엄마는 힘이 드는지 한쪽 돌무더기에 엉덩이를 부려놓고 앉았다. 마일라가 이리저리 강바닥의 돌을 고르더니 달걀처럼 생긴 검은 돌을 뾰족한 돌로 쳐서 반으로 쪼개어본다.

귀곡성 같은 바람소리 속에 아련한 요령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보니 끝없는 회색빛 강바닥 저 끝에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말을 탄 티베트 남자가 짐 실은 당나귀떼를 몰고 오고 있다. 방울을 단 당나귀 대열이 가까이 올 때까지 마일라는 돌을 고르는 데 몰두해 있다. 말이 지나가도록 한쪽으로 비켜서면서 우리는 자동차 꽁무니의 매연처럼 당나귀 발굽이 일으킨 매캐한 흙먼지를 고스란히 마실 수밖에 없다. 코가 매워져 나는 기침을 멈출 수가 없다. 몇번인가 돌을 쪼개어보던 마일라가 엄마에게 다가갔다. 반으로 잘린 검은 달걀 같은 돌을 펼쳐 보이자 마스크 쓴 엄마의 입에서 탄성이 가늘게 흘러나왔다. “오오, 뷰리풀!”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 검은 돌 안에는 긴 하트 모양의 무슨 새우인지 곤충인지가 화석이 되어 있었다. 엄마는 그 검은 돌을 합쳤다 떼었다 하며, “어머, 꼭 무슨 정표 같구나!얘, 근데 정표를 영어로 뭐라 그러니?” 하고 묻는다.

둘로 나누어진 화석을 보며 엄마는 정표(情表)를 떠올린다. 과연 엄마답다. 하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픈 연인들이라면 시간을 채집한 화석만큼 훌륭한 정표가 어디 있을까. 다갈색 썬글라스 속 엄마의 눈초리에 피로한 교태가 잠깐 흐른다.

“마일라, 생큐 포 정표!” 엄마는 손수건을 꺼내 돌을 깨끗이 닦더니 행여 두 조각 난 돌이 헤어지게 될까 봐 손수건으로 꽁꽁 묶어 점퍼 주머니 안에 얌전히 집어넣는다.

“누구 줄 사람이나 있어?”

내 말이 좀 고까웠는지 엄마는 다시 새치름해지면서 톡 쏘아댄다.

“흥, 남이사!또 아니?”

칼리간다키강의 메마른 하상(河床)을 꼬박 한시간 가까이 걷고 나자 눈앞이 화사해졌다. 연둣빛 보리밭이 나타났다. 바람 때문에 고개 숙인 보리이삭들이 일제히 바람을 피해 달아나며 한쪽으로 완만한 포물선을 그으며 쓸려간다. 보리밭 뒤로는 마치 제주도의 마을처럼 검은 돌을 쌓아올린 돌담이 있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그 돌담 사이사이로 복사꽃이 한창 피어나고 있었다. 무채색의 모노톤 속에 연두와 분홍빛은 너무도 선연해 눈이 시큰해지면서 눈물이 돌았다. 마을의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에 촛점을 맞추며 나는 디지털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마을의 이름은 카그베니. 마을 입구 한쪽으로 가파른 언덕이 시작된 곳에 또 하나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묵티나트 가는 길’(Way to Muktinath).

레크 아저씨가 짐을 부려놓은 로지의 방은 별채의 2층 끝방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소녀처럼 환성을 질렀다. 우리가 여태껏 지내온 산속의 어떤 방보다 아늑하고 전망이 좋았기 때문이다. 넓은 남향 창으로는 화사한 봄빛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텃밭이 보였는데 양배추가 자라고 있었다. 새잎이 돋기 시작한 버드나무 네그루가 돌담 앞에 정렬해 있고 그 사이에 룽다가 휘날리고 있었다. 돌담 바깥으로는 황폐한 황야에 거짓말같이 넓은 보리밭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보리밭 너머로 칼리간다키강의 하상이 펼쳐져 있다. 그뒤에 거칠게 커팅된 얼음조각상 같은 닐기리봉이 르네 마그리뜨의 그림처럼 초현실주의적인 은유로 다가왔다. 바람소리가 폭풍소리처럼 들렸다. 룽다의 깃발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룽다의‘룽’은‘바람’이란 뜻이고‘다’는‘말[馬]’이란 뜻이라고 했던가. 풍마(風馬). 바람의 말. 불교의 경전을 인쇄한 천을 깃대에 달아 그 천이 풍화되기까지 바람결에 진리의 말씀을 멀리 전하고자 하는 티베트불교의 소박한 염원이 나는 애틋하게 느껴졌다. 깃대에 달린 조각천들이 말갈기처럼 마구 휘날린다. 서향 창에는 활짝 핀 복사꽃나무가 수줍게 가지를 뻗고 있다. 히말라야엔 사계절이 모두 다 있다.

“얘, 여긴 애인이랑 꼭꼭 숨으면 아무도 못 찾겠구나.”

엄마가 등산화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아련한 눈빛으로 말한다. 어쩌면 저 정념은 늙지도 않는 걸까. 징글징글해. 하지만 나 또한 이 방에 들어온 순간, 현우를 생각하고 만다. 꽁꽁 여며도 바람이 솔솔 들어차고 물이 스며들듯이 그에 대한 생각은 집요하게 들러붙는다. 생각은 이성인 걸까, 감정인 걸까. 이성으로는 이미 다 정리된 일인데, 생각은 감정도 없이 오래된 습관처럼 저 홀로 가동될 뿐이다. 스위치를 껐는데도 한참 건성으로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처럼 내 자신이 느껴진다.

“엄마는 애인이랑 이런 데 오고 싶어?”

“하긴 추워서 싫다. 뜨뜻한 물도 잘 안 나오고. 거기다 로지는 난방도 안되니 때려 죽여도 옷은 벗기 싫지. 그러니 침낭 안에서 자야잖아. 좁은 침낭에 어떻게 둘이 들어가니.”

“그럼, 그땐 어디 갔었어?”

“언제?”

“나 고3 때. 엄마 셰리랑.”

엄마 셰리. 나는 이제 좀 대담한 질문을 엄마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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