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박태순, 꼭 제3세계의 부정기간행물 같던 작가

 

 

김남일 金南一

소설가. 장편소설 『청년일기』 『국경』 『천재토끼 차상문』, 소설집 『일과 밥과 자유』 『천하무적』 『세상의 어떤 아침』 『산을 내려가는 법』 등이 있음.

tobeclimber@hanmail.net

 

 

선생의 나무젓가락

 

박태순(朴泰洵, 1942~2019) 선생의 부음을 전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어느 뜨겁던 여름날의 한 풍경이었다. 그때 내가 근무하던 실천문학사 사무실은 서대문구 현저동의 허름한 4층짜리 건물에 세 들어 있었는데, 옆방이 바로 선생의 집필실이었다. 혼자만 계셨던 건 아니다. 이따금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당신의 부친이 운영하시던, 아마 그 시절엔 거의 명목만 유지하던 박우사라는 출판사도 겸한 사무실이었다. 길 하나 건너편이 서대문형무소였다. 때로 우리 방문객들 중에는 좁은 복도 창가에 서서 굳이 자신이 재소자로 ‘복무’하던 사동을 어림짐작하며 감개에 젖는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거기가 건물 맨 꼭대기층이라 여름에는 몹시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춥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말이 사무실이지 손님이 와도 내줄 자리가 없을 만큼 좁아터진 방이었다. 특히 여름을 나는 게 끔찍했다. 한뼘 머리 위가 곧바로 옥상이어서 어디 내뺄 그늘도 없었다. 그날도 경복궁을 떠난 해가 현저동 산꼭대기를 다 건너오기도 전인데 사무실은 한증막처럼 푹푹 쪘다. 나는 아침부터 헉헉거리며 염천을 저주했다. 선생이 우리 사무실 문을 빼꼼 열고 보시더니 혀를 끌끌 찼다. 잠시 후 선생은 낡은 선풍기 하나를 가져왔다. 당신의 부친이 삼팔선을 넘어올 때 메고 온 거라 해도 믿었을 만큼 구닥다리였다.

“김형, 급한 대로 이거라도 써보세요. 그럭저럭 더위를 식혀줄 겁니다.”

과연 그럴까 싶었지만 선생은 자신있게 전원을 꽂았다. 웬걸, 선풍기는 날개를 단 1밀리도 움직이지 못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선생이 당신 방에서 나무젓가락을 가져왔다. 방금 부친과 함께 시켜 잡수셨을 중국계 음식의 흔적이 여실했다. 선생이 그놈을 선풍기 철망 안으로 쑥 집어넣고 마치 세발자동차 시동 걸듯 날개를 몇번 돌렸다. 털, 털, 털. 놀랍게도 선풍기는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뜨뜻미지근할망정 바람이라는 걸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나는 박수를 쳤고, 선생의 입가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선생의 작품을 찾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낯선 거리」라는 단편이었는데, 문제의 그 건물에 처음 입주하던 때의 전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거기 기대면, 당신은 신촌로터리께로부터 시작해서 아현동, 북아현동, 충정로, 교남동 일대를 헤집은 끝에 그곳에 이르렀고, 복덕방 영감을 따라서 그 건물 앞에 서자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절로 들어찼다.

‘이 건물은 여러편의 소설을 갖고 있겠는걸?’

아닌 게 아니라, 당신은 그 건물 외벽에 덕지덕지 붙은 간판들을 기어이 소설에 되옮겼다. 까페, 레스토랑, 이발소, 금은시계, 약국, 미용원, 찻집, 화실 등등은 물론, “여종업원 구함, 침식 제공” 같은 전단지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나로서는 단 한개의 간판도 기억나지 않으니, 그 시절 선생이 내게 베푼 나무젓가락의 애정과 더불어 소설가로서 선생의 철두철미한 산문정신 앞에 새삼 옷깃을 여밀 뿐이다.

 

 

역사가로서의 소설가

 

박태순은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이른바 4·19세대에 속한다.

과연 1960년 4월 6일, 박태순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과에 입학한다. 축하는 이르다. 그는 단 며칠 만에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한국현대사의 진로까지 뒤바꿀 획기적 사건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4월혁명이었다. 연보에는 대개 ‘4월혁명에 가담, 충격을 받음’ 이렇게만 나와 있다. 그러나 그때 청년 박태순이 입은 내상은 꽤 깊었다. 새로 맞춘 교복에 먼지도 내려앉지 않았을 무렵인데, 그의 학우는 총상을 입고 절명했다. 그리고 그는 해 아래 버젓이 살아남은 것이니, 말하자면 시대에 대한 부채의식은 필연적이었다. 그것이 그를 훗날 작가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해 11월, 최인훈은 “아세아적 전제(專制)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광장」 서문) 불가능했을 소설로서 「광장」을 발표했다. 박태순은 그보다 몇해 늦게, 그러니까 1964년 대학 졸업 직후 『사상계』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이후 당대의 어떤 작가보다도 ‘시대의 증언자’로서 작가의 역할에 충실했다.

고된 길이었으되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예컨대 소설가가 된 그는 잠시 주춤했던 4월혁명의 열기가 교수단 데모를 통해 다시 한번 큰 불길로 번지던 날을 애써 소환한다. 거기서 박태순의 분신인 소설 속 ‘그’는 어떤 거물 깡패가 소유한 극장으로 몰려가는 데모대에 합류한다. 깡패는 늙은 독재자의 하수인이었다. 분노한 민중의 원시적 분노가 어떤 간섭이나 자제도 없이 폭발한다. 어쩌면 그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