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시와 일과 슬픔과 소란과

 

 

서효인 徐孝仁

시인. 시집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여수』 등이 있음.

seohyo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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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이어폰을 꽂은 채 줄곧 어슴푸레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군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모르는 사이」 부분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창밖을 어슴푸레 내다보는 시인 대신, 창문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인은 조금 겸연쩍어했던 것 같다.

저희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죠. 맞아요, 그런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이렇게 시작했다. 문학판에서의 인터뷰라는 것이 보통은 안면이 있는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하며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러다 술도 먹고 늦은 시간까지 같이 놀면서 무어라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있을 것이라 오랜 시간 믿어 의심치 않아왔던 이른바 문학적 분위기를 함께 들이마신 후에 헤어질 것이고 공식적으로 지면에 나갈 말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유능한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어렵사리 말다운 말이 되겠지만, 애니웨이 문학은 영원할 것이고 그 둘은 그날의 인연으로 더욱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와 같은 전개로 흘러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 둘은 처음이었고, 우리가 그나마 아는 것은 서로의 시가 전부였다. 내가 박소란의 시를 좋아해왔음은 두번 말하기 아까울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맞다, 그런 것 같다.

동갑내기 시인을 인터뷰하는 데 모종의 부담감을 느낀 것은 단순히 그와 내가 초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첫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창비 2015)과 두번째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의 해설이 더불어 말하듯 박소란은 “체념과 고통의 등고선으로 가득 찬 일상을 그려낸”(남승원) 시인이고, “과묵하고 심지가 굳어 보”(장이지)이는 시인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마음속에 좀처럼 열리지 않는 슬픔의 꾸러미를 간직한 채, 밤새워 고통에 겨워하며 어쩔 수 없이 또한 하릴없이 언어라는 모양새로 시를 만들어내는 시인이자 괴로움과 설움 모두 쉽사리 발설하지 않고 하나의 묵직한 태도로 간직한 시인이 내가 그린 박소란의 이미지였다. 과연 시인 박소란은 말이 없는 사람일까?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를 쓰다보면 간혹 예기치 못한 호사를 누리게 될 때가 있다. 단지 쓰고 있었을 뿐인데, 그로 인해 자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좋은 자리에 초대받거나 좋은 기회를 얻기도 한다. 주변머리가 워낙 없는 편인데, 그런 나를 안쓰럽게 여긴 시가 자꾸만 어떤 길로 나를 이끄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한권의 시집을 더 냈을 뿐인데, 덕분에 서효인 시인과 인사를 나누게 됐고 귀한 지면도 얻게 됐다. 생각할수록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시를 쓰다보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 대체로 시를 쓰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고, 시가 어딘가로 이끄는 일이다. 순전히 편견이지만 시 때문에 괴롭다 고통스럽다 말하는 사람보다 시 덕분에 다행인 삶을 산다는 시인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시는 잘못이 없다. 시는 정말로 잘못이 없다.

 

사람을 묻은 사람처럼

사람을 묻고도 미처 울지 못한 사람처럼

 

쉼 없이 공중을 휘도는 나비 한마리

그 주린 입에

상한 씨앗 같은 모이나 던져주어요

 

죽은 자를 위하여

 

나는 살아요 나를 죽이고

또 시간을 죽여요

—「벽제화원」 부분

 

모르는 척 짐짓 물어보았다. 벽제에 꽃집이 많은지.

 

당연히 벽제에는 화원이 많다. 용미리라고, 거기에 시립묘지가 있다. 그곳에 자주 가는데, 가서 보면 화원들이 굉장히 많고 이름도 다양하다. ‘벽제화원’이라는 가게가 있을 법도 한데, 정확히 어떤 상호를 따온 것은 아니고 그냥 벽제에 있는 그 무수한 꽃집들을 생각하면서 썼다.

 

사실 나로서는 벽제라고 하면 떠오르는 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벽제갈비’이고 하나는 박준 시인의 “만약 다시 벽제에 가게 된다면 그것은 최대한 아주 먼 미래였으면 한다”(『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난다 2017, 38면)라는 문장인데 박소란으로부터 하나의 이미지가 더 생긴 셈이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갈비 이미지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무색무취한 프랜차이즈의 미감처럼. 우리 그러지 말고 진짜 벽제를 이야기하자.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당신의 슬픔이, 혹은 시가, 또는 시가 가져다준 지금의 행운과 그 사이사이의 고통이 거기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내게 벽제는 친근한 곳이다. 십오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근처에 납골묘가 있다. 누구에게든지 어머니란 각별하기 마련이지만, 내게 어머니는 조금 더 유별난 존재였다. 분신 같았다고 해야 할까. 꽤 오랜 시간을 어머니와 단둘이 보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스물네살이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치기 어린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의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