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목소리

 

 

방향을 잃고 무기력해진 대학사회

● 지난호 특집에서 박노자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대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그 양상을 살피고 원인을 진단했다. 그의 문제의식과 지적에 공감한다. 이미 내가 다니는 서울대도 국립대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잊은 지 오래다. 자본은 학교건물 신축, 산학협동을 명분으로 한 자금, 그리고 고가의 커피숍과 베이커리를 앞세워 학내에 들어왔다. 자본의 논리에 부합한 대학의 구조조정 역시 이루어졌다. BK21사업 이래 학과 통폐합이 진행되어 전공자가 현저히 모자라는 학과가 나오는 반면,‘선택과 집중’을 받은 학과에는 사람이 넘쳐난다. 영어로만 수업하면 만사형통인 외국어 강의가 적극 추진되고 있고, 대학측은 논문의 양과 실적, 연구비 유치를 중심으로 교수를 평가한다. 또한 현재 논의되는 국립대학 법인화문제는 대학에 기업식 경영을 도입하고 이에 맞게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대표적 사례이다.

이렇듯 자본이 원하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대학이‘세계화’와‘경쟁력 확보’를 외치고‘경쟁과 효율’을 강조함에 따라, 정작 뼛속부터 바뀌는 것은 대학생들이다. 오늘날 소위‘명문대생’의 정의는 극도의 실업난을 극복하고 취업에 성공하는 인재가 되어버렸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뛰어든 대학생은‘시대착오적 운동권’으로 여겨질 뿐이다. 서울대의 경우도 학벌주의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싹트기는커녕 오히려 예전의 특권을 이제는 못 누리게 되었다는 푸념만 무성하다. 이런 면에서 박노자가 대학 변화의 희망을 지방대에서 찾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예전에 서울대 대학신문에서 서울대생들은 모두‘집단우울증’에 걸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학생들이 사회에 대한 비판도 하지 않고 자기계발에 신나게 몰입하지도 않은 채, 방향을 잃고 무기력하게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부쩍 학내에‘멘토-멘티가 되어요’라든가‘공허하고 외로운 사람들끼리 모이자’라는 등의 모임소개 대자보가 늘었다. 동기와 선후배 사이에 경쟁관계가 형성되고, 자본에 의해 강요된 구조 속에서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학생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뭉치고 기댈 곳을 찾고 싶은 것이다. 학생들이 현재 대학에서 큰돈을 들이며 배우는 것은 자본이 원하는 기술이나 지식보다도 사회의 매정함과 삭막함, 그리고 불신이 아닐까.

박수현 서울대 대학원 석사과정 theancients@hanmail.net

 

 

복수(複數)의 자본주의를 사고하기

● 지난호 특집 유종일과 김기원의 글은 궁극적으로 한국경제의 새로운 발전모델을 탐색하고자 한다. 유종일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맥락을 추적하고, 김기원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다루면서 세계화(시장)와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의 구분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들의 논의가 비판적인 함의를 갖는 것은 아마 시장우상주의, 맹목적 시장숭배에 함몰되지 않고 한국사회 내부의 비대칭성과 불균등성을 역사적 맥락에서 구체적으로 포착한 때문일 것이다. 두 논자는 좌파와 우파를 동시에 비판하며 정상적인 시장기능의 복원, 우리의 현실에 조응하는 새로운 축적체제로의 이행전략에 주목한다. 그것이 김기원이 말하는‘선진화전략’이다. 만약 오늘날에도 여전히‘개발’과‘선진화’라는 우파적 수사를 사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신자유주의와 시장만능주의에 함몰되지 않는‘복수(複數)의 자본주의 발전모델’이어야 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유종일과 김기원의 논의는 그 가능성을 위한 모색이다. 여기서 강조해둘 것은 두 논자 모두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반격”임을 역설한다는 점이다. 결국 복수의 발전모델, 복수의 축적전략은 이러한 반격에 대한 반격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건우 pfreebird@hanmail.net

 

 

한국사회의 이주민 문제에 대한 공감

● 미국에서 이주와 시민사회를 공부하다가 2006년 이민법 개정운동을 목격했다. 규제의 초점이 되었던 히스패닉 이민자공동체뿐 아니라 한인공동체를 포함한 다른 민족집단(ethnic)공동체들도 참여했으며 교회의 참여도 돋보였다. 이민자국가인 미국의 경험을 지켜보면서, 사실상 이민이 진행중인 한국과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었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하승창의 글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시민운동을 했던 경험이 있기에 미국의 이민법 개정운동의 이슈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었으리라. 또한 미국에서의 관찰이 있었기에 한국의 이슈가 단순히‘외국인노동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이민’의 문제임을 명확히 보고 “새로운 한국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고 주장할 수 있었으리라.

글을 읽으면서 평소 가졌던 물음이 다시 떠올랐다. 하나는 시민단체의 역할 변화에 관한 것이다. 한국정부는 이주정책의 전향적인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여성 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고, 외국인정책 관련 기본법이나 외국인정책 총괄기구 설치에 관한 검토도 이미 시작되었다. 이주관련 시민단체들에게 정부 및 지자체의 사업이나 프로젝트의 위탁도 늘고 있다. 어떤 시민단체들은 복지단체화하는 경향도 보인다. 물론 시민단체가 정부와 건강한 파트너십을 건설해가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주관련 시민단체들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떤 자기 정체성과 방향성을 재설정해나갈 것인가?

다른 하나의 물음은 종교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주문제에서 종교단체가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지만, 무엇보다 이주민 입장에서 종교는 특히 중요한 쉼터요 자원이요 주류사회와의 통로가 되어왔다. 그렇다면‘정부나 시민사회가 어떻게 종교와 파트너십을 구축하는가’또한 이주민의 통합에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을까?

김우선 예수회신부, 서강대 강사

 

 

정한아의 단편을 읽고

● 마음에 맞는 단편소설 몇편만으로도 『창작과비평』과 함께하는 매 계절이 즐겁다. 지난호에서는 특히 정한아의 「아프리카」가 마음에 와닿았다. 이 소설에서 인물들은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살아남는다. 한평생 스스로에게 속았던‘사장 할머니’도,‘언니들’도,‘솔’도 그러했다. 그런데 살아남는 것이라면 아프리카 동물들이야말로 고수다. 그들은 아프리카 땅이 건조해지기 시작한 2500만년 전부터 세상과 싸우며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머니 깊숙한 곳에 꼭 심장 모양으로 생긴 아프리카를 넣고 다니는 주인공은 그 아프리카 한구석을 만지며 순간순간을, 자기 몫의 하루를 넘긴다.

다른 사람의 생존방식과 절망을 관찰하던 주인공은 이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차례가 되었다. 결국 그녀는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는‘혼자 힘으로 살아남는 아프리카의 방식’에 충실하게 될까? 가장 극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 가장 의연하게 살아남은 것들이며 “인간과는 친해질 가망이 없는 것들”인 아프리카 동물들이 사실은 “두려움” 때문에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두려움을 철저히 인정했을 때에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론이 어쩐지 씁쓸한 구석도 있지만, 결코 냉소적이지 않은 이 소설의 방식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아프리카는 따뜻하니까, “햇살이 주위의 사물을 뜨겁게 비추”니까, 그래서 “모든 것이 한층 더 명확해”지니까.‘각자 자기 몫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 작가에게, 또한 나에게, 우리 20대 모두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김나현 nabie_n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