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송기원 宋基元
1947년 전남 보성 출생. 197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당선. 소설집 『다시 월문리에서』 『인도로 간 예수』 등이 있음. ssong712@hanmail.net
바보 막둥이
지지난해의 초가을 무렵 문단의 선배 되는 작가 P선생과 우연하게 동해안을 여행한 적이 있다.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훌쩍 떠난 1박 2일의 짧은 시간에다가 무슨 기억에 남을 유별난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어서, 어쩌면 선생은 여행한 사실마저 아예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때 동행으로는 동료작가 L씨와 평론가 H씨가 있었는데, 몇해 전부터 고향인 양양에 허름한 작업실을 마련한 L씨가 여행을 주선한 셈이었다.
마침 설악산 정수리로부터는 해맑은 색감으로 첫 단풍이 비롯되는데다가 양양 읍내에서는 전국에서도 그 맛을 으뜸으로 쳐준다는 송이버섯 축제마저 열리는 동안이어서, 무작정 떠난 여행치고는 보는 것이며 먹는 것에 제법 속이 알차게 되었다. 그렇게 아침 일찍 H씨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서울을 떠나 설악산이며 양양 앞바다를 에돌며 늦장을 부린 끝에 L씨의 작업실에 도착한 것은 해가 뉘엿뉘엿한 무렵이었다. 작업실이라지만 버려져 있다시피 한 농가를 안팎으로 별달리 손도 보지 않은 채 방안의 벽지며 문의 창호지만 새로 바른 것이 고작이었는데, 대신에 강원도 지방 특유의 기역자형 가옥 형태가 온전히 보존된데다가 집안의 어디에서건 누대를 살아왔을 옛 주인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가라앉아 있는 듯 깊은 운치가 풍겨나는 집이었다.
이튿날 돌아오는 길에는 동해안을 내달리지 않고 굳이 다시 설악산을 넘게 되었는데, 칠순 나이답지 않게 아직도 소녀적인 섬세한 감성이 넘치는 P선생이 어제 건듯 보아넘긴 정수리 부근의 첫 단풍을 못내 아쉬워해서였다. 다시 설악산을 넘게 되자 이곳 지리에 밝은 L씨가 한계령 정상 못 미쳐 왼쪽으로 빠지는 새로운 길을 안내했고, 거의 차량통행이 없다시피 한적한 길을 천천히 내려오며 일행은 노랗고 붉은 첫 단풍의 해맑은 색감을 한껏 만끽할 수가 있었다.
설악산을 다 내려와 내린천 어귀에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길가에 작은 구멍가게가 눈에 뜨이자마자 내가 얼결에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H씨에게 차를 세우게 했다. 그리고 P선생을 돌아보았다.
“오랜만에 아침술을 하고 싶은데, 선생님은 어떠세요?”
그때 나는 3년 남짓 끊고 지내다가 다시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무렵이었다. 더군다나 아침술이라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햇수마저 아리송할 정도였다. 나는 방금 지나쳐온 길을 턱짓해 보이며 한마디 덧붙였다.
“저것들을…… 도무지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서요.”
나의 말에 P선생은 곱게 눈을 흘기며 빙긋 웃어 보였다.
“뭘 나한테 물어요? 벌써 차를 세워놓구선.”
나는 P선생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구멍가게로 달려가 소주 세 병을 사왔다. 내가 P선생에 대한 무례를 무릅쓰고 차를 세우면서까지 아침술에 대해 운을 뗀 것은, 흡사 홀리기라도 하듯 첫 단풍에 열중하는 선생의 섬세한 감성이 그만 애달프게 여겨진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와 함께 한편으로는 지난밤 L씨의 작업실 부엌에서 벌인 고즈넉한 술자리에서, 어딘지 가녀리게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당당하게 버텨내던 선생의 술 실력에 대한 믿음도 없지 않았다.
내가 술을 사오는 동안에 P선생은 벌써 차에서 내려 내린천을 가로지르는 다리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다가가자 불쑥 송이버섯 한 송이를 내밀었다.
“이걸로 안주합시다.”
체질적으로 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L씨와 운전 때문에 차마 못 본 척 술을 외면하는 H씨를 제쳐둔 채, P선생과 나는 다리에 걸터앉아 주거니 받거니 종이컵으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다리 아래 내린천에는 물밑의 조약돌이며 조약돌 사이를 에돌아다니는 물고기떼까지 다 드러나 보이도록 투명한 냇물이 잔잔한 물살을 이루며 쉼없이 흘러왔다가 흘러가고, 그런 물살 위로는 역시 냇물만큼이나 투명한 가을 햇살이 금은의 가루가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송이버섯 두어 송이로 안주 시늉만 내며 한잔, 한잔, 더 하는 사이에 금방 소주 세 병이 비워지고 말았다. 목구멍을 타고 저 아래 빈속으로 내려가는 첫잔의 쏘는 맛이 채 가시지도 않은 기분인데 벌써 술이 동난 것이었다. 아침술의 너무 빠른 속도에 나도 놀랐지만 P선생 역시 놀란 모양이었다.
“어마, 우리가 벌써 세 병을 다 마신 거예요?”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P선생의 말꼬리를 잡았다.
“괜찮으면, 몇병 더 사올까요?”
나의 물음에 P선생이 다시 한번 곱게 눈을 흘겼다.
“괜찮지 않아도 사올 것 같은 눈친데요?”
내가 다시 사온 소주 두 병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이 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쯤 나는 온몸의 혈관을 타고 우루루, 우루루 몰려다니기 시작한 알코올 기운을 느끼며 차츰 명정(酩酊)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의 시야에서는 자칫 회전목마라도 탄 듯이 사방의 풍경들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 어지럽게 쏠리는 것이었다. 아아, 이런 아침술이라니! 그런 나와는 달리 P선생은 몸가짐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한 모습인 채 잠자코 다리 아래 냇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겸연쩍은 마음으로 선생에게 말을 걸었다.
“졌어요, 선생님. 설마하니 선생님이 이렇게 술이 세신 줄은 몰랐어요.”
P선생은 여전히 다리 아래 냇물에 눈길을 둔 채 나의 말을 받았다.
“나, 사흘 동안 내리 소주만 마신 적이 있어요.”
“……?”
“사흘 동안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어, 언제요?”
농담인가 진담인가를 쉽게 헤아릴 수가 없어 당황한 내가 자칫 말까지 더듬었고, P선생이 비로소 냇물에서 눈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선생은 조금 전처럼 곱게 나를 흘겨보는 눈길이었다.
“내 아들이 죽었을 때.”
P선생은 아예 천연덕스러운 표정인 채 여전히 곱게 나를 흘겨보는 눈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차마 더이상 선생의 눈길을 받아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비록 겉모습은 여전히 몸가짐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한 자세이지만, 속으로는 선생 또한 취한 것일까. 아직까지 선생에게 무슨 칼날 같을지도 모를 한마디를 아무렇지도 않게 툭 꺼내다니. 그 한마디에 선생 대신에 오히려 내 쪽에서 가슴이 먹먹해져오는가 싶자, 이내 예의 칼날에라도 찔린 것처럼 명치께에 선명한 통증이 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10년 언저리 저쪽의 일일 터이지만, 그 젊은이가 아직도 선생의 눈에 얼마나 생생하게 밟히는가는 언젠가 선생의 글에서 본 적이 있다. 그때 선생은 죽을 때는 반드시 먼저 간 아드님의 인도를 받고 싶다고 했던가. 그렇지 않다면 선생의 죽음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했던가. 그러면서 그 아드님이 여전히, 가슴을, 아리게 한다,라고 했던가.
나는 P선생의 눈길을 피해 내린천의 냇물로 눈길을 돌렸다. 잔잔한 물살 위에는 가을 햇살이 여전히 금은의 가루가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런 내 등뒤로 또다시 흘리듯 무심한 어투로, 선생의 말이 들려왔다.
“늙는다는 게…… 이렇게 좋은 줄을 몰랐어요.”
나는 차마 P선생의 말을 등뒤로 흘려들을 수가 없어서, 저 냇물이며 가을 햇살에서 고개를 돌려 선생을 향했다. 선생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하마터면 어억, 하고 입밖으로 소리를 내어 놀랄 뻔했다. 선생의 조그만 얼굴이, 평소에는 그렇게도 음전하던 얼굴이 온통 주름으로 덮이다시피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