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정화 崔正和

1979년 인천 출생.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 『모든 것을 제자리에』 장편소설 『없는 사람』 『흰 도시 이야기』 『메모리 익스체인지』 등이 있음.

daysmare@hanmail.net

 

 

 

벙커가 없는 자들

 

 

지구에 재앙이라고 할 만한 폭설이 퍼붓고 있다. 밤새 대기 그물 오천만장을 설치해 얼음알갱이들을 팔백보(vo)나 걷어냈지만, 오분 만에 모든 그물이 파손되었다. 더이상은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재 시각 2029년 7월 15일 오후 1시 12분. 날씨통제센터는 대기 순환 조절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날씨통제센터의 경비호는 대류권을 벗어나 대류권계면으로 일시적 이탈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탑승자는 열다섯. 그리고 지금 막 열둘이 되었다. 통제 불가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결재창 입력 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내부 모니터를 통해 대장과 소장, 팀장이 황급히 비상용 소형 비행선으로 갈아타는 모습을 확인했다. 그들은 아마 우주 벙커로 대피할 거다. 그것이 상관들과의 마지막이라는 건 씁쓸한 일이었지만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우리에게는 없었다. 화면에서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우리가 살아온 삶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었다.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고, 무더위와 폭설이 이삼일 간격으로 반복되어왔다. 기상 현상을 관측하고 예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에 맞서 대기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일이 날씨통제사인 우리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업무는 이제 종료되었다. 더이상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대기 상황을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그 상황에 처하자 알몸으로 세상에 태어난 처음의 순간처럼 내게 아무런 준비가, 몸을 움직일 최소한의 근육 같은 것조차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일들, 어린 시절에 빈집에 혼자 남아 어둠 속에서 온갖 상상을 하면서 겪었던 공포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진 다음 날 뭘 해야 할지 몰라 느낀 당혹스러움, 센터의 입사시험에 세차례 낙방하면서 통장 잔고 부족으로 며칠간 굶어야 했을 때 겪은 수난 같은 것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저 살고 싶었다. 대체로 무덤덤하고 심드렁한, 느리게 뛰는 내 심장에서 거칠고 앙상하고 억척스러운 손이 비집고 나와 그게 무엇이건 붙들겠다며 사방의 허공을 휘저었다. 그게 나를 살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붙들겠다고.

우리는 일단 대류권계면에 머물면서 경비호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추측해보았다. 그걸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폭설의 기세가 누그러들면 경비호에서 내릴 수 있을까? 여기서 내릴 수 있다고 해도 당장 갈 곳이 있을까? 집은 일찌감치 폭풍에 날아가버렸을 텐데. 마음을 다잡을 만한 희망의 단서를 찾기도 어려웠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이번 달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나는 가끔 집값이 밀리는 것을 눈감아주던 집주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신도시의 재개발 구역에 투자를 하려고 적금을 붓고 있었다. 거주민들을 내쫓고 지어 올리던 신축 아파트도, 거래 중이던 은행의 건물도, 만기일이 두달 남은 적금 통장도 모두 날아가버렸을 것이다. 그가 꿈꾸던 안락한 노후도, 고질병이었던 관절염도, 종합 암보험을 든 몸뚱이도, 인기가수를 모델로 새 광고를 찍고 있던 보험회사와 보험회사의 직원들, 그들의 소중한 가족도 다 함께 폭설에 파묻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경비호에 남은 이들은 나처럼 벙커가 없는 자들이다. 운 좋게 재난 현장을 피할 수 있었지만 이후의 일은 보장할 수 없었다. 허공에서 떠돌다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자 갑자기 며칠을 굶은 듯이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 생각을 떠들어대자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아영이 조종석 아래쪽 서랍을 열어 토스트용 식빵 한덩어리를 보여주었다. 당장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두툼한 빵 덩어리의 실체 앞에서 일시적으로 사그라들었다. 진정이 되자 트림이 나왔다. 배가 고픈 게 아니라 소화불량이었다. 허기가 사라지자 목이 말랐다. 생수병을 꺼내 목을 좀 축이려다가 이제는 마실 물도 귀하다는 것, 한모금이라도 아껴야 버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래가 없음을 직감하자 과거의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오기 시작했다. 발목을 다쳐 아버지의 등에 업힌 채 등교하던 날들의 하늘, 교회에서 받은 사탕을 친구의 수첩과 바꾸고 들떴던 마음과 그 수첩을 물웅덩이에 떨어뜨려 통째로 젖어버렸을 때 막연하게 느꼈던 희로애락의 기미들, 날씨통제사가 되려면 기후에 대한 정보도 풍부해야 하지만 침착을 유지하는 심리 훈련이 기본이라던 기후중학교 선생님의 말씀, 오로지 공부에만 매진했던 고등학교 시절과 대기통제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할 때 느꼈던 환경에 대한 사명감. 센터에 입사하고 부딪혔던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와 그것들을 조율하면서 성숙하고 성장해온 날들. 날씨통제센터로 면접을 보러 간 날도 떠올랐다. 착각을 하는 바람에 근처의 날씨통제협의회로 잘못 찾아간데다가 내 차림새는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에 맞지 않게 터무니없이 얇았다.

팀장은 내가 장소를 잘못 찾은 것이나 그래서 십분 정도 지각한 것에 대해서 탓하지 않았다. 센터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며 내가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팀장은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배려심이 많고 인간미가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까지 기억나자 그가 날씨통제센터에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완수하는 것보다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을 더 높은 순위로 두고 회사를 나간 것, 즉 경비호를 탈출한 것에 대한 배신감을 중화시킬 수 있었다. 한순간 불어닥친 폭설처럼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대기 불안정 상황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날씨가 기후센터의 통제권을 슬슬 벗어나기 시작한 건 벌써 십년 전의 일이었다. 모두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삶 전체를 바꿔야 한다는 데에 엄두를 내지 못했던 건 우리 인간들이다. 날씨는 인간들이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를, 자신들의 삶을 통째로 바꾸기를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기다려왔다.

나는 팀장과 나누지 못한 인사를 보고서로 대신하기로 했다. 팀장이 근무 지역을 임의로 이탈했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 입력 화면에서 기안자는 원래 소장이었고 팀장이 이탈하기 전에 소장도 나갔지만 일단 계속 써보기로 했다. 그건 고프지도 않은 배를 불려 불안감을 떨쳐내겠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짓이라도 하지 않고는 버틸