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백영경 외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창비 2020

의료는 누구의 것인가

 

 

김새롬

시민건강연구소 젠더와건강연구센터장 saerom@health.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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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년을 넘어선 코로나19 유행은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사람중심성(people-centeredness)을 되묻게 만들고 있다. 방역, 아니 국가의 성공을 점치는 ‘일일 확진자 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불편과 고통은 개인이 알아서 감당할 몫이 되어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K-방역’은 무료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제공하고 확진자를 치료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무대의 조명을 벗어난 현장은 위기와 혼란으로 가득한 채 방치되어 있다. 열이 나는 임산부나 오랜 야근 후 가슴을 움켜잡고 쓰러진 노동자도 코로나19 음성 검사 결과지가 없으면 병원에 입장조차 어렵다. ‘안전’에 대한 강조 역시 우선순위가 미묘하게 뒤틀려 있다. 일상의 건강을 돌보던 보건소는 코로나19 방역에 매진하느라 진료와 보건사업 대부분을 중단했고, 밥과 돌봄을 나누던 마을회관의 문은 굳게 잠긴 지 오래다.

마음이 갑갑한 요즘, 백영경의 『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한국 의료의 커먼즈 찾기』는 반가운 책이다. 삶에 필수적이지만 여전히 병원과 의료는 개별 시민에게 일상이기보다 일대의 사건이나 예외적 경험에 가깝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복잡하게 제도화된 보건의료체계의 기술적 개선을 말하거나 권리로서의 의료를 규범적으로 주장하는 글들은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개인의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접근 대신 사람들의 직간접적 의료 경험에서 출발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다른 의료’를 모색하는 다섯명 전문가와의 대담 속에서 시민들을 대신해 질문을 던지는 저자는 인권을 압도하는 통치와 의료를 압도하는 이윤의 논리를 고민하며 대안적 의료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대담자 백재중과 최원영, 윤정원은 임상전문가로서 각각 민영화된 의료체계의 한계와 인권적 의료의 중요성, 보건의료노동자의 일터로서의 병원과 존엄한 죽음을 위한 의료, 여성과 소수자를 위한 다른 의료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의료인류학자인 이지은과는 병원을 넘어서 한국사회에 만연한 노화에 대한 두려움과 시민적 돌봄의 가능성을, 김창엽과의 대담에서는 사람중심적 보건의료체계를 위한 민주적 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의료의 상당 부분은 우리가 현실의 병원에 기대하는 통상적인 의료의 범위를 넘어선다. 안전하게 피임하며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누릴 권리,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나 두려움 없이 노화와 노쇠를 수용하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 등을 모두 의료를 통해 달성하기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는 분명하다. 이런 모든 과정에서 의료가 일정하게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좋든 싫든 의료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 일상의 돌봄에 이르기까지 건강과 관련된 대부분의 기획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문제는 한국에서 의료와 돌봄에 관한 의사결정과 책임이 오롯이 환자 본인과 가족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는 점이다.

민간 중심 의료생산체계와 전문가 주도 병원 모델의 한계, 노화와 죽음에 대한 만연한 공포 및 의존에 대한 두려움, 의료와 돌봄 사이 존재하는 허위의 위계와 돌봄의 의료화, 코로나19 유행 대처에서 드러난 시민사회의 실종이 보여주는 민주적 경험과 공론장의 취약함, 건강을 바라보는 남성주의적 시각과 그 결과 좀처럼 존중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건강 필요에 이르기까지 너른 사안을 다루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사회적 제도로서 한국 의료에 대한 문제의식이 폭넓게 제시되고 이를 토대로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재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문제는 너무 많은데 이를 넘어서기 위한 수가 마땅찮다는 것은 갑갑한 점이다. 대담에 초대된 이들이 책의 주제라고 볼 수 있는 커먼즈(commons), 그러니까 국가와 시장을 넘어선 공동의 생산과 창작을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것 같다는 인상도 곤란을 더한다. 의료를 사회과학의 대상으로 보는 이들과 의료현장에서 임상가로 일하는 이들 사이의 간극이 발견된 셈이지만, 이 책이 그 공간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 책은 ‘다른 의료’가 무엇인지에 대해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더듬어 묻는다. 사회문화적 억압으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했던 성(性)과 재생산 건강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의사와 환자 관계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치매를 앓거나 쇠약해지는 노년의 몸을 성심성의껏 돌보며 가족과의 관계까지 고려하는 의료는 어떻게 가능한가? 인구 5만명 미만의 작은 지자체 주민들을 위한 의료는 도저히 이윤을 포기할 수 없는 의산복합체(medical-industrial complex)의 의료와 어떻게 달라야 하나?

책을 읽으며 명료해지는 것은 적어도 건강과 사회적 고통에서 출발하는 의료는 지금의 의료와는 다른 자원, 지식, 관계, 실천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구조적 제약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커먼즈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 필요당사자인 시민들이 간여하는 공동 생산은 어떻게 가능한지, 시민적 통제는 의료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더 다양한 영역에서 고민과 시도가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다만 변화를 위해 새로운 주체가 필요하다는 부분이 좀더 강조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예컨대 책의 서두에서 저자가 의료 개선을 위한 논의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사례로 들었던 2020년 의사파업의 징후적 성격이 좀더 드러났으면 어땠을까.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제도는 성공을 담보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심화되는 지역 의료불평등에 개입하기 위한 거의 최후의 수단에 가까웠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파업은 정부정책에 대한 반대이기도 했지만, 반대를 위한 논거로 공정 담론을 끌어온 것에서 알 수 있듯 대안적 체계를 모색하는 시도 자체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의대생과 전공의의 파업은 ‘다른 의료 같은 건 없다’라는 TINA(There Is No Alternative) 선언이기도 했다. 적자가 나는 지역에서는 병원이 운영될 수 없으며, 국가는 더 높은 비용을 보상하는 시장 방식 외에 다른 기준으로 의사를 양성하거나 배치하는 등의 개입을 하지 말라는 것. 결국 기존의 시장 방식을 거스르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런 의사 주체가 주어진 조건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다른 의료를 상상하고 현실에 그려낼 수 있을까? 다른 의료를 상상하고 생산하는 주체는 누가 될 수 있을까?

저자의 말대로 커먼즈에 희망을 걸어보면, 페미니스트 커먼즈 운동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국가가 규율하는 의료를 벗어나 공해(公海)에서 유산유도약물을 삼켰던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s)이나 보스턴여성건강공동체의 ‘우리 몸 우리 자신’(Our Body, Ourselves) 운동은 가장 절실한 필요를 가진 당사자들의 행동에서 다른 의료가 출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들이 보여주는 교훈의 또다른 핵심은 관계의 변화에 있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대안으로 나아가기 위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의사와 환자, 시민과 국가 각각의 속성 이상으로 이들의 관계다. 모두가 존엄을 지키며 삶과 죽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정치공동체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구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면, 이 책은 그를 위한 지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문맥이 생소한 이들이라면 저마다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개념화와 문제의식을, 이미 익숙한 독자라면 대안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동력과 생산체계를 고민하며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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