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세방 李世芳

1941년 서울 출생. 1961년 자유문학사 신인상, 1965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조국의 달』 『서울 1992년 겨울』 『걸리버 여행기』 등이 있음. saelee@saelee.com

 

 

 

백화나무 숲속의 사냥꾼들

 

 

새벽햇살이 구름 사이를 뚫고 대지를 비추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에 눈부신 아침이다. 삼월 하순의 잔설이 더럽게 보였고 봄기운은 완연했지만 늦추위가 아직 물러서질 않고 있다.

눈산에서 비롯된 바람이 들판을 거쳐 평양 시내의 아파트, 빌딩 사이를 뚫고 지나간다. 그 바람은 다시 인민들의 얼굴에 와서 윙윙거린다.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을 타도하자” “조선의 자주와 평화를 강탈하려는 미제국주의 침략자들을 까부수자” 평양시내 곳곳을 장식한 현수막들은 지금도 늦추위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마지막이다. 수선과 팔십난 친할머니의 상봉은 이번으로 세번째지만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목숨을 부지해온 이땅의 수많은 조선인민들이 한순간에 처절하게 죽어갈지도 모를 세상의 마지막,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노망난 할머니는 수선이 미국에서 온 자신의 손녀라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으며 어떤 때는 개처럼 축 늘어져 두 눈망울만 뻐끔거리기도 했고 심할 때는 아무데서나 대소변을 봤다. 할머니를 열심히 간호해주는 삼십대 중반의 김영희 동무는 수선에겐 천사였다. 입에 하얀 마스크를 하고 손에는 투명한 비닐장갑을 낀 김영희 동무는 할머니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일을 저지를라치면 재빨리 손을 쓰곤 했다. 그렇게까지 된 할머니를 먼발치에서 보고만 있던 수선은 얼굴이 뜨거웠지만 차마 행동에는 옮기지 못했다. 양심에 걸려 자신이 치우겠노라고 하면 김영희 동무는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저는 간호사로서 훈련을 받은 사람이야요. 기자선생님이 기자의 훈련을 받으신 것처럼 말이야요. 하나도 걱정하지 마시라요.”

아닌게아니라 그네의 손놀림 하나하나는 오랫동안 숙달돼온 간호사로서 능숙함을 보여주었다. 그네는 오물을 처리한 뒤 그 자리를 뜨거운 물걸레로 말끔히 닦아놓았고 할머니에게 깨끗한 새옷을 손쉽게 입혀주곤 했다. 수선이 몇번이고 감사의 말을 할 때마다 그네는 당의 요구에 충실히 임무를 수행할 뿐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자고 있다. 수선은 할머니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다 잠들어버린 듯 입을 조금 벌린 채 숨소리가 가냘픈 할머니는 어떻게 보면 갓난아기 같고 또 어떻게 보면 이미 죽은 사람 같은 섬뜩한 모습이기도 했다. 새벽 세시 반경 눈뜬 수선은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낮에는 보려야 볼 수 없던 비둘기들이 밤만 되면 울었다. 또 밤이 되면 세차진 바람소리가 비둘기들의 울음소리와 섞여 사람의 신음소리같이 또는 아이의 울음소리같이도 들렸다. 그 비둘기 소리에 수선은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그네는 핼쑥한 얼굴로 창가에 기대어 백화나무숲 쪽을 바라보았다. 얼핏 보면 이 마을은 한폭의 그림 같다. 나지막한 분지에 정성껏 가꾸어진 마을은 평양 시내에서 이삼십분 거리에 있다.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열 채도 안되는 벽돌집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집집마다 굴뚝이 있어도 연기를 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니 한폭의 풍경화로는 어딘가 이상하다. 사람들이 사는지 안 사는지 억지로 만들어놓은 무대 같은 인상마저 있다. 그런데 이 마을 한복판에는 우람한 나무 서너 그루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겨울에도 좀처럼 추위를 타지 않는다는 별종의 질기디질긴 나무들로 그 가지와 잎은 사철을 두고 줄기차게 은빛 광채를 내뿜는다. 그 순백의 광채를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간은 산천이 환해질 아침 무렵이다. 그때 백화나무 숲속에 내려앉는 햇살은 선녀의 비단결이라고 해야 할까, 그만큼 황홀한 순간을 자아낸다. 이 순간을 별나게 체험할 수 있게 숲속 이곳저곳에는 한사람씩 앉을 수 있는 등나무의자들이 놓여 있다. 우람한 나무뿌리들이 땅속으로 뻗다가 다시 땅 위로 솟아올라 서너 마리 코끼리들이 엉긴 듯한 장관을 형성했다. 뿌리가 펑퍼짐한 곳에 큼직한 동판이 박혀 있는데 거기엔 ‘일찍이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이 지은’ 시 한수가 새겨져 있다.

 

그대는 나의 기백이요

나의 기백은

기필코 조선의 광복을 찾을 것이니

백화여 영원하라.

 

백화나무숲은 김일성 장군이 이곳을 거쳐 ‘삼지연의 역사’를 펼쳤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백화나무숲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택된 몇몇 외국손님들이 아침이면 등나무의자에 앉아 명상의 시간을 갖곤 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초대된 특별손님들이 개별적으로 등나무의자에 정좌하여 고요 속으로 젖어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한 명상을 했지만 그중에는 장시간을 두고 불교식 참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제 나라로 돌아가 자신의 체험을 글로 쓴 경우도 있었으며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이 황금빛 불상으로 변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기술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는 백화나무 숲속의 마을엔 파란 눈의 외국인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곳만이 아니다. 일반 외국손님들이 묵는 고려호텔도 텅 빈 지 오래다.

수선은 외국인이라기보다 조선동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네는 조선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간간이 평양 사투리까지 곁들이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평양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네의 아버지가 열여섯살 소년시절에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서울에 잠깐 내려온 사이 그만 전쟁이 터졌는데 그후 반세기가 넘도록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평양에 둔 어머니, 아내와 생이별을 했다.

어디선가 군가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산등성이에서 줄지어 행군하는 인민군들의 모습이 보였다. 백여명쯤의 군인들이 쉽게 눈에 띈 이유는 산등성이 뒤로 거대한 눈산이 병풍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군가는 바람결에 간헐적으로 들렸다 끊겼다 하여 씩씩하기보단 오히려 나약하게 들렸다. 그 소리는 며칠 전 군중집회 때와 비슷했다. 수선이 초대석에서 내려다본 인민들은 개미떼와 같았으며 그들이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했다. 인민들은 언제라도 명령만 내리면 총대를 쥐겠다는 결의로 “미제국주의 타도”를 외쳤다. 수선의 양팔에 으스스 소름이 끼쳤다. 저 젊은이들, 아니 개미떼와도 같은 인민들이 아주 가까운 장래에 미군의 융단폭격에 몰살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길한 생각 때문이었다. 희망찬 아침햇살을 받으며 행군하는 군대였지만 그 모습은 마치 물오리들이 뒤뚱뒤뚱 줄지어가는 듯한 애처로움을 떨칠 수 없었다. CNN 뉴스에서 자주 보던 미사일, 그리고 수백명이 한 동작으로 움직이는 인민군 정예부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국방색 코트를 입은 두 여인이 산보에 나섰다. 때때로 매운 바람이 허공을 가르며 두 여인의 뺨에 와닿았지만 심한 추위는 아니었다. 대부분의 눈은 다 녹았으나 제설 때 밀어놓은 눈더미가 아직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백화나무숲에 이르는 길가엔 벌써 빨갛게 봉오리를 맺은 진달래나무들이 비닐옷을 입고 꽃샘추위를 이겨내고 있는 산뜻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머지않아 아름다운 꽃들이 피갔디요?”

수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예. 우리 조국에서는 진달래꽃으로 봄소식을 알디요. 진달래를 영어로 뭐라 하디요?”

“아젤리아라고 부르죠.”

“특별히 우리 조국에서는 위대하신 수령님 탄생일에 맞추어 강산을 진달래꽃으로 빨갛게 물들이디요.”

수선은 김영희 동무의 가슴에 단 빨간 김일성 뱃지를 얼핏 보았다.

“알고 있디요. 그런데 영희 동무, 저의 할머니께서 오늘 다시 요양원으로 가신다구요?”

“예, 맞습니다. 할머니께선 오늘 요양원으로 다시 옮겨지십네다.”

“몇시에요?”

“기자선생,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디요. 할머니와 손녀딸의 만남은 오늘이 마지막이라요. 애석하디요. 리별은 슬픈 것이라고 가요에서 내내 그러디 않습네까?”

“아니, 난 슬프지 않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아마 나는 그동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나봐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숲속에서 들려왔다. 참새들 소리 같기도 했지만 그중엔 유난히 낭랑한 새소리도 흘러나왔다. 그 낭랑한 소리가 시끌시끌한 다른 새소리들 속에서 튀어나오지 않고 우아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은 잔잔한 현악 사중주를 듣는 것과 흡사했다. 두 사람은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걸었다.

“기자선생한테 질문이 하나 있디요. 물어도 됩니까?”

“물어보세요.”

“부친께선 무슨 리유로 살아 계신 노모를 뵈러 조국엘 오시지 않습네까?”

그 물음에 당황한 수선이 잠시 발걸음을 멈춰 김영희 동무를 바라본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수선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차차 가라앉는다.

“꼭 알고 싶습니까?”

“리해할 수가 없구만요. 오십년 동안 생리별을 한 오마니와 아들을 기꺼이 만나게 해주겠다는 공화국의 인도주의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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