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반인권론

 

 

슬라보예 지젝 Slavoj Zizek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 사회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라깡의 정신분석학과 헤겔의 관념철학, 대중문화론, 미학, 정치이론을 결합하는 정신분석 이론가로 슬로베니아의 주간지 『믈라디나』(Mladina)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저서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삐딱하게 보기: 대중문화를 통한 라깡의 이해』(Looking Awry: An Introduction to Jacques Lacan through Popular Culture) 등이 있다.

ⓒ Slavoj Zizek 2005 / 한국어판 ⓒ (주)창비 2006

 

 

옮긴이의 말

 

이 글은 『뉴 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 34호(2005년 7—8월)에 수록된 지젝의 “Against Human Rights”를 완역한 것이다. 냉전 해소 이후 인권은 더욱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지젝도 이 문제에 대한 일련의 글을 내놓고 있다. 이 글은 다른 글들에서 개진한 발상을 일부 포함하면서, 인권이라는 개념을 둘러싼 여러 입장과 논점을 좀더 이론적인 각도에서 정리한 것이다.

18세기 여행기에서 맑스의 텍스트까지, 라깡에서 근자의 인권 관련 논의까지 두루 넘나들면서 그 지적인 넓이와 깊이로 독자를 압도하는 글이지만, 글의 전체적인 흐름 및 논점 자체는 상당히 명료하다. 자유자본주의 인권론에 깔린 세 가지 가설을 구체적인 실상과 조응하여 자세히 비판하는 데서 출발하여, 일견 이와 대립되는 ‘급진적’인 근대비판론이 결국에는 ‘탈정치화’라는 점에서 자유주의 인권론과 어떻게 상통하는지를 드러낸 후, 이 두 가지 입장을 다 넘어서는 길을 모색하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이다. 이런 가운데 일련의 서구중심적 이분법들을 뒤집는 대목이 흥미로운데, 가령 ‘근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와 대립되기는커녕 자유민주주의의 산물일뿐더러 자본주의사회의 한 본질적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서도 드러나듯 지젝이 인권을 사유할 때 늘 염두에 두는 것은 자본주의사회 및 그 사유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가 인권론 비판에서 ‘정치’를 화두로 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비정치적 인도주의를 앞세우나 결국은 서구의 정치적 이해에 복무하는 자유주의 인권담론도 문제이지만, 그런 연유로 인권이란 허구요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집단수용소가 근대정치의 내재적 귀결이라고 단정하는 푸꼬나 아감벤 등의 반본질주의 역시 정치적 실천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탈정치화의 논리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지젝은 과연 인권의 정치성을 폭로하는 것으로 충분한가라고 묻는 것이다. 이같은 물음 끝에 결국 이 글은 ‘보편적인 인권에 대한 고려가 없이는 정치 자체가 실종된다’는 강력한 인권개념 옹호로 끝을 맺는다. 이 결말은 서구의 자기기만적이고 위선적인 보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시작한 글로서는 하나의 역전이라면 역전이지만, 애초부터 지젝이 노리던 바이기도 하다.

그의 물음과 역전의 과정 모두가 찬찬히 곱씹어볼 만하거니와, 인권을 둘러싼 우리 논의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인권 논의를 더이상 보수세력에게만 맡겨둘 수는 없지 않느냐는 근자의 문제제기들에 이르기까지, 지젝의 물음과 상통하는 바 크다. 인권이 정치의 볼모가 된다고 하더라도 인권문제가 절박한 당장의 현실은 어찌할 것이며, 근자에 북한 인권문제를 두고 그러하듯 인권이 마치 보수세력의 독점물인 양 되어가게 내버려둘 수 없지 않느냐는 자성도 지젝의 물음과 상통한다. 문제는 이런 물음을 어떻게 밀고나가느냐 하는 것이며, 여기서 지젝은 몇가지 중요한 화두들을 던지고 있다. 그것들이 역사적 사유의 필요성을 환기하면서 보편주의와 정치주의 내지 문화상대주의의 양 편향을 모두 넘어서는 길을 가리켜 보인다면,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큰 정치’와 ‘폭력’ 등의 중요한 쟁점들을 되살리는 일도 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심장한 출발이 될 것이다.

김영희 /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영문학

 

 

현재 우리 자유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권을 내세우는 주장은 대체로 세 가지 가설에 기초한다. 첫째, 역사적으로 결정된 우연적 특질들을 자연 내지 본질로 여기는 이런저런 양태의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구실을 이런 인권 주장이 한다는 가설, 둘째, 선택의 자유와 (뭔가 더 높은 이념적 대의를 위해 인생을 희생하기보다) 즐거움의 추구에 인생을 바칠 권리가 두 가지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가설, 셋째, 인권 주장이 ‘권력 과잉’을 방어하는 기초를 형성할 수도 있다는 가설이다.

근본주의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자. 이 경우 악(惡)은 (헤겔의 말을 바꾸어 표현하면) 대개 악을 지각하는 시선 속에 자리한다. 광범한 인권침해의 현장이 된 1990년대 발칸반도를 생각해보라. 유럽대륙 남동부에 자리한 한 지리적 공간인 발칸반도가 오늘날 유럽인의 이데올로기적 상상계에 온갖 함의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발칸’반도가 된 것은 정확히 언제부터인가?1 답은 19세기 중엽, 발칸반도에 유럽 근대화의 영향이 거세게 몰아닥친 바로 그 싯점이다. 발칸반도에 대해 서구인들이 전에 가졌던 생각과 ‘근대적’이미지 사이의 간극은 놀랄 만큼 크다. 16세기에 이미 프랑스의 박물학자 삐에르 블롱(Pierre Belon)은 “터키인들은 누구에게도 터키인처럼 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고 기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1492년 이사벨 여왕과 남편 페르난도가 스페인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쫓아냈을 때2 이들이 터키나 다른 무슬림 국가에서 피난처와 종교의 자유를 얻은 것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며, 그 결과 터키의 대도시에서 버젓이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보고 서구 여행자들이 당혹감을 느끼는, 지극히 뜻밖의 역설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이어지는 수많은 예 가운데, 1788년 이스탄불에 갔던 이딸리아인 비자니(N. Bisani)의 보고는 이렇다.

 

런던과 빠리의 비관용적인 편협성을 목격했던 이방인이라면 회교사원 모스크와 유대교회당 씨나고그 사이에 기독교교회가 서 있다든가, 프란체스코회의 카푸친(Capuchin) 수사 곁에 회교 수도승이 서 있는 이곳의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랄 것이다. 나로서는 어떻게 이 정부가 자기 종교와 철저히 반대되는 종교들을 품안에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행복한 대조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이슬람교가 쇠락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관용정신이 사람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음을 알게 될 때다. 이곳에서는 터키인, 유대인, 가톨릭교도, 아르메니아인, 그리스인, 신교도 들이 마치 한 나라 한 종교 사람인 듯 일이나 오락에 관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3

 

오늘날 서구가 자신의 문화적 우월성의 징표로 찬미하는 바로 그 특징—다문화적 관용의 정신과 관행—은 이처럼 이슬람이 ‘쇠락’한 효과로 간단히 처리되어버린다. 에뚜알 마리(Etoile Marie)의 트라삐스뜨회(Trappiste) 수사들의 야릇한 운명 역시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뽈레옹 정권이 프랑스에서 추방한 이 수사들은 독일에 정착하지만 1868년에 쫓겨난다. 어떤 기독교 국가도 이들을 받아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사들은 현재 보스니아의 쎄르비아 지역에 위치한 바냐 루카(Banja Luka) 근처의 땅을 살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술탄에게 청했고, 거기서 내내 행복하게 살았다. 기독교인 사이에서 벌어진 발칸 분쟁에 휘말려들기 전까지는.4

그렇다면 지금 서구가 ‘발칸’에서 연상하는 근본주의적 특징—종교적 불관용, 종족간 폭력, 역사적 외상(外傷)에 대한 고착—은 애당초 어디서 생겨났을까? 그 기원은 분명 다름아닌 서구이다. 헤겔의 ‘재귀적 규정’(reflexive determination)5에 딱 들어맞는 사례인바, 서구인이 발칸반도에서 보고 개탄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전해준 것들이다. 서구인이 맞서 싸우는 대상은 바로 서구인 자신의, 걷잡을 수 없이 난폭해진 역사적 유산이다. 20세기에 터키가 저지른 것으로 되어 있는 두 차례 대규모 종족 범죄인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쿠르드족 박해6를 자행한 것이 무슬림 전통주의 정치세력이 아니라 터키를 구세계적 안전판에서 떼어내 유럽식 민족국가로 만들려고 한 군부 근대주의자들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이 지역에 관한 프로이트의 언급을 정독한 데 기초하여 믈라덴 돌라르(Mladen Dolar)7가 내놓은, 유럽의 무의식은 발칸반도와 같은 구조를 지녔다는 낯익은 경구는 이처럼 문자 그대로 사실이다. ‘발칸’의 타자성이라는 위장된 형태로 유럽은 ‘자기 속의 이방인’, 자신의 억압된 부분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또한 우연적 특질의 ‘근본주의적’본질화가 어떤 점에서 자유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특징인지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가장 내밀한 세세한 개인사를 대중에게 드러내는 매체의 능력 앞에서 사생활이 위협받거나 심지어 사라지고 있다고 불평하는 것이 유행이다. 제대로 뒤집기만 한다면 맞는 말이다. 여기서 실질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은 공공생활 자체, 참된 의미의 공공영역(public sphere)으로,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개인적인 속성, 욕망, 외상, 특이성 들의 덩어리로, 즉 사적(私的) 개인으로 환원되지 않는 상징적 행위자가 된다. 현재 사람들이 스스로를 철저히 ‘탈자연화’된 존재로

  1. 발칸반도는 보통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터키의 유럽 부분, 그리고 옛 유고연방의 나라들(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 쎄르비아—몬테네그로)을 가리키며 루마니아가 들어갈 때도 있다. ‘발칸’은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며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후진성의 대명사처럼 되어왔다—옮긴이.
  2. 1492년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스페인을 통일하는 한편 종교재판을 통해 20만 유대인을 비롯한 비가톨릭교도들을 추방하거나 개종시켰다—옮긴이.
  3. Bozidar Jezernik, Wild Europe: The Balkans in the Gaze of Western Travellers, London 2004, 233면에서 재인용.
  4. 바냐 루카는 1943년 나찌 독일을 뒤에 업은 크로아티아계가 자행한 쎄르비아계 대학살과 1992년 쎄르비아계가 자행한 가톨릭 및 무슬림 대학살의 현장이 되었다. 크로아티아계의 종교는 가톨릭이며 쎄르비아계는 쎄르비아 정교다—옮긴이.
  5. 헤겔의 『논리학』에 나오는 개념으로, 사물이 그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맥락에 의해 규정됨을 말한다. reflexive는 보통 ‘반성적’으로 번역하나 이 글에서는 문맥상 ‘재귀적’으로 옮긴다—옮긴이.
  6. 1차대전 중인 1915년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이 러시아에 동조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을 기화로 자행된 아르메니아인 학살과 1922년 쿠르드족이 분리독립을 주장한 이래 주기적으로 반복된 쿠르드족 학살을 가리킴—옮긴이.
  7. 지젝과 함께 이론 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한 슬로베니아의 철학자(1951~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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